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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찾아라" 31분간 무슨 일이… 본문

-미국 언론-/한국 언론

"대통령 찾아라" 31분간 무슨 일이…

CIA Bear 허관(許灌) 2009. 5. 28. 11:38

전대통령 서거 경위 재조사서 밝혀진 것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6시 15분을 전후한 시각 경호관이 없는 상태에서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한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또 당시 산행을 수행했던 이병춘 경호관(45)은 선진규 정토원장(74)에게 사고 당일 정토원에 들른 사실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사실도 드러났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사건을 수사해온 경남지방경찰청 이노구 수사과장은 27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과 동행한 이 경호관이 오전 6시 14분 정토원에 심부름 갔다가 6시 17분 돌아온 후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 오전 6시 45분까지 31분간 경호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오전 6시 14∼17분 사이에 투신했다고 보면 약 30분간 부엉이바위 아래에 방치돼 있었던 셈이다.》

6시 14분… 전대통령 “정토원 원장 계신지 보고와라”
6시 17분… “VIP 안보인다” 사저 동료 경호관에 연락
6시 45분… 주변 수색통해 부엉이바위 아래 시신 발견
경호관, 정토원장에 “온적 없다고 해달라”… 자책에 거짓말한 듯


23일 오전 6시 10분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4분 동안 대화를 나눈 뒤 이 경호관에게 정토원에 가서 선 법사(선 원장)가 있는지 알아보고 오도록 지시했다. 경호관은 정토원에 갔다가 오전 6시 17분께 돌아와 보니 노 전 대통령이 보이지 않아 경호동에 있던 신모 경호관에게 연락했고 주변 수색을 통해 오전 6시 45분경 부엉이바위 아래에 쓰러져 있던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은 투신 후 최소 28분 이상 방치돼 있었으며 경호관이 정토원에 다녀온 시간까지 합치면 31분가량 ‘경호 공백’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견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산 아래쪽을 보고 옆으로 누워 있었으며, 머리 등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의식이 없었고 맥박도 없는 상태였다고 이 경호관은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차를 댈 수 있는 산 아래 공터까지 66m가량 내려가 2차례 인공호흡을 했으며 곧바로 도착한 경호차량에 태워 인근 김해 세영병원으로 옮겼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 경호관은 당초 경찰에서 “23일 오전 6시 20분경 노 전 대통령과 부엉이바위에 올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하다 6시 45분경 주변을 지나는 등산객에게 시선을 돌린 사이 갑자기 투신했다”고 진술했었다.
이 경호관은 선진규 정토원장에게 사고 당일 만난 사실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선 원장은 27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사고 다음 날인 24일 오전 (이 경호관이) 전화를 걸어와 ‘(경찰에서) 저와 (23일 새벽) 만난 건 얘기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알고 계시라’고 말해 ‘알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선 원장은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깊이 생각을 못했지만 대통령 투신이 큰 문제라는 생각에 경찰에서 사실대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경호관은 요인을 충분히 지키지 못한 충격과 자책감, 불안 등으로 심리적 압박을 느껴 허위 진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경찰은 내달 초 이 경호관에 대해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처리 할 경우 형법상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의 재조사 발표에도 몇 가지 의문은 남아 있다.

23일 오전 이 경호관으로부터 대통령의 ‘유고’를 접수하고 여러 차례 통화해 내용을 잘 알고 있었던 신 경호관 등 사저 경호동(CP) 관계자들이 사건 발생 4일 동안 왜 함구했는지,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는지도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무전기보다 휴대전화를 자주 쓴 이유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사안. 또 이 경호관이 119에 신고하지도 않은 채 노 전 대통령을 어깨에 메고 이송한 것도 “다급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응급환자 이송 방식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이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 지시를 받고 정토원을 다녀오는 데 3분 정도 걸렸다고 밝혔으나 “그렇게 빨리 산길을 뛰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전후 시간을 짜 맞춘 결과가 아니냐는 것. 경찰은 “빠른 사람은 그 시간대에 왕복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추가 유서설’도 국민장 이후 명쾌한 조사가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사고 당일 오전 7시 반경 연락을 받고 사저로 달려간 권양숙 여사의 비서관인 박모 씨가 처음으로 발견해 김모 비서관에게 알렸고 경찰은 정모 변호사를 통해 유서를 넘겨받았다”고 밝히고 “유족 진술이 없는 한 더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가 23일 검찰 재소환을 통보받아 정신적 압박이 특히 심해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도 명확하게 설명이 되지 않았다.

김해=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 경호관 교신으로 본 당시 상황

“안 보인다… 찾아라… 사고발생, 대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전 노 전 대통령과 동행했던 이병춘 경호관은 봉하마을 사저 경호동(CP)에 있던 신모 경호관(44) 등과 28분 동안 여러 차례 교신을 하며 다급하게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과 봉화산을 오르다 정토원을 100m 앞둔 지점에서 CP와 무전교신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힘들다, 내려가자”고 하자 신 경호관에게 “하산하신다”고 연락한 것.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정토원에 갔다가 부엉이바위에 되돌아온 오전 6시 17분경 신 경호관에게는 서둘러 휴대전화를 했다. 단축키를 누른 뒤 “잠깐 심부름을 다녀온 사이 대통령께서 보이지 않는다, 나와서 내려오시는가 확인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근처에서 나물을 캐던 오모 씨(57·여)에게 확인을 했지만 “등산객을 못 봤다”는 대답을 들었다. 오전 6시 23분경 다시 신 경호관에게 전화를 걸어 “찾았나, 안 보이나”라고 물었다. 이 경호관은 사자바위 쪽으로 허겁지겁 뛰어다니며 노 전 대통령을 찾아헤맸고 오전 6시 30분 신 경호관에게 전화를 걸어 “(사저 인근) 저수지나 연꽃밭 쪽을 찾아보라”고 했다.

오전 6시 35분, 정토원을 다시 들렀다 나온 이 경호관은 신 경호관으로부터 “정토원 법당에 있을지 모르니 한번 보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 경호관은 “없더라”고 말하고 부엉이바위로 내달았다. 이 경호관은 ‘바위 밑에 있을지 모른다’는 직감에 뛰어내려가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다. 6시 45분경, CP로 전화를 걸어 “사고가 발생했으니 차를 대라”고 소리쳤다.

경찰은 “긴급 상황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한 것에 대해 이 경호관은 ‘단축키를 사용해 통화하는 것이 편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김해=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