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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석의 두 번째 부인 사망 본문

Guide Ear&Bird's Eye/북한[PRK]

김일성 주석의 두 번째 부인 사망

CIA Bear 허관(許灌) 2018. 12. 15. 22:34



                                                                                                김일성과 김성애(사진)

북한 인민공화국(인민회의 정부)의 초대 수상이며 사회주의 공화국(북한 사회주의 정부, 주체사상) 건국자 김일성 주석의 두 번째 아내, 김성애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한국 통일부가 이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

통일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김성애 씨의 사망에 대해 "관련 움직임이 있다. 구체적으로 확인되면 공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연합 뉴스가 보도했다.

김성애 씨는 1924 년생. 한국 전쟁 중에는 김일성 주석의 비서를 지냈다. 김일성과의 결혼 후에는 북한 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김성애 씨는 김일성 주석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 한국 언론에 따르면 김일성 사후 북한을 통치한 김일성의 장남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의 관계가 긴박화했다고 한다.

김성애 씨가 마지막으로 공공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5년이었다

                                          1975年 江青和金聖愛(1975년 김성애는 1975년 북한중앙여맹위원장 자격으로 모택동 부인 강청을 만났습니다)



 

 

 

 

 

                                                                                              김성애와 김일성 모습

김성애는 1924년 평남 강서군에서 농사꾼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중학교를 마치고 6.25 한국전쟁 직전 인민군에 입대하여 특무상사로 김일성 집무실 서기로 일했다 그때 1949년 첫번째 부인인 김정숙을 사별한 북한 김일성 수상을 만났다.

 젊은 시절 김성애는 얼굴이 예쁜 편이었고 머리도 좋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렵 김성애는 김일성의 아이를 가진 적이 있다고 한다 이를 소리 안나게 해결해준 사람이 당시 부수상 박정애였다 박정애는 김성애를 달래 고향에 내려가 쉬도록 해준 다음 생활비를 보내 주었다 그러나 김성애는 전쟁이 끝나자 그 길로 김일성의 관저로 찾아가 보따리를 풀었다 김성애는 전처에게서 난 김정일과 김경희에게 잘 대해주었다고 한다 김성애가 상황파악에 능했던 것이다 당시 김일성 관저에는 김일성의 장모가 되는 김성애의 어머니 고영칠도 같이 살았다 공식적으로는 김성애가 1949년 첫번째 부인인 김정숙을 사별한 김일성과 1963년경에 결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일성은 김성애에게서 딸 하나, 아들 둘을 얻었다 바로 경진. 평일. 영일이다 장모 고영칠씨가 후덕한 성품이어서 김정일과 이복형제들을 어린 시절을 친형제처럼 잘 지냈다.

<청소년 시절 김정일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 평일에게 특유의 농담을 곧잘 했다 자기보다 덩치가 커서 가끔 "어이 평일이 형"하고 부르곤 했다>고 한다 김평일은 178cm 키에 80kg으로 김정일에 비해 체격이 큰 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74년 후계자를 김정일로 공인된 후 평일. 영일. 경진등을 <곁가지>로 분류하고 이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곁가지>의 발달은 김성애였다 1969년 김성애가 중앙여성동맹위원장에 오르면서 그녀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김성애는 김일성이 현지 지도차 나가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김일성보다 더 많은 말을 했다 그러다 나중에 여맹 사무실에 붙어 있던 김정숙의 사진을 모두 떼어내고 자신의 사진을 붙이기까지 했다.

그녀의 사회적 활동은 비교적 분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일성 주석이 외국을 방문하거나 국내에서 외국대표단을 영접할때 김성애가 김일성주석과 동행하는 경우에도 북한의 언론들은 그녀의 동정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의 후계자인 김정일의 생모이자 김일성의 첫 부인인 김정숙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권부에서 <원가지-적자> <곁가지-서자>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거론된 것은 1980년대부터다 김정일이라는 이름도 1980년 10월, 정일(正一)에서 정일(正日)로 바꿨다 어머니 김정숙의 정(正)과 아버지 김일성의 일(日)자를 합성해서 직접 만든 이름이다 이는 김정일 자신이 김일성의 유일한 적자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그의 이복 동생들은 모두 한 일(一)자를 쓰고 있다.

(1)출생일:1924생(김일성과 12년 연하)--생존

(2)출생지: 평남 강서군

(3)학력--중학교 졸업

(3)가족관계--김일성과 사이에는 2남 1녀 출생

-김평일(金平一, 아들):북한 주폴란드 대사(1977년 김일성종합대학교 졸업)

-김영일(아들)

-김경진(딸)

 (4)경력

1965.년 11월 여성동맹 부위원장

1970년 11월 당 중앙위원(현직)

 1971년 10월 여성동맹 위원장

 1972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5-9기 대의원

1972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

1994년 7월 김일성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1998년 4월 여성동맹 위원장 해임 그리고 여성동맹위원장 천연옥 임명

 (5)주요동정

1975년 5월 김일성을 수행하여 루마니아. 알제리. 모리타니아. 불가리아등 방문

1994년 6월 김일성의 <시아누크 부부> <카터부부>의 면담시 배석

1994년 7월 김일성 추도대회(김일성광장) 참석

1997년 7월 김일성 사망 3주기 중앙추모대회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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