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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미군 최후 생존자 드레스노크 작년 사망 본문

Guide Ear&Bird's Eye/납북자와 월북자 자료

월북 미군 최후 생존자 드레스노크 작년 사망

CIA bear 허관(許灌) 2017. 8. 22. 17:39

지난 60년대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한 미군 6명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이던 제임스 드레스노크가 작년 11월 사망했다고 지지(時事) 통신이 22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드레스노크의 아들 2명은 북한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올린 동영상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지난해 11월 뇌졸중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군복 차림에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고 등장한 이국적인 외양의 이들은 드레스노크가 74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확인했다.

드레스노크는 생전에 아들들에게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위원장에 헌신을 다하라"고 말했다고 이들은 전했다.

생전에 북한 선전 영상에 자주 얼굴을 내민 드레스노크는 북한이 납치한 것으로 보이는 루마니아 여성과 결혼했다

미국 제1기갑사단 소속 무반동포차 운전병이던 드레스노크는 20살 일병 시절인 1962년 휴전선을 넘어 북을 탈영했다.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 출신인 드레스노크는 월북 후 북한 선전영화 '이름없는 영웅들(Unknown heroes)' 등에 출연하고 대외 선전용 책자에도 등장했다.

 

북한 매체 “월북 미군 드레스녹 사망” 확인

 

북한에 생존한 유일한 월북 미군이었던 제임스 드레스녹 씨의 두 아들이 지난 18일 북한의 대외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에 출연해 아버지 제임스 드레스녹이 뇌졸중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에 생존한 유일한 월북 미군이었던 제임스 드레스녹 씨가 뇌졸중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드레스녹 씨는 한국전쟁 이후 월북한 4명의 미군 병사 가운데 북한에 남은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드레스녹 씨의 두 아들은 18일 북한의 대외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에 출연해 아버지 제임스 드레스녹이 뇌졸중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차남 홍철 군입니다.

[녹취: 제임스 드레스녹 차남 홍철] “경애하는 최고 사령관 김정은 원수님께서는 2016년 11월 3일 우리 아버지의 병 상태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특별히 종합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 과정에 아버지가 병원에서 집적 치료를 받다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홍순철’이라는 북한 이름을 쓰는 장남은 아버지 드레스녹이 유언으로 북한 정권에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말했습니다.

드레스녹 씨의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려져지 않았습니다.

주한미군 병사였던 드레스녹 씨는 55년 전인 지난 1962년 8월 비무장지대를 통해 월북했습니다. 당시 그는 위법 행위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뒤 처벌이 두려워 탈영해 월북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평양에 머물면서 포로수용소의 잔인한 미군을 연기하는 등 주로 미국을 악으로 묘사하는 북한의 선전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영화 속 이름이 별명이 돼 북한 사람들은 그를 ‘아서 선생’이라 부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또 사망한 김일성 주석의 대외연설문을 영어로 번역하고,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드레스녹 씨의 행적은 일본인 아내를 따라 일본으로 귀환한 4명의 미군 탈영병 가운데 한 사람인 찰스 젠킨스 씨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52년 전 주한미군으로 복무 중 탈영해 북한으로 넘어갔던 젠킨스 씨는 자신이 펴낸 ‘마지못한 공산주의자 (The Reluctant Communist)’란 책에서 드레스녹 씨가 루마니아 출신 여성 ‘도이나’와 결혼했다고 밝혔습니다.

‘도이나’는 북한 공작원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쳤으며 북한 당국의 지시로 드레스녹 씨와 결혼했지만 1997년 암으로 사망했다고 젠킨스 씨는 밝혔습니다.

드레스녹 씨는 1997년 아내가 암으로 죽자 아프리카 외교관과 북한 여성 사이에 태어난 북한 국적 여성과 재혼해 셋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북한 내 다른 2명의 탈영 미군은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북한에 생존하는 마지막 미군 탈영병이 됐던 드레스녹 씨.

미 동부 버지니아주 출신인 드레스녹 씨는 아들 셋과 손자, 손녀를 북한에 남긴 채 76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VOA 뉴스 김현진 입니다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영어: James Joseph Dresnok, 1941년 ~ 2016년)은 1962년에 한반도의 군사 분계선을 넘어서 탈영한 미국의 군인이다. 그는 미국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 출신으로 주한 미군 일병으로 비무장지대(DMZ) 철책 근무 당시인 1962년 8월 15일에 북한으로 투항하여 2016년 사망할 때까지 평양에서 거주 중이었다. 2004년 찰스 로버트 젱킨스 하사가 탈북하면서 북한에 생존해 있는 유일한 월북 미군이 되어 있었다.

가족[편집]

조지프 드레스녹 시니어(1917 ~ 1978)의 아들이며, 형제자매로는 남동생인 조지프 드레스녹 주니어(1946 ~ )가 있다.1951년에 제임스가 9세였을 때 리치먼드에 살던 가족이 이혼으로 나뉘었고, 제임스와 어머니, 조지프와 아버지는 끼리끼리 흩어졌다. 아버지와의 약속은 임시적이었다. 10대 시기에는 위탁 가정에서 길러졌고, 학교에서 쫓겨나 17세 생일이 된 다음날 미국 육군에 입대하였다.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평양 시민》(Crossing the Line)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미국인과 결혼한 후 서독에 2년간 배치되었다고 한다. 귀국 후 당시 부인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자기 아이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임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말을 할 때 카메라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1.망명

드레스녹은 미국 육군의 상병으로 1960년대 초반 비무장 지대에 근무하였다. 미국에 있었던 첫 아내가 떠난 후, 다시 자원하여 대한민국으로 왔다. 대한민국에 입국한 이후, 기지를 떠날 수 있는 허가증에 서명을 위조한 혐의로 군법회의에 부쳐졌다. 이후 처벌을 두려워하여 탈영을 결심하게 된다.

1962년 8월 15일에 동료 군인들이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지뢰밭을 달려 월북하였다. 북한 인민군이 그를 체포하였고, 열차편으로 평양으로 이송되어 조사받았다. 조사받는 과정에서 또다시 도주했는데 중국보다는 그래도 같은 백인종인 소련이 낫겠다 싶어서 소련에 귀순했으나, 소련 측에서 다시 드레스녹을 북한에 넘겨줬다.

2.망명 이후

드레스녹은 월북 후에 또 다른 망명자 래리 앨런 앱셔를 만났다. 이를 포함한 네 망명자들은 같이 살았고, 북한 정부에서 발간하는 선전물에 참가하였다. 여러 잡지 표지에 출연하였고, 대남 방송을 통하여 다른 미군의 월북을 유도하였다. 처음에는 북한에 남지 않으려고 생각하여 1966년에 평양 주재 소련 영사관에 들어갔으나, 정부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이후 드레스녹은 북한에 정착하기로 하였다. 1978년부터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하였고, 미국인 역을 맡아서 국가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배역 이름이 아서였기 때문에 북한인 친구에게는 아서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일성의 저작물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사는 동안 그는 두 번 결혼하였다. 북한에서 만난 첫 아내는 1950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인과 1970년에 결혼하여 이탈리아로 가서 살다가 1978년에 이탈리아에서 북한으로 납치된 루마니아인 여성인 도이나 붐베아(1950년 ~ 1997년)였으며, 두 아들이 있었다. 젠킨스의 자서전에서는 도나라고 언급하고 있다. 도이나가 1997년에 폐암으로 죽은 후, 토고 외교관과 결혼한 북한 여성의 딸과 결혼하여 2001년에 셋째 아들을 낳았다. 그의 가족은 평양에서 국가가 지급한 아파트에 살면서 북한 정부가 지급한 연금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현재 드레스녹은 심장 질환과 간 질환으로 건강이 안 좋은 상태이며, 흡연과 음주 때문이라고 한다.

드레스녹은 여생을 북한에서 보낼 예정이며,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귀국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현재는 은퇴한 상태로, 북한에서 이따금씩 강연을 하며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낚시를 즐긴다.

두 번째 결혼에서 낳은 차남 제임스 가브리엘 드레스녹은,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이 1980년대에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던 평양외국어대학의 학생이며, 그의 영어 억양에는 조선어가 많이 묻어 있다. 가브리엘은 북한 사람과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자기 자신을 북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외교관 일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2001년에는 김정일이 직접 드레스녹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많은 선물을 지급했다. 2016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8월 15일 대낮에 모든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을 때, 저는 길가로 나왔습니다. 물론 무서웠습니다. 제가 살 수 있을지 아니면 죽을지 말이죠. 그리고 전 지뢰밭에 뛰어들었고 제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땀이 났죠. 저는 국경을 건넜습니다. 새 삶을 찾기 위해서였지요."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 월북 미군 제임스 드레스녹의 모습

 월북 미군출신 제임스 드레스녹등이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반제민족민주전선) 미국 대표부를 운영해왔다는 머리소리함 자료가 있습니다. 미국내부 김일성(친북 先軍정치-NLPDR.친북 극렬 반미성향) 추종세력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반제민족민주전선) 미국 대표부가 부시정부와 오바마정부에서 와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