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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엘리트층 탈북 증가…“김정은에 대한 희망 접어” 본문
북한 외교관과 무역 일군 등 고위급 인사들의 탈북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 엘리트층의 연쇄 탈북 가능성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김정은 체제에 대해 희망을 접은 것이 이런 탈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 등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VOA는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 문제를 살펴보는 두 차례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최근의 증가 추세와 그 이유 등을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근 평양에 있는 줄만 알았던 후배들이 그새 한국으로 탈북해 서울에서 불쑥 내 앞에 나타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영국 주재 북한 공사를 지낸 한국 국회 국민의힘 소속 태영호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특히 “최근 탈북 망명을 타진하는 북한 외교관이나 해외 근무자의 추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일성종합대를 거쳐 중국 유학 중 탈북해 한국에서 방송인, 소셜 인풀루언서 등으로 활동 중인 평양 엘리트 가정 출신 김금혁 씨는 최근 정보당국으로부터 평양 출신 입국자의 신원을 교차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늘었다고 말합니다.
[녹취: 김금혁 씨] “이러이러한 분 혹시 아시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그런 요청이 몇 번 있었습니다. 이는 결국 평양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던 혹은 중요한 계급에 있던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조금 많이 탈북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연합뉴스’와 ‘동아일보’ 등 한국 언론들은 정부 고위관계자와 여권 인사들을 인용해 유럽 주재 북한 외교관이 몇 주 전 탈북했다고 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3개월여가 흘렀는데 과거 정부 5년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일 만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탈북민이 급증했다”며 외교관 등의 망명 사례도 여러 건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추세는 일부 정부 통계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국 통일부가 올해 첫 공개 발간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를 보면 평양시 출신은 지난 2017년 이전까지 조사 대상 탈북민의 3%에 그쳤지만 이후 지난해까지 5년 동안은 11%로 늘었습니다.
보고서는 “이는 코로나19 이후 북한의 국경이 통제됨에 따라, 해외 파견노동자가 북한이탈주민 중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졌으며 해외 파견노동자는 평양시 출신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습니다.
아울러 한국에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탈북민들에게 주는 ‘보로금’ 지급 인원이 지난해 2013년 이후 최대인 64명이란 사실도 엘리트층 탈북민 증가 추세를 반영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전체 탈북민이 67명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규모입니다.
또 올해 1~4월까지 보로금을 지급받은 탈북민은 15명에 달했습니다.
북한 외교관 출신으로 한국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동수 박사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 동안 여러 명의 고위 탈북민이 한국에 입국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 여파와 북한의 국경 재개방 가능성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김동수 위원] “그야말로 외화벌이라는 게 지금 악조건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하던 것도 코로나 여파로 많이 못 하고. 한 달에 얼마씩 들여보내야 하는 데 그것도 못하고 결국 (국경이 열리면) 들어가는데 다시 못 나오니까 마지막 결심을 하는 거죠.”
외화벌이 실적 저조에 따른 책임추궁, 오랜 팬데믹 기간 해외에 주재하면서 체감한 김정은 정권의 실정에 대한 회의감, 귀국하면 당이 사상투쟁으로 압박할 것이 뻔한 현실 때문에 탈북을 결심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2019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외교관과 무역일군 등 엘리트들의 탈북에는 크게 세 가지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류현우 전 대리대사] “정치적인 건에 연루돼 있을 가능성이 많고, 두 번째는 자유를 좀 누렸기 때문에 자유의 소중함, 들어가면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북한 사회가 강요하는 시스템, 그야말로 어항 속에서 다시 살아야 하니까 이것이 싫어서 탈북할 수 있고, 세 번째는 경제적 여건이 많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해외 주재 무역 일군은 VOA에 “외교관과 특수 일군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대부분 돈을 빌려 뇌물을 당국자들에게 고이고(바치고) 나왔다”며 “겨우 상납금을 바치고 나면 코로나 시기에 남는 게 거의 없어 귀국에 대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태영호 의원은 좋은 가문 출신인 리용호 외무상의 숙청을 보면서 북한 외교관들의 심리적 동요가 지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사이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어릴 때부터 돌봐줬던 리명재 전 조직지도부 부부장의 아들인 리용호 외무상마저 숙청되는 것을 보면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태영호 의원] “북한 외교관들은 언제든 파리 목숨이니까. 리용호가 처형됐는지는 제가 확인할 수 없지만 북한 외교관들은 김정은에게 오롯이 충성해도 까딱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한 번 왔다가는 인생인데 그런 체제에 기대를 갖지 말고 좀 이제는 냉정하게 생각하고 자기 인생을 돌이켜 봤으면 좋겠어요.”
고위급은 아니지만 해외에 파견된 북한 인력들, 특히 정보기술(IT) 요원들의 탈북도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VOA가 자체적으로 파악한 결과 지난해 말 해외에서 IT 요원 등으로 근무하던 관계자 두 명이 미국에 입국했으며, 중국과 동남아에서 활동하던 IT 요원 적어도 세 명이 한국에 입국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평양의 김책공대와 김일성종합대 등을 졸업한 엘리트들로 알려졌습니다.
20년 이상 탈북민 구출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목사는 VOA에 코로나 팬데믹 기간 이 단체에 구출을 요청한 북한 해외 파견 요원이 9명에 달한다고 말했습니다.
천 목사는 이들 대부분이 20~30대 IT 전문가로 팬데믹 여파 때문에 해외에 4년 이상 체류하면서 심경에 변화를 느껴 탈북을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천기원 목사] “저한테 연락한 친구들은 대부분 IT 전문가들입니다. 인터넷 통해 (세상에 대해) 완전히 다 알았죠. 다 알았는데 가족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다가 그 안에 있는 동안 할당된 것을 못 채우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거기에 따른 벌칙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게 계속 불만으로 쌓이고."
중국 주재 북한식당 지배인 출신으로 미국에서 해외 파견 북한인들의 탈북을 돕는 ‘무궁화구조대’를 설립한 허강일 씨는 팬데믹 기간 적어도 12명을 미국과 한국에 안착하도록 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탈출한 가장 큰 이유는 “미래에 대한 꿈과 돈을 수탈당하는 데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앞날이 안 보인다는 거예요. 다 얘기하는 게. 말하자면 아까운 청춘을 썩히고 싶지 않다는 거죠. 많이 고민해요. 들어가자니 끔찍하고 탈북하자니 가족과 작별인사 못 해서 죄스럽기도하고. IT 쪽은 대부분 버는 돈의 90%를 다 뺏기고 돈도 못 쥐고 외출도 못 하고 다 수탈해 가니까 거기에 대해 반감이 많더라고요.”
실제로 허 씨와 여러 단체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지난해 자유세계에 정착한 K 씨는 앞서 VOA에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세상에 눈을 뜬 뒤 고민이 깊어졌다고 말했습니다.
[K씨] “내가 여기서 지금 체험하는 것과 원래 북한에서 살아왔던 체험이 모든 게,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단 말입니다. 내가 지금 하는 게 맞나? 남한을 보면 정치가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적어도 눈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도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말로만 민주주의지, 이건 완전히 억압된 세상이니까.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신적 변화가 왔다고 해야 할까?”
올해 31살인 김금혁 씨는 10년 전 탈출할 때 자신도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심정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금혁 씨] “해외에 나와 경험하고 여러 문물을 경험하고 그 경험 속에 북한 체제의 이질성을 확인하고 자기들이 받았던 교육이 많은 부분 잘못됐다고 깨닫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지능 순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이 친구들은 정말 똑똑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그런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고민하게 만들고 저도 10년 전에 그런 과정을 거쳤죠.”
북한 외교관 출신 고영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궁극적으로 평양의 엘리트층이 김정은 체제에 대해 희망을 접은 것이 이런 탈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고영환 전 부원장]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당,정,군 엘리트들이 희망을 접었다고 그래요. 김정은에 대한 희망을. 미국 대통령을 두세 번 만나면서 희망이 잔뜩 들어서 아 뭔가 핵무기를 갖고 제재가 풀리면서 경제가 살아나는 꿈을 꿨는데 노딜로 되면서 다시 자력갱생 기조로 강하게 나가고 하면서 아 이제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
한국 정보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이 엘리트층 탈북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국가전략연구원의 이영종 북한연구센터장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엘리트들의 탈북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새 정부에서는 “국정원이 해외 주재 북한 엘리트들의 탈북 환경을 용이하도록 움직이는 게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태영호 의원과 김동수 위원 등 외교관 출신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변변한 일자리조차 없었던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와 류현우 전 쿠웨이트 대사대리 등 엘리트 인사들이 다시 정부 연구기관 등에 채용되는 현상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태 의원은 특히 북한 엘리트들은 이런 모습을 VOA와 ‘연합뉴스’ 보도 등을 통해 꼼꼼히 챙겨보고 있다며 주재국과의 외교 교섭, 해외 정보망 가동 등을 통해 “더 많은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 러쉬’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국경이 꽉 닫힌 상황 속에서 이런 엘리트층 탈북은 여전히 해외 주재 일부 인사로 제한돼 있어 앞으로 그 규모가 더 증가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에 대한 엘리트층의 충성심은 많이 약화했지만 그와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에서 벗어날 대안이 보이지 않는 게 여전히 변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탈북하다 실패해 중국과 러시아의 수감시설이나 외교 공관에 갇혀 북송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여전히 탈북에 대한 꿈을 접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국내에 입국한 엘리트 등 평양 출신 탈북민 규모에 대한 VOA의 질의에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탈북민들의 출신지, 탈북 루트 등을 구분해서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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