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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100년 변함 없는 '독재국가' 본문
지난해 9월 하순부터 이달 초까지 총 80회에 걸쳐 연재한 "백년의 차질(蹉跌) 러시아 혁명과 푸틴"는 1917 년의 러시아 혁명이 가져 온 비극과 현대까지 남아 혁명의 "부의 유산 "소개했다. 혁명 100년의 역사를 통해 떠오르는 황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러시아 대통령과 직위의 이름은 변화 등 기본적으로 러시아는 '독재 국가'로 계속했다는 현실이다.
제정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 세는 1917년의 2월 혁명으로 퇴위했다. 10월 혁명으로 출범한 소련은 공산당 일당 독재 하에서 레닌,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고르바초프의 각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렸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옐친 씨가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그 동안 순수한 민주적 선거에 의해 정권 교체가 일어난 것은 한 번도 없다.
소련 시대에는 실각한 흐루시초프 씨를 제외한 전원이 전임자의 사망에 따라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현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연방 보안국(FSB) 장관이었던 1999 년 옐친 씨가 후계자 지명을 받아 이듬해 3월에 앞당겨 대선에서 당선됐다
옐친 씨는 민주화의 기수로서 소련 말기에 상승했지만, 의회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정착 시키키데는 실패하고 푸틴의 강권 체제에 길을 열었다.
모든 개혁이 "위에서" 이니셔티브에서 행해져 온 적도 러시아 구소련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개혁이 기회를 벗어난 결과가 러시아 혁명이며, 소련 붕괴의 강진이었다.
제정 말기의 06 ~ 11년에는 푸틴도 경애하는 스톨리핀 총리가 농업 개혁에 임해, 개인 농의 창출에 의해 혁명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급진화 하고 혁명 세력은 제정 보존의 시도에 반발하고 스톨리핀 씨의 암살에 의해 개혁의 길은 끊겼다.
소련 말기의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은 페레스트로이카 (재건)라고 칭하는 개혁 노선을 내세워 민주화와 경제 부분적인 자유화에 방향타를 끊었다. 하지만 브레즈네프 정권 시절에 구조 개혁을 게을리 한 외상은 크게 경제의 파탄과 민족 문제의 분출에 소련은 붕괴했다.
"푸틴 시대"는 이미 브레즈네프 정권 시절과 같은 약 18년간 계속되고 있어 역시 체제의 경직화가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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