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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르노카라바흐: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미 중재 휴전안에 합의했다 본문

흑해 주변국/아제르바이잔

나고르노카라바흐: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미 중재 휴전안에 합의했다

CIA bear 허관(許灌) 2020. 10. 26. 12:18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무력 분쟁은 9월 27일 시작됐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두고 벌이던 무력 분쟁을 미국의 중재로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국무부는 치열한 협상 끝에 합의에 도달했다며 26일부터 휴전협정이 발효된다고 밝혔다.

10월에만 두 번의 휴전 합의가 이뤄졌으나 번번이 파기됐다.

산악 지대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는 9월 27일부터 무력 분쟁이 발생했으며 최근 격화됐다.

25일 미국,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은 "인도주의적 휴전"이 26일 8시(현지시간)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번 휴전합의는 미국 스티븐 비건 국무부 차관, 아르메니아 조랍 므나차카냔 외무장관, 아제르바이잔 제이훈 베이라모프 외무장관의 회담 후 나왔다.

지난 23일 두 나라의 외무장관들은 미국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을 만나기 위해 워싱턴을 찾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휴전협정을 축하하는 트윗을 올렸다

유럽 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자들도 29일 다시 만나 분쟁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러시아가 중재한 두 차례의 휴전협정은 파기됐다. 아제르바이잔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은 러시아에게 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국제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인정받고 있으나 아르메니아의 통치를 받고 있다.

지난 9월 이 지역에서 발생한 충돌은 삽시간에 대규모 무력 분쟁으로 번졌다. 마을과 도시에 포격이 일어났고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집속탄의 사용도 보도된 바 있다.

수천 명의 인명이 사망했고 포격으로 양측의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수만 명 가량이 난민이 됐다[BBC 뉴스 코리아]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미국 중재 하에 재차 휴전에 합의

미 국무부는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두고 교전을 벌여온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26일부터 인도주의적인 휴전을 준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25일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두고 교전을 계속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와 함께 3개국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공동성명에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현지 시간 26일 오전 8시, 일본시간으로 26일 오후 1시부터 포로 교환과 시신 인도 등을 목적으로 한 인도주의적인 휴전을 준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성명에서는 양국 외무장관이 오는 29일 지금까지 중재에 임해 왔던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 3개국 대표와 스위스에서 회담하고, 분쟁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협의할 것이라는 방침도 나타냈습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이달 러시아의 중재 하에 2차례 휴전에 합의한 바 있으나, 모두 지켜지지 않아 양측에서 사망자는 발표된 것만 해도 천 명을 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에 미국의 중재 하에 교전이 수습될 수 있을지 예측을 불허하는 상황으로, 휴전합의가 어디까지 이행될 지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전투를 벌이는 까닭: 짧은 버전과 긴 버전

1993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아르메니아 군인들의 모습

한때 같은 소련 소속이었던 캅카스 지역의 두 나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또다시 전투를 벌였다.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 갈등의 한가운데에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이 있다. 국제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인정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지배하고 있다.

두 나라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이 지역을 놓고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휴전을 선포하긴 했지만 두 나라는 결코 평화 협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짧은 버전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의 일부지만 인구의 대다수는 아르메니아인이다. 1980년대 소련이 붕괴한 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해 아르메니아의 일부가 되기로 표결했고 이로 인해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1994년에 휴전 선언을 하면서 멈췄다.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남았으나 아르메니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파 아르메니아인들이 통제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중재로 협상이 수십 년간 계속됐지만 평화 협정에는 결코 이르지 못했다.

아르메니아의 대다수는 기독교인이지만 석유가 풍부한 아제르바이잔은 대다수가 무슬림이다. 터키는 아제르바이잔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의 우방이다. 러시아는 아제르바이잔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긴 버전

산악지대인 캅카스 지역은 유럽 동남부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수백 년에 걸쳐 기독교 또는 이슬람 세력들이 이 지역의 통제권을 놓고 경쟁했다.

오늘날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1920년대에 소련의 일부로 건국됐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인구 구성 측면에서 아르메니아 지역이었으나 소련은 이 지역의 통제권을 아제르바이잔에게 줬다.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이후 수십 년간 여러 차례 아르메니아에게 통치권을 이양해달라고 청원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소련이 붕괴하기 시작할 때가 돼서야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지방의회가 공식적으로 아르메니아의 일부가 되기로 표결을 한다.

아제르바이잔은 분리주의파 운동을 억압하려 했고 아르메니아는 이를 지원했다. 이로 인해 인종간 충돌이 발생했으며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 전면전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아르메니아 군대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아제르바이잔 군대를 쫓아냈다

양쪽이 저지른 학살과 인종청소에 대한 보고가 쏟아지는 가운데 수만 명이 숨졌고 100만 명 가까이가 난민이 됐다.

러시아가 중재한 휴전 선언이 1994년 선포되기 전 아르메니아군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통제권을 획득했다. 휴전 협정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로 남았지만 그 이후로 대체로 분리주의파 아르메니아인들이 통치했다. 이들은 스스로 독립공화국임을 선포했으며 아르메니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또한 휴전 협정으로 아르메니아군과 아제르바이잔군을 분리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 통제선이 설정됐다.

이후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의 중재로 협상이 계속됐지만 평화 협정은 결코 체결되지 못했다

이후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의 중재로 협상이 계속됐지만 평화 협정은 결코 체결되지 못했다. 지난 30년 간 충돌은 계속됐고 최근의 심각한 충돌은 2016년의 것으로 양쪽에서 수십 명의 군인들이 숨졌다.

이 지역의 분쟁은 지정학적 측면으로 더욱 복잡해졌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는 1991년 아제르바이잔의 독립을 처음으로 인정한 나라였다. 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헤이다 알리예프는 일전에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의 관계를 “두 나라 한 민족”으로 표현한 바 있다. 두 나라는 모두 튀르크 문화와 인종을 공유하며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지원을 천명했다.

게다가 터키는 아르메니아와 아무런 공식 외교관계가 없다. 1993년 터키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당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며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을 폐쇄했다.

한편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아르메니아 안에는 러시아군 기지가 있으며 둘 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의 회원국이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과도 좋은 관계를 갖고 있으며 러시아 정부는 최근 교전 중지를 촉구했다.

2018년 아르메니아에서는 평화 혁명이 발생해 오랫동안 권좌에 올라있던 세르지 사르키샨을 몰아냈다. 집회를 이끌었던 니콜 파시냔은 그해 열린 자유 선거에서 총리가 됐다.

파시냔 총리는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과 긴장을 완화하고 두 나라간 최초의 군사 핫라인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2019년 두 나라는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성사되지 못했다. 양국 중 어느 쪽이 먼저 공격을 시도했는지는 불분명하나 7월의 충돌로 양쪽에 모두 사상자가 생긴 이후 양국 간 긴장은 계속 고조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