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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블로그]김정일 흡연에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 본문
20년 가까이 피워오던 담배를 끊은 지도 두 달이 되어 온다.
첫 시도에서 금연하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지금까지는 겨우 견딘다. 그러나 지금도 담배 연기 맡으면 킁킁 반갑고 하루에 물을 20컵 넘게 마신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란 말이 실감된다.
그런데 오늘 담배와 관련된 한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회령담배공장에 가서 담배를 피워보는 사진이다. 김 위원장은 담배를 끊은 지 10년 쯤 된다. 내가 김 위원장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지가 13년쯤 된다. 그땐 김 위원장이 담배를 피우면 그것이 어떤 담배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김 위원장이 떠나면 꽁초부터 찾는데 아쉽게도 담배꽁초는 호위 부관들이 꼭 챙겨갔다.
동영상 제공: 로이터/동아닷컴 특약
뇌출혈까지 왔다는 소문이 도는 마당에 다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제는 저렇게 한두 대를 피워도 다시 피우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금연했었나 싶다. 저 김 위원장이 담배 끊을 때 북한 간부들 한바탕 대소동이 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그 일화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북한에선 남자들은 거의 다 담배를 피운다. 못 피우면 바보 취급당할 정도다. 그래서 아마 남성 흡연율이 90%는 넘을 것이다. 반면 여자들은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물론 1990년대만 해도 깊은 시골마을에 가면 가끔 할머니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담배 통제가 가장 무지막지한 데도 북한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대학 다닐 때 담배피우는 것이 규찰대에 들키면 운 나쁘면 퇴학됐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 입학했는데 담배 피웠다고 퇴학당하는 것이나 같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대학 정문에서 20분 넘게 걸어가서 아파트 단지 속에 들어가 피우곤 했다. 15분 정도 거리는 대학 규찰대(완장 찬 대학생들)들이 수시로 돌아다녀 언제 잡힐지 모른다. 혹 들키면 담배 한 보루씩 뇌물로 건네줘야 무마됐다. 규찰대도 알고 보면 다 담배 피우는 놈들이지만 이런 식으로 뜯어내는 것이다. 북한에서 간부들이라는 것이 원래 다 이렇게 산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김 위원장이 자기가 금연을 시작하면서였던지(한 30년 넘게 담배 피웠다) 아니면 끊어서 기분 좋아서일 때였던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즈음에 갑자기 전 간부들에게 지시를 하달했다. 자기만 하면 됐지 이게 웬 이런 심술? 아무튼 “흡연은 심장에 권총을 겨눈 것이나 같다”나 뭐라나 하면서 간부들부터 금연에 앞장서라고 지시했다. 다행히 일반 주민들은 해당이 되지 않았다.
북한이란 사회에서 뉘 명령이라고 어길 수 있을까. 더구나 김 위원장의 지시를 어기는 자는 시범에 걸려 해임 철직된다고도 했다.
그래서 고위 간부였던 내 친구의 아버지도 김 위원장의 지시를 하달 받은 당일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사람 하나가 사무실마다 돌면서 재떨이를 다 걷어갔다. 그는 하루에 2갑 정도 피우던 골초였다. 혹시나 사무실에서 가보면 책장 뒤에 몽땅 뇌물로 받은 고급 담배 보루로 채워놓고 있었다. 한 100보루 넘게 있던 것 같다. 기분 좋으면 “이거 가져가라”면서 한 두세 보루 주기도 했다. 북한에서 담배는 돈이나 같다. 바로 현금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틀 동안 참고 있던 그는 수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수하 부하들이 자꾸 일하던 도중에 사라지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그래서 뒤를 밞아보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들이 청사 밖에 나가서 바로 옆에 있던 아파트 단지의 공동변소(화장실)에 드나드는 것이었다. 청사에 화장실이 있지만 그걸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공동화장실이라고 해봐야 한국처럼 수세식이 아니고 푸세식이다. 간부들은 거기 들어가 몰래 피우고 들어오는데 문제는 담배 피우고는 15분 넘게 그냥 앉아 있다가 나오는 것이다.
이유인즉 바로 나오다가는 연기가 따라 나오는데 그럼 밖에서 기다리던 다른 간부 눈에 걸리면 담배 피운 것이 들키기 때문이다. 혹 사이가 안 좋은 누가 고자질이라도 하면 시범에 걸릴까봐 경계하는 것이다. 그래서 냄새를 참고 담배연기가 빠질 때까지 견디던지 아니면 작은 뙤창에 대고 담배 연기를 후후 내뿜어야 했다. 그 바람에 아파트 주민들이 화장실 대란에 시달려야 했다.
이 사람들이 그래도 한국으로 말하면 고위 공무원들이고 북한에서 볼 때도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상당히 높은 간부들인데도 주민들 부끄럽게 화장실에서 이런 유치한 짓을 하자니 어찌 죽을 맛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탈출구를 찾을지언정 금연은 어려운 것이었다. 이렇게 또 일주일 정도 지나자 간부들은 모두가 공동변소 ‘동우회’가 됐고 점점 거리낌이 없어져갔다. 처음에는 15분씩 앉아있더니 ‘범죄’의 공범들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뒤부터는 연기를 뒤에 달고 서슴없이 나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누구부터 시작했는지 청사에 다시 담배연기가 차기 시작했다. 친구 아버지는 빼앗겼던 재떨이를 찾기 위해 급히 내려갔다. 그런데 자기 재떨이를 벌써 누가 집어갔더란다. 언젠가 내가 한번 찾아간 날에 그는 김 위원장의 지시 때문에 너무 아까운 걸 잊어버렸다고 꿍꿍 앓고 있었다. 친구 말을 들어보니 그 재떨이는 특별 주문해 뇌물로 받은 엄청 진귀한 것이라 한다.
그때 나는 북한에서 김정일의 지시도 집행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물론 지금은 많지만... 그것이 바로 금연이었다.
대학 시절 20분씩 걸어 나가 담배를 피웠던 나로서는 오늘 사진을 보면서 ‘배신감’을 느낀다. 할 수 있다면 이런 말쯤은 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 금연하라고 다그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담배공장에 가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또 뭣인가요...그리고 그 사진을 널리 공개해 선전하다니...이게 금연 전도사처럼 행세했던 사람이 할 일인가요?”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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