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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일한 정부 협력조사를 요청(납북자 자료) 본문
한국의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중국 상해에서 북한 관계자로부터 들은 것이라며, 납치피해자인 요코타 메구미 씨 이외에 다른 일본인 납치피해자 여성이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다는 정보가 있는데 대해 오늘, 일한 정부에 협력 조사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는 일본에 귀국한 납치피해자가 대한항공기폭파사건의 실행범인 김현희 전 사형수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다구치 야에코 씨가 북한에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다고 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최성용 대표는 서한에서 일한 정부가 김현희 전 사형수에게서도 사정을 청취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한국에는 현재 한국정부가 인정한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가 500명 있는데 최성용 대표 등 피해자 가족이 납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남한정부는 북한에 납치 고교생 5명 생환을 공개적으로 요청해야-정형근 의원
정형근 의원에 따르면 우선 일본인 납치 피해자인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으로 확인된 김영남 씨의 경우 80년 충청도 효자도 해상으로 침투하다 생포된 북한 간첩 김광현이 신문과정에서 고교생 납치 사건을 들은 바 있다고 진술해 납치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또 당시 18살의 이민교 씨 같은 경우 95년 검거된 북한 간첩 김동식과 97년 검거된 부부간첩 최정남 수사과정에서 이민교 씨가 평양 용성구역 소재 ‘이남화 환경관’에서 수퍼마켓 종업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남화 환경관’이란 남한에 간첩을 내려보내기 전에 북한 간첩들이 남한 생활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한 교육시설입니다. 또 당시 17살의 최승민 씨의 경우 93년 탈북자를 통해서 이남화 환경관에서 ‘양복집 김선생’으로 불리고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으며 당시 17살의 홍건표와 이명우 씨에 대해서는 간첩 김동식과 최정남이 이남화 환경관에서 각각 ‘홍교관’과 ‘마교관’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진술했다는 것입니다.
http://blog.daum.net/007nis/8184957
*북한정부 간첩에 의하여 피랍된 남한 학생 6명 명단과 주요 자료
1.북한정부 간첩에 의하여 피랍된 남한 학생 6명 명단
(1)1977년 8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 속한 섬 홍도(紅島) 2명 피랍
이민교(18세, 인천). 최승민(16세, 경기 평택)등
(2)1978년 8월 5일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에 속한 섬 선유도(仙遊島) 1명 피랍
김영남(17세, 전북 군산시)
(3)1978년 8월 10일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 속한 섬 홍도(紅島) 2명 피랍
이명우(17세, 충남 천안시). 홍진표(17세, 경기도 안성시)등
(4)1987년 7월 20일 호주를 여행하다가 납치된 미국 MIT대학원 학생
이재환(25세, 경남 마산)
http://reunion.unikorea.go.kr/dataroom5.asp?stage=list&sql_table_name=T_kidnap_5
2.북한정부 간첩에 의하여 피랍된 남한 학생 주요 자료
(1)1970년대말 실종된 것으로 알았던 김영남. 이명우. 홍진표. 최승민. 이민교등의 고교생이 최근 납북 억류자로 확인됨으로써 충격을 주었다
납북된 사람들 중에는 <김일성정치군사대학>등에 배치되어 대남공작원을 훈련시키는 교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2)북한의 대남공작원들에 의해 국내에 거주하며 생업 또는 학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납치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77년 8월 전남 홍도에서 납치된 이민교.최승민등 그리고 1978년 8월 10일 역시 홍도에서 납치된 이명우. 홍진표등, 1978년 8월 5일 군산 선유도에서 납치된 김영남등의 고교생 납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북한은 납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으며 명백히 확인된 일부 납북자에 대해서는 "자진 월북한 것이다"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북한은 그 동안 납북자들을 대남선전도구 대남공작원 양성교원, 대남사업분야 분석임무,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육도구등으로 활용해왔다
3.홍도와 선유도
(1)홍도(紅島)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 속한 섬
http://www.hongdo.co.kr
(2)선유도(仙遊島)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에 속한 섬
http://www.seonyudo.co.kr
*북한 한명의 이산가족위해 특별한 상봉 배치 (중국 국제방송 자료)
조한 장관급회담 조선대표단 단장 권호웅(權浩雄)은 7일 조선측이 한명의 이산가족을 위해 특별한 상봉을 배치할 것이라고 한국측에 통보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이 8일 전한데 따르면 권호웅은 한국측 대표에게 보내는 전화통지문에서 이산가족 김영남(金泳南)이 현재 조선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 실증되었다고 했습니다. 통지는 조선측은 이번 달 중순 <북남공동성명> 발표 6주년에 즈음하여 김영남을 금강산에서 진행되는 이산가족 특별상봉활동에 배치하여 그가 한국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와 상봉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김영남은 올해 44살이며 1978년에 조선비밀요원에 의해 납치된 후 마찬가지로 납치된 일본 공민 요코다 메구미와 결혼하여 딸 한명을 낳았습니다.
올해 4월 조선과 한국이 진행한 제18차 장관급회담에서 조선측은 김영남의 행방을 조사하는데 대해 동의했습니다.
http://kr.chinabroadcast.cn/1/2006/06/08/1@62950.htm
*북한에 생존해 있는 납북 고교생 5명이외에도 1968년 수산고등학교 김인철학생 납북자도 북한생존 확인
지난 1977년부터 78년 사이 납북돼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5명의 고교생 외에도 1968년 동해안에서 고등학교학생 한명이 납북되어 현재 북한에 살고 있다고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대표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지난 1968년에 수산고등학교 학생이 납북되어 지금도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납북이 됐습니까?
최성용: 정부에서 발표한 납북자가 489명인데 김인철씨가 명단에 포함이 돼 있습니다. 김인철씨는 어민이 아니고 강원도 주문진수산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여름방학 때 어촌봉사의 일원으로 바다에 나가 일을 돕기 위해 오징어 배를 타고 항해 중 납치된 고등학생입니다.
당시 북한에 납북된 뒤 송환되지 않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됐습니까?
최성용: 배가 끌려가서 선원 31명 가운데 25명은 귀환했고 김인철군하고 나머지 선원들 6명 북한에서 억류를 시켰지요. 당시 김인철씨는 학생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달리 이용을 한 것 같습니다.
김인철씨는 북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최성용: 제가 전해들은 그대로 전하기는 곤란하고 정확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고... 북한에서 현재 생활에 열심히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북한 소식통이 온다고 해서 전부 정확한 것은 아니거든요.
지금까지 알려진 납북고교생들은 다 살아 있습니까?
최성용: 한 사람만 불투명한데 다 살아 있는 걸로 들었습니다.
납북 고교생들을 포함해서 납북자들을 정부차원에서는 어떻게 해결하기를 원합니까?
최성용: 이산가족 상봉에 포함시켜서 80여 가족이 확인을 했는데 확인 불가능이 51명입니다. 나머지는 사망이 있고 이번에 김영남씨처럼 13가족이 살아있다고 북한에서 알려왔기 때문에 (이런 식 보다는) 별도로 하자 납북자만 따로 하자! 또 남한에는 현재 납북자처럼 아픈 추억을 가진 국군포로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 하고는 같이 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으로 하지 말고 (그렇게 함으로서 확인 불가능이 나오고 그러지 않아요)따로 좀 하자 북한도 이제는 생사확인도 해주고 죽은 사람을 죽은 사람대로 정리를 하고 했으면 하는 게 저의 소망이지요.
김영남씨 가족들은 재상봉과 관련해서는 어떤 반응입니까?
최성용: 영남군이 8월중 가족들을 초대한 것 같습니다. 가족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가족들은 만나보고 싶어 하고 이번에 처음으로 이뤄진 것 같아서 가족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그 가족은 그렇게 원하고. 간다하더라도 평양축제에 참여하는 것에는 반대를 했어요.
영남이가 불러서 자기 사는 것 보여주고 하는 것들은 좋지만 축제에 참여해 시켜 가지고 정치적인 행사하는 것은 금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남한 고향에 와서 고향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북한에서 고위직에 있으니까? 잘 알겠지요. 고향방문도 하고 납북자문제가 더 알려지면서 이런 아픔도 있구나. 어차피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풀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램 인데 가족들이 원하면 정부 측에 요구를 해보겠고 북한측에는 제가 요구해봐야 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서 만나면 풀어지고 또 만난사람들도 소식도 듣게끔 북한도 해 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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