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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국가 동물(웅녀-곰), 새(아침의 소리-까치), 꽃(봄의 소식)-진달래 본문

2단계 민주화-민주(문민)정부 수립/남북통일 헌법-지적능력 있는 법조인

남북통일국가 동물(웅녀-곰), 새(아침의 소리-까치), 꽃(봄의 소식)-진달래

CIA bear 허관(許灌) 2009. 5. 3. 10:44

남과 북이 통일국가를 수립한 이후에는 국가상징 동물은 웅녀(곰)이며, 새는 아침의 소리(까치), 꽃은 봄의 소식(진달래)로 지정돼야 합니다 곰(웅녀)은 고조선 국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우리 민족의 조상입니다 단군신화에서 환인의 아들인 환웅, 즉 웅녀의 혼인으로 단군 왕검이 탄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곰과 호랑이는 우리 예맥민족(조선족과 여진족)이 숭배하는 동물이지만 호랑이는 만주족(여진족)의 상징이며 곰은 조선족(고구려 민족-고구려, 백제, 신라등의 삼한민족)의 상징입니다

까치는 아침의 소리 즉 조선(朝鮮,日出之也)을 뜻합니다 까치는 예로부터 우리의 민요·민속 등에 등장하는 친숙한 새입니다. 또 신화에서는 비록 주인공은 못 되어도 구성상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칠월칠석 신화에서는 견우성과 직녀성의 가연을 연결시키는 오작교를 놓아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침에 우는 까치를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 여겨, 마을에서 새끼치는 까치를 괴롭히거나 함부로 잡는 일이 없었습니다.

진달래는 봄의 소식을 알려주는 우리 민족의 꽃입니다  우리민족은 봄에 꽃을 따서 먹을 수 있으므로 참꽃 또는 참꽃나무라고 부르습니다 꽃을 날것으로 먹거나 화채 또는 술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술을 빚어 먹을 경우 담근 지 100일이 지나야 맛이 난다고 하여 백일주라고도 하는데,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고 조금씩 먹어야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달래를 두견화(杜鵑花)라고도 하는데, 이는 두견새가 밤 새워 피를 토하면서 울어, 그 피로 꽃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1.고조선의 건국 신화(단군신화)와 웅녀(곰)

옛날, 환인서자(庶子) 환웅인간세계를 다스리기를 원하였다. 그러자 아버지 환인이 인간세계를 굽어보니 삼위태백(三危太伯)이 인간을 유익하게 하기(弘益人間)에 적합한 곳으로 여겨지므로, 아들 환웅에게 천부인 3개를 주며 환웅으로 하여금 그곳으로 가 인간세계를 다스리는것을 허락했다. 그러자 환웅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비롯한 3,000명의 수하를 이끌고 태백산 정상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칭하며 다스리니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불렸다. 그는 곡(穀, 곡식), 명(命, 목숨), 병(病, 질병), 형(刑, 징벌), 선함(善), 악함(惡) 등 360가지 일을 맡아 인간세계를 다스렸다. 그러자 같은 동굴에 사는 호랑이 한마리가 환웅을 찾아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늘 간청해왔다. 이들의 간청을 들은 환웅이 이들에게 신령(神靈)한 1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며 이것만 먹고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곰은 인내하고 근신하여 삼칠일(3*7, 21일)만에 인간 여자로 변하였으나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자신과 혼인하는 사람이 없자 신단수 아래에서 환웅에게 아이 갖기를 기원했다. 그러자 환웅은 잠시 인간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하였다. 그 후 웅녀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단군왕검이다. 왕검은 당고(唐高, 당고는 요임금을 말함) 즉위 50년 후인 경인년(요임금이 즉위한 때는 무진년으로 그 50년 후는 정사년임. 따라서 기록의 오류로 보임)에 평양에 도읍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했다. 훗날 도읍지를 백악산(白岳山, 또는 궁홀산(弓忽山),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함)아래 아사달로 옮겼다. 단군은 이후 1,500년간 조선을 다스리고 주나라 무왕(武王, 삼국유사에는 고려 혜종의 이름인 武 대신 虎로 표기됨) 즉위년에 기자를 조선 왕으로 봉하고 자신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겨갔다가 뒷날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이 되었는데 그때 단군의 나이 1,908세였다.

 

 -해석

 단군 신화는 간단히 말해 인간 세계로 내려온 천신의 자손이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가 오랜 동안 계속되어 한국의 역사에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왕권의 정통성과 국가의 존엄성을 수식하려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지며, 천신의 자손인 현왕(現王)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로, 영계(靈界)와 인간계(人間界)를 매개할 수 있는 샤먼(shaman)과 같은 특이한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단군'의 '檀'이 원래는 '壇'이었고 고조선의 왕은 제사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이 제사 의식에 고조선을 구성하던 모든 집단의 장들이 참여해 정치적 통합을 강화하고 결속력을 높였을 것이다. 곧 단군 신화는 고조선 당대의 정치이데올로기였고, 그 제의는 정치적 집회의 기능을 지닌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측면은 이어지는 시기인 삼국시대의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천신의 자손이 강림하여 나라를 세웠다는 신화는 동북아시아 지역 고대국가의 건국신화에서 흔히 보인다. 또한 자신의 조상이 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 전승과 숭배 신앙은 시베리아 퉁구스(Tungus)족의 여러 종족 사이에서도 널리 존재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고대문화의 기저에는 시베리아 지역 주민들의 문화와 연결되는 면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민족마다 신화가 있듯이 전설처럼 내려오던 한민족의 단군신화(檀君神話)는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는 천신족(天神族)이 을 부족의 상징으로 하는 맥족(貊族)과 호랑이를 부족의 상징으로 하는 예족(濊族)을 평정하고 복속시키는 사실을 설화로서 전해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단군신화에서 환인의 아들인 환웅, 즉 웅녀의 혼인으로 단군 왕검이 탄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때 호랑이가 약속한 기일을 참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가 인간이 되지 못하였다고 설명되는데, 이를 신화의 상징으로 보아 실제 과 호랑이라기보다는 천신족이었던 환웅 부족과 토착세력인 을 섬기는 부족이 연합해 단군조선을 건국했고 호랑이를 섬기는 부족은 대립하다가 밀려나간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족은 점차 그 이름이 변하면서 ‘족-고족’으로 바뀌었고, 이후 부여에서 주몽이 오게 되면서 고족의 족장 딸인 소서노와 혼인하면서 ‘고구려’라는 국가 체계를 이루었다고 보고 있다. 호랑이를 섬기는 부족은 예족으로서 우리 민족의 근간인 예맥족 가운데 예족이라는 학설이 있다. 또 예족은 동예여진족의 선조쯤으로 여기고 있는데 실제 여진족의 고대 유물을 보면 호랑이를 섬겼다는 증거가 많이 보인다. 여진족이 바로 중국청나라를 세운 부족이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박달임검지역야(朴達壬儉之譯也)'라 해서, '단군이란 박달나라 임금을 번역한 것'으로 되어있다. 《규원사화》에서는 박달이라는 말은 옛부터 백달이나 배달로도 불렀고, 나라의 우두머리는 임검이라 했다. 이를 한자로 쓰다 보니 박달임검을 박달나무 단(檀)자에 임금 군(君)자를 적게 되었다는 것이다.

《규원사화》의 기록으로는 단군 임금 때 8대 대신(八加)이 있었는데, 이 중 농사를 관장한 사람이 고시 씨이며, 이 고시 씨에 예를 올리기 위해서 밥을 먹기 전에 '고수례' 혹은 '고시례'라고 한다고 설명한다. 단군에게는 네 명의 아들 부루, 부우, 부소, 부여가 있었는데, 맞아들인 부루는 2세 임금이 되었고, 막내아들인 부여는 나중에 부여의 시조가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규원사화》에서는 '부시(부소가 부시로 와전되었음)가 마른 쑥을 재료로 하여 쇠와 돌을 서로 맞부딪쳐서 불을 만들고, 그 불로 산과 늪을 태우니, 이에 짐승과 벌레가 멀리 도망하여 그 폐해가 점점 없어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한국에서 부싯돌, 부시철, 부싯깃 하는 것은 모두 단군의 3째 왕자인 부시의 공을 기리고자 하는 데 그 연원이 있다는 것이다.

단군 신화는 기록과 구전을 통하여 한국인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선사시대 고조선인의 풍습과 의식세계를 추측하기도 하고, 그것이 고려 이후 각 시기마다 새롭게 재해석되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가 있다. 특히 12세기 후반 장기간에 걸친 몽골와의 전쟁 이후, 단군한국사의 독자성과 유구성 및 한국인의 동질성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2.아침의 소리--까치

참새목(─目 Passeriformes) 까마귀과(─科 Corvidae)에 속하는 새.

까치는 예로부터 우리의 민요·민속 등에 등장하는 친숙한 새이다. 또 신화에서는 비록 주인공은 못 되어도 구성상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예를 들어 중국의 칠월칠석 신화에서는 견우성과 직녀성의 가연을 연결시키는 오작교를 놓아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침에 우는 까치를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 여겨, 마을에서 새끼치는 까치를 괴롭히거나 함부로 잡는 일이 없었다. 까치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 북아프리카와 북아메리카 대륙 서부지역 등 매우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한다. 열대와 아한대를 제외한 북반구 전역에 살며, 우리나라 부근에서는 중국, 러시아 연방 연해주, 일본 규슈 등의 지역에 분포한다. 일본에서는 규슈 서북부에만 국한하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592년 한국을 침략했을 때 일본 규슈로 이식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무장(武將)의 이름이 나베지마·나치하나·가토 등 지역에 따라 다르게 전해지며, 이식장소나 입증할 만한 자료도 불확실하다.

우리나라에서 까치는 1964년 10~12월 한국일보 과학부가 국제조류보호회의(ICBP) 한국본부와 관계학계의 후원을 얻어 시행한 '나라새' 뽑기 공개응모에서 2만 2,780여 통 중 9,373통의 압도적인 표를 얻어 나라새로 뽑혔다. 점차 감소되어가던 까치는, 1966년 2월 24일 산림청 조수보호위원회가 수렵조류에서 까치를 제외시킴으로써 보호받게 되었다.
나라새는 애조사상(愛鳥思想)을 고취하며 민족을 상징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까치는 우리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친근한 새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오지나 깊은 산에서는 까치를 찾아볼 수가 없다. 까치는 사람이 심어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사람이 지은 낱알과 과일을 먹으며, 심지어 사람 흉내까지 낸다. 사람을 가까이하며 학습이나 모방까지 잘 하는 지능이 높은 새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까치를 까마귀와 함께 잡새로 여긴다.
1984년∼85년 경희대학교 조류연구소가 서울 시내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도에서 까치 둥지 밀도를 조사해본 결과, 서울은 1㎢당 둥지수가 4.78개인데 비해 농촌지역인 강화도는 5.19개였다. 한편 서울에서도 교외를 제외한 시내의 평균밀도는 4.21로 농촌지역(강화도)보다 많이 낮았다.
가장 많이 둥지를 튼 나무는 아카시아였고(전체의 29.5%), 그밖에 이태리포플러·미루나무·버즘나무·은행나무·느티나무·물푸레나무·가죽나무·상수리나무 등 8종에 둥지를 틀었다. 까치는 이른봄, 아직 잎이 돋아나기 전에 낙엽활엽수에 둥지를 트는데, 가는 나뭇가지를 쌓아올려 둥근 모양으로 짓는다. 그해에 태어난 어린 까치는 이른 여름 어미새를 떠나 어린 까치들끼리 무리를 형성한다. 낮에는 10~30마리가 한 무리를 지으나, 밤에는 30~300마리가 잠자리에 모여든다. 이들 무리를 '잠자리무리'라고도 한다. 낮이건 밤이건 구성 무리는 장기간 일정하며, 무리의 행동범위나 잠자리도 정해져 있다. 무리의 행동범위는 반경 1.5~3㎞ 정도이다. 이 무리생활은 짧게는 가을까지, 보통 겨울까지 계속된다. 가을이 되면 어린 까치들도 짝짓기를 시작하며, 한쌍 한쌍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 무리는 점차 줄어든다. 둥지 틀 장소를 정하는 데 성공한 짝은 200~300㎡ 넓이의 세력권을 확보한다.

산란의 최적기는 3월 상순에서 중순이며, 일주일 정도면 5~6개의 알을 낳는다. 암컷이 전담하여 알을 품으며, 알을 품는 기간은 17~18일이다. 일반적으로 3월 하순에서 4월 상순이면 부화하며, 새끼는 약 30일간 둥지 속에서 어미새로부터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다. 부화 직후의 체중은 10g 정도이지만, 30일이 지나 둥지를 떠날 때면 200g에 이른다. 먹이는 부드러운 거미에서 시작하여 애벌레를 먹게 되고, 더 자라면 성충을 먹는다. 어느 정도 자라면 열매도 먹는다. 한편 서울 시내의 까치는 녹지 부족에서 오는 먹이의 고갈로 영양실조에 걸린 것들이 대부분이다. 둥지를 떠나는 비율도 매우 낮다.

 

3.봄의 꽃---진달래

진달래과(―科 Ericaceae)에 속하는 낙엽관목.

키는 2~3m 정도 자란다. 타원형 또는 피침형의 잎은 어긋나는데,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뒷면에는 조그만 비늘조각들이 빽빽하게 나 있다. 분홍색의 꽃은 잎이 나오기 전인 4월부터 가지 끝에 2~5송이씩 모여 피는데, 통꽃으로 꽃부리 끝은 5갈래로 조금 갈라져 있다. 수술은 10개,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삭과(蒴果)로 익는다. 진달래는 한국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개나리와 함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나무의 하나로 사랑받아 왔는데, 봄에 한국의 산 어디에서나 꽃을 볼 수 있을 만큼 널리 퍼져 있다. 개나리가 주로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반면에 진달래는 약간 그늘지며 습기가 약간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 가지가 많이 달리기 때문에 가지치기를 해도 잘 자라며 추위에도 잘 견딘다. 뿌리가 얕게 내리고 잔뿌리가 많아 쉽게 옮겨 심을 수 있다. 꽃을 따서 먹을 수 있으므로 참꽃 또는 참꽃나무라고 부르는데, 제주도에서 자라는 참꽃나무와는 다르다. 꽃을 날것으로 먹거나 화채 또는 술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술을 빚어 먹을 경우 담근 지 100일이 지나야 맛이 난다고 하여 백일주라고도 하는데,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고 조금씩 먹어야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달래를 두견화(杜鵑花)라고도 하는데, 이는 두견새가 밤 새워 피를 토하면서 울어, 그 피로 꽃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두견화- 진달래꽃을 두견화라고 한다. 꽃을 먹을 수 있고 약에도 쓸 수 있어서 참꽃이라고 한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분홍색·진분홍색·흰색 자주분홍색 등 색깔이 다양하다.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같이 생긴 통꽃이다.
한방에서는 영산홍(迎山紅)이라하여 진달래꽃을 약재로 사용하여 요통 진통 해열 해수.기관지염 두통감기 류머티즘 치료에 쓴다.
진달래꽃과 비슷한 산철쭉은 독성이 강하여 먹을 수가 없어서 개꽃이라 한다(경상남도 밀양에서는 진달래꽃이 진 뒤에 연달아서 핀다고 하여 연달래라고 한다).

 

金達萊三韓民族(삼한민족의 꽃이 진달래입니다)

진달래는 신라(진한)에서 백제(변한)로, 고구려(마한)으로 올라가면서 봄을 알리는 꽃입니다

진달래는 봄의 꽃으로 삼한민족의 하나됨을 일깨워주는 꽃입니다

진달래는 통일의 꽃, 민족의 꽃입니다

 "三韓(三國)正統說, 大韓的三韓之也. 三韓的馬韓(高句麗=高麗)弁韓(百濟)辰韓(新羅)之也.  大韓聯邦共和國"

 

*김소월 시--진달래꽃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