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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3년차...크름반도 병합 10년 본문

흑해 주변국/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3년차...크름반도 병합 10년

CIA bear 허관(許灌) 2024. 2. 26. 05:20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14년 3월 크름반도 병합 후 새로 임명한 지도자들과 모스크바에서 축하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자료사진)

 

2022년 2월 24일에 시작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3년째를 맞게 됐습니다. 또 이 전쟁의 전초전 격이었던 러시아의 크름반도(크림반도) 합병은 꼭 10년 전의 일입니다. 전선은 장기간의 소모전으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가, 최근 들어서는 러시아에 유리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과 현재 전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3년째 접어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초기, 이번 전쟁이 2년을 넘길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현재 전황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우크라이나군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러시아군이 최근 약 970㎞에 달하는 거의 모든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러시아군이 바흐무트와 아우디이우카 등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의 5개 주요 전선에서 우크라이나의 방어선을 뚫으려 한다고도 전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서방 세계가 공급해주는 자원을 바탕으로 대부분 전선에서 방어에 주력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반면, 러시아는 돈바스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영토 20%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데요. 10년 전 크름반도를 점령한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주요 지역과 러시아 등 주변 국가

“복잡다기한 크름반도의 역사”

러시아는 꼭 10년 전인 2014년 2월 크름반도를 사실상 강제 합병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최남단에 있는 크름반도의 역사는 매우 복잡합니다.

러시아제국은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하하다 18세기 후반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승리한 뒤 크름반도에 있던 크림칸국을 독립국으로 만든 뒤 합병했습니다. 이후 남진을 시도하는 러시아를 영국과 프랑스가 막아섰다가 전쟁이 발발하고 러시아는 통제권을 상실합니다.

크름반도는1919년 러시아혁명 이후 크림타타르인에 의해 일시적으로 독립했다가 1921년 소련에 편입됩니다. 이때는 소련의 크림자치공화국으로 불렸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에 장악됐다가, 독일이 소련에서 물러난 1944년에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그간의 반동 행위를 처단한다면서 크림타타르인 20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했습니다.

인종청소가 끝난 뒤, 크름반도는 자치주로 격하됐다가 1954년 우크라이나 태생이던 니키타 흐루쇼프에 의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연방으로 편입됩니다. 당시 3분의 2 정도였던 러시아계 인구는 점점 늘어나 90%를 차지할 정도가 됐습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무렵 러시아계 주민들의 요구로 이 지역은 다시 크림자치공화국이 됩니다. 그러다 1997년 흑해함대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 해군 관할로 분할되고, 러시아는 세바스토폴에 흑해함대를 주둔시키는 조건으로 크름반도를 우크라이나 영토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주민의 상당수가 러시아계였던 탓에 우크라이나 정부와는 크고 작은 갈등이 계속됐습니다.

크름반도(크림반도)와 주요 도시 세바스토폴

 

“2014년 2월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14년 부활하는 러시아의 힘을 과시하듯 전격적으로 군대를 투입해 크름반도를 장악했습니다. 그러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코소보 사태에 개입한 명분을 크름반도 합병의 구실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세르비아계에 의해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학살당한 코소보 사태를, 크름반도 분쟁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실제로 당시 크름반도에서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위협은 전혀 없었습니다.

크름반도를 점령한 러시아는 자국민 보호차원에서 합병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서방세계는 러시아가 주권 국가의 영토를 무단으로 침범했다고 반박합니다. 러시아의 군사행동은 유엔헌장과 안보리 결의에 대한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지난해 4월 벨기에 브뤼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에서 핀란드 국기 게양식을 거행하고 있다. (자료사진)

 

“북대서양조약기구 동진…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

나토는 2차 대전 이후 국력이 쇠잔했던 서유럽에 큰 위협 세력인 소련의 확장을 막아내고 독일을 통제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해 만든 동맹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뒤에도 나토는 팽창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가 회원국이 되더니, 21세기 들어선 소련의 일원이었던 발트 3국도 나토 회원국이 됐습니다. 냉전 시기 나토에 맞서 만들어졌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1991년 이미 해체된 뒤의 일이었습니다

한때는 나토와의 군사협력까지 타진하던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나토 확장에 반발했습니다. 나토 경계선이 자국의 국경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하지만 나토는 냉전 이후 세계 평화에 대한 임무를 확대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나토의 주 임무는 전 세계 주요 대테러 작전과 평화유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에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숫자로 보는 양국의 인명피해 규모”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들면서 희생자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유엔 보고서는 전쟁 발발 이후 2024년 1월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1만200명, 부상자는 1만9천300명이라고 집계했습니다. 러시아 측 민간인 희생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양국 군대의 희생자 규모는 더 큽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현재까지 자국의 장병 4만 2천 100명이 숨졌다고 밝혔고, BBC 러시아어 방송은 러시아군 4만 3천400명이 숨졌다고 보도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자료사진)

“크름반도 수복 다짐하는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모든 것은 크름반도에서 시작됐다면서, 러시아에 빼앗긴 크름반도를 수복하겠다고 누누이 다짐해 왔습니다. 2014년 3월 크름자치공화국 의회가 러시아와의 합병을 결의한 것부터 문제 삼았습니다. 정당한 자결권 행사가 아닐뿐더러 주민투표도 엉터리였다고 합니다. 투표용지에 러시아 편입에 반대하는 기표란이 없어 아예 반대 의사를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3년째로 접어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갖은 변수로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동부 지역과 크름반도 수복을 선언했지만, 서방 세계 지도자들의 속마음은 달라 보입니다. 지난여름 우크라이나의 야심 찬 ‘대반격’은 좌절됐고, 전황은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국면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푸틴 대통령과 다시 손을 잡으면, 세계 정세는 또 어떻게 요동칠지 앞날은 매우 불투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