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김현희-다구치 가족 이번 주 부산서 만나” 본문
대한항공기를 폭파한 범인인 김현희 씨와 북한에서 그에게 일본말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진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 씨(북한 이름 이은혜)의 가족이 이달 말쯤 부산에서 만날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습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11일 나카소네 히로후미 외상과 회담을 마친 다음 “김현희 씨와 다구치 씨 가족의 면담이 곧 성사될 것으로 안다”고 밝혔습니다. 유 장관의 기자회견 이후 한일 양국 정부 당국자들은 김현희 씨와 다구치 씨 가족이 면담하는 시기와 장소에 대해 의견을 조정해 온 결과, 이달 말쯤 부산에서 면담을 주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것입니다.
호적상의 부친이자 외삼촌인 이즈카 시게오(70) 씨와 함께 부산에 갈 예정인 다구치 씨의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32) 씨는 “김현희 씨를 만나면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기 위해 어머니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꼭 물어보고 싶다”고 일본 언론에 밝혔습니다.
모친 다구치 씨는 고이치로 씨가 한 살 때인 78년6월 도쿄의 탁아소에 아이들을 남겨둔 채 북한에 납치됐습니다. 이 때문에 고이치로 씨는 모친의 얼굴이나 체취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정보통신 회사의 기술자로 일하는 고이치로 씨는 자신이 21살이 되던 해에 외삼촌 시게오에게 “나는 친아버지가 아니며, 어머니는 북한에 납치됐다”는 말을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이치로 씨는 2004년에 들어 자신이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공표하고, 납치 피해자 구출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한편, 김현희 씨는 얼마 전 NHK와 한 전화 회견에서 “일본 텔레비전에서 본 고이치로 씨의 커다란 눈이 어머니와 매우 닮았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김현희 씨는 또 “야에코가 지금도 살아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하면서 “가족을 만나면 희망을 품으라고 호소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는 “김현희 씨와 다구치 씨 가족의 면담이 성사된다 해도 새롭게 밝혀질 사실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http://www.rfa.org/korean/in_focus/kim_hyunhee-02232009113152.html
*조총련(朝總聯)과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일본대표부 조총련 학습조 주요 자료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은 재일본 한국인 가운데 북한을 지지하는 친북 재일교포단체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조선민주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NLPDR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단체 조총련을 결성하여 반미 반일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과 공산주의 인민민주주의 혁명운동으로 궁극적으로 대남적화통일과 일본 국왕제도를 부정하고 일본 공산화에 주력하고 있다
-조총련은 학습조를 설치하여 충성심을 강화하고 김일성 김정일 주체사상 강좌와 통일전선사업에 집중하여 대남적화통일을 꾀하고 있으며 1974년 4월 1일 학습조 조직 기반으로 통일사업부를 설치하고 대남적화통일의 결정적 시기를 조성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통일사업부(학습조-통일혁명당과 한국민족민주전선 일본대표부)의 임무는 민단조직의 와해, 대남적화공작 수행, 위장평화공세에 의한 통일전선 저력의 효과적 수행, 동북아지역의 북한정부 연락선 구축(잠수함 기지구축), 무기구입과 밀매 추진, 반합법적 또는 비합법적. 합법적 기업등을 운영하면서 자금확보등에 주도하고 있다
http://blog.daum.net/007nis/2181502
* 신광수 전(前) 북한공작원이 요코타 메구미씨 납치범으로 밝혀짐
납치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씨를 납치한 사람은 국제수배를 받고 있는 북한의 신광수 전 공작원이라고 소가 히토미씨가 말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신광수 북한공작원에 대해서는 지무라 야스시씨도 자신들 부부를 납치한 실행범이라고 말한 바 있어 피해자 가족들은 신병인도를 북한에 강력히 요청하도록 일본정부에 촉구하기로 했습니다
납치피해자 소가 히토미씨가 몇몇 관계자에게 밝힌 내용에 따르면 1978년부터 1980년까지 평양시내에서 요코타 메구미씨와 함께 살았는데 이때 자신과 요코타 메구미씨의 지도를 담당하고 있던 신광수 공작원으로부터 요코타 메구미를 납치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직접 들었다고 말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광수 공작원은 1985년에 한국에 간첩등의 혐의로 구속돼 사형판결을 받았으나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2000년에 북한으로 귀국한 뒤 영웅대접을 받았습니다
신광수 공작원이 메구미씨와 소가씨에게 조선어(한국어)와 주체사상등을 가르친 것도 밝혀짐으로써 메구미씨의 납치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관여한 혐의가 짙어졌습니다
납치피해자의 가족들은 신광수 공작원이 납치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며 신병인도를 북한측에 더 강력히 요청하도록 일본정부에 촉구해 갈 방침입니다(NHK 2006년 1월 6일 보도)
http://blog.daum.net/007nis/6107376
*납치 실행범 북한 공작원 국제 수배
지무라 야스시씨 부부와 하스이케 가오루씨 부부가 납치됐던 사건과 관련해 일본경찰청은 어제 납치 용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던 북한의 공작원을 국제 수배했습니다.
국제 형사 경찰 기구를 통해 국제 수배된 용의자는 북한의 신광수 공작원과 최순철 공작원 두 명입니다.
신광수 공작원은 지무라씨 부부를 납치한 혐의를, 최순철 공작원은 하스이케씨 부부를 납치한 혐의를 각각 받고 있습니다.
신광수 용의자는 지난 1985년 한국에서 간첩 혐의로 구속돼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남북 정상 회담의 합의에 따라 풀려나 2000년에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또한 최순철 용의자는 지난 1983년 일본에서 말레이시아로 출국한 후 행방이 묘연했으나 적어도 2년 전까지는 북한에 있었다는 사실이 경찰의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 있습니다.(NHK.2006.3.3)
*남한정부는 북한에 납치 고교생 5명 생환을 공개적으로 요청해야-정형근의원
-남한 정부가 근 30년 전에 북한으로 납치된 남한 고등학생 들이 북한에 살아있다는 사실을 지난 1993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남한 정보기관 출신인 정형근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최근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 씨의 남편으로 확인된 김영남 씨를 비롯해 77년과 78년 북한에 납치된 고교생 5명의 생환을 북측에 공개적으로 요구하라고 정부에 촉구했습니다.
-정형근 의원에 따르면 우선 일본인 납치 피해자인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으로 확인된 김영남 씨의 경우 80년 충청도 효자도 해상으로 침투하다 생포된 북한 간첩 김광현이 신문과정에서 고교생 납치 사건을 들은 바 있다고 진술해 납치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또 당시 18살의 이민교 씨 같은 경우 95년 검거된 북한 간첩 김동식과 97년 검거된 부부간첩 최정남 수사과정에서 이민교 씨가 평양 용성구역 소재 ‘이남화 환경관’에서 수퍼마켓 종업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남화 환경관’이란 남한에 간첩을 내려보내기 전에 북한 간첩들이 남한 생활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한 교육시설입니다. 또 당시 17살의 최승민 씨의 경우 93년 탈북자를 통해서 이남화 환경관에서 ‘양복집 김선생’으로 불리고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으며 당시 17살의 홍건표와 이명우 씨에 대해서는 간첩 김동식과 최정남이 이남화 환경관에서 각각 ‘홍교관’과 ‘마교관’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진술했다는 것입니다.
http://blog.daum.net/007nis/8184957
*재일(在日) 조선대학교(朝鮮大學校) 개요와 조총련 조선대학교도 김일성주의 NLPDR 주체사상을 버리고 21세기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고도소비사회로 나아가기를
조총련 조선대학교가 1956년 6월 8일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조총련계 인사들에 의하여 2년제 대학교로 설립하여 지금까지 13,000명졸업생을 배출하여 운영 되어오고 있다
전(全) 학생이 기숙사제로 조선연극부등 총 8학부로 1,000명 정도의 학생이 현재 수학하고 있었으며 졸업생들은 주로 조선학교의 교원 및 총련신보나 잡지의 기자로 취직하며 총련 동포가 경영하는 금융기관에도 취직하고 있다
-평양방문과 반미 자주학교 참여와 활동
입북 <한총련> 대표들과 총련 조선대학교 학생들은 상봉의 기쁨을 안고 노래도 부르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에 앞서 <한총련> 대표들은 사회주의 조국에 체류하고 있는 총련조선대학교 정치경제학부 학생들, 재일조선학생 조국방문단 성원들과도 상봉하였다
http://blog.daum.net/007nis/9066211
*일본 적군파 JAL기(요도호) 납북자료와 요도호 실행범 아내 일본 귀국 준비
적군파는 일본 테러단체이다
1948년 형성된 일본 학생운동의 통일체인 전일본학생자치연합(전학연)이 1960년대 안보투쟁을 벌인 뒤 분열되자 이 중 마오쩌둥식(모택동식) 무력투쟁을 주장하며 트로츠키주의를 신봉하는 공산동맹에서 분리 1969년 발족한 단체이다
일본적군파는 국제공산주의 노선 트로쯔키노선이 아닌 일국사회주의 운동 또는 민족주의 사회주의 운동(NLPDR) 노선 스탈린.모택동.김일성주의 노선 신봉자들이다
4백여 명의 호전분자들로 구성된 이들은 일체의 기존체제를 파괴한다는 폭력제일주의와 무장혁명 그리고 일본왕정타도와 일본 사회주의 국가수립등을 주장하였다
1972년 적군파 내의 온건파 14명을 처형하고 경찰과 대치한 연합적군사건이 있은 뒤 폭력대상을 해외로 돌려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과 유대를 맺고, 1974년까지 공동테러를 벌여왔다 1974년 이후 시게노부후사코(重信房子)를 두목으로 하여 싱가포르. 네덜란드, 말레이시아등지에서 테러를 일으켰으나 국제경찰의 추적과 조직 이탈로 거의 와해되었다
적군파는 NLPDR론자들로 북한정부 대남공작부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과 연계되어 국제적으로 활동해왔다
-일본에서 1969년 도쿄(동경)대학 학내문제로 인한 학생운동이 반전운동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좌파학생조직인 전(全)일본학생자치회연합(전학연)과 그 뒤를 이은 일본 적군파(赤軍派) 의해 주도되어 어느 나라에서보다 격렬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강경하였다
-일본 적군파 JAL기(요도호) 납치사건 개요(1970년 4월 3일)
1970년 3월 31일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탑승객 129명을 태우고 후쿠오카로 가던 일본 항공 소속 여객기 요도호가 일본도등으로 무장한 적군파 요원 9명에게 공중 납치되어 김포국제공항에서 불시착했다
납치범들은 승객을 인질로 북한행을 요구, 탑승객 전원을 석방하는 대신 일본운수성 정무차관 <야마무라 신지로>를 인질로 잡고 1970년 4월 3일 북한으로 넘어갔다
-일본정부측 일본인 납치 배후 북한정부 책임자 처벌요구, 일본 항공기 요도호 납치범의 무조건 인도와 북핵 6자회담 조기 복귀등 요구
http://blog.daum.net/007nis/9157785
*북한의 가짜 유골 송환, 급속히 냉각되는 북-일관계 그리고 일본 국민들이 북한에 제재촉구
지난 2002년 북한은 간첩 훈련용으로 13명의 일본인들을 납치해 갔다고 시인한 뒤 일본으로 돌아간 5명을 제외한 8명 모두 사망한 것으로 밝히고 있으나 일본측은 다른 두명이 더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은 피납된 일본인들의 행방에 대한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가질 수 없다고 밝혀왔다
북한이 피납 일본인의 유해라며 일본정부에 인도한 두번째 유해 역시 다른 사람의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북한-일본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북한정부는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북한과 일본 피랍자 실무회의 당시,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 간첩교육을 위해 납치했다고 시인했던 8명의 일본인 중 한명인 마츠키 카오로씨의 유해라며 일본정부에 유골을 인도했으나 그 유골 DAN검사 결과 가짜임이 밝혀졌다
지난 1980년 북한에 납치될 당시 26세 마츠키씨, 그 당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으며 북한은 마츠키씨가 1994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은 지난 2002년에도 마츠키씨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유해일부를 일본정부에 인도했었지만 일본의 전문가들은 DAN검사결과 여자노인의 것이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NHK)
http://blog.daum.net/007nis/9157785
*일본 적군파(赤軍派, Red Army)의 주요 해외활동 자료
-일본 적군파는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의 혁명) 모택동주의 추종 그리고 모택동주의 게릴라부대 지원
-중동, 인도네시아, 필리핀 지역 이슬람교 근본주의자와 연합으로 반미 공산주의 운동..일부에서는 남한지역 내부 일부 반미세력이 일본적군파 세력이라는 말도 있다
일본 적군파는 마스-레닌 모택동계열이다
-냉전시대 서방각국에서는 테러니즘을 공산권 국가가 서방세계에 타격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구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나 중국, 쿠바. 북한정부의 정보부가 배후에서 남한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일본 적군파, 서독 적군파(RAF),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 중남미의 좌익조직, 시리아. 이라크등의 아랍국가의 정보부, 리비아의 카다피정권, 동남아 좌익단체등을 배후 조종한다는 것이었다
-KGB 소련정보기관의 특징 그리고 자유주의 진영과 다른 점
ㄱ.노동자. 농민. 진보적지식인. 학생등 사회주의 운동가 위주로 창설한 체카(Cheka)
체카는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 사회주의자들 중에 소련공산당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한 사람들로 구성된 소련공산당 전위대이다
이들은 초기에는 공장 파업이나 사보타주의 그리고 선전전, 무장봉기등을 주도했으며 소비에트 권력등장 이후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농민파업이나 노동자 투쟁 을 억압하고 제거하는데 앞장서서며 그리고 지주나 외세들과 투쟁을 했다
ㄴ.소련정보기관은 사회주의 진영의 최후 보루이다
소련정보기관은 세계 각국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를 지원했으며 세계각국 정보나 자료등을 수집하여 판단한 후 그 토대로 사회주의 국가 수립에 이용하였다
ㄷ.소련정보기관 요원은 대부분 사회주의자 그룹이다
그리고 소련정보기관을 도와주는 단체는 세계 각국 공산당, 좌익 노동단체.농민단체이나 민족주의 사회주의자 그룹이었다
ㄹ.소련공산당이 장기집권을 함으로 소련정보기관도 부패와 비리등으로 전철되었고 소련공산당 권력유지 도구화 되었다
ㅁ.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공존 사회인 서구나 미국등 정보기관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나 자유, 평화등을 위하여 헌신할때 소련정보기관은 공산국가나 사회주의 국가 수립에 주력했고 냉전체제 보존에 노력했다 미국 정보기관이 유엔이나 국가를 위하여 헌신할때 소련정보기관은 공산당 서기장이나 개인을 위하여 충성을 함으로 정보기관이 통수권자 사조직화 되었다
ㅂ.냉전시대에는 북한정보기관도 소련정보기관 통제를 받았다
반미단체 통일혁명당이나 한국민족민주전선도 소련공산당 전초병이었다 1991년도 소련군부쿠데타때에도 반미인민전쟁론자 북한정보기관 한국민족민주전선 조직원들은 소련군부쿠데타를 지지했다
http://blog.daum.net/007nis/11095594
*하스이케씨 부부 납치지휘 북한 대외정보조사부 간부 한금녕 지도원, 지무라씨 부부 감시역할도
하스이케씨 부부의 납치사건에서 납치를 지시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북한의 지도원이라고 불렸던 간부 한명은 같은 시기에 납치된 지무라씨 부부에 대해서도 초대소의 감시와 교육을 담당했음이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지무라씨 부부 납치의 지휘명령에 관여했을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사실규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하스이케씨 부부 납치사건에서 납치를 지시했다고 해 경찰은 어제, 북한 공작기관의 지도원이라고 불리던 간부 한금녕이란 이름의 용의자와 김남진이란 이름의 용의자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해, 가까운 시일 내에 국제수배하고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에 신병인도를 요구할 방침입니다.
이 가운데 한금녕 지도원은 초대소에서 하스이케씨 부부의 감시를 담당했는데 그 후 조사에서 같은 시기에 납치된 지무라씨 부부에 대해서도 평양 시내 초대소에서 감시와 북한의 생활습관이나 사상을 가르치는 교육담당을 했음이 밝혀졌습니다.
지무라씨 부부의 납치사건에서도 이들 2명의 지도원과 동일한 '대일과'라는 공작기관에 소속됐던 것으로 보이는 공작원 신광수 용의자가 실행범으로 국제수배돼 있습니다.
경찰은 한금녕 지도원이 지무라씨 부부 납치의 지휘명령에도 관여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사실규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KAL 858기 테러, 누가 시켰나?
한국 국가정보원의 "과거사 진실 위원회"가 지난 87년 KAL 858기 폭파사건은 명백한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대남 공작 사업을 총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1987년 11월 29일 버어마 근해 상공에서 남한의 대한항공 KAL 858기가 공중 폭파되어 탑승객 115명이 전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승객 대부분은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먼 타국에서 피땀 흘려 일하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국가 정보원의 "과거사 진실위원회"는 KAL 858기는 북한 대남공작 조직원 김현희와 김승일씨에 의해서 이뤄졌다고 최종 결론지었습니다. 명백한 북한의 테러임을 재 확인한 것입니다.
이번 조사결과에 따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책임을 면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왜냐면 북한 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이 소속돼 있던 중앙당 '대외정보조사부'(지금의 35호실)는 당시 김 위원장이 직접 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http://blog.daum.net/007nis/13103301
*1987년 11월 29일 KAL폭파사건"북한정부 대남공작부 해외정보조사부가 저질은 사건"
미국정부 소식통에 의하면 김현희씨도 만보(萬保,萬保ㅊ망떻瀛寬=해외정보조사부)출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현희씨는 바레인 경찰에서 조사받는 동안에는 일본어와 중국어를 쓰면서 중국인 행세를 했다고 밝혔다
-김현희씨의 일어교사 일본인 다구찌야에꼬
일본 경찰청에 밝힌바에 의하면 북한에 의해 일본인 납치사건은 7건에 10명으로 이 가운데 KAL기 폭파범 김현희에게 일어를 가르쳤던 다구찌야에꼬도 그 중에 한명으로 발표했다(1978년때 피납)
http://blog.daum.net/007nis/9035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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