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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폭파테러 북한 공작원 강철민씨 '25년 미얀마 복역' 중 사망 본문

Guide Ear&Bird's Eye/테러단체,간첩등 수집.조사연구

아웅산 폭파테러 북한 공작원 강철민씨 '25년 미얀마 복역' 중 사망

CIA Bear 허관(許灌) 2008. 5. 21. 07:36

 1983년 전두환(全斗煥) 당시 대통령 일행의 미얀마 방문 때,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폭파테러를 일으켰던 북한 공작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강민철(53)이 25년간의 수감 생활 끝에 지난 18일 양곤 현지에서 숨을 거뒀다고 AP통신이 수감 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20일 보도했다. AP통신은 "강민철이 만성 간질환을 앓아 지난 3월 초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강민철은 외국인으로는 미얀마 감옥에 수감됐던 최장 수형자였으며, 현지언어도 잘 구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 당시 북한군 대위였던 강민철은 신기철, 진모 등 2명과 함께 양곤에 잠입, 버마(현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인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 등 각료를 포함한 총 21명을 살해했다. 전 전 대통령은 테러 직전 숙소로 돌아가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테러 직후 도주 과정에서 신기철은 총격전으로 사망했고, 부상을 입었던 진모는 현지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1985년 교수형이 집행됐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21/2008052100062.html



 

 

 

 

 

 

 

*아웅산 테러 사건 추적 자료와 북한 공작원 강민철 대위 석방된 후 한국에 가고 싶어.. 스팸신고

 

1.아웅산 테러사건 추적 자료
(1)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 개요
북한은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를 친선 방문 중이던 대한민국 전두환전대통령 및 수행원들의 아웅산 국립묘소 참배를 이용 암살하기 위하여 사전에 이 묘소건물 천정에 설치한 원격조종 폭탄을 폭발시켜 대한민국의 부총리, 장관등 수행원 17명을 순국케하고 14명을 부상시키는 친인공노한 테러를 강행했다
미얀마 당국의 수사 결과 이 사건은 북한 독재자 김정일의 지령을 받은 장성택의 맏형 장성우 소장이 일선에서 지휘했으며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진모(某)소좌. 강민철대위. 신기철대위등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밝혀졌다
테러범 3명 중 신기철 대위는 현장에서 사살되었으며 체포된 진모(某)소좌와 강민철대위는 1983년 12월 9일 양곤지구 인민법원 제8특별재판부에서 사형을 받아 이 중 진모(某)소좌는 체포된 2년 뒤인 1985년 사형됐다 아웅산 테러사건을 자백한 강민철 대위는 변호인들의 탄원서를 받아들여져 종신형으로 감형됐으며 사건 발생 20년 만인 최근 미얀마 당국에게 한국에 가고 싶다고 뜻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머리소리함.미얀마정부와 일본정부 협조만 있다면 한국행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미얀마정부는 이 사건의 수사를 매듭지으면서 11월 4일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한편 양곤에 있는 북한 대사관 직원들의 추방을 단행했다
이 사건으로 코스타리카. 코모로. 서사모아등 3개국이 북한과의 외교를 단절하였으며 미국 일본등 세계69개국이 대(對)북한 큐탄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1983년 11월 13일 미국 레이건전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여 최전방을 이례적으로 시찰하는 등 한미공동자유수호결의를 재확인했다.
북한정부와 김일성부대 소련군 극동사령부는 KAL폭파와 아웅산테러 KAL폭파등으로 88올림픽 개최를 저지하려고 노력해왔다...

(2)정찰국이란
정찰국은 인민군 총참모부 소속으로 무장공비 양성 및 남파, 요인 암살, 파괴, 납치등 게릴라활동, 대남군사정보 수집등을 주임무로 한다
정찰국에는 907군부대, 448군부대,남포해상특수부대,경보교도지도국 특수8군단, 정찰국 직속 저격여단, 정찰대대, 군단 및 사단 경보병부대등이 소속돼 있다
1983년 미얀마 아웅산 암살폭파 사건을 자행한 범인이 바로 정찰국 소속 특수 공작원이었다
인민군 정찰국은 군사시설 정찰 및 정보수집, 암살, 폭파, 비정규전 부대 침투등 군사적 성격에 무게를 둔 침투임무를 주로 하며 예하에 게릴라부대, 정찰부대, 해상처, 지원부등 4개 부서를 두고 있다
--과거에는 항공기상으로 북한군 정찰은 중국이나 소련이 해왔다 1983년 극동지역 소련군이 KAL폭파도 북한군 정보 오류로 볼 수 있다 지금은 다른다 연합군 지휘계체가 완벽 수준은 아니지만 거의 협동적 공존적이다 러시아정부나 중국정부 모두 연합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유엔입장에서는 지금 김정일정부가 적으로 간주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3)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 주동자 인적자원
ㄱ.테러 라인
(ㄱ)장성택의 맏형 정성우소장--일선 지휘자
장성택은 김일성 딸 김경희의 남편이다
장경우소장이 1983년 미얀마 랭군폭파사건을 일선에서 지휘했다는 설이 있다
(ㄴ)진모(某)좌. 신기철 대위. 강민철대위--현장 주도
(ㄷ)해외 반미단체이며 반한단체 민전조직(民戰組職) 연계
ㄴ.해외 반미단체 민전그룹(한국민족민주전선=반미단체)와 연계
북한정부는 해외에 친북단체나 인물등에게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지원을 하고 있으며 이들 단체 협조로 반한운동(反韓運動)이나 투쟁을 하고 있다
미얀마 중국계나 이슬람교도 그리고 사회주의자등이 미얀마 친북한 해외 반미단체이거나 민민전 그룹과 연계되어 있다(미얀마 아웅산 묘소 참배 폭파사건 지원자 중 중국계 친북한 인사가 포함되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萬保出身이 가담해는지는 추적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ㄷ.북한정부 대남정책 담당 사회문화부(통일전선부)와 인민 무력부 정찰국
사회문화부(대외연락부)가 민전이나 대화협상용(대사관)등으로 구축되어 있다면 정찰국은 테러나 무기물자나 인적자원 운반 행동등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ㄹ.사회문화부(대외연락부). 통일전선부등이 혼란조성과 테러,폭동등을 사전에 준비하는 팀이라면 정찰국은 테러나 작전을 수행하는 팀으로 알려져 있다


(3)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 북한정부의 전략 전술
ㄱ.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은 광주민주화 운동과 연계하여 광주 지역 남한운동단체가 사주한 것으로 홍보화 이용화 하려고 했다.
그리고 전두환정부가 남한 민주단체를 탄압하게 하고 자유화 개방화 조치를 후퇴하게 하며 그 힘으로 폭동을 유도하는 고도의 저강도 전략 전술이다
ㄴ.김정일 주체노선의 모험주의 작품이다
김정일은 1990년도 인민군 총사령관으로 추대 되었다 그리고 1990년 1월 반미청년회를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확대 개편 하였다
ㄷ.미얀마 아웅산 테러는 전두환 전대통령을 암살 한 후 남한정국을 혼란을 가중하게 하려는 술책이었다 미국에 망명한 김대중 전대통령과 김영삼전대통령 그리고 미국에 간 김종필 전총리등의 권력투쟁으로 정국 혼란을 획책했다

2.아웅산 테러사건 주모자 북한공작원 강민철 대위 석방된 후 한국에 가고 싶어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폭파사건을 일으킨 북한 공작원 3명 중 유일한 생존자 강민철(47세)이 사건 발생 20년만인 최근 미얀마당국에 <한국에 가고 싶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발매된 주간조선 1772호(10월 2일자)에 따르면, 미얀마 수도 양곤 북부의 인세인 교도소 정치범 특별수용소에 수감 중인 강민철씨는 최근, <북한에 속았으며 석방된다면 한국에 가서 참회하며 살겠다>는 뜻을 교도소 관계자등에게 전했다는 것이다이는 한국정부에도 전달됐으나 정부는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민철씨는 88년까지는 독방에 있다가 모범적 수형생활로 이후 <하우스>라는 불리는 독채 독방으로 옮겨져 <6호>방에서 지내고 있다.
강민철씨등 북한공작원 3명은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당시 버마)릉 공식방문한 전두환대통령 일행이 독립영웅 아웅산 묘소를 참배할때 원격조정장치로 폭탄 테러사건을 일으켜 당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함병춘 청와대 비서실장등 17명을 숨지게 했다 공작원 3명 중 한 명 신기철 대위는 현장에서 사살되었고 조장 격인 진모(某)소좌와 행동대원 강민철대위는 미얀마 당국에 체포돼 모두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이 중 진모(某)소좌는 2년 뒤인 85년 사형됐다 사건전모를 자백한 강민철대위는 변호인 탄원이 받아들여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강민철대위는 1990년 중반까지 당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1990년 후반부터 심격변화를 일으켰으며 당시 강민철대위는 면회 온 한국정부 관계자에게 <상부지시로 폭파했지만 결과적으로 17명을 죽게 한 사실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강민철대위는 <여기서 이대로 그냥 죽고 싶다> <영어를 공부하고 싶으니 영한사전을 넣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민철대위는 최근 <북한으로부터 속았으며 석방된다면 제3국이 아닌 한국 가서 살고 싶다>는 의사를 수 차례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형법에 따르면 무기수가 최소 13년 6개월을 복역하고 있는 강민철대위는 미얀마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 석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남북한 관계를 고려, 석방을 미루는 것 같다고 말했다.
(1)한국정부 다양한 입장
ㄱ.그에 대해선 어떤 얘기도 확인해 줄 수 없으며 대북관계와 미얀마 입장을 고려해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某씨의 말)
ㄴ.강민철대위가 한국행을 원한다 해도 나이가 많고 정보가치가 없을 것 같다(某씨의 말)
ㄷ.정부가 주저하는 실제 이유는 강민철대위를 받아들일 경우 김정일을 자극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한국정부 주변)
(2)동북아 머리소리함
미얀마 아웅산 테러는 장경우 소장과 그 직격부대 진모(某) 소좌. 신기철대위. 강민철대위가 주도한 사건이다 강민철대위 한국행이 될때 북한 정부 정찰국 테러세력 규모와 인맥 그리고 만보출신부대 동향에 상당한 정보가치가 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인도적 포용적 입장에서 한국정부는 강민철대위 한국귀순을 받아들여야 한다
1980년 재야와 학생운동에서 민해철(민족해방철학,주체사상 기본서) 책자가 인기를 끌었다 그 인물 강민철대위를 한국 국민들이 보고 북한 김일성 김정일정부가 얼마나 반미인민전쟁론자 테러단체 정부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1983년 10월 발생한 버마 아웅산 사건에 대해서는
-아웅산 테러는 북한에서 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 혼자만 살아남은 것을 보면 참으로 이상하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무슨 관련이 있다.
라고 말하는가 하면(이선실 한국민족민주전선 부위원장 말)


중국정부와 후진타오주석께서도 동아시아 테러가 북한 김일성 김정일정부가 주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국가정보원 안보모니터 허관 씀)

 

 

 

 



 

*대남공작의 전위부서 인민군 총참모부 소속 정찰국 자료 (미얀마 아웅산테러와 강릉잠수함 사태등) 스팸신고

1.대남공작의 전위부서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
http://www.hani.co.kr/h21/data/L980629/1p6k6t03.html

북한군 내에서 대남 공작업부를 담당하는 부서는 총참모부(남한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 산하 정찰국이다 군 정찰국 외에는 노동당의 사회문화부(대남선전부:통일혁명당 편집국 청맥과 반미청년회 구국의 소리. 한국민족민주전선 구국전선 편집국 등), 작전부, 대외 정보조사부, 통일전선부(한국민족민주전선 즉 통일혁명당이나 반미청년회등 조직) 등에서도 대남 공작을 담당한다

정찰국은 한국군의 군사첩보 수집과 무장공비 양성 및 남파, 요인 납치.암살등 게릴라 활동, 중요 국가시설물 파괴등을 주된 임무로 설정해놓고 있다는 게 우리 군 당국의 설명이다 정찰국에는 907군부대, 448군부대, 남포해상특수부대, 경보교도 지도국, 특수 8군단, 정찰국 직속 저격여단, 정찰대, 군단 및 사단 경보병 부대등이 소속돼 있다 1983년 발생한 미얀마(버마) 랑군 폭탄테러사건도 정찰국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찰국은 전방 5개 군단에 각각 500-600명 규모의 정찰대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해군에도 1개 정찰대대를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함경남도 낙원에 22전대를 두고 있는 것을 비롯해 동해안에 2곳, 서해안에 1곳의 해상 침투기지를 운용하고 있으며 평남 평원엔 육상 침투기지 1곳(평남 평원)도 운용 중이라고 북한군 출신 탈북자들은 밝혔다


인민군 정찰국은 군사시설 정찰 및 정보수집, 암살, 폭파, 비정규전부대 침투등 군사적 성격에 무게를 둔 침투임무를 주로하며 에하에 게릴라부대, 정찰부대, 해상처, 지원부등 4개 부서를 두고 있다

지난 1996년 9월 강릉 해안에서 발각된 잠수함이 바로 22전대 소속이라고 당시 생포된 이광수씨는 진술했다
"22전대는 한국군의 첩보수집 및 정찰을 주 임무로 1995년 7월에 구성됐는데 전대장(대좌-남한의 대령급)이하 110여명의 대원 전원이 장교인 것으로 알려졌다 3개 편대로 구성된 22전대의 1,2편대에 각각 상어급 잠수함(330t) 2 척씩이, 3편대에 유고급 잠수정(90t) 1정이 배치돼 있다"고 이광수씨는 밝혔다

정찰국의 책임자는 김대식 상장으로 북한군 내에선 드물게 김일성종합대학교 경제학부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인민군 하전사(남한-하사나 중사)로 근무하던 1960년대 초 김정일과 비슷한 시기에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다닌 뒤 군에 다시 돌아가 정찰국에서만 20여년을 근무했다고 한다 그는 일종의 장군 양성학교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거쳐 소장에 임명된 뒤 1989년 장성우 후임으로 정찰국장에 임명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식은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이 실패로 끝난 이후 경질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그해 12월 김정일의 김일성종합대학 시찰과 1997년 초 만경대학원 방문 때 수행함으로써 건재를 과시했다



2.인민군 총참모부 소속 정찰국이 자행한 국지전과 테러 주요 자료
(1)테러---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테러-----장성우 소장

(2)국지전(사태)--1996년 9월 강릉 잠수함 사태------김대식 소장 (국가정보원 안보모니터 허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