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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에도 억만장자 재산은 27% 증가했다 본문

부호들의 이야기(평민적 자본가 삶)

코로나19 사태에도 억만장자 재산은 27% 증가했다

CIA bear 허관(許灌) 2020. 10. 14. 19:27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조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 속에도 세계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오히려 증가했다.

UBS은행이 7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4월~7월 사이에 세계 억만장자들의 재산 총합이 27.5%나 증가해 10조2000억달러(약 1경1800조원)에 이르렀다. 이는 사상 최대치다.

종전 최고치는 2017년 말의 8조9천억달러였으며, 당시에는 세계 주가 상승의 영향이 컸다.

UBS은행은 억만장자들이 코로나19 사태 때 “굉장히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세계 억만장자의 수 또한 늘었다. 2017년에 2158명에서 31명 늘어나 2189명을 기록했다.

한편 이날 세계은행(World Bank)은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극빈층이 22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증가

올해 가장 큰 수혜를 본 억만장자는 산업 분야 기업가들이다.

지난 4월~7월 사이에 이들 재산은 44% 증가했다. UBS는 "세계 전역에서 봉쇄령이 해지된 후 경기 회복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산업계가 불균형적인 이익을 봤다"고 분석했다.

기술 분야의 억만장자들 또한 이 기간 41%의 재산 증가율을 보였다. 이에 UBS는 “코로나19와 관련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라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자리 잡으면서 디지털 업무가 늘었고 통상 몇 년은 걸릴 변화들이 단 몇 달 안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의료・보건 분야 억만장자들의 재산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나라가 계속해서 급격한 경기 침체를 경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월 말 이후 세계 증시는 전반적으로 건재했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조스와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둘 다 주가 상승에 힘입어 올여름 개인 재산 최대치를 경신했다.

한편, UBS은행은 일부 억만장자가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기부했다며 “공개적으로 기부한 억만장자 209명의 기록을 보면, 지난 3월에서 6월 사이 72억달러(약 8조3331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기부됐다"고 말했다[BBC 뉴스 코리아]

아마존: 맥킨지 베조스, 전재산 44조 원 중 절반 기부하겠다고 공언

두 사람의 이혼 합의금은 이전 최고 합의금 기록을 초라하게 보이게 할 정도로 큰 액수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전 부인 맥킨지 베조스가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베조스는 워렌 버핏과 빌, 멜린다 게이츠 부부처럼 재산의 절반 이상을 자선사업에 쓰겠다며 '기빙 플레지'에 기부 서약서를 보냈다.

올해 초 제프 베조스와 이혼한 맥킨지의 재산은 최소 370억 달러(약 44조1900억원)로 추정된다.

맥킨지는 이혼 합의금으로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지분의 4%를 받았다.

"내가 필요한 자산 이상으로 과분한 양의 돈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다"면서 "심사숙고해서 기부를 이어나갈 것이다. 시간과 노력이 따를 것 같다"라고 서약서에 적었다.

지금까지 '기빙 플레지'를 통해 23개국의 부호 204명이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서명했다.

뉴욕 전 시장인 마이클 블룸버그, CNN 창립자 테드 터너, 그리고 엔터테인먼트계 거물 베리 딜러가 2010년 '기빙 플레지' 1기 기부자가 됐다.

공공 서약

이 선언은 법적 효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공개적으로 기부 서약을 한다는 의미가 있다.

'기빙 플레지'는 "기부에 대해 가리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문화를 정착시킴으로, 더 많은 사람이 자선사업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기부를 정의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인 프리실라 챈 또한 2015년 부부가 보유하고 있는 페이스북 주식 지분의 99%를 사회에 기부하겠다며 '기빙 플레지'에 동참했다.

아울러 저커버그 부부는 자신들의 재산을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에 기부해 딸 맥스가 자라나는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게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750억 달러(약 89조5875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한 번에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기부하는 방식이다.

제프 베조스는 '기빙 플레지'에 아직 서명하지 않았지만, 2018년 20억 달러를 들여 노숙인들을 위한 자선단체를 설립했다. 새로운 학교를 짓는 자선 사업에도 투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1140억 달러로 추산된다.

맥킨지는 '루터 올브라이트의 시험(The Testing of Luther Albright)', '함정(Traps)'을 쓴 성공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맥킨지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퓰리처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한 때 모리슨은 맥킨지를 "내가 창의적 글쓰기 강의에서 가르친 학생 중 가장 뛰어난 학생"이라고 평가했다[BBC 뉴스 코리아]

빌 게이츠: MS 이사직 떠난다… ’국제 보건 등 자선활동 전념하겠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빌 게이츠 공동 창업자가 자선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MS와 워런 버핏의 투자업체인 버크셔 헤서웨이 이사회를 떠난다.

그는 국제 보건과 개발, 교육,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20008년 일상적인 회사 업무에서 손을 떼고, 아내인 멜린다 게이츠와 설립한 '빌 엔 멜린다 게이츠 재단' 운영에 집중했다.

그는 이번 사임 결정을 발표하며 "마이크로소프트는 항상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면서 경영진들과 계속해서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내가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두 회사와 계속 협력해 나갈 것입니다. 다만 앞으로 우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제 우선순위를 두려 합니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게이츠는 1036억 달러(약 125조5424억 원)를 보유해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돈이 많은 부호다.

게이츠는 대학을 자퇴하고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어릴 적 친구인 폴 앨런(2018년 사망)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창립했다.

1980년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 합의해 MS-DOS 운영 체제를 만들면서 크게 성공했다.

1986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주식시장에 상장되었고, 그로부터 1년 만에 당시 나이 서른하나였던 게이츠는 역대 가장 어린 자수성가 억만장자가 됐다.

미국 자선활동 전문지 크로니클 오브 필랜트로피는 2018년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부부를 가장 큰 금액을 기부한 자선가로 발표했다. 이들은 2017년에만 48억 달러(약 4조9000억 원)을 기부했다[BBC 뉴스 코리아]

억만장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 '만사 무사'

만사 무사는 노예 1만2000명을 동원해 6만 명을 이끌고 메카를 여행했다

최근 포브스는 '2019 억만장자 리스트'를 발표했다.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조스가 세계 최고의 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재산은 약 1310억 달러(약 148조6000억원). 베조스는 현대사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아무리 베조스라도,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는 아니다.

이 자리는 14세기 서아프리카를 통치했던 만사 무사의 몫이다. 어찌나 가진 게 많았던지, 그가 호의로 돈을 풀자 국가 경제가 붕괴될 정도였다고 한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루돌프 부치 웨어 역사학과 부교수는 "무사의 재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파악도 표현도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제이콥 데이비슨 역시 2015년 '아프리카의 왕'에 대한 머니닷컴 기고에서 "만사 무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 부자"라고 했다.

2012년 미국 웹사이트 셀러브리티넷워스는 그의 재산을 4000억 달러로 추산했다. 그러나 경제사학자들은 "그의 부는 숫자로 못 박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인류 역사상 최고 부자 10인

  • 만사 무사 (1280-1337, 말리 제국의 왕) 표현 불가
  •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63 BC-14 AD, 로마 황제) 4조6000억 달러
  • 신종 (1048-1085, 북송의 황제) 측정 불가
  • 악바르 1세 (1542-1605, 무굴 제국의 황제) 측정 불가
  • 앤드루 카네기(1835-1919, 스코틀랜드계 미국 사업가) 3720억 달러
  • 존 록펠러 (1839-1937, 미국 사업가) 3410억 달러
  •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1868-1918, 러시아의 차르) 3000억 달러
  • 미르 오스만 알리 칸 ( 1886-1967, 인도의 왕) 2300억 달러
  • 정복자 윌리엄(1028-1087, 영국 노르만 왕조 1대 왕) 2295억 달러
  • 무아마르 카다피(1942-2011, 리비아의 장기 통치자) 2000억 달러

출처: 머니닷컴, 셀러브리티넷워스

황금의 왕

만사 무사는 1280년 왕가에서 태어났다. 1312년까지 말리 제국을 통치한 만사 아부-바크르가 그의 형이다.

14세기 시리아의 역사기록에 따르면, 아부-바크르는 대서양에 대한 갈망이 강했다. 그래서 그는 수천 명을 태운 2000척의 배를 이끌고 대서양 원정을 떠났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형을 대신해 왕위에 오른 게 만사 무사다.

말리 제국은 만사 무사 집권기에 엄청나게 성장했다. 팀북투를 포함한 24개 도시가 말리 제국에 병합됐다. 영토는 대서양 해안에서 현재의 니제르, 세네갈, 모리타니, 부르키나파소 일부까지 약 2000마일에 걸쳐 있었다.

영토만 광활한 게 아니었다. 황금이나 소금 등 자원도 풍부했다. 만사 무사 통치기에 말리 제국은 구세계 황금의 거의 절반을 보유했다(영국 박물관 자료).

당연히 이 모든 건 왕의 소유였다.

캐슬린 빅포드 베르족(노스웨스턴 대학교 부속 블록 뮤지엄 오브 아트 부 관장)은 "만사 무사는 중세 시대 부를 상징하는 귀중한 자원을 거의 무한정으로 소유했다"며 "황금을 포함한 상품의 대규모 무역이 그의 영토 안에서 이뤄졌고, 이를 통해 그는 더욱더 부유해졌다"고 말했다.

메카 성지순례

말리 제국은 금이 넘쳐나는 곳이었지만, 그다지 잘 알려진 왕국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사 무사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다.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그가 사하라 사막과 이집트를 거쳐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난 것이다.

성지 순례 덕분에 말리와 만사 무사는 지도에 남았다(1375년 이후 제작된 카탈루냐 아틀라스 지도)

전해지는 얘기 따르면, 만사 무사의 성지 순례단은 6만여 명에 달했다. 여기에는 궁정 신하, 군사, 재담꾼, 상인, 낙타를 끄는 사람, 1만2000명의 하인, 식량으로 쓸 염소 떼와 양 떼 등이 포함됐다.

그러다보니 만사 무사 일행은 마치 사막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도시처럼 보였다. 하인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금과 최고급 페르시아산 비단을 두르고 있으니, 얼마나 볼만한 풍경이었을까. 이들은 특히 카이로에서 과시하듯 재력을 뽐냈다고 한다.

카이로에 닥친 황금의 충격

만사 무사는 카이로에 3개월간 머물렀다. 그동안 금을 물 쓰듯이 썼다. 그러자 이 지역의 금 가격이 10년간 폭락했고, 경제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미국의 스마트에셋닷컴은 만사 무사의 성지순례가 금 가격 폭락을 가져와 중동 지역에 만든 경제 손실이 약 15억 달러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만사 무사는 말리 제국으로 돌아올 때도 이집트를 거쳤다. 일부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집트의 경제를 돕고자, 만사 무사는 금 회수에 나섰다. 이집트 대부업자들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를 내면서까지 금을 빌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너무 방탕하게 금을 쓴 나머지 수중에 있던 금이 바닥 나서, 빌린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런던대학 소아즈(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학을 연구하는 단과대학)의 루시 듀란 박사는 "말리 제국의 재담꾼들이 분노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만사 무사가 말리 제국의 황금을 마구 쓰자, 재담꾼들은 그의 업적을 더이상 칭송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왕이 본토 자원을 제국 바깥에다 낭비한다고 생각한 거죠."

교육의 중심지

쓴 것이든, 낭비한 것이든 만사 무사가 성지순례하며 많은 금을 쓴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대단히 관대한 왕이었던 것 같다.

만사 무사는 말리와 자신을 지도에 남겼다. 1375년 무렵 카탈루냐 아틀라스 지도에는 아프리카 왕이 팀북투 꼭대기에서 황금 의자에 앉아 황금 덩어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팀북투는 아프리카판 엘도라도가 됐고, 각처에서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다.

이 일은 500여 년이 지난 19세기에도 영향을 끼쳤다. 유럽인들이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를 찾아 세계 각처로 파고들 때, 팀북투도 표적이 된 것이다.

1327년 만사 무사의 황금으로 지어진 '징게레베르 사원'

만사 무사는 메카에서 돌아올 때 이슬람학자 몇 명을 데려왔다. 선지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예도 있었고, 아부 에스 하크 에스 사헬리라는 안달루시아 시인이자 건축가도 있었다. 이 건축가는 훗날 징게레베르 사원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해지는 바로는 만사 무사가 이 건축가에게 황금 200kg을 줬다.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820만 달러에 달하는 양이다.

만사 무사는 예술과 건축을 장려하는 것뿐 아니라, 학교, 도서관, 사원 등을 지을 수 있게 후원했다. 팀북투는 이내 교육의 중심지가 됐다. 세계 각국에서 유학생이 찾아왔고, 훗날 상코레 대학이 됐다. 만사 무사는 서아프리카에서 교육이란 전통을 싹 틔운 것으로 알려졌다.

만사 무사는 1337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제국을 하나로 묶어 통치하는 데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결국 후손들을 따라 분할된 제국은 날로 쇠락해갔다. 훗날 유럽인들의 침략에 흔적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블록 뮤지엄 오브 아트의 리사 코린 그라지오제 관장은 "중세 역사는 주로 서양 역사"라고 말한다. 만사 무사의 이야기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다.

"만약 만사 무사가 통치하던 시기에 유럽이 말리 제국을 침략했다면 역사는 매우 달라졌을 것입니다." (루돌프 부치 웨어 캘리포니아대학교 역사학과 부교수)[BBC 뉴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