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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자 실체:김정일의 계모 김성애 본문

Guide Ear&Bird's Eye/북한[PRK]

김부자 실체:김정일의 계모 김성애

CIA Bear 허관(許灌) 2006. 5. 3. 13:27

김부자 실체: 김정일의 계모 김성애

2006.05.02

주간 기획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실체’ 오늘은 고 김일성 주석의 후처이자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계모인 김성애 관한 내용입니다.

김일성의 본처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 김정일이 7살 되던 해인 1949년 세상을 떠나자 김일성은 김성애를 후처로 들였습니다. 김성애는 김일성의 비서출신으로 당시 빼어난 미모로 김일성의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김성애는 한국전쟁이 끝나기 전인 1952년 김일성의 정식 부인이 됐습니다. 그러나 전쟁 중이였기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김성애는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53년 딸 경진을 낳았고 55년에 평일 그리고 57년에 영일을 낳았습니다.

김성애는 이후 60년대 중반부터 조선여성총동맹 중앙위원회(여맹) 부위원장 직을 맡은데 이어 70년도에 여성동맹 위원장이 되는 등 점차 정치적 세력을 키워갔습니다. 이때 김성애의 우상화 작업도 시작됐습니다. 김성애 위원장이 여맹의 한계를 뛰어 넘어 각 기관 기업소를 현지 지도하는 사진이 나오는가 하면, 김성애 여맹 위원장에 대한 책자도 나왔습니다. 상대적으로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은 격하되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이 수기 '대동강 로얄 패밀리'에 따르면, 김정일은 이처럼 김성애가 득세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하며 김일성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생모인 김정숙 동지는 항일 빨치산 시절부터 수령님을 보필하다 돌아가셨는데 김정숙이 북한 여성들의 귀감이 되어야지 어떻게 김성애 위원장이 좌지우지 할 수 있냐며 따졌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또 김성애의 남동생 김성갑의 월권 행위에 대해서도 김일성에게 고해 바쳤습니다. 김성갑은 당시 평양시당 조직 비서였는데 누나의 위세를 등에 업고 군과 당 내부의 자기 세력을 심어놓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이런 상황을 김일성에게 고하면서 김성애와 김성갑이 정치적 세력을 키워가는 것은 아버지의 유일사상 체제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진언했습니다.

이에 김일성은 김정일의 항의를 받아들여 여맹의 조직을 격하시키고 김성애가 이후 어떤 공식적인 행사에도 나오지 못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1973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회의를 소집해 유일사상 체제에 도전하는 행위는 엄단한다는 방침을 발표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정치적으로 상당히 득세했었던 자신의 동생인 김영주 조직비서도 해임시키고 지방에 내려가 쉬라고 했습니다. 김일성은 그때 처음 곁가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김일성은 정통적 유일사상을 제외한 다른 것은 모두 곁가지라고 천명한 것입니다. 김정일은 이 일을 계기로 계모 김성애와 삼촌 김영주와의 권력 투쟁에서 이기고 후계자로써 실권을 잡게 됩니다.

이에 대해 탈북자 강금철(가명)씨는 북한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김정일과 김성애 그리고 김영주 간의 권력 투쟁 사실을 주민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증언했습니다.

강금철: 일반 국민들은 고위층의 권력 암투나 이런 것에 대해서 전혀 몰라요. 여기 한국에서처럼 정치에 대해 낱낱이 몰라요. 그리고 권력 암투가 끝난 후에도 그것에 대한 비밀을 고수했습니다. 설사 안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말을 하면 정치범에게 잡혀가요. 그만큼 북한의 폭압 감시 체제는 잘되 있습니다.

한편, 올해 82살인 김성애는 98년 여맹 위원장에서 해임된 후 지금까지 활동이 없는 상태입니다.

워싱턴-이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