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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전 일 수상, 오늘 노환으로 숨져 본문
미야자와 전 일 수상, 오늘 노환으로 숨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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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수상이 오늘 도쿄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숨졌습니다. 향년 87살이었습니다. 미야자와 전 수상은 1919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한 후 구 대장성에 들어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는 일본측 대표단에 참가하는 등 전후 일본의 방향을 작성하는데 깊이 관여했습니다. 그 후 1953년 참의원선거에서 당선된 뒤 1967년부터는 연속 12차례 중의원의원에 당선돼 통산상, 외무상, 대장상 등의 주요각료를 맡았습니다. 1991년 제 78대 수상에 취임해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 경제재건에 주력하는 한편 PKO협력법을 성립시켜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습니다. 그러나 1993년 총선거에서 참패한 뒤 호소카와 연립정권이 발족되면서 자민당은 38년에 걸쳐 장악했던 정권을 잃게 됐습니다. 그 후 미야자와 씨는 1998년 오부치 내각에서 대장상에 취임해 금융시스템 개혁 그리고 세금을 대폭으로 줄이는 등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 중의원선거를 앞두고 73세 정년제도에 따라 당시 고이즈미 수상의 입후보 사퇴를 받아들여 정계를 은퇴했습니다. |
해외언론, 미야자와 전 수상의 공로 보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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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수상이 숨진데 대해 해외 언론은 '경제를 통해 아시아외교를 중시하고 외환위기를 해결하는데 진력했다'며 공로를 전했습니다. 이 가운데 로이터 통신은 '제2차세계대전 패전후 1990년대 일본경제의 침체 시기까지 경제통이었으며 아시아각국과의 외교관계를 중요시한 평화주의적인 정치가였다'고 소개했습니다. 또 유창한 영어실력을 발휘해 미국과 깊은 관계를 맺은 한편 '미국정부와 정책면에서의 충돌도 마다하지 않았다'며 의연한 자세를 유지한 정치가로서 소개했습니다. AP통신은 또, 1990년대 후반 대장상으로서 '악화된 일본경제 재건에 힘쓴 한편 아시아의 통화위기 때는 거액의 자금을 갹출해 문제를 해결하는데 공헌했다'며 미야자와 전 수상의 공로를 전했습니다.(NHK.2007.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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