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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도자 "인권 대통령" "평화의 전도사" 카터 본문

대한민국 전직대통령 자료

세계의 지도자 "인권 대통령" "평화의 전도사" 카터

CIA Bear 허관(許灌) 2007. 12. 19. 13:46

1.세계의 지도자 '인권 대통령' 카터

지도자는 국민들을 웃게도 만들고 울게도 만듭니다. 어떤 지도자는 국민들을 고난에 빠뜨리고 어떤 지도자는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지난주 조지아 주 에모리 대학에서 가진 강연회: 지미 카터 (Jimmy Carter) 전 미 대통령 - RFA PHOTO/장명화

오늘부터 자유 아시아 방송은 세계의 지도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이시대의 지도자는 어떻게 인민들을 위해 일해야 하고 국가와 인민들은 지도자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RFA "세계의 지도자" 시리즈에서 여러분과 함께 그 답을 구해봅니다. 오늘 첫 편은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입니다. 장명화 기자가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고향, 조지아 주를 찾았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 "How are you doing? Thank you for coming!"

나지막한 목소리로 '안녕들 하세요? 와주어서 고마워요'라고 정겹게 인사합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젊은 어머니, 휠체어에 앉은 노인, 양손에 가득 책을 든 중국계 미국인. 평일인데도 전 미국 대통령의 신간을 사서, 저자의 서명을 받으려고 몰려든 사람만 최소 500명입니다. 신간 '백악관을 넘어'에 막 친필서명을 받아 환하게 웃는 흑인 여성 록산 레드와인씨입니다.

록산 레드와인: (Oh, I think he's wonderful. He's been a legend....)

카터대통령은 정말 멋진 분이예요. 가히 전설적이죠. 전 아주 어릴 적부터 집에서 늘 그 분의 이름을 들으며 자랐어요. 오늘 여기 와서 뵙게 된 것이 큰 영광이에요. (기자: 카터 대통령의 어떤 점이 좋으신데요?) (레드와인) 국민을 위하잖아요. 국민을 위한다는 것, 그게 저한테는 가장 중요한 점이죠.

물러난 뒤에도 국민을 위해 일하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그의 고향 마을 주민들이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데 는 그가 비단 미국의 대통령을 지냈다는 경력 때문이 아닙니다.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나 물러났을 때나 국민들과 함께 하는 그의 자세 때문입니다.

북한을 방문, 고 김일성 주석과 함께 찍을 사진 - PHOTO courtesy of The Carter Center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 남한을 동시에 방문한 유일한 미국의 전직 대통령입니다. 비록 그의 북한 방문이 그가 대통령을 물러난 뒤에 이뤄졌다해도, 그는 남북한 국민들을 만나본 유일한 미국의 지도자입니다. 당시 그는 북한에 대해서는 핵을 갖지 말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북한 방문을 마친 뒤 김일성은 핵을 갖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런 그이기 때문에 최근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 쓴 소리를 자주 합니다.

Carter: (It would be deplorable and it ought to be prevented by diplomacy and by economic pressures, but if it should occur, as it has in North Korea...)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한탄스럽습니다. 외교와 경제제재로 해결해야합니다."

카터는 사람 존중 즉 인권을 잠시도 잊지 않았던 지도자입니다. 과거 한국에서 인권이 유린되던 시절 그는 이의 시정을 강하게 촉구했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카터는 당시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견제와 한국의 민주화를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 고위관료를 지낸 잭 헤이크스씨는 1975년부터 카터와 친하게 지내온 인삽니다. 카터가 북한을 제쳐두고 굳이 한국의 인권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Jack Hakes: (In many cases, you have to sort of say what your priorities are. In some ways, if you have alliance with a country...)

미국 에너지부 고위관료를 지낸 잭 해이크스 ( Jack Hakes) 씨 - RFA PHOTO/장명화

"대통령으로서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하죠. 한국과는 우선 동맹관계가 있었습니다. 동맹국으로서 높은 수준의 인권을 가지라고 촉구할 책임감을 느꼈던 겁니다. 북한과는 그런 동맹관계가 없었잖습니까?"

카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김영삼 등 반정부인사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결국 박정희 정부는 180명의 정치범 석방을 발표하고, 미국측은 주한미군 철수의 사실상 동결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카터가 추구하는 인권은 높은데 있지 않습니다. 늘 가까운데 있었고 그것은 대통령의 자리에 있다고해서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었고 그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나 자리에 물러나 고향에서 생활할 때나 늘 생활 속에서 추구해온 그의 가치이자 지도력의 바탕이었습니다. 오늘 책 사인회에 온 가족을 데리고 온 중년의 백인남성 패트릭씨의 말입니다.

Patrick: (He’s focused on human rights across the world. And he, more than any other president, has made that his focus, not just during his presidency, but his entire life. And that’s wonderful to be here to support him.)

"카터대통령은 세계 곳곳의 인권문제에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대통령 재임시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그런 관심을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더 많이 표했습니다."

이 시민의 말대로 카터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제 3세계의 독재 권력을 견제하고 인권을 개선하는데 주력해 국제인권신장에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는 지난 1979년 11월 일단의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해 미국인 직원을 인질로 붙잡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도 인질이나 미국인을 붙잡은 이란 학생들의 생명을 염려해 군사적 무력 사용을 건의하는 참모들의 건의를 모두 거절합니다. 지난 주 조지아 주 에모리 대학에서 가진 강연회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어려웠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신간 '백악관을 넘어'에 친필로 사인을 해 주는 카터 전 미 대통령 - RFA PHOTO/장명화

Carter: (We have about 75 hostages imprisoned by Iranians and they were held for 14 months. And almost all my advisers recommended that I attack Iran. I could have destroyed Iran...)

"당시 75명의 인질이 14개월간 억류돼있었습니다. 제 참모진들이 모두 이란을 공격하라고 조언했었죠. 미국의 엄청난 군사력으로 이란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었던 상황이죠. 하지만 공격하지 않기로 저는 결심했습니다. 대신 인내심을 갖고 협상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에게 행동으로 인질들을 구출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던 카터는 전면적인 군사작전이 아니라 가장 인명 피해를 적게 하고 인질을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것은 소수 정예의 특공대를 헬기로 이란에 넣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이 사막의 강풍으로 특공대가 탄 헬리콥터가 추락하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갑니다.

카터가 대통령 직에서 물러가면서 인질 사태는 끝납니다. 그러나 물러가면서도 행복한 웃음을 짓는 대통령이 됐습니다. 어느 누구의 생명도 다치지 않고 모든 인질들을 조국으로 돌아오게 한 그의 인권 우선의 협상이 있었기 결실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테네시 주에 사는 바워스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자신은 인질사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카터의 무능함을 질타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바워스씨는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평가를 달리 하고 있습니다.

Larry Bowers: (He has not an overpowering personality. He's not as good an orator as some presidents have been. I think his strength lies in the weaker areas, so that's why a lot of people do not feel he's not good, strong president...)

"카터는 강력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여느 대통령처럼 달변가도 아니구요. 그의 강점은 오히려 취약한 부분에 있다고 봐요. 그래서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카터를 유능한 대통령이라고 느끼지 않았던 게죠."

 

2.세계의 지도자  '평화의 전도사‘ 카터

 

자유 아시아 방송은 지난주부터 세계의 지도자들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이시대의 지도자는 어떻게 인민들을 위해 일해야 하고 국가와 인민들은 지도자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RFA "세계의 지도자" 시리즈에서 여러분과 함께 그 답을 구해봅니다. 오늘 두 편째 편은 계속해서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대통령입니다 장명화 기자가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고향, 조지아 주를 찾았습니다.

 

지난 2월 가나 북부 도시 Savelugu를 방문한 지미 카터 대통령 - PHOTO courtesy of The Carter Center

카터 전 미국대통령은 지금 자신이 석좌교수로 있는 에모리 대학에서 젊은 학생들과 종교, 인권,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흰 이를 드러내놓고 웃는 모습이라던가, 흰머리, 그리고 주름 많은 이마도 그가 대통령시절이었던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카터가 바라보는 세계는 지금도 지도자는 사람 존중, 인권이 존중돼야 그 사회는 평화롭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Carter: (It is hard for those in this auditorium to realize over half of the people in Nigeria live on less than 50 cents a day...)

"이 강당에 있는 여러분들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나이제리아 국민들이 하루에 미화 50센트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요.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를 해결하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교육이니, 의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나아가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불우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나누는 때가 오기를 희망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세계의 지도자' 기획물을 위해 남부 조지아 주 애틀랜타를 찾았을 때 카터 전 대통령이 세운 카터 센터는 카터 본인보다 카터를 가까이서 살펴본 관계자들의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이 갖는 다양한 인간존중과 지도자로서 갖는 사람을 위하는 그의 철학을 다양하게 들어보라는 의도로 보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카터는 다양한 모습이었지만, 인권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알차게 꾸려왔습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에너지부에서 고위관료로 일했고 지금은 카터 박물관장으로 있는 해이크스씨의 말입니다.

Dr. Jay Hakes: (There's often a lot of pressure on politicians to do just what is popular today. But if you look at how things will affect their children, their grandchildren, and great grandchildren...)

카터센터의 평화프로그램 (peace program)을 관장하고 있는 스트렘라우 박사 - RFA PHOTO/장명화

"정치가들은 종종 오늘 당장 인기 있는 정책을 구사하라는 압박이 심합니다. 하지만, 지금 결정한 정책이 자신의 자녀세대, 손자손녀세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면, 그렇게만 할 수는 없겠죠. 카터는 이점에서 지금 당장 인기가 없더라도 장기적으로 국가와 세계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리려고 애썼고, 지금도 애쓰는 지도잡니다."

카터센터의 평화프로그램 (peace program)을 관장하고 있는 스트렘라우 박사는 카터 전 대통령이 '세계 평화의 전도사'로 불리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합니다.

Dr. John Stremlau: (I believe that President Carter's leadership flows from a sense that peace is not merely the absence of conflict, but the presence of justice...)

"카터 전 대통령의 지도력은 평화란 단순히 분쟁이 없는 게 아니라, 정의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믿음에서 흘러나온다고 봅니다. 조금 더 공정하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러면서도 남의 입장을 공감해주는 지도력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게 바로 21세기가 요구하는 지도력이 아닐까요? 카터 전 대통령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도전은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이라구요. 그 격차는 인권의 보편적 증진과 존중에 대한 헌신, 그리고 정의를 한 단계 더 높게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로만 줄어들 수 있다고요."

카터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퇴임 직후부터 줄곧 보좌하고 있는 호크만 박삽니다.

Dr. Steven Hochman: (He is still deeply concerned about the world and not just deeply concerned. He is willing and able to take an active role and making th world a better place...)

카터 전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스티브 호크만 박사 - RFA PHOTO/장명화

"카터 대통령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상황에 대해 깊이 염려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염려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역할을 맡으려고 하고, 그렇게 함으러서 세계를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하지요. 인권과 평화를 위하는 일이라면 피하지 않아요. 대단하지요."

카터 대통령은 국민들은 의식주, 즉 먹고 입고 자는 일이 잘 해결돼야 편안하게 살 수 있고, 그렇게 사는 나라가 지구상에 늘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부정선거의 의심이 되는 머나먼 나라를 나이 든 몸을 이끌고 가서 공정한 선거가 되도록 참관하고, 낯설고 물 설은 남의 나라 땅이지만, 집 없이 어린 자식들과 자야하는 미개한 나라에 집을 지어주기도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일주일 혹은 그 이상을 벽돌을 쌓고 창문을 달고 페인트칠하고 있습니다.

1994년 김일성을 만났을 때처럼, 핵개발의 위협이 한반도상에 먹구름을 드리웠을 때는 핵위협의 제거가 남북한 국민들을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신념하에 혼자서 부인과 비서만을 대동한 채 고 김일성 주석과 만나기도 합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 한 미국 언론과의 회견에서 당시 주한미군의 게리 럭 (Gary Luck) 사령관이 자신에게 '만일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거의 하룻밤 사이에 한국에서 100만 명 이상이 숨질 것'이라고 말했으며, 그 때문에 자신은 북한행을 결정했던 것이라고 밝혔었습니다.

카터는 여러 자리에서 당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지만 않았더라면, 당시 합의한 내용이 옮겨져 지금처럼 한반도가 핵의 고통에서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늘 말해왔습니다. 10월 중순에 출간된 <백악관을 넘어: Beyond the White House>의 집필을 도운 호크만 박삽니다.

Dr. Hochman: (...but let me just say more likely that North Korea would have moved from building nuclear weapons to developing a peaceful nuclear capacity...)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는 대신 평화적 핵능력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갔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카터대통령이 김일성을 만났을 당시 북한은 진지한 자세로 나왔었거든요. 하지만, 부시대통령이 협상에서 대결로 정책을 바꾸는 바람에... 늦은 감은 있지만, 현재 미국이 협상을 택한 것은 잘한 거라고 보고 계십니다."

카터의 나이는 올해로 83세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젊습니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정치인이지만, 그를 정치인, 또는 전직 대통령으로 부르거나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잘 살거나 못살거나 국민과 함께 하면서 늘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실천하기 때문에 그를 부르는 호칭은 단 하나, '국민과 함께 하는 지도자'라는 겁니다.

시민: (President Carter is phenomenal. I'm trilled to meet him. This is my second time to meet him and it's a great honor. I think he's an amazing human being...)

"카터 전 대통령은 정말 대단해요. 오늘 이 책 사인회에 나와서 만난다는 게 흥분돼요. 큰 영광이죠. 카터 전 대통령은 훌륭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