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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수감 중 사망” 본문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씨가 사망했다고 현지 교정 당국이 16일 밝혔습니다.
나발니 씨는 수감 중이던 야말로-네네츠 지역 교도소에서 산책 후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낀 직후 의식을 잃었다고 교도소 측은 이날 설명했습니다.
교도소 측은 의료진과 구급차가 바로 현장에 도착해 필요한 모든 응급 소생 조치를 취했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다며, 구급차에서 의사가 나발니 씨의 사망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교도소 측은 구체적인 사인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관련 소식을 전해들었다고만 말했고, 러시아 당국은 이에 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미 공영라디오 `NPR’ 과의 인터뷰에서 나발니 씨의 사망이 확인될 경우 이는 “끔찍한 비극”이라면서, “상대방에 해를 끼치는 러시아 정부의 오래되고 추악한 역사를 고려할 때 이번 일은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현실적이고 명백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말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독일에서 열리고 있는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나발니 씨의 사망과 관련한 “보도가 사실로 입증된다면 러시아는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 당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적인 나발니 씨를 독극물로 살해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나발니 씨는 극적으로 생존한 뒤 2022년부터 수감돼 복역 중이었습니다.
VOA 뉴스
푸틴 정적 나발니, '교도서에서 사망'
지난 10여 년간 러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야당 지도자로 꼽혔던 알렉세이 나발니가 북극권 교도소에서 사망했다고 교도소 당국이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가장 강도 높게 비판해왔던 그는 정치와 관련된 극단주의 혐의로 19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나발니는 작년 말 러시아에서 가장 가혹한 교도소 중 한 곳으로 이송됐다.
그의 아내 율리아는 "이 정권을 심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국제 사회에 호소했다.
나발니의 가장 가까운 측근 중 한 명인 반부패 재단의 이반 즈다노프 대표는 나발니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실제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나발니가 수감중이던 러시아 야말로네츠 지역 교도소 측은 그가 금요일 산책 후 "몸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교도소는 성명을 통해 그가 "거의 즉시 의식을 잃었다"고 밝혔으며, 응급 의료팀이 즉시 출동해 소생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응급의들은 죄수가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사인은 확인 중이다."
몇 시간 후 모스크바에선 정보기관 KGB 본부가 있던 루비얀카 맞은편에 있는 정치 탄압 희생자 추모비에 헌화객들이 줄지어 몰려들었다.
검찰은 러시아인들에게 대규모 시위에 가담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모스크바 중심부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무르만스크, 니즈니노브고로드 등 다른 도시에서 여러 명이 구금됐다.
사망 하루 전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47세의 나발니는 건강하게 웃는 모습으로 법원에 출석했다.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는 뮌헨 안보 회의 연단에 올라 울먹이며 사망설은 신뢰할 수 없는 정부 소식통으로부터 전해진 소식일 뿐이라며 의심을 표했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푸틴과 그의 모든 동맹국, 친구, 정부 모두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다."
나발니는 이틀 전 아내를 향해 올린 마지막 인스타그램 게시물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매 순간 당신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발니는 두 자녀를 두고 있으며, 첫째 자카르는 미국 유학 중이고 둘째 자카르는 아직 학생이다.
"저는 어떤 애도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12일(2월) 감옥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살아있었고 건강했으며 행복했습니다." 나발니의 어머니 류드밀라 나발나야가 말했다.
나발니의 핵심 측근인 레오니드 볼코프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교도소 당국의 진술은 그를 죽였다는 자백에 가깝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영 매체들은 이 소식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RT는 한 보도에서 나발니가 혈전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과거 나발니를 치료했던 모스크바 전문의 알렉산더 폴루판은 이같은 진단을 비웃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진단은 사후 검사를 통해서만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사망 발표 몇 분 만에 국제 사회는 그간 나발니가 블라디미르 푸틴의 최대 정적으로서 보여준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프랑스는 그가 러시아의 '억압'에 저항한 대가를 목숨으로 치렀다고 말했고, 노르웨이 외무장관은 러시아 당국이 그의 죽음에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일은 푸틴의 잔인함에 대한 또 다른 증거입니다."
푸틴 대통령의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나발니의 죽음이 첼랴빈스크를 방문 중이던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만 말했다. 대변인은 "의료진이 어떻게든 사인을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은 "이번 일로 푸틴 정권의 끔찍한 본질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의 정적들이 대부분 러시아를 떠난 반면, 알렉세이 나발니는 수개월의 치료 끝에 2021년 1월에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는 2020년 8월 시베리아 여행 중 노비초크 신경작용제에 중독된 바 있다.
전문 치료를 위해 독일로 이송됐던 그는 그러나 모스크바로 돌아온 즉시 구금됐다. 독일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는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가 동행했고, 여권 심사대에서 아내와 포옹을 나눈 나발니는 즉시 연행됐다.
나발니는 이후 37개월간 감옥을 떠나지 못했다.
나발니의 또 다른 최측근 마리아 페브치크는 그가 분명히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고 강조했다. "막중한 책임감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일을 존엄하게 지속해야 하며 항상 그처럼 지혜와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올해 47세인 나발니는 오랫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2018년 대선에서 출마가 금지됐다.
다음 달 열리는 총선은 푸틴에겐 그 어떤 유의미한 위협이 되지 않을 전망이다.
반전 후보 보리스 나데즈딘은 수천 건의 후보 지지 서명에서 부정이 발견돼 선거 출마가 금지됐다.
반부패 캠페인의 형태로 야당 활동을 시작한 나발니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통치에 도전하다 사망한 러시아 저명인사 중 가장 최근 사례가 됐다.
야당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는 2015년 크렘린궁 바로 앞인 모스크바 다리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고, 바그너 그룹의 보스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2023년 8월 용병들을 이끌고 무장 반란을 일으킨 지 몇 주 만에 원인 불명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나발니는 과거 피살에 대한 동료들의 우려를 거듭 비웃었다. 그는 12월 모스크바 동쪽의 교도소에서 이송된 후 북극 마을 하르프에 있는 교도소에 다시 나타날 때까지 몇 주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나발니는 20일 동안 러시아 전역을 여행한 후 이송되었다고 말했으며며, 법정에 출두해서는 영상을 통해 기자들에게 자신의 상태가 이전 블라디미르의 형무소 시절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교도소에서 독방 처분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의 대변인 키라 야르미쉬는 지난달 그가 280일 이상 고립된 채로 지냈다고 말했다.
나발니는 지난 8월 극단주의 혐의로 형량이 더해져 70대가 돼서야 출소할 예정이었다. 이번이 그의 세 번째 징역형이었으며 지지자들은 푸틴 정부가 그를 영원히 침묵시키려 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 인권 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에바 메르카체바는 금요일에 그가 최소 27번 독방에 수감되었다고 말하며, 그것이 그의 죽음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의 독방형이 인체에 매우 해롭다는 것을 의사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법에 따라 누구도 15일 이상 격리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 푸틴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 '북극권 교도서에서 사망' - BBC News 코리아
푸틴 정권 비판 러시아 반체제파 지도자 나발니 씨 사망
러시아에서 푸틴 정권을 비판하는 데 앞장서다 교도소에 수감됐던 반체제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47) 씨가 사망했다고 당국이 발표했습니다.
관계 당국은 16일 나발니 씨에 대해 산책 후 몸 상태가 나빠져 의사가 소생 조치를 했지만, 사망이 확인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나발니 씨는 2020년 정권 측의 관여가 의심되는 독살 미수 사건의 피해를 본 후 과거 경제 사건을 이유로 체포됐고, 북극권에 있는 러시아 북부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의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다음 달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푸틴 대통령도 출마했지만, 나발니 씨는 지원 단체를 통해 푸틴 씨가 아닌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독려하는 등 수감 후에도 반정권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어난 이번 사태에 대해 인권 단체와 서방 각국의 비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푸틴 정권에 강경 자세를 보이며 2021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러시아 독립계 신문의 드미트리 무라토프 편집장은 나발니 씨에 대한 범죄에 '살해'가 추가됐다고 비난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긴급 연설을 통해 나발니 씨의 죽음은 푸틴과 그 주변의 악당이 저지른 무언가의 결과라고 확신한다며 푸틴 대통령을 엄중히 비난하는 동시에 향후 대항 조치에 나설 생각을 내비쳤습니다.
한편, 나발니 씨의 아내인 율리아 씨는 각국 정상과 각료가 모인 가운데 독일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예정에 없던 연설을 하고, 푸틴은 러시아에 대해 자행한 모든 무서운 사건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푸틴 대통령의 책임을 추궁하도록 호소했습니다.
푸틴 정권 비판 러시아 반체제파 지도자 나발니 씨 사망 | NHK WORLD-JAPAN News
"푸틴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 옥중 사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 씨가 옥중 사망했다고 러시아 당국이 밝혔습니다
진행자)러시아의 대표적인 야권 지도자로 알려진 알렉세이 나발니 씨가 사망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강력하게 비판해 온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씨가 16일 사망했다고 러시아 연방 교정국이 밝혔습니다. 향년 47세입니다. 이로써 이제 러시아에는 나발니 씨 같은 저명한 야권 인사는 아무도 없다고 로이터 통신은 평가했습니다.
진행자) 사인은 뭐라고 합니까?
기자) 나발니 씨가 수감돼 있었던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연방 교도소는 나발니 씨가 이날(16일) 산책 후 몸 상태가 좋지 못했고 거의 즉시 의식을 잃었다고 전했습니다. 교도소 당국에 따르면, 나발니 씨는 교도소 의료진과 구급차 요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곧 사망했고요. 심폐 소생 노력도 실패했다고 하는데요.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라고 당국은 밝혔습니다.
진행자) 나발니 씨는 과거 독극물 중독으로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죠?
기자) 맞습니다. 나발니 씨는 지난 2020년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고 쓰러졌는데요. 독일로 급히 후송돼 거의 20일 동안 의식 불명 상태로 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났었습니다. 당시 나발니 씨가 냉전 시대 소련이 사용했던 신경작용제 ‘노비초크’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배후로 러시아 정보기관과 푸틴 대통령이 지목됐는데요.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혐의를 일절 부인해 왔습니다.
진행자) 나발니 씨는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여겨져 왔죠?
기자) 네. 변호사 출신인 나발니 씨는 10여 년 전부터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해 주목받았습니다. 2018년 러시아 대선 때는 푸틴 대통령에 맞서 출마를 시도했는데요. 하지만 과거 횡령 혐의와 관련된 유죄 판결로 출마하지 못했고, 나발니 씨는 정치적 음해라고 반발했습니다. 나발니 씨는 독극물 치료 후 러시아로 돌아왔지만 당국에 체포돼 횡령, 사기, 법정 모독 등의 혐의로 30년 넘는 징역형을 선고받고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에 있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습니다.
진행자) 유족들의 상심이 크겠군요.
기자) 네. 나발니 씨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 씨는 16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푸틴과 그 정권은 끝없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푸틴과 모든 측근, 그 친구들, 그 정권은 국가와 나의 가족, 남편에게 한 행동에 반드시 책임을 지게 될 것을 알기 바란다”고 경고했습니다.
진행자) 러시아 정부 쪽 반응은 나온 게 있습니까?
기자) 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에게 나발니 씨 사망을 보고했으며, 교정 당국이 규정 절차에 따라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국제 사회 반응도 전해 주시죠.
기자) 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6일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나발니 씨 죽음에 푸틴 정부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나발니 씨에게 일어난 일은 '푸틴의 잔혹성'을 또다시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나발니 씨의 옥중 사망은 푸틴 대통령이 구축해 온 체제의 약점과 부패만 부각하는 것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나발니 씨가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왔으며, 나토와 동맹은 그의 석방을 계속 요구해 왔다”면서, “모든 사실은 반드시 입증돼야 하며, 러시아는 모든 질문에 심각히 대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푸틴 정적’ 나발니, 옥중 의문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政敵)이었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48·사진)가 16일 수감 중이던 교도소에서 급사(急死)했다고 러시아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시베리아 최북단 야말로-네네츠의 연방 교정청 관할 제3 교도소로 이감된 지 2개월 만이다.
교도소 발표에 따르면 나발니는 이날 오전 산책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뒤 ‘몸이 좋지 않다’고 알린 뒤 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나발니는 이감 후 자신의 변호사에게 “몸 여러 곳이 불편하고 아프다”고 호소해 왔다. 교도소 측은 “응급 의료진이 즉시 도착해 심폐 소생술 등을 시도했으나 긍정적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의사가 그의 사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교도소 측은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해 “혈전(血栓)으로 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나발니는 지난 2021년 1월부터 만 3년째 수감 생활을 해왔다. 2022년 횡령과 사기 등의 혐의로 9년형을 선고받았고, 최근 극단주의 조직을 만든 혐의로 징역 19년을 추가 선고받았다. 앞서 지난 2020년 러시아 국내선 비행기에서 독극물(노비촉) 중독 증세로 쓰러졌고, 독일로 후송돼 20일간 의식 불명으로 있다 극적으로 살아났으며, 러시아로 귀국한 뒤 당국에 수감됐다. 당시 러시아 야권과 서방 언론에선 “푸틴 대통령이 나발니를 독살하려 했다”는 추정이 나왔다.
1976년 모스크바 근교에서 태어난 나발니는 러시아민족우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2000년 정치에 입문한 뒤 진보당과 러시아미래당 등 야당에 몸담으며 절대 권력자인 푸틴과 러시아 고위층의 비리 및 부정축재 의혹을 폭로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11년 대규모로 벌어진 반정부시위를 이끌면서 반(反)푸틴 세력의 중심 인물이 됐다. 2013년엔 수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비록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도 속에서 28% 가까운 득표를 하며 푸틴 정권을 긴장시켰다.
그는 푸틴 장기 집권 체제를 종식시키겠다며 2018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러시아 당국은 그가 과거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출마를 봉쇄해 무산됐다. 이 조치는 오히려 나발니의 정치적 위상을 더욱 드높였다. 이후 나발니에겐 ‘푸틴의 네메시스(nemesis·운명의 숙적)’라는 별칭이 생겼다.
그의 투쟁 수단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나발니 블로그’를 통해 러시아 정치권의 다양한 부패상을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거침없는 언변으로 큰 인기를 끌며 수백만명의 지지자를 거느렸다. 특히 노비촉 테러로 죽다 살아난 뒤 수감 생활 중이던 2022년에도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푸틴의 대저택 내부 사진과 설계도를 공개해 푸틴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를 여러 명목으로 수차례 기소해 투옥하고, 블로그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폐쇄하려 했으나 그때마다 러시아 야권과 시민 단체들의 반발이 일면서 오히려 ‘민주투사’로 부각시켜주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들도 나발니를 러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하며 그를 탄압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고위 인사들을 잇따라 제재했다.
우크라이나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에게는 우크라이나의 피가 흐른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친(親)푸틴 입장에서는 모든 면에서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그는 노비촉 테러 전에도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당했다. 2017년에는 괴한이 뿌린 녹색 염료에 맞아 한쪽 눈 시력을 거의 잃기도 했다.
서방 일각에선 다음 달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나발니가 사실상 ‘암살’됐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2022년 연임 규정을 철폐한 푸틴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5선째를 기록하면서 최소 2030년까지 권좌에 앉을 수 있다. 또 이를 기반으로 사실상 종신 집권의 문을 여는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까지 이어가려 하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미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가 정부에 비판적인 인물의 출마를 잇따라 봉쇄했고, 꼭두각시 후보들만 남아있어 대이변이 없는 한 푸틴의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다만 러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반푸틴 정서 결집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푸틴 반대 세력이 그를 구심점으로 해 반푸틴 선전에 나설 경우 푸틴의 당선 여부와 별개로 큰 정치적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그동안 수많은 푸틴의 정적과 반대자들이 의문사를 당했다는 점 때문에 나발니의 죽음에 푸틴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위대인 민병대 ‘바그너그룹’을 이끌다 지난해 6월 푸틴을 겨냥해 봉기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두 달 만에 석연찮은 비행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2022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부정적이었던 러시아 기업인 10여 명이 줄줄이 자살하거나 의문사했다.
2006년 11월 영국에 망명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런던의 한 호텔에서 전 동료가 전해준 홍차를 마시고 숨졌다. 찻잔에서는 방사성 물질 ‘폴로늄’이 나왔다. 2018년에도 전직 러시아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이 영국 솔즈베리에서 노비촉에 중독돼 죽을 뻔한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푸틴이 가장 두려워하던 정적이었던 나발니의 의문사는 앞서의 유사 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후폭풍을 몰고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나발니의 의문사 소식이 알려진뒤 서방 국가들은 일제히 나발니를 탄압했던 푸틴을 비난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끔찍한 비극”이라며 “크렘린궁의 반대파 탄압 역사는 길고 추악하다”고 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러시아의 나약함과 부패를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X(옛 트위터)에 “푸틴이 자국민의 반대 의견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우리는 모든 사실을 규명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는 그의 죽음에 대한 모든 심각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푸틴 정적’ 나발니, 옥중 의문사 (chosun.com)
Alexei Navalny, Putin Foe and Political Prisoner, Dead at 47
Alexei Anatolievich Navalny, the most prominent opposition politician of the late Putin era, died in prison on Friday, according to the Yamalo-Nenets branch of the Federal Penitentiary Service (FSIN). He was 47.
At the time of his death, Navalny was serving a 19-year sentence on charges widely seen as politically motivated in a high-security prison colony above the Arctic Circle.
In 2012, Russian writer Viktor Shenderovich said that Navalny “went to prison as a blogger and came out as the future president of Russia.”
He would never get the chance.
Known for his online anti-corruption activities and ill-fated electoral campaigns, Navalny was a frequent target of the security services.
After leaving Russia to recover from a near-fatal poisoning allegedly carried out by the FSB, he returned in 2021 and was promptly jailed on charges of fraud and extremism.
One of President Vladimir Putin’s longest-lasting domestic political foes, he was so despised by the Kremlin that the president is only known to have uttered the name “Navalny” once, in 2013. Otherwise, he preferred to refer to him by terms such as “a poor excuse for a politician,” “the character you mentioned,” and “this gentleman.”
Navalny was born in 1976 in the closed military town of Butyn, outside Moscow, where his father, Anatoly, was a Soviet army communications officer and his mother, Lyudmila, an economist by training.
He grew up in a series of military towns where Lyudmila said his political views first emerged, overhearing Anatoly and his fellow officers saying such radical things around the kitchen table that she felt compelled to cover the windows of their house.
Another influence on Navalny was the nine summers he spent with his paternal grandmother in a Ukrainian village not far from Chernobyl. The whole of his father’s side of the family was evacuated and resettled following the 1986 disaster.
Navalny’s mother said he earned his first rubles weaving baskets for the cooperative basket factory where she worked, but he didn’t stay in the family business. Instead, he graduated in 1998 with a law degree from People’s Friendship University in Moscow, before going to work for several years in real estate.
“Working there taught me how things are done on the inside, how intermediary companies are built, how money is shuttled around,” said Navalny.
In 2001, he graduated with a master’s degree in finance from the Financial University under the Government of the Russian Federation and quit real estate to become a stock trader.
Around that time, while vacationing in Turkey, he met an economist named Yulia Abrosimova — his future wife.
In 1999, he joined the liberal Yabloko party, which became increasingly marginalized after Vladimir Putin’s election in 2000. He remained a Yabloko member, becoming deputy chief of the Moscow branch and joining their Federal Council, for the next seven years, until he was expelled from the party for calling for the removal of the party’s founder, according to Navalny — or for his nationalist views, according to the party.
Navalny had been involved in organizing the hardline nationalist Russian March, an annual march through Moscow, accompanied by chants of “Russia for Russians!” that Russian liberals considered a neo-Nazi event. Navalny said that liberals were making themselves irrelevant by failing to engage with the country’s upswing in nationalism.
Several years later, in 2013, he wrote on his blog about “hordes of legal and illegal immigrants” crawling from the bazaars of Moscow to victimize Russians, rhetoric that left would-be supporters at home and abroad hesitant to embrace him, despite his popularity.
Navalny gained international renown for his anti-corruption efforts, going after Russian oil companies, banks, and government ministries and “poking them with a sharp stick.” He started as chairman of the Yabloko-associated Committee to Protect Muscovites, aiming to fight corruption and abuse amidst the construction boom of the early 2000s.
His efforts took off in 2007, when, after buying shares in a number of state-owned companies, he found that dividends from oil transport monopoly Transneft were smaller than expected and that the company was donating hundreds of millions of dollars to unnamed charities. Attempts to push authorities to launch a criminal investigation went nowhere, and an anti-corruption crusade was born.
In addition to his LiveJournal blog, Navalny created a site dedicated to crowdsourcing evidence of state corruption called RosPil and RosYama (“Russian Hole”), a site that allowed Russians to report potholes and track government responses. These efforts would grow into his Anti-Corruption Foundation.
He accused billionaire Alisher Usmanov of bribing then-Prime Minister Dmitry Medvedev and former First Deputy Prime Minister Igor Shuvalov of using an undeclared $62-million private business jet, as well as State Duma Speaker Vyacheslav Volodin of hiding millions of dollars in assets in his mother’s name.
Between 2005 and 2012, he co-founded a movement, DA!-Democratic Alternative, which hosted political debates aimed at engaging young people, was elected to a short-lived opposition Coordination Council, co-founded the democratic nationalist National Russian Liberation Movement, NAROD, and completed a six-month fellowship at Yale, but he returned to Russia afterward, saying he missed Russian black bread too much to stay.
In 2011, following protests against alleged parliamentary election fraud, Navalny was arrested for the first time. Echo Moskvy radio station head Alexei Venediktov said this moment “[transformed] him from an online leader into an offline one.” He helped lead large protests after Putin’s victory in the 2012 presidential election and was jailed for 15 days, a pattern that would be repeated around the next presidential elections, in 2017 and 2018, and the 2019 Moscow City Duma elections.
In 2013, he was elected chairman of the People’s Alliance, an unregistered political party that would undergo several name changes to become Russia of the Future. He ran for mayor of Moscow that year, coming in second, and was attacked with green antiseptic dye several times before being blocked from running for president in 2018.
As he continued his corruption investigations, Navalny was convicted on spurious embezzlement charges in 2013, and again in 2014. He was placed under house arrest, in contravention of the Russian Criminal Code, and decided to unilaterally end his detention, cutting off his electronic monitoring bracelet and going about his business.
The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later found the trials unfair, charges “arbitrary and manifestly unreasonable” and seven of his arrests to be politically motivated, aimed at “suppressing political pluralism.”
This did not end his harassment by the state. In 2019, he and several associates were found guilty of libel and sentenced to pay over $1 million after publishing an investigation into a company linked to Yevgeny Prigozhin. Other lawsuits and criminal cases led Navalny, unable to pay mounting fines, to dissolve the Anti-Corruption Foundation in 2020.
Compounding his troubles, on a 2020 trip to the Siberian city of Tomsk, Navalny was poisoned with the Novichok nerve agent, which many believe was the work of Russia's Federal Security Service (FSB). He was flown in a coma to Berlin, where he recovered. Still in ill health, he flew back to Moscow in January 2021, where he was, as Russian authorities had warned, promptly arrested and imprisoned for violating the terms of his parole for the 2014 charges.
Navalny was determined not to become “just another political émigré,” and his return and subsequent arrest drew tens of thousands of people out onto the streets across Russia in his support.
Just two days after his arrest, the activist published a video investigation of a huge, incredibly expensive palace on the Black Sea allegedly built for Putin, which Navalny called “the world’s largest bribe.”
Upon his imprisonment, he wrote to a friend: “History is happening. Russia is going through it, and we are coming along. We’ll make it (probably). I am all right, and I have no regrets. And you shouldn’t, either, and shouldn’t worry. Everything will be all right. And, even if it isn’t, we’ll have the consolation of having lived honest lives. Hugs!”
Later, during a 2021 court appearance, he explained his motivation to return to the country: “We should fight not only against the lack of freedom in Russia but against our total lack of happiness. We have everything, but we are an unhappy country... So we should change our slogan. Russia should be not only free but also happy. Russia will be happy. That is all.”
Shortly afterward, police raided his organization’s St. Petersburg office and confiscated stickers with the new “Russia will be happy” slogan, which was reportedly investigated as a potential example of “extremist” speech.
“We thought it was only Navalny who had been arrested when, in fact, it was all of Russia that wound up behind bars,” wrote Novaya Gazeta political editor Kirill Martynov in 2022, just before the full-scale invasion of Ukraine and the wide-ranging political crackdown that followed.
“Navalny’s unparalleled courage makes him a free man, one who now gazes from his cell at a Russian society that itself has been locked up and cowed into submission.”
While in prison, Navalny went on a hunger strike to demand access to medical specialists and spent around 300 days in solitary confinement.
Amnesty International designated him a “prisoner of conscience,” and in 2021, he was awarded the European Parliament’s Sakharov Prize for Freedom of Thought for his “immense bravery” in fighting “tirelessly against the corruption of Vladimir Putin's regime,” among other human rights prizes.
That same year, the state declared Navalny’s political network a “terrorist-linked” organization and began arresting his associates, including his lawyers, for “extremism.”
This January, on the third anniversary of his imprisonment, he released a statement, read by his supporters, explaining why he had come back to Russia.
“If your convictions mean something, you must be prepared to stand up for them and make sacrifices. And if you’re not ready, you have no convictions.”
He is survived by his parents, Anatoly and Lyudmila; brother, Oleg; wife, Yulia; and children, Daria and Zakh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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