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히틀러의 폴란드 점령 후 세계2차대전 필요성 국회연설문 본문

중부 유럽 지역/독일[獨逸,德意志國=德國]

히틀러의 폴란드 점령 후 세계2차대전 필요성 국회연설문

CIA bear 허관(許灌) 2012. 3. 11. 18:54

 

"이 파멸의 전쟁인 구라파 전쟁은 구라파 전체에 한하지 않고 해외 저 멀리로 확대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미 성(城)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현하 국가 다난한 이때에 여러분을 국민의 대표로써 소집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대해서 또 보고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즉 3천 6백만명을 가진 폴란드는 벌써 존재해 있지 않습니다
개전한 이래 8일만에 이미 승해는 결정되어 14일간에 독일 육군(전차부대)은 폴란드를 점령하였습니다
독일군 통수부(지도부)는 일찌기 제1차 대전에서 경험한 것보다 훨씬 인도적인 전투를 한 것입니다
<와르샤와>를 요새와 했다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미친것이었습니다 나는 최소한도로 동시에 비전투원들을 피난시키려 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다음 나는 재류외국인을 구조하려고 했으나 이도 전후 순간에 가서 성공했던 것입니다 폴란드 수비사령관은 우리들의 항복제안에 아무런 회답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후에 폴란드의 태도는 갑자기 변했습니다 즉 9월 14일에 이르러서 드디어 와르샤와는 항복 하였습니다
이 대성공은 무릇 독일군이 저격병 척탄병(擲彈兵) 그리고 보병을 원조한 포병대와 전차대 및 비행기에 힘입은 것입니다
9월 30일 발표에 의하면 독일군의 손실은 전사자 10,573명. 행방불명자 3,404명. 전상자 30,322명이었습니다 <와르샤와> 요새의 함락과 해라반도 요새의 항복으로 <폴란드>에의 출사는 끝났습니다
그 결과는 이러합니다
전 폴란드 육군을 섬멸하고 폴란드 국가를 부수었습니다
총수 6십 9만 4천명에 달하는 포로는 현재 <베를린>으로 향해 소위 진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군자재를 노획한 것은 수 없이 많습니다
이 역사상 처음되는 국가붕괴에 비추어 이와같은 경과가 여하한 경험에 기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원래 <폴란드>는 베르사이유의 요람 속에서 탄생하였습니다
폴란드 자체는 독일과 러시아로부터 탈취한 지역으로써 성립되었던 것입니다
이 폴란드 새 국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생활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구(舊)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의 희생으로 폴란드 이외의 제민족은 새 국가 아래에서 비인도적 대우를 받아가며 압박을 받아왔습니다
그리하여 귀족과 재벌로 형성된 소수(근소,僅少)한 도당들이 대중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정권을 지원한 자는 전 인구의 15%도 되지 않습니다
이 나라를 처음보는 사람은 우리의 소위 <폴란드식 무질서하기 짝이 없는 경제>라는 말이 참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항상 폴란드와 독일간의 친선관계를 성립시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즉 1933년과 1934년에 나는 독일의 권익과 폴란드측의 기도(企圖)는 모두 폴란드의 위정자로부터 항상 독일측의 약점이라고만 해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폴란드 통치자가 단지히를 압복(壓伏)시키려 기도하기에 이르렀을때 나는 적당한 제안으로 독일입장에서 용납될 수 있는 정도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이 제안이 과대한 요구였다고는 어느 누구도 주장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해결의 제안은 우리들이 이미 <벡크>외상과 회담한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폴란드는 이 제안까지도 거절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원인에 기인한 것입니다

첫번째 폴란드정부의 배후에 잠재하고 있는 선동분자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단지히의 독일귀속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프러시아 지방과 단지히는 폴란드에 병합(倂合)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 시례지아도 요구하였습니다
폴란드는 점점 커져서 에벨강을 독일과 폴란드의 자연경제로 인정해야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나는 교섭하고자 폴란드 외상을 초청하였으나 거절당했습니다 또 폴란드는 독일육군을 가치없는 것이고 비겁하다고 말하는 동시에 폴란드군은 물론 독일군에 비해서 우세하기 때문에 독일군을 섬멸하기는 용이한 것 같이 말하였습니다
독일육군을 베를린 근방에서 섬멸하려고 희망한 자는 폴란드의 문맹자가 아니고 현재 루마니아에 체재(滯在) 중(中)인 폴란드 원수 <리즈슈미링> 그 사람입니다 이 군사적 문의한이야 말로 우리들의 군대를 모욕한 것입니다

둘번째 이유는 타국이 폴란드에게 부여한 보장약속입니다
폴란드인은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꼼짝못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우리는 공격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외에 취할 태도와 방법은 없었던 것입니다
소련과의 이해공유(利害共有)는 같은 성질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양국에서 형성된 인식이 똑 같은데 기초를 두는 바입니다
나는 단지히에서 연설 중에서 소련은 국가 사회주의가 독일과 다르다는 것을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스탈린씨가 소련의 주의는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국가와 합동(연합)하는데 아무런 장해(장애)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였을때 독일도 또한 소련과 협동해서 안될 아무런 이유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과거에 있어서 이 양대국가의 국민이 서로 협조친화(協助親和) 하여 생활한 시대가 가장 행복하였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물론 서구라파 자본주의 제국에서는 독(獨).소(蘇)양국과의 이데올로기가 상극할 것을 희망할 것도 명백합니다 그런 까닭에 서구라파 제국은 소련과 군사동맹을 체결하려 하였고 또 소련이 이 동맹체결을 거절하고 그 이해관계에 의하여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 것을 음험(陰險)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협정을 체결하였다는 것은 독일의 일대전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일부에서 이 협정을 독일의 퇴패(退敗)라고 인정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싶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독일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최근 수년간 제마음대로 여러가지로 상상하였습니다 독일은 세계제패(世界制覇,세계제국)를 목표로 노력한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말한자는 자기가 4천만 평방 키로나 되는 지역을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또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양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폭로한 것은 결국은 그들의 상상병의 소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변치않은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독일동쪽에 확고한 상태를 수립하는 것인데 그를 위해서 우리들은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들의 의도는 소련의 의도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독일과 소련은 결의를 갖고 과거에 있어서의 분쟁을 매장하고 다시는 다른 손해의 원인이 될 그러한 모든 일을 저지하려는 바입니다 독일과 소련은 서로 명확한 세력 범위의 경계를 확정하여 그 국경선 양쪽에서 서로 평화와 질서를 수립 하였습니다
당시 독일. 소련간의 감정적 분계선 서쪽 지역의 재건에 있어 서독일정부의 목적을 나는 다음과 같이 성명하는 바입니다
첫째 역사상, 인종상 ,경제상에 입각한 정확한 독일국경의 획정
둘째 전지역에 걸친 민의를 존중하고 재건할 것
셋째 독일과 그 세력범위에서 완전한 안전보장
넷째 경제 문화적 재건
다섯째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인종상태의 신질서 확립입니다
즉 이 민족(게르만족)의 이주로 오늘의 상태보다도 더욱 양호한 분계선을 확립하자는 일입니다
남부와 동남 구라파에 있어서는 정주(정착)하지 않는 소수민족이 이주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와 인종관념으로 말하여 그와 같은 이민족(異民族)을 동화(同化)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라고 믿읍니다
그러나 이들 소수민족을 이주시킴으로써 이 분쟁의 소원을 제외하는 것을 구라파에서의 생존영역의 원대한 질서확립에 대한 중대한 사명으로 봅니다
독소 양국은 이 점에 관해서 상호간에 원조하기로 의견이 일치되었습니다
독일정부는 남아 있는 신(新)폴란드가 독서간의 장애물로 존립할 것을 허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는 탁상공론만으로만 해결 할 수 없습니다
<베르사이유>에서 이 중대한 문제를 결정한 정치가의 거의 전부는 역사적 예비지식 조차 가지지 않고 실제에 있어서는 전연무지한 일까지 하였습니다
미국이 <베르사이유>조약비준을 거절하고 국제연맹가입을 거절한 이래 국제연맹이라는 것은 권익국(權益國)의 오합세대(烏合世帶)로 타락한 것입니다
당초부터 필요하였던 개정(改訂)도 성취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국제연맹은 산 것이 아니고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생존하고 그 생활권을 국제연맹이 무능하기 때문에 해결하지 못한 때에는 스스로 해결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국가주의는 국제연맹을 개정할 의사를 막으려는 그러한 악으로써 성장한 듯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국제연맹이 무능한 까닭에 스스로 개정하려한데 불과합니다 만약 외국정치가 일어나서 이 개정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나를 신용할 수 없다고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반겨하고 싶습니다
원래 나는 독일국가에 대해서 <베르사유>조약을 폐기하고 대국민으로써의 자연적 생존권을 재건하기로 굳게 맹세했습니다
내가 확보한 이 생활권의 정도는 극히 적은 것이었습니다
대영제국의 4천 6백만 영국인이 4천만 평방 킬로의 지역을 지배한다면 8천만 인구를 가진 독일사람은 8천만 평방 킬로의 땅에서 생존할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또 구 식민지를 요구할 권리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나는 다시 내가 제출한 모든 요구에 대해서는 교섭으로 개정하려 기도했습니다
나는 대영제국이 그 생존권익의 존중을 스스로 탄원하리라고 생각되지 않는 동시에 국가사회주의 독일로부터도 또한 생존권을 탄원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는 바입니다
<베르사이유>조약에 의한 폴란드는 여하튼 절대로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의 2대 강국 독일과 소련이 보증합니다
잔존하는 폴란드 재건 문제는 결코 1-2주간에 해결될 문제로 압니다
그 결정석 구성은 독일과 소련양국에 의해서 발전될 것입니다
유럽의 데모크라시(민주주의) 여러 나라들은 이러한 정서 상태의 초대에 대해서 적어도 최근에 와서는 아무런 능력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파레되나>의 예를 보더라도 타인 문제에 개입하느니 보다 자기 자신의 문제에 전념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독일은 <베메이루>와 <메륜>지방에 질서를 다시 세웠을 뿐만아니라 경제적 부흥 민족간의 이해를 가져왔습니다 영국은 이와 같은 것을 실증할 수 있게 되려면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래 날때부터 운이 나쁘다고 할 <폴란드>를 위해서 수 백만의 인명을 희생시키고 수십억의 물자를 잃어 버린다는 것은 무릇 불합리 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독일은 영국에 대해서 한가지라도 그 무엇을 요구한 일이 있는가? 독일은 아직 영국에 대해서는 물론이요 불란서에 대해서도 요구한 일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 전쟁은 오직 신성전과 <베르샤유>조약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하려는 것입니까?
만일 그렇다고 하면 독일은 그 자체의 붕괴도 원치않고 또 제2의 <베르샤유>조약의 존재도 허용하지 않는 까닭에 수백만의 인간은 싸우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3년, 5년 혹은 8년이라는 전쟁 후에 성공하였다고 해도 제2의 <베르샤유>체제는 다시 파괴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왜그러느냐 하면 민족의 생명적 이해 투쟁은 금후 5년이나 10년을 지나도 <베르샤유>조약 후 20년이 지난 오늘날과는 눈끌만치도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일과 소련 경계선은 서쪽 구<폴란드>에 있어서 독일의 질서 재건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역사적 민족학적 모든 조건과 합치되는 국경설정
둘째 민족주의에 대한 전체적 생존권의 조정
셋째 전(全) 동구라파제국에 관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문제와 관련해서 <유태인> 문제의 해결을 기도할 것
넷째 경제생활 및 교통도의 수복,
다섯째 대(大)지역의 안녕회복
여섯째 폴란드의 건설등입니다
다만 그 곳에서는 독일에 대해서 아무런 누도 느끼지 않고 또 독일과 소련 양국간의 분쟁 대상이 되지 않는 보증이 부여되는 경우입니다
폴란드에서의 가혹한 빈곤은 구조에 적절한 조치를 얻어 융화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독일과 소련 양국이 이 불안한 지역을 평화로운 지대로 재건하려는데 대해서는 구라파는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은 독일이 큰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명이야 말로 결코 제국주의가 아니고 백년 뒤에서까지도 계속하는 대업입니다 이것을 시인하느냐 않느냐는 이 지방의 정치적 질서 재건과 경제개혁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일곱째로는 구라파에 있어서의 안전감을 양성하는 일입니다
이 제일 전제조건은 구라파제국은 외교정책의 목표를 절대로 명확히 해야 합니다 독일에 관한 한장부는 그 성명의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인해 둡니다
즉 <베르샤유>조약은 존재한다고 간주(看做)하지 않고 따라서 모국에 향해서 당연하고도 적절한 식민관을 요구하는 것 그외에 이미 아무런 수정도 필요의 원인도 없습니다
우선 첫째로 독일식민지의 반환을 요구합니다
이 식민지의 요구는 결코 최후통첩이 아니고 역사상 권리의 요구에서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자원분배에 참여하려는 자연적 권리의 욕구의 권리에 기초 둔 것입니다
둘째로 국내 경제질서를 전제로한 국제경제 부흥의 요구입니다 이것을 쉽게 하기 위해서 시장의 신질서 통화의조정 통상 상벽의 제거에 대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셋째로 구라파의 평화회복의 중요조건으로서 나는 구라파 여러나라들의 보증을 듭니다
그러나 이성에 뿌리를 둔 군비제한과 현재 무기사용 제한이 긴요합니다 광범한 법칙을 심리하기 위해서 구라파 각국이 협력한다면 그 시기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다만 그러한 국제회의는 대포소리나 동원된 군대의 압박하에서는 개최되지 않습니다 수백만명이 피를 흘리고 수십억의 물자를 소비하기 전에 앞서 말씀 드린 해결법을 선택하는 편이 보다 이성적 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서구라파에 있어서 현상유지의 파괴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불란서가 <자르 브르큰>을 폭격하면 독일은 대항 수단으로서 <뮤으로 하우젠>을 분쇄할 것입니다
불란서가 <가루르 수르에>를 폭격하면 독일은 <스트라스 부르크>를 폭격할 것입니다 포병대가 분쇄할 수 없는 곳은 항공대가 이를 행할 것입니다
이것은 저널리스트에게 흥미 있는 일일 것이며 또 비행기 제작업자에게도 흥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희생자에게는 단연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 파멸의 전쟁인 구라파 전쟁은 구라파 전체에 한하지 않고 해외 저 멀리로 확대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미 성(城)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라파 국민의 재산은 유탄으로 파괴되고 전장의 유혈이라는 참극으로 국민의 힘은 소모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때든지 독일 불란서 사이의 국경은 이루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쪽에서도 이쪽에서도 무수한 무덤과 무한한 공동묘지만이 남을 것입니다
내가 감히 이러한 성명을 하는 것은 우리 국민에게 고민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처칠씨와 그 일파의 의견이 승리을 거둔다면 나의 이 생명은 최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싸울 뿐입니다
여하한 무기의 위력도 시간도 독일을 제압할 수는 없습니다
1918년 11월 독일에서 두번 다시 되풀이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유물 역사상 아직은 두사람의 승리자는 없었으나 먼저 번의 세계대전에서 양편은 함께 패전자롤 마친 것은 역사상의 사실입니다
보다 나은 해결법의 발견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손을 붙들 것을 희망하는 바입니다
신이 처음 격려에서 우리군대와 우리의 정의를 찬양해 주신데 감사를 드리며 동시에 독일국민과 전 구라파의 평화가 다시 오도록 비는 길을 가르쳐 주시기를 나는 빌려고 하는 바입니다 (연설문)

-1936년 <단치히>문제로 발단한 독일과 폴란드간에 항쟁은 중일전쟁(中日戰爭)에 뒤이어 제2차대전으로 확대 되었다 당시 영국 프랑스 독일을 싸고도는 유럽전쟁에 있어서 무력전과 함께 경제전, 선전전등 입체 전쟁이 눈부시게 전개되었는데 이 연설은 1937년 10월 6일 <히틀러>가 독일 국회에서 전쟁발단을 변명한 것이다 동년 10월 10일의 <다라디에> 불란서 수상, 10월 21일의 영국 수상 <쳄벤렌>양씨의 연설과 함께 제2차 대전의 진상을 아는데 좋은 사료(史料)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