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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전국 지방선거 동향 본문



국회를 장악한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정부에 대한 견제 심리와 부산 경남 울산 대구 경북 강원지역에서 승리한 김문수 후보의 대선 득표율 그리고 김문수 대선 득표율 41.15% 결집이 될 때 부산 경남 울산 대구 경북 강원지역 등 5곳과 경기, 서울지역에서 국민의 힘이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국민의 힘 내부 온건 보수(중도층)세력인 계엄(계엄경제) 반대세력 지지성향이 주요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봅니다 계엄 반대세력은 반유신세력으로 김영삼, 김대중 지지 세력들과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세력들입니다
한국 군사정부에서 볼 때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성향 박정희정부를 교조주의 노선이라면 대통령 단임제와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정책 전두환, 노태우정부를 실용주의(수정주의) 노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장동혁 대표 체제 등장은 김문수 대선 득표율 41.15% 견제를 하는 여당 세력과 일부 극우성향 윤어게임 세력, 국민의 힘 내부 호남 지지층(호남 극우세력) 결집으로 등장한 지도부이다[호남 극우세력은 호남지역에서 민주화 세력을 탄압한 공안계통 인맥으로 반김대중 세력 즉 5% 이내 호남인들이다 그리고 호남 진보세력 내부 김대중 전대통령을 친미 부르죠아 세력으로 지칭하고 자주노선을 내세우고 친북활동을 하는 NLPDR 세력도 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 상륙 작전으로 인민군이 후퇴하자 국군 보조기관이었던 전남지구 목포해상방위대에 자진 입대, 전라도 지구 부사령관에 임명되어 자신이 경영하던 해운회사 소속 선박을 동원해 인민군 게릴라 소탕에 참전하였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국적으로 치안공백을 해결하기 위하여 민간자치 치안대를 구성하여 각 지역별로 인민군 게릴라 소탕과 치안부대로 활동했다 치안대(방위대)는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최후의 보루이다) 국민의 힘 자유민주주의 온건세력들은 일부 극우성향 윤어게임 세력과 장동혁 체제를 여당세력 이중대로 보는 분도 있다 (극우 유튜브는 수익금으로 공생하고 있다 돈보다는 양심을 존중하는 정치인이 돼야 건전한 정당이 될 수 있다)
장동혁 대표의 지지 기반인 충남에서도 국민의 힘 지방선거 후보들의 열세로 충청도지역에서도 참패할 수도 있다 장동혁 대표의 전국적 지지보다는 김문수 전대선후보의 지지가 높은 편이다
민주화 출신인 김문수 전 대선후보의 지지층은 온건보수와 온건 진보세력이다 군사정부 내부 실용주의자(수정주의자) 그룹 온건보수 전두환노태우정부 인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김영삼, 김대중 민주화 세력 온건 진보세력 지지를 받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의 정청래 대표 중심으로 선거를 준비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내부 각 세력 지도자급 중심으로 선거를 준비하는 분위기이며 이재명 대통령 인맥 (이재명 대선기구) 중심으로 선거판을 짜고 있다
진보세력 단일화 작업은 불투명하며 김문수 전장관이 온건보수 민주화 재야인사 출신으로 온건 진보세력의 향후 동향이 주목된다
민주화 출신 김대중 전대통령은 유신정부(유신헌법)에 참여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한 노무현 문재인 전대통령보다는 정통민주당 입장인 자유화 민주화 입장이며 친미성향이다 유신정부(유신헌법)에 참여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한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유신정부에 협력한 과거 경력 때문에 급진 민족주의 세력인 친북 NLPDR세력과 연합하는 입장이다 유신헌법은 자주노선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성향 권위주의 1인 장기집권 독재정부이다 유신정부(유신헌법)에 참여하여 행정고시나 사법고시에 합격한 분들은 제6공화국 헌법에 의거하여 자유화 민주화 국가정책 재교육이 필요하다[노무현 전대통령은 1974년 당시 유신헌법에 따라 새로 제정된 법률서(유신헌법과 유신정부 법체계, 역사 등)를 공부하여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합격하여 1975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어 유신체제의 사법부 일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나, 1977년 판사직 사임이후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문재인전대통령은 1980년 당시
시 유신헌법에 따라 새로 제정된 법률서를 공부하여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했다 노무현 문재인 전대통령은 이런 연휴로 유신헌법에 의거하여 공직자로 복무한 세력들의 지원을 받았다]
유신정부(유신헌법) 때 검찰 공안부(중정부 하부)는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탄압한 집단으로 제5공화국, 제6공화국 정부에서도 유신잔당 세력과 연합으로 친북세력 NLPDR(반미 반일세력) 추종세력을 옹호하고 극우노선을 추진하여 민주화 세력을 짓밟다(남북한 극단적 세력 연합구축으로 극단주의 잔당 보존)
북한 노동당은 2단계 혁명이론 NLPDR노선으로 우선 반일 반미 투쟁과 지주(대기업) 지배에 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미래에 사회주의적 변혁(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목표로 했다
1단계로는 반미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며 2단계로는 노동계급 령도 노농동맹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인민 민주주의 독재체제)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수립이다
남한 제4공화국 유신헌법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극우헌법이라면 북한 제2공화국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공화국)헌법은 세금 없는 세상을 표방한 국영자본체제 성향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북한식 사회주의 극좌헌법이다
유신헌법이나 주체헌법은 자주노선을 표방하고 기본권을 심각히 제한하고 있는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성향 군대식(군정)헌법이다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성향 유신헌법 추종세력 계엄(군정, 계엄경제)을 옹호하는 극우성향 윤어게임 세력이 국민의 힘 지방선거를 주도할 때는 더불어민주당이 전국적으로 싹쓸이 승리할 것으로 본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방선거를 NLPDR 자주파 중심으로 선거를 할 때는 참패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 민주파는 김대중전대통령 지지층이며 자주파는 노무현 문재인 전대통령 지지층이다 국민의 힘도 민주파는 이명박전대통령 지지층(김영삼)이며 자주파는 박근혜전대통령 지지층(박정희)이다 한국 군사정부 입장에서 볼 때 권위주의 자주파는 유신정부(유신헌법)이고 자유화 개방화 민주파는 제6공화국 헌법이다
친북세력은 자주파이며 대북 자유화 민주화 세력은 민주파이다 권위주의 정부 러시아 푸틴정부나 중국 시진핑정부는 자주파이며 실용주의(수정주의)정부 옐친정부이나 등소평. 강택민. 호금도정부는 민주파이다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 선포는 장기 집권을 위한 위헌·위법적 조치였으며, 대법원은 해당 계엄 포고령을 무효로 판결했기 때문에 유신헌법도 무효로 해석할 수 있다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 선포는 장기 집권을 위한 위헌·위법적 조치였으며, 대법원은 해당 계엄 포고령을 무효로 판결했기 때문에 유신헌법도 무효로 해석할 수 있다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 선포는 장기 집권을 위한 위헌·위법적 조치였으며, 대법원은 해당 계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체제 구축을 위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 해산, 헌법 기능 정지 등 초헌법적 조치인 '10월 유신'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장기 집권을 위한 위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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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체제 구축을 위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 해산, 헌법 기능 정지 등 초헌법적 조치인 '10월 유신'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장기 집권을 위한 위헌·위법적 조치였으며, 대법원은 해당 계엄 포고령을 무효로 판결했습니다
전후 독일이 나치 헌법을 무효화했듯, 우리 국회는 지금이라도 유신헌법 무효선언이 필요하다. 유신은 헌정사에서 제외해야 할 헌법의 진공상태였다
유신체제는 법치를 부인하고, 입법부와 국민주권을 부정했으며, 권력자(박정희)를 법과 제도 아래 두는 공화국 원리를 부정한 세계사적으로도 극히 드문 헌정 파괴행위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헌정 중단 사태이자 친위 쿠데타로 꼽힌다.
2018년 대법원에서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에 따라 발령된 계엄포고령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위법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남한 제4공화국 유신헌법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극우헌법이라면 북한 제2공화국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공화국)헌법은 세금 없는 세상을 표방한 국영자본체제 성향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북한식 사회주의 극좌헌법입니다
유신헌법이나 주체헌법은 자주노선을 표방하고 기본권을 심각히 제한하고 있는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성향 군대식(군정)헌법입니다
대한민국 헌법(大韓民國 憲法)[대한민국 역대 헌법 자료]
"世界潮流浩浩蕩蕩順之則昌, 逆之則亡.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
대한민국은 아시아지역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모범국입니다
대한민국은 자국 영토에 있는 국민들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전 세계 민주주의 파트너 국가와 함께 전 세계 자유와 법치 보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남한(대한민국)은 민영자본체제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공화국)이라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영자본체제와 노동계급의 령도 노농연맹(勞農聯盟)의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이다
남과 북이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이며,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민주주의 세력)와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세력) 연합정부입니다
대한민국 헌법(大韓民國 憲法)[대한민국 역대 헌법 자료]
대한민국 헌법(大韓民國 憲法)[대한민국 역대 헌법 자료]
대한민국 헌법 Ⅰ.제1공화국[제헌헌법] 4281년 7월 12일 제정1948년 7월 17일 공포 전문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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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군사정부에서 볼 때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성향 박정희정부를 교조주의 노선이라면 대통령 단임제와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정책 전두환, 노태우정부를 실용주의 노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교조주의는 구체적인 조건을 상관하지 않고 불변의 진리라고 판단되는 개념과 명제만을 고집하는 태도이다
교조주의(敎條主義,Dogmatism)란 특정한 사상이나 종교경전을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교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어디에나 정통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그대로 적용시키는 행태를 비판하는 말로 쓴다. 실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은 왜 마르크스가 모든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비평한 이유를 다양한 배경에 근거하여 생각하지 않고, 분쟁이 일어나면 무조건 '계급투쟁'이라고 하는 것을 유사 마르크스주의라고 비평한다. 때문에 마오쩌둥, 블라디미르 레닌 등과 같은 혁명가들은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무분별하게 고수하던 교조주의를 맹렬히 비판했으며, 이들은 각 노동 계급이 처한 현실에 맞게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켰다. 종교적으로는 경전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종교인을 교조주의자나 원리주의자라고 한다. 교조주의는 사상과 종교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이므로, 학문적 곧 논리적 비평에 대해 대화와 토론으로 극복하기보다는 무조건 거부하거나 탄압하는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교조주의자는 좌익 파시즘이나 우익 파시즘 세력을 지칭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군국주의 스탈린주의 공산당(노동자당)나 이탈리아 왕국 국가 파시스트당 (1923년~1943년), 일본 제국 대정익찬회 (1940년~1945년) 등이 교좆주의 단체들이다]
수정주의(실용주의)는 새로운 정세에 점진적이고 온건한 입장에서 대응하기 위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학설을 수정하려는 경향이다
수정주의를 실용주의로 표현하고 있다
베른슈타인은, 노동가치론과 경제결정론 및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물리치면서 독일 사회에서는 마르크스의 예언 중 몇 가지가 틀렸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고, 자본주의는 붕괴에 직면해 있지 않으며, 자본이 갈수록 소수인에게 몰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중산 계급은 사라지고 있지 않으며, 노동 계급이 '갈수록 비참한 상태'에 빠지고 있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당시의 독일 사회민주당 내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볼셰비키 혁명 후 수정주의라는 용어는 공산주의자들이 확립된 견해로부터 벗어나는 어떤 종류의 이견들을 매도하는 데 쓰이게 되었다
실용주의(實用主義)는 19세기 말에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 사상. 행동을 중시하며, 실생활에 효과가 있는 지식을 진리라고 주장하였다. 사고나 관념의 진리성은 실험적인 검증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였으며 제임스, 듀이 등이 대표적이다.
실용주의 철학은 "인간의 경험 안에서 실행적 시험을 거쳐야" 아이디어의 특정되는 적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실용주의는 이상주의, 사실주의, 토미즘 등이 세계를 불변의 것으로 파악하는 것과 달리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에 촛점을 맞춘다.
실용주의란 말은 원칙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정치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도 혼용되었다
마스-레닌주의 노선을 고집하는 모택동주의를 스탈린주의 노선으로 교조주의라면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국가주석 임기제한을 추진한 개혁개방세력 등소평주의를 실용주의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국 군사정부에서 볼 때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성향 박정희정부를 교조주의 노선이라면 대통령 단임제와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정책 전두환, 노태우정부를 실용주의 노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북한정부 내부 민주파(제1공화국 헌법)와 자주파(주체사상-제2공화국과 제3공화국 헌법)의 권력투쟁
북한정부 내부 민주파(제1공화국 헌법)와 자주파(주체사상-제2공화국과 제3공화국 헌법)의 권력투쟁
북한정부 내부 민주파(제1공화국 헌법)와 자주파(주체사상-제2공화국과 제3공화국 헌법)의 권력
북한 김정은정부는 극렬 반미성향 북한식(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1인 장기집권 독재정부이며 자주파입니다 북한정부 내부 제1공화국 헌법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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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정부는 극렬 반미성향 북한식(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1인 장기집권 독재정부이며 자주파입니다
북한정부 내부 제1공화국 헌법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민회의정부론을 옹호하는 세력을 민주파이며, 제2공화국, 제3공화국 헌법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론을 옹호하는 세력을 자주파라고 부릅니다
북한정부 내부 제1공화국 헌법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민회의정부론을 옹호하는 세력이나 김일성 가계 세습제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반김정은세력입니다.
북한 김정은 세력은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세력보다는 강한 민족주의 좌익 파시즘 세력으로 극우성향입니다
북한 김정은 세력은 모택동, 김일성주의 노선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자 중 인민민주주의(PD, 민주파)계열보다는 민족해방(NL, 자주파)계열입니다.
북한 내부 민주파 입김이 강할 때는 개혁개방정책과 남북대화로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북한 내부 자주파는 국제적으로 핵무기 보유국 인정과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수호에 주력할 것으로 봅니다
북한 노동당은 2단계 혁명이론 NLPDR노선으로 우선 반일 반미 투쟁과 지주(대기업) 지배에 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미래에 사회주의적 변혁(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목표로 했습니다
1단계로는 반미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며 2단계로는 노동계급 령도 노농동맹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인민 민주주의 독재체제)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수립입니다
- 북한의 국정(國政)은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북한식(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좌익 파시즘 군사독재정부]이고 북한의 사회구성체은 국영자본체제(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북한정부의 약점은 대북 자유화, 개방화정책과 민주화 정책입니다
북한이 한국 측의 대북 정보유입 활동 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정부 내부 북한 제1공화국 헌법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민회의정부론을 옹호하는 세력 민주파가 등장하여 김일성 가계 세습제를 반대하는 세력 반김정은세력 등장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대북 자유화 민주화 정책--->반김정은 세력 등장----->대량 탈북자 사태나 민중봉기 사태 등장--->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북한식(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붕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1,500달러라면 중국 조선족 1인당 국민소득은 8,000달러 수준입니다
중국의 1인당 GDP는 13,000달러 수준이고 대만(타이완)의 1인당 GDP는 3만9477달러이며, 홍콩은 대체로 금융업과 번창하는 국제무역에 기반을 둔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이래 꾸준한 성장을 이루어 2025년 기준 1인당 GDP는 약 56,844달러로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주요 생산품 전자, 석유화학, 기계공학과 의약품 제조 기반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94,481 달러(2025년) 수준으로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아시아 최고 부국으로 꼽힌다
북한 김정은정부는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며 정치적으로는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 체제인 1인 장기집권 독재정부입니다
북한 경제능력은 기아와 평민층 식량난으로 외부로부터 식량원조국가입니다
북한의 민생경제(식량난이나 의식주 여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민군 경제(계엄령 경제=군정경제)에서 민간경제로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북한 인민군 병력 감축과 함께 민간 소비가 촉진하고 민간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공식적은 북한 군은 120만명이다. 북한의 나머지 군인들은 민간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 민간 업무란 양돈, 어획, 광산, 공장 등에서 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임급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다 [북한은 남녀 징병제국가로 중학교 졸업 후 남자는 10년간, 여자는 7년간 현역군인이나 다른 군복무형태 직장 등지에서 군복무를 해야 한다]
인민군은 농업, 공업과 군수산업 중공업, 공공기업체 기능도 겸하고 있다. 이들은 제일 거대한 생산집단이며, 동시에 소비집단이다 북한 핵무기 개발이나 미사일 개발 비용이 대부분 인민군 경제활동에서 충당하고 있다.
북한 경제는 국영자본체제 북한 인민군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 경협이나 외부 경협이 인민군 영향력에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대북 투자는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주체연호 세습제 좌익군정 좌익 파시즘을 지지해야 한다 민간경제 대북투자는 실패 가능성이 높은 위험국이다
북한은 인민경제 제1공화국 헌법을 폐지하고 1972년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주체연호 좌익파시즘 세습제 좌익군정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수립이후 북한 경제는 민간경제(인민경제)에서 인민군이나 집단농장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경제로 전환돼 왔다
북한 경제는 스탈린헌법보다도 반민간경제(반민생경제) 국가이다
국영자본체제는 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국영기업)를 의미한다
북한정부도 토지이외 모든 물건(주택이나 상가, 자동차등) 개인 소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평양시내 아파트 매매를 허용하고 있다 토지는 국가나 협동농장 소유이다 북한 평양시민 중 경제적으로 풍요한 사람은 개인 소유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평양 시내 상류층과 평민층, 빈곤층등의 빈부격차도 심각하다
북한 주민 계층은 상류층, 평민층, 빈곤층(식량난이나 영양실조 계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북한 상류층 30%이내이며 평민층 70%, 평민층 중 빈곤층 33%이내: 북한의 배고픈 사람들(식량난과 기아위기 주민들)이 1990년대 초반 420만명, 중반 700만명이었고 긴 식량 위기의 10 년 후, 2007 년까지 북한 전체 주민의 33 %, 즉 780만명이 영양실조 상태이다]
북한은 교육, 의료, 주거의 무상화를 실시하고 있다고 칭하고 있지만 북한 경제 빈곤화로 실업자나 빈곤층에게는 교육,의료, 주거등의 무상화가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 주민은 상류층과 서민층(평민층)으로 구분 돼 있고 서민층(평민층) 중에는 식량위기 계층 빈곤층이 전체 주민 33%이다
북한은 계획 경제를 실행하고 있지만 의식주(衣食住), 외출이나 쇼핑에는 (입장권·승차권 등의) 표, 상표권과 돈이 필요하다. 교육,의료,주거 무상화로 직원 급여가 아니라 생활비만 지급된다. 주택(주거)도 개인소유를 인정함으로 점차 사유화 돼 가고 있다
북한 빈곤층 생활 모습은 TV 방영 되지 않고 있다
북한 무상교육 중학교 졸업생 중 30%이내 학생들이 개인의 능력과 유상교육기관 대학에 진학한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민주공화국(인민공화국)으로 점진적으로 개혁을 해야 한다
북한은 인민에 의한(民治), 인민을 위한(民享) 인민의(民有) 민주공화국(인민공화국)이다
만주국 성립
만주국 성립
1932년 3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만주국 지도] 1932년 2월 16일 만주국 성립이 선포되었다. 1931 만주사변(9.18 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한 일본은 헤이룽장(黑龍江), 지린(吉林), 랴오닝(遼寧)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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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2월 16일 만주국 성립이 선포되었다.
1931 만주사변(9.18 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한 일본은 헤이룽장(黑龍江), 지린(吉林), 랴오닝(遼寧) 등 중국의 동북 3개성을 점령한 뒤 '동북최고행정위원회‘를 설치하고 만주국의 성립을 선포했다.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국으로 1945년 일제가 2차대전에서 패전할 때까지 만 13년 6개월 동안 존속했다
만국(만주국)은 한족,만주족, 몽골족, 조선족(한민족),일족( 야마토 민족) 등 5대 민족이 연합으로 건국한 국가이다
만주국 협회(만주국 의회)는 만주족과 한족, 몽골족, 한민족(조선족), 일족(야마토 민족)의 연합정부 오족협화를 의미한다
만주국은 강덕제를 원수로 하는 국가로서, 만주족과 한족, 몽골족, 한민족(조선족), 야마토 민족의 오족협화로 이루어진 “만주인”에 의한 민족자결의 원칙에 기초에 둔 국민국가를 표방했다. 그러나 실제 통치는 관동군이 주도하였다.
김일성(김성주)은 만주국 건국 이후 남만주나 동만주 지역에서 반일이나 반만주국(반만국) 활동을 했다 그리고 그의 동생 김영주는 관동군 헌병 보조원[만주군 통역 ]으로 생활했다
만주국과 조선총독부는 다른 성격이다
만주국은 자치를 보장된 위성국가이며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직할지역이다
만주국 협화회에 가담한 조선족 자치조직이 만주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만주국 협화회 조선족 자치협화회가 조선족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과 소련의 만주국 승인 그리고 만주국 협화회 조선족 자치협화회 등을 정리될 때 정확하게 만주지역 조선족 좌파(소련 원조 공산당)나 우파(중국 장개석정부) 항일운동을 재정리할 수 있다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반파쇼 인민전선론'이 채택되면서 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이 사회민주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과 연합하여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기조가 일어나자, 당시 만주에 존재하던 공산주의 계열 항일운동가들에 의해 '인민전선론'이 대두됐다
조국광복회 간부들은 대부분이 남만주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 간부들로 채워졌으며, 군사활동뿐 아니라 국내 정치활동에도 주력, 기관지 <3·1월간>을 발간하는 등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또한 공산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반일 성향을 가지고 있던 민족주의자·천도교·지주까지 참가시켰다[조국 광복회와 보천보 전투]
북한 공산주의자 김일성, 김책, 강건 등 은 만주지역에서 만주국 조선 공산당 항일 운동이 소련정부의 대일정책에 따라 움직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련이 중일전쟁때 중화민국 지원국일때 1937년부터 1941년까지는 활동이 대단했고 소련이 공식적으로 만주국을 승인할 시기에는 1941년 부터는 만주국 내부에서 공산당 활동이 침체되었고 협력자들이 등장했다 1944년 경부터 소련이 연합군으로 가담하여 반일투쟁을 주도할때는 만주국 내부 공산당 세력들이 반만주국 반일 투쟁 활동과 만주국 점령 군사훈련을 주도했다
만주 전략공세작전은 제1전선 구축 소련군 주도, 제2전선 구축 소련이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창설한 극동지역 공산주의자 주축으로 각 민족여단(한족,조선족, 몽골족, 만주족 등 외국인 연합군)[만주국 오족협화] 소련 제1극동전선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연합으로 추진 되었다
중국은 만주국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무역, 교통, 통신을 위해서 공식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1933년 국제연맹이 리튼 보고서(Lytton Report)를 채택하여 만주가 중국의 일부임을 선언하자 일본은 연맹에서 탈퇴한다. 미국은 만주국이 건립하자 무력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 관계의 변화를 거부하는 스팀슨 독트린(Stimson Doctrine)을 선언한다.
국제 연맹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만주국은 엘살바도르(1934년 3월 3일)와 도미니카 공화국(1934년), 소비에트 연방(사실상 1935년 3월 23일, 법률상 1941년 4월 13일), 이탈리아(1937년 11월 29일), 스페인(1937년 12월 2일), 독일(1938년 5월 12일), 헝가리 (1939년 1월 9일)에 승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이후, 만주국은 일본의 동맹국 독일의 지배를 받거나 영향하에 있던 국가인 슬로바키아(1940년 6월 1일), 프랑스(1940년 7월 12일), 루마니아(1940년 12월 1일), 불가리아(1941년 5월 10일), 핀란드(1941년 7월 18일), 덴마크(1941년 8월), 크로아티아 독립국(1941년 8월 2일)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또한 일본의 영향하에 있던 중국 왕징웨이 정권(1940년 11월 30일), 태국(1941년 8월 5일), 필리핀도 만주국을 승인했다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중국 동북지역)에 주둔한 일본관동군이 펑톈의 중국군 주둔지를 습격하고 만주 각지를 무력으로 점령한 뒤 1932년 3월 만주국을 세운 사건을 가리킨다.
1932년 3월 1일 만주국 건국
만주국(Manchukuo, 1932~1945)은 1930년대 초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동북 지방(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강점한 뒤, 1932년 3월 1일 괴뢰 정권을 수립하여 선포한 명목상의 독립국가이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집정(후에 황제)으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일제의 식민지이자 대륙 침략을 위한 군사·생산 기지였다
1945년 8월 일본 제국이 항복해 해체되기까지 약 13년 5개월 정도 존속하였다.
만국(만주국)은 한족,만주족, 몽골족, 조선족(한민족),일족( 야마토 민족) 등 5대 민족이 연합으로 건국한 국가이다 만주국 협회(만주국 의회)는 만주족과 한족, 몽골족, 한민족(조선족), 일족(야마토 민족)의 연합정부 오족협화를 의미한다
-김일성의 생년월일은 1912년 4월 15일로 만주국의 건국 당시 나이는 19세이다.공식적으로 김일성 등장은 1933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 이다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은 1933년 9월 중국공산당이 만주 지역 내 항일 무장투쟁을 체계화하고 강화하기 위해 조직한 정규 유격대이다. 이 군대는 1930년대 중반 일제에 맞서 항일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활동하다가, 1936년 3월 이후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개편/확대되었다.
193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조선인민혁명군(朝鮮人民革命軍)은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창건했다고 주장하는 가상의 항일 무장군사조직이다.
소련군 복무 시절 김일성이 스스로 작성한 문건에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5·25 교시를 계기로 창작된 군대로서 소련군 제88독립보병여단 출신의 만주파가 북한 권력을 장악하며 시작된 백두혈통 우상화 작업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77년부터 2017년까지 조선인민군 창건일로 삼았던 1932년 4월 25일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에서 유래하였다. 즉 원래 조선인민군의 공식 창건일은 1977년까지 1948년 2월 8일이었으나, 김일성이 자신이 조직한 항일 빨치산 부대 즉 조선인민혁명군이 실제 뿌리라며 1978년에 1932년 4월 25일로 변경하였다. 하지만 김정은이 공식 군 창건일을 2018년에 1948년 2월 8일로 재변경하였다
1933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 창설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은 1933년 9월 중국공산당이 만주 지역 내 항일 무장투쟁을 체계화하고 강화하기 위해 조직한 정규 유격대이다. 이 군대는 1930년대 중반 일제에 맞서 항일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활동하다가, 1936년 3월 이후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개편/확대되었다.
주요 내용 및 특징
배경 및 구성: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중공당 계통의 유격대를 정규군 형태로 정비했다.
주요 활동: 1930년대 중반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며 일제와 군사 시설에 타격을 주었다.
조선인의 역할과 민생단 사건: 초기에는 조선인 대원들이 민생단 사건으로 많은 처형을 당했으나, 이후 동북항일연군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김일성 등 조선인 대원들과의 연대가 강화되었다.
동북항일연군으로의 전환: 1935년 7차 코민테른의 반제국주의 인민통일전선 방침에 따라 1936년 동북항일연군으로 개편되어 더 넓은 연합전선을 전개했다.
동북인민혁명군은 만주 지역 내 항일 무장 투쟁의 핵심 세력으로, 이후 동북항일연군의 토대가 되어 한·중 합동 항일 활동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東北抗日聯軍은 1931~32년 사이에 일본의 중국 동북지방(만주)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공산당 주도로 조직된 항일유격대와 1933~36년 전반기까지 활동한 동북인민혁명군 등을 기반으로 1936년 중반에 성립한 중국 동북지역의 항일연합부대를 말한다. 이 부대에 많은 韓人(조선인)들이 참가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중 양 민족의 연합 항일투쟁이 본격화하였다. 종래 중국학계와 정계에서는 동북항일연군이 사실상 중·한 양 민족의 연합부대였고, 김일성·최용건 등 중국 동북지역(만주) 한인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평가하였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중국학계 일각에서 이러한 인식과 다른 새로운 주장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중국 華東사범대학 郝江東은 최근 중국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종래의 견해를 사실과 다른 정치적 해석이라고 비판하였다. 또 중국의 유명한 중국-북한관계 전문가 沈之華는 최근 저서에서 1930년대~40년대 초 만주에서의 한인들의 활동을 ‘朝鮮族’의 활동으로 서술하여, ‘中華민족’ 형성의 前史로 간주하는 시각을 드러냈다. 한편 중국 延邊학계에서도 종래 한인들의 ‘이중사명론’을 부정하는 저서가 나왔다. 이 시기 재만한인들이 중국혁명과 ‘중화민족’의 해방을 위해 공헌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는 종래 재만한인들이 ‘중국혁명’과 함께 조선(한국)독립이나 조선혁명을 위한 임무도 지녔다는 주장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최근 중국학계 일각의 주장은 비판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 만주(중국동북 지방)에서 활동한 동북항일연군과 이 부대에 참가한 한인들은 중국공산당과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지만, 항일민족통일전선의 기치 아래 ‘조선독립’·‘조선혁명’을 위해 분투하기도 했다. 동북항일연군은 분명 한·중 양 민족의 연합부대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사와 한국독립운동사, 나아가 한인(한민족) 이주사(한인 Diaspora)의 입장에서 우리의 역사로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학계의 동북항일연군 연구 심화와 대량의 연구업적 산출과는 대조적으로 한국학계의 이 분야 연구 부진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추후 한국학계에서 동북항일연군과 재만한인들 관련 연구·교육을 심화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출생일:1917년 11월 14일
출생지:일제 강점기 조선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사곡동
사망일:1979년 10월 26일(61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 안가
본관:고령
고령 박씨(高靈朴氏)는 경상북도 고령군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호:중수(中樹)
약력
1932.3. 구미공립보통학교 졸업 (제11회)
1937.3.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졸업
1937.4. 문경공립보통학교 훈도
1938.4. 문경서부공립심상소학교 훈도
1940.4. 만주국육군군관학교 예과 입교
1942.3. 만주국육군군관학교 예과 졸업
1942.4 만주국 육군 대부근무
1942.10. 일본제국 육군사관학교 유학생대 편입
1944.4. 일본 제국 육군사관학교 유학생대 졸업
1944.4. 만주국 육군 견습군관
1944.7. 만주국 육군 소위 임관, 제5군관구 제8보병단 배장(소대장)
1944.12. 만주국 육군 제8보병단 부관실 을종 부관 겸 단기 책임자
1945.7. 만주국 육군 중위 진급
1945.9.21 한국광복군 제3지대 핑진대대 2중대장
1946.12. 조선경비사관학교 졸업 (제2기, 3등)
1946.12. 조선경비대 포병 소위 임관, 춘천 8연대 배속
1946.12. 남조선로동당 입당, 군사총책
남로당 총비서 박헌영은 "미제국주의와 고용간첩의 두목. 공화국 전복기도 혐의" 으로 총살형(1958년).
박헌영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정부 초대 외상, 군사위원회 위원, 인민군 총정치국장[육군 중장] 등을 역임했다
박헌영의 한국전쟁 패전 책임과 미국간첩으로 처형됨으로서 남로당계열 내부 조선공산당은 사실상 와해 되었다
남로당 이후 당(黨) 수준 조직으로는 1960년대 박정희 군부의 5.16 쿠데타이후 NLPR 김일성주의 노선 통일혁명당이 등장했고 1990년 1월 새세대 주체사상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민혁당)가 등장했다
1947. 조선경비보병학교 수료
1947.9. 조선경비대 대위 진급
1948.8. 조선경비대 소령 진급, 대한민국 육군본부 작전정보국 배속
1949.1. 육군 소령 불명예 전역, 육군본부 작전정보국 문관
1949.2. 남로당 연루 사건으로 무기징역 선고
1950.6. 대한민국 육군 소령 복직, 육군본부 작전정보국 제1과장
1950.9. 육군 중령 진급, 육군본부 수송지휘관
1950.10. 제9보병사단 참모장
1951.4. 육군 대령 진급
1951.5. 육군정보학교 교장
1951.12. 육군본부 교육국 작전차장
1952.10. 포병 전과, 광주 육군포병학교 입교
1953.2. 제2군단 포병단장
1953.5. 제3군단 포병단장
1953.11. 육군 준장 진급
1954.1. 미국 육군 야전포병학교 유학[29](1월 ~ 6월 27일)
1954.7 제2군단 포병사령관
1954.10 육군포병학교 교장
1955.7. 제5보병사단장
1957.3. 육군대학 졸업
1957.3. 제6군단 부군단장
1957.7. 제7보병사단장
1959.3. 육군 소장 진급
1959.7. 제6관구사령관
1960.1. 부산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
1960.7.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1960.12.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
1961.5. 군사혁명위원회 부위원장
1961.5. 군사혁명위원장
1961.5.20.~1961.7.2. 초대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1961.7.3.~1963.12.16. 제2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1961.8. 육군 중장 진급
1961.11. 육군 대장 진급
1962.3.24.~1963.12.16.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1962.6.18.~1962.7.9. 내각수반
1963.8.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대장으로 전역
1963.10. 제5대 대통령 선거 후보 (민주공화당)
1963.12.17.~1967.6.30. 제5대 대한민국 대통령
1963.12. 무궁화대훈장 수훈
1963.12. 제2, 3대 민주공화당 총재
1967.5. 제6대 대통령 선거 후보 (민주공화당)
1967.7.1.~1971.6.30. 제6대 대한민국 대통령 (재선)
1971.5.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 (민주공화당)
1971.7.1.~1972.12.26. 제7대 대한민국 대통령 (3선)
1972.12. 제8대 대통령 선거 후보 (민주공화당, 간선)
1972.12.27.~1978.12.26. 제8대 대한민국 대통령 (4선)
1972.12.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
1978.12. 제9대 대통령 선거 후보 (민주공화당, 대한민국 육군 대장간선)
1978.12.27.~1979.10.26. 제9대 대한민국 대통령 (5선)
1979.11.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참전:중일 전쟁
여순 사건 (남조선로동당 14연대)
6.25 전쟁
최종계급
만주국 만주군 중위
대한민국 육군 대장
새세대 공산주의 스탈린주의자 김일성(김성주)
새세대 공산주의 스탈린주의자 김일성(김성주)
김일성은 프롤레타리아 독제체제(노농동맹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새세대 공산주의 스탈린주의자이며 인민민주주의(민주공화국=인민공화국) 세대 레닌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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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프롤레타리아 독제체제(노농동맹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새세대 공산주의 스탈린주의자이며 인민민주주의(민주공화국) 세대 레닌주의자 박헌영, 김두봉과는 다른 인물이다
김일성 전 국가주석은 소비에트연방(소련)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출신이다 본래 북한은 소련 위성국으로 아직도 소비에트연방(소련)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출신 후손들이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김일성을 만주 조선족자치정부[만국 조선족자치정부] 새세대 공산주의(사회주의, 스탈린주의자) 세대 동북항일연군 조선족 지휘관로 평가하고 있으며 일본 좌파는 김일성을 김경천(김광서, 일본육사 23기 기병과 출신)으로 평가해왔다 소련에서는 한족과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등 혼성 용병부대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조선인 지휘관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족주의자 백마 탄 김장군 김경천(김광서, 김일성)
민족주의자 백마 탄 김장군 김경천(김광서, 김일성)
김경천(金擎天, 1888년 6월 5일~1942년 1월 2일)은 일본육사 23기 기병과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서 해외로 망명하여 일제강점기에 무장 독립 운동을 벌인 독립 운동가이다. 초명은 김현충(金顯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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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본명 김광서)과 북한의 김일성(본명 김성주)은 서로 다른 인물이나, 김일성이 김경천 장군의 항일 업적과 이미지를 도용했다는 이른바 '김일성 가짜설'의 핵심 인물들로 얽혀 있습니다.
1. 실존 인물: 김경천 장군 (1888~1942)
경력: 일본 육군사관학교(23기)를 졸업한 엘리트 장교 출신으로, 1919년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을 양성했습니다.
별명: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백마 탄 장군', '조선의 나폴레옹'으로 불리며 전설적인 무장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최후: 소련 스탈린 정권의 대숙청 기간에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1942년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옥사했습니다.
2. 김일성과의 관계 및 '도용설'
이미지 도용 의혹: 학계 일각에서는 김일성이 평양 등장 당시 내세운 '백마 탄 장군' 이미지와 항일 명성이 실제로는 김경천 장군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가명 사용: 김경천 장군이 연해주에서 활동할 당시 '김일성'이라는 가명을 썼다는 기록이 있어, 훗날 북한의 김일성이 그 명성을 가로챘다는 설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학계의 시각: 현대 학계에서는 북한 김일성의 항일 활동 자체는 사실로 보지만, 그 과정에서 김경천 장군 등 앞선 세대 독립운동가들의 전설적인 일화들이 김일성 개인의 우상화에 활용되거나 덧씌워진 것으로 분석합니다.
3. 최근 소식
명예 회복: 김경천 장군은 공산당 가입 거부 등으로 오랫동안 잊혔으나, 199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후손 귀화: 2015년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던 김경천 장군의 후손들이 대한민국에 특별귀화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위패 봉안: 2024년 10월, '진짜 김일성'으로 불린 김경천 장군의 위패가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이다
한국전쟁 남침 인민군 지휘부 작전 라인은 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전선총사령관 김책(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전선부사령관 박일우(조선의용군), 인민군 총참모장 강건(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독립 저격여단)이며 남로당 내부 조선공산당조직 박헌영(인민군총정치국장), 이현상(남부군, 빨치산 부대 또는 저격여단) 등 이다[빨치산부대를 소련에서는 저격여단이나 특수부대, 공수부대로 표현하고 있다]
남침은 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출신 주도로 조선의용군과 남로당 내부 조선공산당 출신이 적극 가담했다
전선사령부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전선사령관 김책[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총참모장 강건[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라인으로 지휘체계가 작동하였다. 그리고 전선사령부 밑에는 서부전선을 담당하는 1군단과 동부전선을 공격할 2군단을 창설했다. 1군단장에는 김웅(金雄) 중장[조선의용대 중국 팔로군 출신]을, 2군단장에 김광협(金光俠) 중장[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을 임명했다
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이다
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이다
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 내부 제 88독립저격여단)이다 만주파(滿洲派)란 북한에서 김일성과 함께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유격대 활동을 한 인물들을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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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군정 북한 최고지도자 시티코프 중장(中將)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 제25군 군사위원회 위원 레베데프 소장(小將)
테렌티 포미치 시티코프(러시아어: Терентий Фомич Штыков, 벨라루스어: Цярэнцій Фаміч Штыкаў 차렌치 파미치 슈티카우, 1907년 2월 28일 ~ 1964년 10월 25일)는 소련의 군인이었다. 그는 연해주군관구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해방 후 북한의 소련 군정을 총지휘했다. 그의 유고 "시티코프 일기"는 해방 직후 남북한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니콜라이 게오르기예비치 레베데프(러시아어: Николай Георгиевич Лебедев, 1901년 ~ 1992년 5월 10일)는 소련군 장성이다. 1945년 해방 당시 북한에 진주한 소련 제25군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평양의 소련군정에서 김일성 정권 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제2극동전선군 (2-й Дальневосточный фронт)은 서구의 군집단과 같은 규모인 소련 육군의 전선군 중 하나였다. 이 군단은 만주 전략공세작전 직전에 창설되어 1945년 8월 5일 임무를 시작했으며 같은 해 10월 1일 해산되었다.
창설된 직후 제2극동전선군은 일본 제국의 제1방면군과 제5방면군, 제4군을 상대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제2극동전선군이 상대해야 할 일본군은 만주, 사할린섬, 그리고 쿠릴 열도에 주둔하고 있었다. 만주에서는 전선군이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을 건너 일본군의 저항을 무력화하는데 성공했다. 8월 20일 전선군의 제15군이 하얼빈을 점령했으며, 이후 제2적기군이 칼로찬과 륜츠전 지역에 입성했다. 제15군은 이 사이에 산신 군을 점령했고, 제5소총군단은 볼리 지역에 입성했다. 대부분의 일본군은 8월 20일 이후 소련군에 항복하기 시작했다.
한편 8월 11일, 제16군은 남부 사할린에 공세를 가해 8월 18일까지 섬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8월 19일부터 25일까지 제16군은 홀름스크 항구에서 상륙작전을 개시하였고 코르사코프에서 공정작전과 상륙작전을 동시에 수행했다. 8월 25일 소련군은 사할린의 행정중심지인 유즈노사할린스크를 점령했다. 9월 초 일본군의 저항은 끝났지만 소련군의 침공이 지연되어 일본 본토에 위치한 홋카이도 침공 계획은 실현될 수 없었다. 한편 제101소총사단은 쿠릴 열도를 점령했다.
1945년 10월 1일, 스타프카 VGK의 지시로 전선군은 해산되어 극동군관구로 재조직되었다.
소련 군정 북한 최고지도자 시티코프 중장(中將)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 제25군 군사위원회 위원 레베데프 소장(小將)
소련 군정 북한 최고지도자 시티코프 중장(中將)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 제25군 군사위원회 위원
1947년 7월 서울의 미소공동위원회에서 담소하는 미소 양군 대표: 좌로부터 미군정청 사령관 하지 중장, 소련측 대표 레베데프 소장과 스티코프 중장 [사진] Ⅰ.소련 군정 북한 최고지도자 스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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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
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는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과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이다
한국전쟁 이후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이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그룹과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 그룹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 그룹은 한국전쟁 패전 책임과 박헌영등 미국간첩으로 제거 되었고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그룹은 종파주의자로 제거 되었다
아직도 북한 권력층은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후손들이 장악하고 있다
김일성은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주도 인물로 소련군 도움므로 권력을 장악했다
중국에서는 김일성을 만주 조선족자치정부[만국 조선족자치정부] 새세대 공산주의(사회주의, 스탈린주의자) 세대로 평가하고 있으며 일본 좌파는 김일성을 김광서(일본육사 23기 기병과 출신)으로 평가해왔다
소련에서는 한족과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등 혼성 용병부대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조선인 지휘관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
한국전쟁 추진 세력 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김일성(인민군 총사령관), 최용건(방어총사령관), 김책(전선총사령관), 김일(인민군 문화부 사령관), 강건(인민군 총참모장) 모습 북한정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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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부수상 겸 외상 그리고 인민군 총정치국장(육군 중장) 박헌영 재판
남로당 총비서 박헌영은 "미제국주의와 고용간첩의 두목. 공화국 전복기도 혐의" 으로 총살형(1958년).
박헌영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정부 초대 외상, 군사위원회 위원, 인민군 총정치국장[육군 중장] 등을 역임했다
박헌영의 한국전쟁 패전 책임과 미국간첩으로 처형됨으로서 남로당계열 내부 조선공산당은 사실상 와해 되었다
남로당 이후 당(黨) 수준 조직으로는 1960년대 박정희 군부의 5.16 쿠데타이후 반일성향 NLPR 김일성주의 노선 통일혁명당이 등장했고 1990년 1월 새세대 주체사상 반미성향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민혁당)가 등장했다
북한 부수상 겸 외상 그리고 인민군 총정치국장(육군 중장) 박헌영 재판
북한 부수상 겸 외상 그리고 인민군 총정치국장(육군 중장) 박헌영 재판
북한 부수상 겸 외상 그리고 인민군 총정치국장(육군 중장) 박헌영 재판 "미제국주의와 고용간첩의 두목. 공화국 전복기도 혐의" 소련 조사단이 돌아간 직후 '박헌영 사건 조사를 속히 끝내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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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과 남로당 지도부는 "미제국주의와 고용간첩의 두목. 공화국 전복기도 혐의"로 북한 정부에서 제거되었다
그리고 남한정부에서도 폭동과 한국전쟁 책임 세력으로 제거 되었다
김두봉과 박헌영 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한 인사로 친대한민국 임시정부 성향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호(國號)는 삼한정통설(三韓正統說)으로 건국한 대한제국을 계승하여 대한(大韓)으로 하며 국정(國政)은 국민의(民有), 국민에 의한(民治), 국민을 위한(民享) 정부(民主共和國)를 원칙으로 한다
단군왕검 이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반일 독립투쟁 입장에서 세계정세에 순응하여 중국, 미국이나 소련, 유럽 등 지원을 받았다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링컨 게티스버그 연설문- 민주정치의 실천 이념]
世界潮流浩浩蕩蕩順之則昌, 逆之則亡.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立憲君主國,聯邦共和國)
-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일본국 헌법]
-중화민국은 삼민주의(三民主義)에 기초한,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민주공화국이다
-프랑스 국민은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규정되고 1946년 헌법 전문에서 확인· 보완된 인권과 국민주권의 원리, 그리고 2004년 환경헌장에 규정된 권리와 의무를 준수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상기의 원리들과 각 국민들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공화국에 결합하기를 희망하는 해외영토들에게 자유· 평등· 박애의 보편적 이념에 입각하고 그들의 민주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제도들을 제공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자유· 평등· 박애를 국시로 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원칙으로 한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자본주의이며 정치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이며,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민주국가(자유사회)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인류의 자유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공산주의도 압제 독재정치도 아닙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이며,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경제는 자본주의이며, 정치는 민주주의입니다
대한민국은 인민의(民有) 인민에 의한(民治), 인민을 위한(民享) 민주정부(民主政府) 민주공화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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