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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테레사 수녀 탄생 100주년 행사 열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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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테레사 수녀 탄생 100주년 행사 열려

CIA Bear 허관(許灌) 2010. 8. 29. 19:49

 

 "자비의 천사" 테레사 수녀 탄생 100주년 행사가 26일 인도 콜카타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펼쳐진다. 테레사 수녀가 사랑의 선교회를 이끌었던 콜카타에서는 특별 미사가 열리고 인도철도청에서는 푸른색의 "마더 테레사 특급 열차"를 새로 운행할 예정이다.

   콜카타에서는 테레사 수녀 국제영화제도 창설돼 테레사 수녀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와 전기영화가 상영된다. 뉴델리와 동유럽에서도 테레사 수녀 탄생 100주년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뉴욕에서는 타임스 광장에 푸른색과 흰색으로 점멸되는 거대 광고판이 설치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다.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 코소보에서도 이날 테레사 수녀의 생전 활동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전이 개최된다. 마케도니아 의회는 이날 테레사 수녀를 기리는 특별 회의도 가질 예정이다.

   테레사 수녀는 1910년 8월 26일 마케도니아 스코프예에서 알바니아계 부모 사이에 태어났으며 1929년 인도에 도착한 후 2년 후에 수녀로서 첫 서원을 하고 테레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테레사 수녀는 1948년 콜카타에서 빈민 구제를 위한 사랑의 선교단을 창설하고 1997년 선종 때까지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들의 구호 활동에 헌신했다.

   헐벗고 굶주리고 병약한 사람들을 위한 사랑으로 '콜카타의 성녀'로 불린 테레사 수녀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2003년 복자의 반열에 오르는 등 가톨릭 교회의 시성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 1910년 8월 26일~1997년 9월 5일)는 본명이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Anjezë Gonxhe Bojaxhiu)인 알바니아계의 로마 가톨릭 녀로, 1950년 인도 콜카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였다. 이후 45년간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빈민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인도와 다른 나라들에서 헌신하였다.

1970년대를 통해 세계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로 널리 알려졌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1980년 인도의 가장 높은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를 수여받았다.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는 계속 확장하여 그녀가 사망할 무렵에는 나병과 결핵,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원과 거처, 무료 급식소, 상담소, 고아원, 학교 등을 포함해 123개 국가에 610개의 선교 단체가 있었다.

그녀는 사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어 "캘커타의 복녀 데레사"라는 호칭을 받았다.

 

 

1.생애

  • 1910년 스코페알바니아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남. (당시 오스만 제국, 현 마케도니아 공화국)
  • 1928년 아일랜드 로레토 수녀회 입회.
  • 1928년 로마 가톨릭 수녀가 됨. 테레사로 개명.
  • 1950년 인도에 귀화.
  • 1950년 사랑의 선교회 (Missionaries of Charity) 설립.
  • 1952년 8월 22일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Home for Sick and Dying Destitutes) 또는 "순결한 마음의 장소"(Place of Pure Heart, 벵골어 Nirmal Hriday의 번역)로 불리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개설. 테레사 수녀는 콜카다 시청에서 제공한 건물을 사용하였다. 그 건물은 칼리 신전 뒤에 있는 건물이었으며 순례자들의 숙소로 쓰였다. 건물이 사용하기 편리했으므로(전기 공급, 취사설비,넒은 안마당)기꺼이 사용을 마음먹었다. 당시 힌두교도들은 기독교인들이 선교활동을 위해 건물을 이용할 것이라고 의심하여 시위를 벌였으나,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종교에 구애없이 복지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받아들였다.
  • 1955년 9월 23일 "때묻지 않은 어린이들의 집"(시슈 브하반)이란 이름의 어린이 보호시설을 개설. 1958년에 90명의 어린이들이 살수 있는 공간이 마련됨. 경찰과 공무원들은 고아와 버려진 어린이들을 보냈으며, 어린이들의 집에서는 이들을 먹이고 도 고쳐주었다. 어린이들은 교육도 받았으며, 해외로 입양되었다. 갓난 아기는 기독교인인 것을 알 수 있을 때만 세례를 주었다.
  • 1968년 한센병 환자 공동체 평화의 마을(Shanti Nagar)을 개설.
  • 1975년 회복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선물"(Prem Dan)이란 이름의 장기 요양소를 개설.
  • 1979년 노벨 평화상 수상
  •  

 

"저는 우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청빈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배고프고 벌거벗고 집이 없으며 신체에 장애가 있고 눈이 멀고 병에 걸려서,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며 사랑 받지 못하며 사회에 짐이 되고 모든 이들이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기쁘게 받습니다."

2. 비평

테레사 수녀는 부자들의 성녀라는 비평을 받았다. 테레사 수녀는 가난을 하늘의 뜻이라며 미화하여 캘커타 민중들의 계급투쟁 전통을 방해했으며, 해방신학,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로마 가톨릭신학적인 변화같은 진보적인 신학들에 반대하였다.그래서 부자들에게는 인도주의자,박애주의자라는 찬양을,민중들에게는 부자들의 성녀라는 냉소를 받았다

 

 

                                                                   레이건 대통령이 테레사 수녀에게 평화의 메달을 수여하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