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북 반잠수정 침투목적]군, 3갈래 추정 본문
군당국은 반잠수정의 침투목적으로 대략 세가지 가능성을 제기한다.
첫째는 고정간첩 대동복귀. 대기중인 고정간첩을 태워 북한으로 복귀하기 위해 해안에 접근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이라면 해안상륙조는 없다고 봐야한다.
둘째는 간첩 침투. 함께 타고온 간첩의 해안상륙을 시도했을 경우인데 침투조가 이미 해안에 상륙했다면 색출작전이 강화돼야 한다.
셋째는 드보크 (무인함) 설치를 위한 침투 가능성. 군당국은 일단 고정간첩 대동복귀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승선인원 때문이다.
북한이 대남침투용으로 자주 사용하는 5t 크기 반잠수정의 경우 보통 5~6명, 최대 8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
이번에 격침된 반잠수정의 경우 TOD로 확인된 승선인원은 모두 4명. 즉 1~4명 정도를 더 태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이는 격침된 반잠수정의 침투목적이 무장간첩을 상륙시키는 것이라기보다 해안에서 기다리던 고정간첩을 태우고 월북하려 했다는 추측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간첩선이 우리측 감시망에 첫 포착됐을 당시 해안으로부터의 거리가 2㎞에 불과하고, 또 첫 발견으로부터 재차 발견될 때까지 2시간25분여의 공백이 있어, 일부 인원이 이미 수중침투를 시도했거나 성공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잠수정침투사건

개설
1980년대 이후 소형 잠수함을 이용한 북한의 대남침투가 여러 차례 있었다. 1983년 부산 다대포사건, 1985년 부산 청사포사건, 1996년 강릉사건, 1998년 속초사건, 1998년 강화도사건과 여수사건 등이다.
경과 및 결과
1983년 12월 3일, 부산 다대포에 침투한 북한의 반잠수정이 격침되었다. 1985년 10월 20일, 부산 청사포 앞바다에 침투한 반잠수정이 격침되었다.
1990년대 들어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고 밀사가 남북을 오갔던 시기 이후에도 침투사건이 있었다. 1996년 9월 18일, 강릉 앞바다에 350톤급의 북한 잠수정이 기관 고장을 일으켜 현지 주민(택시 운전기사)의 신고로 발견되었다. 내륙으로 도피한 26명의 승무원 및 침투원 중 생포 1명, 사살 13명, 자폭 11명, 도주 1명이었다.
1998년 6월 22일, 9명을 태운 북한 잠수정이 강원도 속초 해안으로 침투했다. 그러나 속초 해안에서 어망에 걸려 표류하다가 추격을 받자 9명 모두 집단 자살했다.
1998년 11월 20일, 강화도 해역에 출몰한 북한 잠수정은 해군의 추격을 피해 북으로 도주했다. 같은 해 12월 18일, 북한 반잠수정이 여수 앞바다에 출몰했으나 격침되었다. 당시 금강산관광 등 남북교류협력 문제가 논의될 무렵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 북한 측은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의의와 평가
북한은 1980년대 이후 남한에 비해 해군 전력이 크게 뒤처지게 되자 잠수정·반잠수정 등의 대남침투 전력을 강화시켜 나갔으며 현재는 상당한 전력을 확보하고 있다. 김정일정권은 한·미 해군의 동·서해안 합동군사훈련에 대비하는 한편 유사시 즉각적인 대남침투를 위해서 잠수정 침투를 통한 도발을 계속하여 긴장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잠수정 침투는 금강산관광 등 남북관계가 개선되었을 때나 연평도해전 등 경색되었을 때나 가리지 않고 지속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타격하기 위해 잠수함 전력을 최첨단 현대식으로 증강시켜 나가야 하며 북한의 도발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면서 그들의 동태를 예의주시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해군에 격침된 北잠수정 간첩 시신 뒤졌더니
대한민국 정당사엔 공당(公黨)만 있는 게 아니다. 지하당(地下黨). 당비를 내는 ‘당원’이나 당사, 선거를 통해 확보한 ‘영토’ 따위는 애초에 있을 수 없는 비밀조직이다. 북한의 지령과 이념, 조직원만 있을 뿐이다. 이런 비밀조직이 엄연히 실재했던 게 사실이다.
지하당의 뿌리는 깊다. 역사도 오래다. 해방 후 우파 민족주의 정당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김일성에 숙청당한 박헌영의 남로당(남조선노동당)에서 1980년대 이후 북한 주체사상에 심취한 NL(민족해방) 계열이 1992년에 만든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까지 지하당은 반세기가량 명맥을 유지해왔다.
최후의 지하당 격인 민혁당 사건 연루자들이 요즘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영환, 이석기, 하영옥. 1982학번 동기로 NL의 원조다. ‘종북 주사파의 뿌리’인 셈이다. 그러나 현재 세 사람의 운명은 엇갈려 있다.

◆김영환=서울대 법대 82학번인 그는 북한에 포섭되지 않은 채 스스로 ‘구국의 소리’ 방송과 주체사상 관련 서적을 탐독한 자생적 종북주의자였다. 그러곤 “식민지인 한국은 반미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며 NL혁명이론(주체사상)을 주창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수도권 대학에 전파하기 위해 『강철서신』을 썼다. 『강철서신』에 담긴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로는 한반도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낀 학생들에게 솔깃했다. “어차피 사회주의 혁명을 하려면 사회주의 세력인 북한을 우군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한 민족·통일을 외치는 ‘토착 전술론’에 매력을 느낀 거다.
그런 김영환에게 89년 7월 “김 선생과 통일사업을 논하고 싶소”라며 접근한 사람이 있었다. 윤택림이란 남파 간첩이었다.
김영환은 그와 만난 후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평양으로 가서 91년 정식으로 입당식까지 치렀고, 북한으로부터 ‘관악산 1호’란 대호(代號·암호명)를 얻었다.
윤택림으로부터는 평양방송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암호책자, 난수표, 해독표도 받았다. 그해 5월엔 북한 잠수정을 타고 두 번째 밀입북했다. 북한에 17일간 머물면서 급기야 묘향산에 있는 김일성 별장에서 김일성(당시 주석)과 두 차례 면담까지 하기에 이른다.
국정원 수사기록에는 김일성이 그때 김영환에게 ‘선생’이란 호칭을 사용하면서 “강철서신은 참 훌륭한 글”이라고 칭찬했다는 대목이 있다.
수사 기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이런 말도 했다
“이란의 라프 산자니 대통령이 공화국을 방문했을 때 내가 ‘이란은 어떻게 혁명에 성공했느냐’고 물어봤더니 ‘따로 혁명조직이 있었던 게 아니라 회교조직을 통한 사상의 전파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 사령관의 부관을 먼저 끌어들인 뒤 (부관의 상사인) 사령관을 항복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군인 30만 명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남조선이 미국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남조선 인민 1000명만 주체사상으로 무장시키면 남조선 혁명은 이룩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김영환은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남한에서 조직활동을 열심히 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민혁당’은 그 후 창당됐다. 92년 3월, 김일성을 면담하고 온 뒤 8개월 뒤의 일이다. 김영환은 강화군 외포리의 ‘드보크’(간첩장비 비밀매설지)를 통해 40만 달러(당시 3억원), 권총 2정, 실탄, 무전기 2대 등을 받았다. 민혁당 출신 홍진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이사는 저서 『지성과 반지성』에서 민혁당의 조직원이 “전국적으로 100명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영향권에 있던 사람을 포함하면 수천 명에 달했을 거라는 추정도 있다.
그런 김영환이 왜 전향을 한 것일까. 김영환은 훗날 “북한의 주체사상은 황장엽이 만든 주체철학에 민족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수령론을 합친 것인데 김일성은 주체사상에 대해 막상 거의 관심도 없고 잘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북한 학자들과의 토론에서도 주체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람들의 창의성이 발휘되지 않았음을 느꼈다고 했다. [
북한 상급자가 하급자를 고압적으로 대하는 모습에도 회의 하게 됐다. 자생적 종북주의자 김영환을 전향하게 한 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방문 후였던 것이다. 민혁당은 결국 94년 김일성 사망 후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낀 김영환이 97년 7월 해체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당국에 의해 지하당 민혁당의 실체가 드러난 건 아니었다. 김영환은 민혁당 해체를 선언했지만 이에 불응하고 민혁당을 계속 하려 한 이가 하영옥이다.
◆하영옥=국정원 수사기록에 따르면 그는 민혁당 ‘넘버2’였다. 8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하영옥은 89년 ‘반제청년동맹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김영환(‘관악산 1호’)에 이어 ‘관악산 2호’가 됐다. 그는 북한에는 가지 않고 서울 도봉산에서 입당식을 했다. 그 자리에서 하영옥은 “조선노동당에 입당해 매우 영광스럽고 당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것을 맹세한다”는 결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그는 97년 민혁당이 해산하자 이에 반발, 영남위원회와 경기남부위원회를 중심으로 당 조직을 수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98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북한이 직접 파견한 간첩으로부터 북한이 자신을 김영환 대신 민혁당 총책으로 임명한 사실과 입북 제의를 듣게 된다. 그러나 98년 12월 그가 타고 가려던 북한 반잠수정이 군에 발각돼 밀북 계획은 미수에 그친다.
민혁당의 단서가 포착된 것은 이때였다. 당시 남해상에서 해군에 격침된 북한 간첩 침투용 반잠수정 안에서 발견된 유류품 때문이다. 잠수정 안에 있던 공작원의 시신 등에서 김영환·하영옥 등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이 나왔고, 이를 토대로 국정원이 추적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민혁당 하부망의 핵심 인물로 이석기를 찾아낸 것이라고 국정원은 발표했었다.
국정원은 하영옥이 북한 공작원과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하려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자 북한 공작원만 입북하려다 격침된 것으로 봤다. 김영환은 잠수정 침몰로 민혁당의 실체가 드러난 줄 모르는 상태에서 99년 8월 귀국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민혁당의 존재를 파악한 것을 뒤늦게 안 김영환은 월간 말지를 통해 ‘간첩사건이 조작되고 있다’는 인터뷰를 한 뒤 출국을 시도했다. 말지 인터뷰는 김영환이 민혁당 관련자들에게 도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한 것이었다. 당국은 이런 움직임을 알면서도 김영환을 체포하지 않다가 나중에 하영옥 등과 함께 해외로 출국하려던 김영환을 체포했다.
『진보의 그늘』 저자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에 따르면 ‘2차 민혁당’, 즉 재건된 민혁당은 97년 김영환이 해체한 직후부터 99년 그가 구속될 때까지 조직됐었다고 한다. 그는 99년 9월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8년형을 선고 받아 4년간 복역한 뒤 2003년 4월 30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후 경기도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다. 그가 민혁당 재건을 꾀하고 있다고 최근 동아일보가 보도하자 하영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해도, 선입견에 (맞춰) 내가 뭐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식으로 함부로 소설을 쓰는 짓은 너무한 게 아닌가”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지금 (통합진보당) 당원이지만 아무런 활동을 한 바 없다. 민혁당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후 애들을 먹여 살리려고 학원 강사를 한 지 8년이 됐고 아무런 활동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석기=두말할 것 없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현재는 ‘이석기 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국정원 수사 결과 그는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이었다.
82년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중국어통번역과에 입학한 그는 89년 하영옥 등과 함께 민혁당 전신 격인 ‘반제청년동맹’ 결성에 참여했다. 당시 하영옥이 중앙위원장, 이석기 등 4명은 중앙위원을 맡았다. 반제청년동맹엔 89년에 김영환도 중앙위원으로 합류했다.
최근 하태경 새누리당 당선인은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인은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으로 서열 5위의 핵심 고위직이었다”고 주장했다. ‘넘버 5’란 하태경 당선인의 지적은 이석기가 중앙위원 신분이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석기는 하영옥 등 99년 8월부터 민혁당 사건 연루자들이 줄줄이 검거됐을 때 붙잡히지 않고 2년 넘게 도피생활을 했다. 그러다 2002년 5월 체포된 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고 2003년 8·15 특사로 풀려났다. 그에게 여전히 ‘종북’이란 의혹의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는 이런 전력 때문이다.
한기홍 대표는 “이석기가 합법 정당으로 진입한 것은 검거 후 신분이 수사기관에 노출되면서 지하활동에 장애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애매모호한 화법으로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82학번 세 명 중 ‘넘버 1’이었던 주사파의 대부 김영환은 전향 후 북한 주민을 위한 운동을 하다 ‘국가안전위해죄’라는 죄목으로 52일째 중국에 구금돼 있다. 민혁당 조직 중 김영환의 지휘 하에 있던 수도권의 지하지도부 등은 전향 후 활동을 접거나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 반면 이석기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의 이름으로 의회 권력에 다가가고 있다. 10여 일 뒤면 그는 ‘지하당 출신 국회의원’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8226916
해군에 격침된 北잠수정 간첩 시신 뒤졌더니 | 중앙일보
대한민국 정당사엔 공당(公黨)만 있는 게 아니다. 지하당(地下黨). 당비를 내는 ‘당원’이나 당사, 선거를 통해 확보한 ‘영토’ 따위는 애초에 있을 수 없는 비밀조직이다. 북한의 지령과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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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1일, 반미청년회에서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로 개편. (남한 친북세력 개편)
반미청년회의 NLPDR노선에서 주체사상 노선으로 변경과 함께 김정일주의 표방.
-1990년 1월 20일,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등 3당 합당.
-1991년 5월,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민혁당 지도부 김영환 등 잠수정(반잠수정)으로 밀입북과 김일성 전주석 면담.
강철서신(반제동맹, NLPDR)->구국의 소리(반미청년회, NLPDR노선 김일성주의)->새세대(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주체연호와 주체사상 김정일주의)
-남북기본합의 체결
1990년 9월 4일부터 5차에 걸쳐 개최된 남북 고위급 본회담을 거쳐 1991년 12월 13일 체결한 합의서.
1991년 12월 10일부터 13일까지 열린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 본회담 결과 체결된 합의서.
-1991년 12월, 김정일 인민군 최고사령관 취임과 인민군 장악.
-1992년 12월 18일 김영삼 민자당 후보 대통령 당선과 문민정부 출범
-남북대화와 남북정상회담 추진
남북정상회담 추진 성사로 김영삼전대통령 평양 방문 직전 김일성 전주석 사망.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강온파 갈등과 정보부재로 김일성 전주석 사망.
김일성 전 국가주석은 소비에트연방(소련)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출신입니다 본래 북한은 소련 위성국으로 아직도 소비에트연방(소련)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출신 후손들이 북한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스탈린 헌법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헌법[1990년 3월 14일에 개정된 소연방의 신헌법]
베트남의 호찌민은 그를 "세계혁명의 총사령관"이라 불렀다. 그는 "세계 혁명의 총사령관 스탈린, 아시아 혁명의 총사령관 마오쩌둥"이라 했다
스탈린은 러시아 등 구 독립국가연합의 젊은이들이 열광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의 하나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들이 스탈린을 독일을 물리친 강력한 서기장으로 기억하고 있는 점도 스탈린이 영웅대접을 받는 이유다
스탈린 헌법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헌법[1990년 3월 14일에 개정된 소연방의 신헌법]
스탈린 헌법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헌법[1990년 3월 14일에 개정된 소연방의 신헌법]
스탈린 헌법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헌법[1990년 3월 14일에 개정된 소연방의 신헌법] -노동계급의 노농동맹(공산당) 령도(領導, 지도) 인민의회정부론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프롤레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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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이다
한국전쟁 남침 인민군 지휘부 작전 라인은 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전선총사령관 김책(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전선부사령관 박일우(조선의용군), 인민군 총참모장 강건(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독립 저격여단)이며 남로당 내부 조선공산당조직 박헌영(인민군총정치국장), 이현상(남부군, 빨치산 부대 또는 저격여단) 등 이다[빨치산부대를 소련에서는 저격여단이나 특수부대, 공수부대로 표현하고 있다]
남침은 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출신 주도로 조선의용군과 남로당 내부 조선공산당 출신이 적극 가담했다
전선사령부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전선사령관 김책[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총참모장 강건[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라인으로 지휘체계가 작동하였다. 그리고 전선사령부 밑에는 서부전선을 담당하는 1군단과 동부전선을 공격할 2군단을 창설했다. 1군단장에는 김웅(金雄) 중장[조선의용대 중국 팔로군 출신]을, 2군단장에 김광협(金光俠) 중장[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을 임명했다
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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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군정 북한 최고지도자 시티코프 중장(中將)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 제25군 군사위원회 위원 레베데프 소장(小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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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군정 북한 최고지도자 시티코프 중장(中將)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 제25군 군사위원회 위원
1947년 7월 서울의 미소공동위원회에서 담소하는 미소 양군 대표: 좌로부터 미군정청 사령관 하지 중장, 소련측 대표 레베데프 소장과 스티코프 중장 [사진] Ⅰ.소련 군정 북한 최고지도자 스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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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
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는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과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이다
한국전쟁 이후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이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그룹과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 그룹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 그룹은 한국전쟁 패전 책임과 박헌영등 미국간첩으로 제거 되었고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그룹은 종파주의자로 제거 되었다
아직도 북한 권력층은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후손들이 장악하고 있다
김일성은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주도 인물로 소련군 도움므로 권력을 장악했다
중국에서는 김일성을 만주 조선족자치정부[만국 조선족자치정부] 공산주의(사회주의) 세대로 평가하고 있으며 일본 좌파는 김일성을 김광서(일본육사 23기 기병과 출신)으로 평가해왔다
소련에서는 한족과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등 혼성 용병부대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조선인 지휘관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
한국전쟁 추진 세력 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김일성(인민군 총사령관), 최용건(방어총사령관), 김책(전선총사령관), 김일(인민군 문화부 사령관), 강건(인민군 총참모장) 모습 북한정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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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대한민국)은 민영자본체제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공화국)이라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영자본체제와 노동계급의 령도 노농연맹(勞農聯盟)의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이다
남과 북이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이며,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민주주의 세력)와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세력) 연합정부입니다.
1.북한 국정(國政):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좌익 파시즘 군사독재정부]
-북한 국정의 약점은 민주화 정책이다
2.북한 사회구성체:국영자본체제(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 체제)
-북한 사회구성체의 약점은 자유화, 개방화 정책(개혁개방정책)과 민영자본체제이다
3.남한 내부 친북 김정은세력은 어떤 인물입니까?
재한조선인총련합회[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 재한총련]이란
한국 내부 북한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주의)를 지지하는 동포들이 결성한 단체가 반제민전 중앙위원회(재한총련)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재한총련) 는 지하조직으로 실질적 친북단체이며 명목상(의례적) 친북 합법조직은 범민련(범청학련)이나 친북조직 내부 NLPDR계열 단체들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재한총련)는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주의)를 지지하고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기구[ 통일전선부 산하기관인 제225부(구 대외연락부)]이다. 대표적인 단체는 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다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도 재중총련 조직처럼 범민련 조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재일총련처럼 남한정부 대표부(북한 통일전선부 대화창구) 성격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북한정부 내부 제1공화국 헌법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민회의정부론을 옹호하는 세력이나 김일성 가계 세습제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반김정은세력이다.
북한 김정은 세력은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세력보다는 강한 민족주의 좌익 파시즘 세력으로 극우성향이다
북한 김정은 세력은 모택동, 김일성주의 노선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자 중 인민민주주의(PD, 민주파)계열보다는 민족해방(NL, 자주파)계열이다.
북한헌법
-인민민주주의 인민공화국(제1공화국 헌법)과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제2공화국 헌법),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제3공화국 헌법)-
북한헌법
-인민민주주의 인민공화국(제1공화국 헌법)과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제2공화국 헌법),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제3공화국 헌법)- Ⅰ.북한 제1공화국 헌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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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높은 단계의 애국투쟁이다》(김정일 논설, 1984) 북한 김일성, 김정일사상은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으로 반일 반미사상(반제국주의 운동사상)입니다 북한 현대사는 반일과 반미 투쟁 역사로 남북통일도 반미인민전쟁론을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과 전쟁을 추구해오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반미사상을 체계화하여 좌익군정을 실시해온 인물이며 각국에 반미테러단체 설립을 지원하였고 남한에도 반미청년회나 여성회 활동을 지원하거나 후원하여 남한내부 무장단체 한민전(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건설에 주력해왔습니다(남한에도 1984년경 반미청년회가 설립 NLPDR 김일성주의 사상을 보급했으며 90년 1월 김정일주의 주체사상 보급과 함께 한민전 서울대표부로 개명했습니다)
북한정부 "반미, 반일활동가를 애국자"로 우대[북한 대남정책 실행조, 예:과거 반미청년회와 반미여성회 등]
북한은 반미국가로 초등학교 운동회나 중학교 야유회등 각종 놀이에서도 미군 죽이기 놀이 게임을 실시해오고 있으며 각종 교과서에서도 반미사상 교육이 대부분이다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은 국제 반미투쟁가로 묘사하여 선전해오고 있다
중국, 러시아정부에서는 북미수교는 김일성 김정일노선 반미사상과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포기를 의미하며 수평적 권력교체나 수직혁명으로 김정은 제거를 의미하고 있다
북한정부 "NLPDR노선 반미, 반일활동가를 통일운동가 또는 애국자"로 우대하고 있다. 미국정부 인사나 미국 군인 등을 살인하는 것도 애국으로 학습화 하는 나라가 북한이다(반미나라 북한=북한 상류층 이데올로기 반미노선)
남한 사람 중에 NLPDR 노선 반미, 반일활동가 의식수준 사람이라면 북한정부 지적인력 요원(북한 대남정책 실행조, 예:과거 반미청년회와 반미여성회 등)이다
좌파 민족주의 책자 탐독과 모임결성->NLPDR과 김일성 책자 학습(주사파 모임)-->북한정부 대남공작부 의식화 기능기(뇌 세뇌기)로 검증과 간첩교육-->납치,월북-->반미무장단체 결성과 북한정부 대남 간첩활동.
북한정부 대남공작부는 뇌 세뇌기(의식화 기능기)로 남한 사람 납치대상을 "반미단체 간부(김일성주의자=주사파)"로 규정해오고 있다
북한정부 대남공작부가 반미단체 간부(김일성주의자=주사파)를 뇌 세뇌기로 검증을 할때 북한 김정은 정부를 찬양하고 김일성을 신격화, 우상화 할 수준이 돼야 납치, 월북 대상자로 선발한다[남한정부 내부 김일성주의 단체-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반미단체)]
-1990년 1월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설치(반미청년회 등 반미단체 통합)
반미청년회 구국의 소리(김일성주의)에서 한국민족민주전선 새세대(김정일주의=주체사상)로 지하신문 변경
1986년에는 강철서신 등에 '미제의 스파이 박헌영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영환등 강철서신(반제동맹)-구국의 소리(반미청년회)-새세대(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민족민주혁명당)
-1991년 12월 김정일 노동당 군사부위원장이 인민군 총사령관으로 취임(김정일 북한 권력 장악)
1984년 5월 18일 김정일 직접 쓴 논설《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높은 단계의 애국투쟁이다》(1984) 발표했다
-김정일 우상화 벽보 사진이 북한 곳곳에 등장
-1992년 11월 미국 민주당 클린턴 후보 대통령 당선과 민주당 정부 등장
-1993년 3월 김영삼정부 출범과 핵무기 보유설, 북폭등장 그리고 남한 한민전 서울대표부 1995년 해방 50주년 남북통일 결정적 시기 공식화 (반미자주정부와 전쟁론)
-1994년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분열[김대중-찬성파, 반미단체-반대파]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김일성 사망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등 주요언론들은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김 주석이 “심장혈관과 동 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던 중 겹쌓이는 정신적 과로로 94년 7월 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 했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었으며 모든 치료를 다했으나 심장쇼크가 악화돼 7월 8일 새벽 2시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1998년 12월 17일 해군이 남해에서 격침시킨 북한 반잠수정이 여수해안에 상륙
남해안으로 침투한 북한 반잠수정이 여수해안 상륙한 사실은 민혁당 연루자인 하영옥 심재춘씨가 국정원에서 <1998년 12월 17일 북한 공작원 배모씨를 여수해안으로 안내했다>고 진술했고 지난 1999년 3월 17일 건져 올린 반잠수정에서 이 공작원의 시체가 발견됨으로써 확인됐다
-민혁당과 관련된 무장간첩사건
이선실 여간첩 사건(이선실은 한국민족민주전선 부위원장 출신)
1995년 10월 24일 부여침투 무장간첩 김동식 사건
1996년 9월 18일 강릉무장간첩 사건
1997년 10월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사건(울산지역)
1998년 12월 17일 여수근해 반잠수함 격침사건
-반미 전쟁파 민혁당 와해와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이선실 사망)
1998년 9월 5일 북한 제3공화국수립-세습제 좌익군정 헌법(先軍정치와 국방위원회, 명목상 국가원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단체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이란
한국 내부 북한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주의)를 지지하는 동포들이 결성한 단체가 반제민전 중앙위원회(재한총련)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재한총련) 는 지하조직으로 실질적 친북단체이며 명목상(의례적) 친북 합법조직은 범민련(범청학련)이나 민중당 내부 NLPDR계열 단체들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재한총련)는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주의)를 지지하고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기구[ 통일전선부 산하기관인 제225부(구 대외연락부)]이다. 대표적인 단체는 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다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도 재중총련 조직처럼 범민련 조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재일총련처럼 남한정부 대표부(북한 통일전선부 대화창구) 성격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단체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단체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기구[ 통일전선부 산하기관인 제225부(구 대외연락부)]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등이다 이들 단체는 북한정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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