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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 (大同門)-평양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평양성 내성의 동문(東門) 본문
대동문 (大同門)-평양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평양성 내성의 동문(東門)
CIA Bear 허관(許灌) 2009. 3. 29. 13:51
평양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평양성 내성의 동문(東門). 북한의 국보급 1호. 전체 높이 19 m, 석축 높이 6.5 m. 문루는 앞면 3칸, 옆면 3칸. 석축 위에 2층으로 된 누각을 갖춘 성문으로, 조선 중기인 1576년(선조 9)에 건립되었고 1635년(인조 13)에 석축의 홍예문을 고쳤다. 축대는 화강석을 다듬어 정교하게 쌓았고 그 복판에 길을 냈다. 축대 위에 세운 2층 문루는 1층 가운데 칸에만 1.5 m 높이의 널마루를 깔았다. 기둥은 모두 흘림기둥 형식으로 네 모서리 기둥은 다른 기둥에 비하여 더 굵고 길다. 1층 바깥기둥은 안기둥 중턱에 댄 툇보에 물리고, 2층 바깥기둥은 1층 툇보 위에 세워 건물 안은 구조상 층을 나누지 않고 통칸으로 처리하였다. 기둥에는 붉은색을 칠하고, 두공(枓)·대들보액방·서까래 등에는 여러 무늬와 색상을 배합한 은은한 단청을 입혔다. 그리고 문루에는 ‘읍호루(揖灝樓)’라는 현판(懸板)이 붙어 있다. 이 문은 대동강을 건너 남으로 통하는 평양성 성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문이었으며, 고구려의 건축물을 이어 발전시킨 조선 전기의 건축형식과 구조를 보여주는 건물로서 성문 건축물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읍호루(揖灝樓): 揖(읍 웁), 灝(넓을 호), 樓(다락 루)
대동강 기슭에 있는 평양성의 동문(東門)으로서 북한의 국보 제1호이다. 고구려 때 창건되어 1541년(중종 36) 소실되었다가 1635년(인조 13)에 재건립되었다.
1954년과 1959년에는 지붕과 단청을 하여 석축 위에 팔작지붕의 2층 누각을 갖춘 형태의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축대길이 26.24m, 석축 높이 6.5m이며, 석축 가운데에 높이 4.2m, 너비 4.4m의
무지개문이 있다. 문루는 앞면 15.91m, 옆면 10.34m에 두겹합각지붕을 이은 2층 다락이다.
바닥에서 다락까지의 높이는 19m이다. 기둥은 모두 흘림기둥형식으로 세워졌으며,
굵은 나무기둥을 사용하여 1층 바깥기둥은 안기둥에 댄 툇보[退樑]에 물리고 안기둥은
2층 대들보보다 중보를 직접 받게 했다.
2층 바깥기둥은 1층 툇보 위에 세우고 대들보와 물리게 하여 구조상 건물 안은 층이 분리되지 않은 통칸으로 되어 있다. 1, 2층 공포(拱包)는 3포식으로 짜올려 지붕을 받들게 했다.
다락의 높이와 지붕면의 곡선이 잘 어울리며, 위층 지붕 곡선이 아래층 지붕 곡선보다 좀더 굽은 형태이다.
또한 처마의 깊이는 1층보다 2층이 더 깊어 지붕이 경쾌함을 보이며 다른 성문보다 널마루가 넓고 난간까지 설치되어 있다.
문루에는 손을 내밀어 대동강의 맑은 물을 떠올린다는 뜻의 '읍호루'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종을 걸어 새벽 4시와 밤 10시에 시간을 알림과 동시에 문을 여닫게 했다. 특히 대동문은 고구려 건축양식을 계승·발전시킨 것으로서, 조선 전기 건축형식과 구조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대동문은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동문으로 처음 세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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