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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70년 6월 5일 남북간의 해상전과 남한 방송선 피랍 사건 그리고 당시 피랍 군인 20명 명단 본문

Guide Ear&Bird's Eye/납북자와 월북자 자료

[스크랩] 1970년 6월 5일 남북간의 해상전과 남한 방송선 피랍 사건 그리고 당시 피랍 군인 20명 명단

CIA bear 허관(許灌) 2005. 7. 5. 21:44
1.남북간 해상전과 방송선 피랍사건
"1970년 6월 5일 연평도 근해에서 어로보호 임무 수행 중인 해군 방송선이 북한 해군의 고속포함의 기습 공격으로 20명 군인과 함께 피랍되었다"


1970년 6월 22일 국군묘지 현충문 폭발사건(북한에 의한 두번째의 박정희전대통령 암살기도 사건)이 일어나기 약 반달 전인 1970년 6월 5일 북한 함정은 우리 영토인 연평도(延坪島) 부근 공해상에서 우리 함정을 기습 공격하여 납치해 갔다 소위 [해군 방송선 피랍사건]이다
방송선이라고 보도됐지만 어선단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어엿한 현역 해군함정 "120톤급 포함(砲艦)"이었는데 15분간 교전을 한 후 승무원 20명 중 대부분이 사상된 채 납치 당했다

당시의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해군방송선은 120톤급으로 최대 시속은 12노트 정도, 40mm와 20mm 기관포 각 1문으로 무장하였으며 레이더도 갖고 있으나 매우 노후하여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 고속포함은 북한 해군의 연안경비용 함정으로 250톤급이다 최대 속력은 25노트, 무장은 75mm 포 1문과 기관포, 레이더을 갖고 있었다 북한 이런 함정을 당시 수십 척 보유하고 있었다]

즉 우리 함정의 속도는 12노트인데 북한에서 건조한 함정은 25노트로서 우리 함정보다 2배나 빨랐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함정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 당시 우리 해군력은 북한에 뒤쳐져 있었던 것이다

서해교전은 우리 군과 정보단위가 북한군과 북한대남공작부 통일전선부 한국민족민주전선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여 아군 피랍이나 교전으로 아군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지 않았다

2.남북간 해상전과 방송선 피랍 군인(무기:1-2정) 20명 명단
권덕찬(23세, 전남 광주). 김기강(28세, 강원 원주). 김태종(23세, 경기 평택). 도종무(23세, 경북 청도). 맹길수(25세, 전남 해남). 문석영(24세, 제주도 제주). 박재수(24세, 경남 초동). 서금성(22세, 인천 동구). 신영훈(25세, 서울 중구 충무로). 이덕주(30세, 경남 진양). 이재영(23세, 전북 정읍). 임성우(37세, 경북 의성). 전해렬(21세, 경북 청도). 정광모(23세, 서울 중구). 정수일(41세, 서울 중구). 정원석(24세, 부산 서구). 조진오(24세, 부산 해운대). 조태봉(36세, 경기 연백). 함영주(24세, 서울 중구). 최웅호(26세, 인천 중구)등

http://reunion.unikorea.go.kr/dataroom5.asp?stage=list&sql_table_name=T_kidnap_5


1970년 6월 5일 남북간 해상전과 방송선 피랍 당시 군인 20명이 아직도 북한에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다
정부와 미국정부 그리고 유엔의 노력으로 이 분들의 빠른 시일내 생사확인을 해야 하며 북한에 생존이 확인될때는 가족들의 상봉과 인도적으로 남한으로 귀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출처 : 아시아연방론
글쓴이 : CIA bear 허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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