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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臨時政府杭州舊址紀念館[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 옛터 기념관] 본문
절강성(저장성) 항주시(항저우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을 방문하는 방문객들 모습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상하이 프랑스조계지역에 처음 자리를 잡았고 이후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1932∼1935년)와 장쑤(江蘇)성 난징(南京·1935∼1937년)을 거쳐 창사와 충칭 등으로 청사를 옮기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大韓民國臨時政府杭州舊址紀念館[대한민국임시정부항주구지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舊址:옛 자취가 남아 있는 빈터. ①옛터 ②옛 주소 ③본래 주소 (址-터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실내모습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소장품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침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김구선생 집무실과 침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김구선생 초상과 知難行易(알고자 하는 바는 어렵고, 행하고자 하는 바는 쉽다)
知之非難 行之惟難 "아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행하는 것이 어렵다"[서경(書經)]
쑨원(孫文)선생이 5·4운동 시기에 ‘알고자 하는 바는 어렵고, 행하고자 하는 바는 쉽다(知難行易)’라고 설파한 것은 단순히 《서경(書經)》의 말을 역전(逆轉)시킨 것이 아니라 근대사회가 다가왔음을 올바르게 예언한 것이다
쑨원(孫文)선생은 수세기 동안 중국의 연약함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행하는 것이 어렵다(知之非難 行之惟難)’는 낡은 격언 탓이었다고 단언한다. 그는 중국 해방에 대한 진정한 장애는 이미 그 자신에 의해 극복되었다는 것을 동지들에게 확신시킴으로써 그들을 행동으로 나서게 하고자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군대창설식때 방문한 귀빈들이 남긴 방명록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김구선생 흉상과 음수사원(飮水思源)
飮水思源 掘井之人(음수사원 굴정지인)은 "물을 마실 때에는 그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한다"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그 근본을 잊지 말라는 의미의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고사(故事) 전한다"
남북조(南北朝)시대의 북주(北周)에 유신(庾信, 513-581)이라는 문인(文人)이 있었다. 자(字)는 자산(子山)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많았으며 특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통달하여 후진들이 다투어 그의 문풍(文風)인 서유체(徐庾體)를 배우려고 할 정도로 명망이 높았다.
그는 원래 양(梁)나라 사람으로서 48세가 되던 서기 554년에 원제(元帝) 소역(蕭繹)의 명을 받고 서위(西魏)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장안(長安)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유신이 고국을 떠나 있던 동안 양나라는 서위에게 멸망되고 말았다. 졸지에 유신은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었으나 당시 그의 명망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서위의 군주는 그를 강제로 장안에 잡아두고 벼슬을 내려 대관(大官)으로 삼았다. 그 후, 서위를 멸망시킨 북주(北周)에 이르기까지 그는 북조(北朝)에서 28년 동안 머무르며 평생토록 두터운 예우를 받았으나 항상 조국인 양나라에 대한 연민의 정을 잊지 못하고 때때로 느낀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많은 시문(詩文)으로 지어 후세에 남겼다. 그가 남긴 유자산문집(庾子山文集, 전 20권) 가운데 7권의 징주곡(徵周曲)에 보면 당시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시(詩) 한 편이 전하는데 그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落其實者思其樹 : 과일을 먹을 때는 그 열매를 맺은 나무를 생각하고,
飮其流者懷其源 :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네.
여기에서 유래된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음수지원(飮水知源)이라고도 한다. 비록 남의 나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조국은 멸망되고 억류된 신세가 되었지만 그는 한시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그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임을 일깨우는 말이다.
옛날에 깊은 산, 밭 가운데 시냇가에 노인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노인은 시내 옆에 수차(물레방아) 하나를 만들어 시골사람을 대신해서 쌀을 찧어주고 조금의 사례금으로 생활을 유지하였다.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지만 노인의 생활은 매우 편안하고 조용하였기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돈 몇 푼을 더 벌어서 기분이 좋은 나머지 쌀을 찧는 절굿공이와 절구에 감격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는 쌀을 찧는 절굿공이를 마주하고 중얼중얼 거리면서 자기의 감사함을 이야기했다. 밤에 그는 초가집에 누워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절굿공이가 없으면 자기가 아예 이런 좋은 생활을 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는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일찍 지전(종이돈, 紙錢)을 싸서 경건하게 절굿공이 앞에서 향을 피우고 감사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러자 마음도 매우 편안해졌다. 이렇게 연달아 몇 달을 절을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그는 갑자기 절굿공이가 하는 일은 수차(물레방아)가 돌아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급히 요리를 준비하고 술을 데워 수차를 향해 감사의 절을 올렸다. 그 후 그는 다시 수차는 어떻게 해서 움직이는 것일까? 물소리를 듣고 졸졸 흐르는 물을 보았다.
노인은 또 생각하여 갑자기 머리가 탁 트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물이 없고 수차만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쌀만 있고 불로 끓이지 않는 것과 같이 쓸모가 없는 것이므로 절을 하려거든 물에게 절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 생각하였다. 정말로 감사의 절을 하려면 모든 동작의 근원이 되는 물에게 절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비로소 노인의 눈에 모든 것이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세상사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일화이다.
[深山里, 田间溪边住者一位老人。老人在小溪旁架起了水车,替乡人捣米拿点小报酬维持生活。日升日落,日复一日,老人的生活十分平安宁静,他觉得心满意足。有一天,他多赚了几块钱,欣喜之余,对着捣米用的杵、臼,生出了感激之情,他对着捣米的杵喃喃地诉说自己的感谢夜里,他躺在草棚里,愈想愈觉得要是没有杵,自己根本不可能有这样好的生活,所以第二天一清早就买了纸钱,虔诚地在杵前烧香跪拜感恩,心中才觉得舒坦。这样一连拜了好几个月。有一次,他突然发现杵的工作是由水车转动所致,要是没有水车,杵一点作用也没有,于是他又匆匆预备了菜肴烧酒对水车深深致敬。水车怎么会动呢? 听见水声,看到流水淙淙。老人又想了,豁然开朗,要是没有水而只有水车,跟只有米没有火煮一样没有用,所以要拜就拜水啊!]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집무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항저우) 옛터 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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