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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선종...향년 95세 본문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95세로 선종했습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오늘(31일) 발표한 성명에서 “슬픔 속에 나는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현지시각) 오전 9시 34분에 바티칸에서 사망했음을 알린다”고 밝혔습니다.
독일 출신인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265대 교황직에 올랐지만, 8년 만인 2013년 건강 문제를 이유로 스스로 사임했습니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60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스스로에게 ‘명예 교황’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후임 교황에게 순명하겠다고 언약했습니다.
이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바티칸 내 한 수도원에서 지내왔습니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8일 건강이 위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위한 기도를 요청한 바 있습니다.
이후 안정세를 보이고, 미사에도 참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이날 교황청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선종을 발표했습니다.
교황청은 내년 1월 5일 오전 9시 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식이 열릴 예정이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식을 집전한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95세 일기로 선종.. 전 세계 애도 물결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건강 악화로 사임한 지 거의 10년 만에 95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그는 지난 1415년 그레고리 12세의 사임 이후 최초로 생전 교황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8년이 조금 안되는 기간 동안 가톨릭 교회를 이끌었다.
베네딕토 16세는 바티칸 내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에서 말년을 보내다 지난달 31일 현지시간으로 9시 34분에 숨을 거두었다.
후임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5일 베네딕토 16세의 장례 미사를 이끈다.
바티칸 교황청은 명예 교황의 시신은 2일부터 성베드로대성당에 안치돼 믿는이들이 작별을 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네딕토 16세의 죽음이 공표되자 뮌헨 성당에서 종이 수차례 울렸고 로마의 성베드로광장으로부터는 종소리 한 번이 들려왔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죽음이 전해진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대외 메시지에서 베네딕토 16세가 교회에 선물과 같은 존재였으며 숭고하고 친절한 이였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신년 미사에서 그의 "소중한 전임자"에 경의를 표하며 "베네딕토 16세의 희생은 교회에 본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가톨릭 교회를 이끄는 빈센트 니콜스 추기경은 베네딕토 교황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 중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
니콜스 추기경은 성명에서 "나는 지난 2010년 명예 교황이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방문했던 때를 특별한 애정을 갖고 기억하고 있다"며 "우리는 명예 교황이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보여줬던 정중함과 친절함, 마음의 통찰,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부터 오는 환대를 보았다"고 회상했다.
영국의 리시 수낙 총리는 전 교황에 대해 "위대한 신학자이며 그의 2010년 영국 방문은 영국 전역의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영국 찰스 3세 국왕은 베네딕토 명예 교황의 선종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지난 2009년 바티칸 방문 당시 그를 만났던 "애정어린 기억"을 회상했다.
찰스 3세는 "나는 베네딕토 명예 교황이 전 인류에 끊임없이 평화와 선의를 강조했던 것을 기억한다"며 "그는 또 전세계 성공회 연합과 로마 가톨릭 교회 간 우호를 증진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로서는 두 번째로 미국 대통령이 된 조 바이든은 베네딕토 명예 교황에 대해 "저명한 신학자로 기억될 것"이라며 "신앙과 교리에 따라 평생 교회를 위해 헌신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지난 2008년 명예 교황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를 거론하며 명예 교황이 "전 인류가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전 세계적인 결속이 어느때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베네딕토 16세가 "서로 보다 더 돕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영혼과 지성을 다해 일했다"며 명예 교황의 사상이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 가톨릭 교회에 전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베네딕토 16세 명예 교황이 "신앙과 이성을 대표하는 위인"이었다고 말했다.
멜로니 총리는 "그는 전 교회를 위해 일생을 바쳐 봉사했다"며 "앞으로도 그의 헌신은 계속해서 인류의 가슴 속, 그리고 생각 속에 그의 영적, 문화적, 지적 지도력의 깊이와 함께 울림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베네딕토 16세 명예 교황이 독일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가톨릭 교회의 본이 되는 인물이었다"며 "솔직 담백하고 재치 있는 신학자였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의 마이클 히긴스 대통령은 명예 교황이 "전 세계에 평화와 선의를 전파하기 위해 끊임없이 헌신한 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성공회의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베네딕토 16세 명예 교황이 "당대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 교회의 신앙에 헌신한 충실한 일꾼이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신년 연설에서 베네딕토 명예 교황에 대해 "전통 기독교 가치의 수호자"로 칭송했다.
변화와 존중
베네딕토 16세 명예 교황의 죽음으로 세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학 지식과 지성주의, 삶의 경험의 보유자를 잃었다.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직에서 물러난 이후 거의 10년의 기간 동안 교리 변화에 대한 논의는 거의 진전이 없었지만 그는 교황권의 정신을 변화시켰다.
그는 교황직을 수행함에 있어 보다 목가적인 접근을 취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재임 기간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출신 추기경들을 임명해 명확한 변화를 보여줬다.
최근 몇 년 동안, 명예 교황은 그가 그 역할을 자처한 것 같지는 않지만 새로운 교황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피뢰침과 같은 존재로 역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건강이 좋지 않아 사임을 고려 중이지만 로마의 세 교황이 있게 되는 사태를 피하고자 주저하고 있다 추측이 있었다.
드라마 "두 교황"처럼은 아니더라도 전임자와 후임자 간에는 서로 간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짙은 존중이 깔려있었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앞으로 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전해질 것으로 보인다. 5일 진행될 명예 교황의 장례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설교할 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전 교황의 서거 소식에 사람들이 로마의 성베드로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볼로냐에서 방문한 안나마리아(65)와 파트리치아(64)는 명예 교황의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성베드로광장으로 갔다고 말했다.
안나마리아는 BBC에 "우리는 기도하러 왔다"며 "그는 프란치스코와는 분명히 매우 다른 교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위대한 교황이었고 위대한 지식인이자 학자였다"며 "다른 모든 교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를 항상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온 관광객인 바바라 베르나다스는 그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전 교황의 서거 뉴스를 듣고 당혹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성 베드로 광장에 있을 때 전 교황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었다"며 "관광 가이드가 베네딕토 16세가 살았던 곳을 알려주고 있었는데 정말 비현실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상황은 전례가 없는 일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따라야 할 프로토콜이 없어 '이제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확실히 지금은 전례가 없는 역사적 순간"이라고 말했다.
전 교황은 한동안 병으로 앓았지만 바티칸 당국은 고령으로 인해 그의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에서 지난해 마지막으로 마주한 청중들에게 "명예 교황 베네딕트를 위해 특별한 기도를 해달라"고 호소하며 그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고 전했다.
독일에서 요제프 라칭거로 태어난 베네딕트는 2005년 78세의 나이로 교황에 선출되어 선출 당시 나이가 가장 많은 교황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교황 재임 기간 대부분 동안 가톨릭 교회는 수십 년간 사제들에 의해 행해진 아동 학대에 대한 혐의, 법적 청구 및 공식 기록에 직면했다.
올해 초 전임 교황은 자신이 1977년부터 1982년까지 뮌헨 대주교로 재직하는 동안 학대 사건을 처리하는 데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누구…이례적 ‘생전 사임’
지난 2013년 2월 1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스스로 교황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폭탄선언이었다.
86세 생일을 두 달 앞둔 베네딕토 16세는 11일 추기경회의에 제출한 성명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나의 양심을 거듭 성찰한 결과 고령으로 더는 교황의 직무를 적절히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확신에 이르렀다”면서 “완전한 자의에 의해 추기경단이 나에게 부여한 성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직의 포기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또 “나를 도와준 분들의 사랑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나의 부족함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앞으로의 삶을 기도에 전념해 신에게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7일 후인 28일 베네딕토 16세는 홀연히 교황직을 물러났다. 퇴임 후 그는 ‘명예 교황’(emeritus pope)에 추대되었다. 종신직인 교황이 생전에 사임을 한 사례는 1294년 첼레스티노 5세 이후 719년 만의 일이었다. 2000여 년 가톨릭 역사상 스스로 교황 직을 포기한 사례는 5명에 불과하다.
가톨릭계에선 보수파로 분류되던 베네딕토 16세는 7년 10개월에 걸친 교황 재임 기간 동안 기독교 신앙의 쇠퇴와 세속화를 막기 위해 유럽이 먼저 기본적인 기독교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의 본명은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Joseph Aloisius Ratzinger)이다.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는 1927년 4월 16일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에른 주 마르크틀 암 인에서 경찰관인 요제프 라칭거와 식당 종업원이던 마리아 라칭거의 2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소년 라칭거의 가정은 독실한 성 가정이었다. 부모님은 모두 신심이 깊은 가톨릭 신자였다. 형 게오르크는 레겐스부르크 주교좌 성당 소년 성가대의 지휘자로 활동했다. 누나 마리아는 평생 결혼하지 않은 채 신앙생활을 했다. 요제프는 다섯 살 무렵 자신의 추기경의 장엄한 행렬과 의복을 본 뒤 성직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라칭거가 열네 살 되던 해인 1941년 그는 히틀러 청소년단에 가입한다. 훗날 교황 선출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행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강력한 반 나치주의자였다. 부모나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가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에 징집된 라칭거는 BMW 공장의 방공포 부대에서 복무했다. 종전 후 그는 형과 함께 트라운스타인의 성 미카엘 신학교에 입학했다. 형제는 1951년 6월 29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라칭거는 1958년 프라이징 대학 교수를 거쳐 1959년 본 대학, 1963년엔 뮌스터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 라칭거는 쾰른의 요제프 프링즈 추기경의 신학 자문(peritus) 겸 독일어 권의 대표자 자격으로 참가했다. 라칭거는 공의회 동안 한스 큉과 에드워드 쉴레벡스크 같은 진보적인 근대주의 신학자들과 함께 교회 쇄신의 실무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라칭거는 1966년 튀빙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계적인 신학자인 한스 큉이 있는 대학이었다. 라칭거는 1968년 저서 ‘그리스도교회 입문서’를 통해 교황은 의사 결정을 하기 전에 교회 안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진보적인 목소리를 이어갔다. 또한 교황청의 관료들이 교회를 경직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진보적 성향이었던 라칭거를 보수주의로 돌아서게 만든 것은 1967~1968년 독일 대학가를 휩쓴 네오마르크시즘 열풍이었다. 당시 라칭거처럼 진보적 성향의 교수들마저 학생들에게 강의 마이크를 빼앗기는 사건이 벌어졌다. “성경은 대중을 기만하는 비인간적 문헌”, “예수에게 저주를!” 등 극렬한 주장을 담은 전단과 구호가 교정에 난무했다.
결국 라칭거는 강경한 보수적 성향으로 돌아섰다. 훗날 그는 회고록에서 “당시 나는 무신론적 열정에 사로잡힌 흉한 얼굴, 심리적 불안, 모든 도덕적 성찰을 부르주아의 썩은 냄새라고 내던져 버리는 열등의식, 이런 것들이 베일을 벗는 장면을 목도했다”라고 회고했다.
1969년 그는 바이에른의 레겐스부르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라칭거는 가톨릭 신학 사상잡지인 ‘통교(Communio)’를 발간하는 데 많은 애정을 기울였다. ‘통교’는 오늘날에도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를 포함한 17개국 언어로 출판되고 있는 권위 있는 학술지이다.
1977년 3월 24일 라칭거는 뮌헨과 프라이징의 대주교로 임명됐다. 그해 6월 27일 당시 교황 바오로 6세는 라칭거를 추기경으로 선임했다. 1981년 11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라칭거를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장관으로 임명하였다. 라칭거는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장과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장도 역임했다.
신앙교리성 장관 재직 기간에는 해방신학의 마르크스주의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남미의 급진적 해방신학 운동에 제재를 가하는 법안을 제정하기도 했다. 많은 해방신학자의 활동이 중지되거나 파문 조치가 내려졌다.
라칭거는 교회에 대한 공개적 비판도 용납하지 않았다. 교황청의 교권주의를 비판해온 한스 큉 등 진보적인 신학자들에게 수업 및 저서 출판 금지 등 처분을 내렸다.
2005년 4월2일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했다. 그해 4월 19일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 라칭거 추기경은 78세의 나이에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로 선출됐다. 베네딕토 16세는 당시 상황을 “마치 나에게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라고 회고했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하드리아노 6세(1522?1523) 이후 482년 만의 독일인 교황이다. 가톨릭 역사상 여덟 번째 독일인 교황이다.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4월 25일 일반신자들을 알현하던 중 자신이 베네딕토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베네딕토 15세와 영적인 유대를 맺기 위하여 베네딕토 16세라 불리기를 원했다. 그분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란의 시기에 교회를 이끄셨던 분이다. 그분은 용기 있고 진정한 평화의 예언자이다. 그분은 무엇보다도 대담한 용기로 전쟁의 비극을 막고 전쟁에 따른 불행한 결말들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그분의 뜻을 이어받아 사람들 사이의 화해와 조화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저의 사목으로 삼고 싶다. 평화라는 위대한 선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하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베네딕토 16세는 뇌졸중과 심장병 등 지병을 지니고 있었다. 베네딕토 16세의 전기를 쓴 작가인 존 앨런에 따르면 그는 1991년 뇌졸중 후유증으로 시력에 문제가 생겼으며 심한 현기증과 수면장애에 시달렸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오래전부터 심장박동기를 착용해왔다는 사실도 사임 직후 밝혀졌다.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2월 11일 바티칸에서 열린 추기경회의에서 28일 오후 8시를 기해서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사임 발표문에서 “하느님 앞에서 양심을 성찰하면서 ‘급변하는 세상’, ‘신앙생활의 중대한 문제들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는데 요구되는 ‘몸과 마음의 힘’이 없다고 확신하고, ‘온전한 자유’로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말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22년 마지막 날인 31일(현지시간) 95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전 9시34분 바티칸의 마테르 에클레시아 수도원에서 선종했음을 슬픔 속에 알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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