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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古朝鮮) 성씨(姓氏) 본문

-平和大忍, 信望愛./韓中日 동북아역사(한자언어문화권)

고조선(古朝鮮) 성씨(姓氏)

CIA Bear 허관(許灌) 2026. 7. 18. 19:10

 

조선( 朝鮮)은 일출지야(日出之也).

地在東表 朝日鮮明(지재동표 조일선명)-땅이 동쪽에 있어 아침 해가 선명하다.

 

고조선 시대에는 성씨를 사용하는 문화가 널리 정착되지 않았으며, 사기등 초기 문헌에 등장하는 고조선 지배층의 성씨는 한씨(韓氏)와 왕씨(王氏)입니다.

한씨: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남하한 고조선 준왕의 후손들이 삼한의 '()'을 따서 사용하기 시작한 성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왕씨: 위만조선 시기부터 낙랑군까지 평양 지역 등에서 유력 세력으로 확인되는 성씨입니다. 왕씨는 고구려 대족장으로 지배계층이었습니다 개성 왕씨 - 고구려 대족 출신 성씨. 외가쪽 성씨가 고구려계 유민인 신천 강씨 가문.)

전통 족보에 따르면 기자조선의 후손들이 기씨(奇氏), 선우씨(鮮于氏) 등을 썼다고 전해지나 이는 후대에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커 정확한 역사적 사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조선 준왕의 후손들과 유민들이 남하하여 삼한(三韓)馬韓(高九麗),  卞韓(百濟), 辰韓(新羅) 등을 세웠다

三韓爲三國.

伏聞東海之外有三國, 其名馬韓·卞韓·辰韓. 馬韓則高麗, 卞韓則百濟, 辰韓則新羅也.

三韓的大韓之也.

 

단군왕검(檀君王儉)

단군(檀君, 壇君) 또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한민족의 신화적인 시조이자 고조선의 창건자로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한민족의 역사에서 시조로 추앙받았으며 대종교 등의 종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3] 단군은 직책으로 보이며 왕검, 왕험(王險)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의 역사서 중에 하나인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동국통감 외기등에서 한민족의 시조로 전해지고 있으며, 오늘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도 그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인정하며 역사서에도 등장하고 있다.

 

古朝鮮王儉朝鮮

고조선왕검조선

 

魏書云 "乃徃二千載 有壇君王倹, 立都阿斯逹経云 無葉山. 亦云 白岳, 在白州地或 云 在開城東 今白岳宮是.開國號朝鮮 與髙同時."

위서(魏書)에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서, (阿斯逹)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 불렀으니 고(: 요 임금)와 같은 때였다."라고 하였다.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庻子桓雄 數意天下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徃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即太伯今妙香山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糓·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고기(古記)에는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11] 환웅(桓雄)이 있어서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구하기를 탐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고 가서 그곳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웅은 무리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정(太伯山頂)의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왔으니, 그곳을 신시(神市)라 부르고 이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고 부른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운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니 무릇 인간의 360여 일들을 주관하여 세상에 있으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霊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軰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 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 而婚之孕 生子號曰 壇君王倹.

이때 한 범과 한 곰이 있어서 같은 굴에 살았는데, 항상 신웅(神雄)에게 기도하기를 변화하여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이때 신이 신령한 쑥 한 줌과 마늘 20매를 주면서 '너희가 이것을 먹으면서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모습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범이 받아서 이를 먹고 삼칠일(三七日: 21) 동안 삼갔더니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지만 범은 삼가지 못해서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함께 혼인을 맺지 못하므로 매양 단수(壇樹) 아래에서 아이 가지기를 바라며 빌었다. 웅이 이에 가화(假化)하고 그와 혼인하여 아이를 배니 아들을 낳으므로 단군왕검이라 불렀다.

以唐髙即位五十年庚寅唐堯即位元年 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都平壤城今西亰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逹,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旀逹.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即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亰 後還隠於阿斯逹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歳.

당고(唐高) 즉위 50년 경인(庚寅)[원주4]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여 처음으로 조선(朝鮮)이라 칭했다. 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또는 궁홀산(弓忽山)이나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림이 1,500년이었다. () 호왕(虎王: 주무왕)즉위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 아사달(阿斯達)에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었다. 나이는 1,908세였다고 한다."

삼국유사<기이> 1 -고조선(왕검 조선)-

 

二十一年, 春二月,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平壤者, 夲校勘 仙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

21(247) 2월에 왕이 환도성이 전란을 겪어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백성과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옮겼다.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의 땅이다. 다른 기록에는 왕이 되어 왕험(王險)에 도읍하였다.”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김부식(金富軾), 1145-

 

壇君記云 '君與西河河伯之女要親 有産子名曰 夫婁.' 今拠此記 則解慕漱私河伯之女 而後産朱蒙 壇君記云 '産子名曰 夫婁.', 夫婁與朱蒙 異母兄弟也.

단군기(檀君記)에는 '(;단군)이 서하(西河) 하백(河伯)의 딸과 더불어 혼인하니,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夫婁)라고 하였다.'고 했다. 지금 이 기록[20]에 따르면 해모수(解慕漱)가 하백의 딸과 사통해서 뒤에 주몽(朱蒙)이 났다고 하고, 단군기에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고 하였다.'고 하니, 부루와 주몽은 어머니가 다른 형제이다.

-삼국유사<기이> 1 고구려-

 

初誰開國啓風雲 / 처음 누가 나라를 열고 풍운을 시작했나?

釋帝之孫名檀君 / 제석(帝釋)의 손자로 이름은 단군(檀君)이라.

 

本紀曰 "上帝桓因有庶子曰 雄. 云云. 謂曰 '下至三危太白 弘益人間歟.' 故雄受天符印三箇 率鬼三千 而降太白山頂 神檀樹下. 是謂檀雄天王也. 云云. 令孫女飮藥 成人身, 與檀樹神婚 而生男 名檀君. 據朝鮮之域爲王, 故 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扶餘·穢與貊 皆檀君之壽也. 理一千三十八年 入阿斯達山爲神, 不死故也."

본기(本紀)에는 "상제(上帝) 환인(桓因)에게 서자(庶子)가 있어 웅()이라 하였다. 운운. 이르길 '삼위태백(三危太白)으로 내려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겠습니다.'라 하므로, 웅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귀()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정(太白山頂)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왔다. 이를 단웅천왕(檀雄天王)라고 부른다. 운운. 손녀에게 약을 마시게 하여 사람의 몸으로 만들고, 단수신(檀樹神)과 더불어 혼인시켜서 남자를 낳으니 이름이 단군이다. 조선(朝鮮)의 영역에 웅거하여 왕이 되었으니, 고로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夫餘), ()와 맥() 모두가 단군의 후손이다. 다스린 것이 1,038년이고 아사달산(阿斯達山)으로 들어가 신()이 되니, 죽지 않기 때문이었다."라고 하였다.

 

竝與帝高興戊辰 / (: 요임금)와 함께 나란히 무진(戊辰)에 흥하여,

經虞歷夏居中宸 / (: 순임금)를 지나 하()를 거쳐 대궐에 살다가

於殷虎丁八乙未 / () 호정(虎丁: 무정) 8년 을미(乙未)

入阿斯達山爲神 /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이 되었네.

 

亨國一千二十八 / 나라를 향유함이 1,028년인데

無奈變化傳桓因 / 어쩔 수 없이 변화하여 환인(桓因)에 전했으나

却後一百六十四 / 도리어 164년이 지난 뒤에

仁人聊復開君臣 / 어지신 분(기자)[23]이 군신(君臣)을 다시 열었도다.

제왕운기하권初誰開國啓風雲 / 처음 누가 나라를 열고 풍운을 시작했나?

釋帝之孫名檀君 / 제석(帝釋)의 손자로 이름은 단군(檀君)이라.

 

本紀曰 "上帝桓因有庶子曰 雄. 云云. 謂曰 '下至三危太白 弘益人間歟.' 故雄受天符印三箇 率鬼三千 而降太白山頂 神檀樹下. 是謂檀雄天王也. 云云. 令孫女飮藥 成人身, 與檀樹神婚 而生男 名檀君. 據朝鮮之域爲王, 故 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扶餘·穢與貊 皆檀君之壽也. 理一千三十八年 入阿斯達山爲神, 不死故也."

본기(本紀)에는 "상제(上帝) 환인(桓因)에게 서자(庶子)가 있어 웅()이라 하였다. 운운. 이르길 '삼위태백(三危太白)으로 내려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겠습니다.'라 하므로, 웅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귀()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정(太白山頂)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왔다. 이를 단웅천왕(檀雄天王)라고 부른다. 운운. 손녀에게 약을 마시게 하여 사람의 몸으로 만들고, 단수신(檀樹神)과 더불어 혼인시켜서 남자를 낳으니 이름이 단군이다. 조선(朝鮮)의 영역에 웅거하여 왕이 되었으니, 고로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夫餘), ()와 맥() 모두가 단군의 후손이다. 다스린 것이 1,038년이고 아사달산(阿斯達山)으로 들어가 신()이 되니, 죽지 않기 때문이었다."라고 하였다.

 

竝與帝高興戊辰 / (: 요임금)와 함께 나란히 무진(戊辰)에 흥하여,

經虞歷夏居中宸 / (: 순임금)를 지나 하()를 거쳐 대궐에 살다가

於殷虎丁八乙未 / () 호정(虎丁: 무정) 8년 을미(乙未)

入阿斯達山爲神 /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이 되었네.

 

亨國一千二十八 / 나라를 향유함이 1,028년인데

無奈變化傳桓因 / 어쩔 수 없이 변화하여 환인(桓因)에 전했으나

却後一百六十四 / 도리어 164년이 지난 뒤에

仁人聊復開君臣 / 어지신 분(기자)이 군신(君臣)을 다시 열었도다.

-이승휴(李承休), 1287. 제왕운기하권-

 

(전략)()이 일찍이 상국(上國)에 사자로 갔을 때 요하 가에 있는 노변(路邊)에 무덤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이 '부여 부마(駙馬)대왕의 무덤이다'라고 하였다. 또 가탐(賈耽)[27]"큰 평원의 남쪽의 압록(鴨綠)은 모두가 부여의 옛 땅이니 북부여란 것은 마땅히 요하 가에 있었을 것이다. 그 개국(開國)은 대개 후조선으로부터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동명 본기에서 적기를, "비류왕 송양이 일러 말하길 '나는 선인의 후예로 대대로 왕이 되었다. 금일 그대는 나라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의 부용이 되는 게 어떠하겠는가?'라고 한 것은 이 또한 단군의 후손이 아니겠는가?"(比流王松壤謂曰 予以仙人之後 累世爲王 今君造國日淺. 爲我附庸可乎 則此亦疑檀君之後也)라고 하였다.

-제왕운기-

 

平壤之先 仙人王儉 / 평양의 선조는 선인왕검(仙人王儉)으로

至今遺民 堂堂司空 / 오늘에 이르러 남은 백성이 당당한 사공(司空)[28]이시네.

平壤君子 在三韓前 / 평양의 군자는 삼한(三韓)에 앞서 있으면서

壽過一千 胡考且仙 / 나이 1천이 넘도록 장수하여 신선이 되었어라.

-이숙기(李叔琪), 1325. 조연수(趙延壽) 묘지명-

始古開闢東夷主自註 昔神人降檀木下 國人立以爲王 因號檀君 時唐堯元年戊辰也 增註 古記云 上帝桓因 有庶子曰雄 意欲下 化人間 受天三印 率徒三千 降於太白山神檀樹下 是爲桓雄天王也 桓或云檀 山卽今平安道熙川郡妙香山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雄願化爲人 雄遺靈艾一炷二十校 曰食之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食之 虎不能忌 而熊忌三七日得女 身無與爲婚 故每於檀樹下呪願有孕 雄乃假化而爲人 孕生子曰檀君 與唐堯同日 以立國號朝鮮 初都平壤後都白岳 聚非西岬河伯之女 生子曰夫婁 是爲東夫餘王 至禹 會諸侯塗山 檀君遣子夫婁 朝焉檀君歷虞夏至商武丁八年乙未 入阿斯達山 化爲神 今黃海道文化縣九月山也 廟至今存焉 亨年千四十八年 厥後一百六十四年 己卯箕子來封

 

옛날에 신인이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니 나라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세우고 인하여 그를 단군이라 불렀다. 이때가 당요 원년 무진년이다. 고기에 말하기를 상제 환인에게 서자가 있었는데, 웅이라 하였다. 인간세상을 탐내어 인간이 되어 천부인 3개를 받아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오니 이 분이 환웅 천왕이다. ()은 혹은 단()이라고도 한다. 산은 지금의 평안도 희천군 묘향산이다.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 ,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게 하여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항상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이때 환웅이 신령스런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는 이것을 먹되 햇빛을 100일 동안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이 되리라." 하였다. 범과 곰은 그것을 먹고 금기하였는데, 범은 금기를 지키지 못했지만 곰은 금기를 잘 지켜 21일 만에 여자가 되었다. 그러나 혼인할 상대가 없어 매양 신단수 아래에서 잉태하기를 빌었다. 이에 환웅은 잠깐 사람으로 변신하니 웅녀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단군이다. 단군은 당요와 같은 날에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불렀다. 처음 도읍지는 평양이었고 뒤의 도읍지는 백악산이었다. 비서갑 하백의 딸에게 장가 들어 부루를 낳았는데 이분이 동부여왕이다. 하나라 우왕 때에 이르러 제후들이 도산에 모일 때, 단군은 태자 부루를 보내었다. 단군은 하나라 우 임금을 거쳐 상 무정 8년 을미에 아사달 산에 들어가 신이 되었다. 지금의 황해도 문화현 구월산이다. 사당이 지금도 있다. 나라를 누리기 1,048년이었다. 그 뒤 164년 후에 기자가 와서 분봉받았다.

-권람(權擥), 1461. 응제시주(應濟詩註)-

 

檀君古記: 上帝桓因有庶子, 名雄, 意欲下化人間, 受天三印, 降太白山神檀樹下, 是爲檀雄 天王令孫女飮藥成人身, 與檀樹神婚而生男, 名檀君, 立國號曰朝鮮朝鮮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扶餘濊與貊, 皆檀君之理

 

단군고기(檀君古記)에 이르기를, "상제(上帝) 환인(桓因)에게 서자(庶子)가 있으니, 이름이 웅()인데, 세상에 내려가서 사람이 되고자 하여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가지고 태백산(太白山)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강림하였으니, 이가 곧 단웅천왕(檀雄天王)이 되었다. 손녀(孫女)로 하여금 약()을 마시고 인신(人身)이 되게 하여, 단수(檀樹)의 신()과 더불어 혼인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 이름이 단군(檀君)이다.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조선(朝鮮), 시라(尸羅), 고례(高禮), ·북 옥저(南北沃沮), ·북 부여(東北扶餘), ()와 맥()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변계량(卞季良), 1454.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지리지> 평양부 단군고기-

 

단군이 거느리는 박달족이 마고할미가 족장인 인근 마고성의 마고족을 공격했다. 싸움에서 진 마고할미는 도망친 후 박달족과 단군의 동태를 살폈는데 단군이 자신의 부족에게 너무도 잘해 주는 것을 보게 된다. 마고는 단군에게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단군은 투항한 마고할미와 그 아래 아홉 장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극진히 대접했다. 아홉 손님을 맞아 대접한 곳이 구빈(九賓)마을이고, 마고가 항복하기 위해 마고성으로 돌아오면서 넘은 고개를 왕림(枉臨)고개라고 한다.

-평양시 강동군 남쪽 구빈마을의 전설-

고조선의 추정 세력 범위

조선이란 명칭이 땅이 동쪽에 있어 아침 해가 선명하다(地在東表 朝日鮮明)’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는 조선이란 한자의 뜻을 새긴 풀이에 불과하다.

 

또 만주어에서 관할구역을 나타내는 주신(珠申)’에서 비롯되었으며, 조선 · 숙신 · 여진 등이 모두 같은 어원을 지녔다는 설이 있고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아사달(阿斯達)’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가장 이른 시기에 제기된 설로, 위나라 사람 장안(張晏)은 습수(濕水) · 열수(列水) · 산수(汕水)라는 강 이름에 조선이란 명칭의 연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까지로선 조선이란 국호의 어원은 명확치 않다.

 

고조선(古朝鮮, 기원전 5세기 이전[~ 기원전 108)은 단군왕검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한반도 최초의 고대 국가이다. 본래 국호는 조선(朝鮮)이나 태조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흔히 고조선(古朝鮮) 으로 총칭한다.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는 일반적으로 고조선이 청동기 문명을 기반으로 한 현 중국 랴오닝성 및 북한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에 있던 고대 국가라고 파악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지는 않으나 조선이란 국호만 한 차례 등장한다. <신라본기> -시조 혁거세-'신라 6촌의 주민들은 본래 조선의 유민이다.'라는 기록에서 조선이 한 번 언급된다

"사로국( (斯盧國)  6촌(村) 성씨(姓氏)

신라 건국의 모태인 사로 6(6)의 촌장들은 서기 32(유리왕 9) 성씨를 하사받았습니다. 하사받은 6성씨는 이(), (), (), (), (), ()이며, 각 촌과 성씨의 연결은 아래와 같습니다.

알천양산촌 (閼川楊山村): () (경주 이씨)

돌산고허촌 (突山高墟村): () (경주 최씨)

무산대수촌 (茂山大樹村): () (경주 손씨)

자산진지촌 (觜山珍支村): () (경주 정씨)

금산가리촌 (金山加利村): () (경주 배씨)

명활산고야촌 (明活山高耶村): () (경주 설씨)"

 

-조선 후기 위만조선 대신 마한을 고조선의 정통 계승자로 보는 마한 정통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등장했다. 홍여하는 고조선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위만의 나라와 마한이 되었으며 기자조선 즉 한조선 다음 고조선사는 마한을 정통으로 놓고 서술하였다. 홍만종과 안정복은 마한을 중국 삼국 시대의 촉한에 비유하였으며, 이익은 마한으로 국호를 바꾼 것은 주나라가 도읍을 옮기면서 국호를 바꾼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였다. 비록 후기 고조선이 남과 북으로 나뉘었지만 고조선의 정통 계승자는 남쪽 왕조인 마한이라는 것이었다.[마한정통론]

 

고조선 준왕의 후손들과 유민들이 남하하여 삼한(三韓)  馬韓(高九麗),  卞韓(百濟), 辰韓(新羅) 등을 세웠다

三韓爲三國.

伏聞東海之外有三國, 其名馬韓·卞韓·辰韓. 馬韓則高麗, 卞韓則百濟, 辰韓則新羅也.

三韓的大韓之也.

 

-허황옥(許黃玉)은 인도 동부지역의 중국 남방 종족으로 추정 되며 불교를 한반도 전파한 종족이며 , 차를 전래하고, 한자(漢字) 성씨(姓氏)를 전래한 종족이다

전설(가락국기)에 따르면, 허황후가 가야 땅에 도래할 때 허황옥의 오빠이자 승려 허장유(許長有)와 신하 신보(申輔), 조광(趙匡)과 그 두 사람의 아내 모정(慕貞), 모량(慕良), 시종 등을 포함해 20여 명이 상륙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落國記』에 따르면 수로왕비인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은 48년에 5월에 인도를 떠나 그해 7 27일에 김해에 도착했는데, 20여 명의 수행원과 함께 왔으며, 혼수품으로 금, , 폐물, 비단과 함께 차 씨앗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신라 30대 문무왕이 661년에 가락왕묘에 제향을 올리도록 조칙을 내렸을 때 제물로 차를 올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과 함께 동행한 승려인 그의 오빠 장유화상(長遊和尙)은 가야에 불교를 전파하였다고 전한다. 그의 속명은 보옥(寶玉)인데, 부귀를 뜬구름같이 보고 티끌 세상을 초연하여 불모산(佛母山)으로 들어가 오래 머물며 나오지 않았으므로 장유화상이라 불렸다. 그는 말년에 수로왕의 7 왕자를 데리고 가야산으로 들어가 3년을 수도한 끝에 신선이 됐고 지리산 반야봉 아래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7왕자를 성불하게 했다고 한다.

일곱 왕자가 수도할 때에 어머니 허왕후는 왕자들이 보고 싶어 자주 운상원을 찾았으나 오빠인 장유화상이 왕자들의 불심을 어지럽힌다 하여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장유화상이 일곱 왕자들이 부처가 돼 승천(昇天)을 하게 됐다고 전하며 수도원 아래 연못을 가리켰다. 허왕후가 그곳을 보는 순간 연못에 일곱 왕자의 모습이 비치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그 연못을 영지(影池)라고 한다. 수로왕이 부처가 된 일곱 왕자를 위해 그 자리에 칠불사(七佛寺)를 지었다. 이외에도 장유화상이 건립한 사찰은 밀양의 만어사, 부은암, 김해의 해은사, 흥부암, 은하사, 동림사 등이 있다.

조선 초기 주세붕의 무릉잡고 속에 1544년에 쓴 장유사 중창기에 의히면 장유사를 처음 창건한 사람은 장유화상이라 밝히고 있다. 조선 후기에 1708년에 승려 증원(證元) 김해 명월사 사적비 비문에서는 장유화상이 서역으로부터 불법을 전하여 가락국에 불교의 신봉이 융성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금관가야 8대왕 질지왕(銍知王) 때 재건한 김해 불모산 장유사(長游寺)에는 장유화상사리탑이 현존하고 있다. 장유화상의 사리탑은 1983 7 20일 경남도 문화재자료 31호로 등재되었다.

 

성골(聖骨)

성골(聖骨)은 신라 시대 골품제도에서 가장 높은 최상위 신분으로, 왕위 계승권을 독점했던 신성한 혈통을 의미합니다. 부모가 모두 순수 왕족 혈통인 경우에만 성골로 인정받았습니다

신라 시대의 성골은 골품제 '뼈의 등급'을 뜻하며, 성골은 그 중 1등급에 해당했습니다.성골의 혈통 조건은 부계와 모계 모두 왕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순수 왕족 집단입니다.

왕위 계승권: 초기 신라에서는 오직 성골만이 왕(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소멸: 성골 남성이 점차 줄어들면서 결국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즉위하였으며, 진덕여왕을 끝으로 성골 혈통이 소멸하자 이후부터는 진골 출신의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왕위를 잇게 되었습니다.

성골은 경주 박씨(朴氏)와 경주 석씨(昔氏) 그리고 경주 김씨(金氏)입니다

박혁거세(朴赫居世)는 기원전 57년에 신라(사로국)를 건국한 초대 국왕(거서간)이며, 경주 박씨 시조이다

석탈해(昔脫解, 脫解尼師今)은 신라의 제4대 이사금으로, ()은 석()이고, 휘는 탈해(脫解)이다. 서기 8년에 남해차차웅의 사위가 되며, 10년에 대보(大輔)로 등용되어 정사를 맡았고 57년 유리이사금의 유언에 따라 왕이 되었다 경주 석씨의 시조이며 신라 석씨 왕조의 첫 번째 임금이고 칭호는 이사금이다

김알지(金閼智)는 신라 김씨(新羅 金氏) 왕조(王朝)의 시조(時調)이자 경주 김씨 시조로 탈해 이사금(脫解 尼師今)의 양자로 그의 7대손 미추 이사금(味鄒 泥師今)이 김씨(金氏) 최초로 왕에 즉위하였다

금관가야국(가야국)이 변한(卞韓) 남방과 진한(辰韓) 서남부 지역을 장악한 세력으로 가야국 도움으로 사로국이 신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진골(眞骨)

진골(眞骨)은 신라의 계급체계 골품제에서 성골의 바로 아래 계층이다.

초기에는 왕위계승권이 없었던 고위 귀족층으로 추측되나 신라 중기 진덕여왕을 마지막으로 성골의 대가 끊기자 진골 출신인 상대등 김알천이 김춘추에게 실권을 넘겨주고,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으로 즉위하면서 이후 왕위계승권까지 가진 통일신라시대 최고위 귀족층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진골을 왕족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더 폭넓은 계층이었다. 진골은 왕족 외에도 중고(中古)시대의 왕비족에 해당하는 유력 가문, 신라에 병합된 큰 국가의 왕족들에게도 주어졌다. 금관가야 왕족 후손인 김유신의 집안 김해 김씨도 진골이었다. 이처럼 왕성 이외의 다른 성씨들도 진골에 포함되어 있었다.

 

또 국성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진골인 것은 아니었다. 김씨(경주 김씨)나 박씨 중에서도 6두품인 경우가 있었다. 진골 집안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왕실과 혈연적으로 멀어지면 족강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신라 하대로 가면 왕성이라 하더라도 진골보다 6두품인 경우가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 김씨의 경우에도 6두품이 많았다. 이처럼 같은 성씨 안에서도 진골, 6두품 등 계층이 갈렸고, 진골인 경우는 상대적으로 귀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막장 상황이었던 9세기 신라 하대에는 대를 이어가며 계속된 끝에 진골의 숫자가 너무 늘어나, 특권이 군주의 근친에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며 진골끼리의 동질감이 떨어지고 분화, 결국 서로간에 왕위를 두고 열심히 싸우게 된다.

 

대부분의 진골은 신라 초창기부터 귀족이었던 자들이 대물림하면서 내려오는 지위였지만 다른 국가 출신으로서 최상급인 진골에 편입된 인물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항복한 금관가야의 왕실이 진골에 편입되었는데, 이것이 이후 문명왕후와 김유신의 가문이다. 그리고 고구려 부흥운동을 벌이던 안승이 보덕국왕의 직책을 받으면서 진골이 되었다. 또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이후 신라에서 사신을 보냈는데, 이때 신라가 사여한 벼슬이 대아찬으로써 진골의 품계이니 대조영을 명목상이지만 진골로 인정한 경우가 된다. 마지막으로 시골 호족[3] 출신으로 말갈족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다 전사한 소나가 진골만이 받을 수 있는 잡찬을 추증받아 유일무이한 평민 출신 진골이 되었다.

 

-신라 992년 역사(BC 57~935) 동안 총 56명의 왕이 배출되었으며, 왕위는 초기 박(), (), () 세 성씨가 번갈아 가며 차지하는 부족연맹체 형태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17대 내물왕부터는 김씨(金氏)가 왕위를 독점했습니다.

박씨는 신라를 건국한 시조 혁거세부터 3대 유리왕까지, 그리고 신라 말기 3명의 왕 등 총 10명의 왕을 배출한 성씨입니다

석씨는 4대 탈해왕을 시작으로 초기 신라의 왕권을 주도했던 성씨입니다.  8명의 왕이 배출되었습니다.

김씨는 3대 미추 이사금으로 처음 등장한 뒤, 17대 내물왕부터 본격적으로 왕위를 세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국가의 주축이 된 성씨입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김씨 성의 비율은 약 21.5%, 국민 5명 중 1명 꼴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김씨는 일본 조선족이나 미국, 중국 조선족 자치정부 등지에서 한국인의 성씨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주 김씨(黃金의 궤)가 김해 김씨( (金盒, 金官)에서 태동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가장 인구가 많은 김씨 본관 상위 3

김해 김씨 (金海 金氏):  445만 명으로, 전체 김씨 중 41.7%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성씨 및 본관입니다.

경주 김씨 (慶州 金氏):  180만 명으로 김씨 중 두 번째로 많습니다.

광산 김씨 (光山 金氏):  92만 명으로 세 번째 규모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 만주족의 시조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 성씨는 한국어(한자 성씨)로 해석하면 김(金) 씨 성씨입니다

금나라와 청나라의 시조나 국왕의 성씨는 아이신 기오로 (애신각라(Aisin Gioro, 愛新覺羅)로 김(金)씨입니다

만주족의 시조 아이신 기오로 (애신각라 Aisin Gioro, 愛新覺羅) 김씨는 바다 속의 사금(沙金) 김해(金海) 김(金)씨 금관가야 후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까치와 주과(붉은 과일, 감 홍시)는 한반도 남방 문화를 의미합니다[까치는 한국에서 예로부터 길조로 여겨져 왔다. 아침에 집앞에서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와서 길조로 여기기도 한다. 한국 농민들은 감 따위의 과일을 수확할 때에도 까치밥이라 하여 잘 익은 홍시 같은 여분의 과일을 그대로 남겨두기도 하였다. 까치 까치 설날은]

 

청나라(1644~1912)는 만주족이 세운 왕조로, 황실 성씨인 아이신 기오로(애신각라, 愛新覺羅)를 중심으로 구왈기야(과얼자, 瓜爾佳), 니오후루(뉴구루, 鈕祜祿) 등 만주족의 8대 성씨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만주족은 고유한 다음절 성씨를 사용했으나, 후기에는 한족식 외자 성씨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1. 주요 만주족 성씨 (만주족 8대성)

아이신 기오로 (애신각라(Aisin Gioro), 愛新覺羅): 청나라 황실 성씨.[한자성씨 김()]

구왈기야 (과이가(Gūwalgiya), 瓜爾佳):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直義公 費英東의 후손들임.[한자성씨 관()]

슈무루 (서목록, 舒穆祿): 티스토리 블로그에 따르면, 武勳王 楊吉利의 후손들임.[한자성씨 나(), (), ()씨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

 

만주족에 특히 많았던 8대성은 다음과 같다.

 

나라 하라 Nara hala 那拉

퉁갸 하라 Tunggiya Hala 佟佳

구왈갸 하라 Gūwalgiya 瓜爾佳

마갸 하라 Magiya 馬爾佳

소초로 하라 Socoro 索綽羅

치갸 하라 Cigiya 齊佳

푸차 하라 Fuca hala 富察

뇨후루 하라 Niohuru hala 鈕祜祿

신해혁명 이후, 만주족이 한족을 따라 성씨를 고친다. 퉁갸씨는 동(), 구왈갸는 관(), 마갸는 마(), 소초로는 색(), 치갸는 제(), 푸차는 부(), 나라는 나(), 뇨후루는 랑()으로 바꿨다.

 

2. 특징

만주어 기반: 만주족 고유의 다음절 성씨를 사용.

한족식 변경: 멸망 이후 대부분 한족 성씨로 변경 (: 아이신 기오로 -> () ).

명나라와의 차이: 한족 중심의 명나라와 달리 만주족의 관습을 유지.

청나라 말기에는 많은 만주족이 한족식 성씨를 사용하여, 자료에 따르면 족보를 통해 만주족 성씨를 식별하기도 했습니다

 

청나라의 권력을 지탱했던 만주족의 핵심 벌족 성씨는 크게 황족인 아이신 기오로(애신각라) 씨와 그들을 보필한 '만주 8대 성씨'로 나뉩니다.

청나라 건국에 공을 세우고 고위 관직을 독점했던 주요 성씨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황족 성씨

아이신 기오로 (애신각라, ᠊ᠠᡝᠰᡳᠨ ᡤᡳᠣᡵᠣ): 청나라 황실의 성씨입니다. '아이신'은 금(), '기오로'는 성씨를 의미합니다. 중화민국 수립 이후 대다수가 김() 씨로 성을 바꾸었습니다.

2. 만주 8대 성씨 (만주팔대성)

청나라 조정에서 대대로 명망이 높았던 대표적인 가문들입니다. 가문에 따라 이후 변경한 한족 성씨도 함께 기재합니다.

구왈기야 (과이가, ᡤᡨᠸᠠᠯᡤᡳᠶᠠ): 8대 성씨 중 으뜸으로 꼽히며, 개국공신 피용돈(費英東) 가문이 대표적입니다. (후에 관() 씨로 개성)

니오후루 (뉴구록, ᠨᡳᠣᡥᡠᡵᡠ): 건국 공신 에이두(額亦都) 가문과 건륭제의 총신 화신이 이 성씨입니다. (후에 랑() 씨 또는 뉴() 씨로 개성)

나라 (나랍, ᠨᠠᡵᠠ): 울라, 호이파, 예헤, 하다의 4개 지파로 나뉩니다. 서태후(예헤나라 씨)가 이 가문 출신입니다. (후에 나() 씨로 개성)

슈무루 (서목록, ᡧᡠᠮᡠᡵᡠ): 개국공신 양기리(揚吉利)의 후손들입니다. (후에 서() 씨로 개성)

둥고 (동악, ᡩᠣᠩᡤᠣ): 순치제의 총애를 받은 동악비의 가문입니다. (후에 동() 씨 또는 조() 씨로 개성)

마기야 (마가, ᠮᠠᡤᡳᠶᠠ): (후에 마() 씨로 개성)

후시할라 (부찰, ᡶᡠᠴᠠ): 건륭제의 효현순황후 가문이 유명합니다. (후에 부() 씨 또는 부() 씨로 개성)

헤셰리 (혁사리, ᡥᡝᡧᡝᡵᡳ): 강희제의 보정대신 소니와 효성인황후의 가문입니다. (후에 혁() 씨 또는 하() 씨로 개성)

3. 기타 유력 성씨

퉁기야 (동가, ᡨᡠᠩᡤᡳᠶᠠ): 강희제의 외가이자 효강장황후의 가문으로, '동반조(佟半朝: 조정의 절반이 동씨)'라 불릴 만큼 세력이 막강했습니다. (후에 동() 씨로 개성)

 

고구려계 성씨

고구려 성씨는 왕실인 고씨(高氏)를 비롯해 연씨(淵氏), 을씨(乙氏), 우씨(于氏), 명림씨(明臨氏) 등이 있습니다.

국가 멸망 후 많은 유민이 당나라나 신라 등지로 흡수되면서 후손들이 새 성씨로 바꾸어 현재 고구려 고유 성씨는 대부분 전해지지 않습니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성씨 체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씨(高氏): 고구려의 건국 시조인 주몽(동명성왕)부터 보장왕까지 이어진 왕족 성씨입니다.

연씨(淵氏): 연개소문 등 막리지(최고 권력자)를 배출한 강력한 귀족 가문 성씨입니다.그 외 귀족/관료 성씨: 을씨(을파소 등), 명림씨(명림답부 등), 우씨(국상 우씨 가문), 주씨 등이 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왕족과 유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고구려계 유민들은 사라진 성씨 에 기록된 것처럼 신라, 당나라, 일본(고마씨 등)으로 이주하였으며, 일부는 훗날 고려 개국 세력 등에 흡수되어 토착 성씨로 이어졌습니다

 

횡성 고씨 - 고구려 보장왕의 둘째 아들 또는 둘째 외손자 고인승의 직계 후손 (고구려 부흥운동을 주도한 안승의 둘째형)

 

익산 이씨 - 고구려 영양왕 시기에 고구려 역사서 유기(100)을 정리해 편찬한 역사서인 신집( 5)을 저술한 태학박사 이문진의 후손.

 

신천 강씨 - 송양국(비류국, 고구려 연나부) 출신 성씨.

 

홍천 용씨 - 송양국(비류국, 고구려 연나부) 출신 성씨.

 

목천 돈씨 - 고구려 절노부(북부) 출신 을씨, 을지씨의 후손. 본래 을씨, 을지씨였다가 고려 인종 시기에 돈씨로 성씨를 고쳤고 북한에서는 이들을 을지씨로 복성시킴.

 

평양 조씨 - 고구려 유민 후손.

 

진주 강씨 - 고구려 영양왕 시기의 장군 강이식의 후손. 다만 시조 강이식의 실존 여부가 불분명하다. 족보에선 강이식이 중국 수나라의 개국공신이자 장군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개성 왕씨 - 고구려 대족 출신 성씨. 외가쪽 성씨가 고구려계 유민인 신천 강씨 가문.

 

성주 도씨 - 추모왕(주몽) 시기에 중국 전한(한나라)에서 고구려로 귀화한 중국계 고구려인 성씨. 성주 도씨 시조 도조는 중국 도씨(都氏)의 시조 도계의 후손이며 고구려 시조 추모(주몽)의 첫째아들 유류를 도와 비류와 온조를 몰아내고 제2대 국왕으로 즉위시킨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다. 다만 삼국사기는 시조 도조의 출신지를 중국 한나라가 아닌 부여국이라 서술하고있다.

 

광주 김씨 - 고구려 유민 후손.

 

봉성 온씨 - 고구려 장군 온달을 시조로 하는 성씨 한국의 온씨는 고구려계와 신라계 둘 다 조상이 같고 북방에서 유래함.

 

상주 주씨 - 고구려 개마국 유민 후손.

 

영월 엄씨 - 고구려 개마국 유민 후손.

 

온양 방씨 - 고구려 행인국 유민 후손.

 

장흥 위씨 - 고구려 동옥저 유민 후손.

 

평창 이씨 - 고구려 남옥저 유민 후손.

 

평강 채씨 - 고구려 남옥저 유민 후손.

 

창녕 조씨 - 현도국 유민 후손.

 

평산 신씨 -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후손. 가문 자체 전승에 의하면 평산 신씨는 그 선조가 본래 만주에서 살았고 용병으로 고용되어 백제로 내려왔다고 전한다.

 

연주 현씨 - 6세기 중반에 신라에 나라를 뺏기고 고구려에 귀화한 우산국 왕족의 후손.

 

목천 우씨 - 6세기 중반에 신라에 나라를 뺏기고 고구려에 귀화한 우산국 왕족의 후손.

 

안악 이씨 - 고구려에 귀화한 낙랑계 유민의 후손.

 

황씨 - 고구려 대방국(진번국) 출신 성씨.

 

파주 염씨 - 고구려 대방국(진번국) 출신 성씨.

 

백주 태씨 - 고구려 속말말갈 부족 출신 성씨이자 발해국의 시조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직계 후손.

 

밀양 대씨 - 고구려 속말말갈 부족 출신 성씨이자 발해국의 시조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직계 후손.

 

북원 선우씨 - 마한이 멸망한 후, 고구려에 귀순한 마한의 왕자 우평을 시조로 하는 성씨. 고구려에 의해 지금의 평안남도 용강군에 괴뢰국인 황룡국을 세웠으나 뒤에 멸망당해 평민 신분이 되었다.

 

단양 우씨 - 낙랑국 유민 후손.

 

남평 문씨 - 임둔국(동예국) 유민 후손.

 

천안 전씨 - 백제의 개국공신 전섭(全攝)을 시조로 하며 시조 전섭은 본래 고구려 출신 인물이다. 통일신라 초기인 673년에 제작된 금석문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에 의하면 전씨가 지금의 충남 연기 지방의 백제 유민 세력을 대표하는 가문으로 나오고 백제계 성씨임이 고증된다.

 

목천 마씨 - 백제의 개국공신 마려(馬黎)를 시조로 하며 시조 마려는 본래 고구려 출신 인물이다. 목천 마씨 족보에 의하면 마신-마려 형제가 있었는데 동생인 마려는 비류와 온조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백제를 건국하였고 형인 마신(馬信)은 고구려에 남아 추모왕(주몽)을 보필하였다 전한다.

 

장흥 마씨 - 천안 전씨와 내용이 동일.

 

위의 성씨들 출처는 대부분 조선 인조 시기에 편찬된 도가사적에 인용된 야사집인 삼한습유기에 기록된 내용임

 

* Northeast China (traditional Chinese: 中國東北= 滿만 州주 ) Ruler

Gojoseon[B.C 2333-B.C 108, Korea People:고조선]->Han[B.C 108-A.D 313, Han China People: 漢한 -한나라의 청천강 이북지역 점령과 한사군 설치 그리고 청천강 이남 고조선 유민으로 진국등장]->Goguryea[A.D 313-668, Korea People:고구려]->Tang[A.D 668-698, Han China People: 唐당 나라]->Balhae[A.D 698-926, Korea People:조선족과 여진족 연합정부]->Liao[A.D916-1125, Khitan China People: 遼요 나라-거란족:(다우르족: 達달 斡알 爾이 族족 ), 중국 소수민족의 거란족의 나라]->Jin[A.D 1115-1234, Jurchens China People or Manchu China People: 金금 나라-여진족 또는 만주족, 중국 소수민족 여진족의 나라]->Mongol[A.D1234-1368, Mongol People: 蒙몽 古고 나라-몽고족, 중국 소수민족의 몽고족의 나라]->Ming[A.D 1368-1644, Han China People: 明명 나라]->Qing[A.D 1616-1912, Jurchens China People or Manchu China People: 淸청 나라-만주족, 중국 소수민족 여진족의 나라]->Republic of China[A.D 1912-1932, Han China People:중화민국-중국 국민당, 反淸國家]->Manchukuo[A.D 1932-1945, Jurchens China People or Manchu China People: 滿만 州주 國국 -만주족=여진족]->People's Republic of China[1945.8~ Han China People: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공산당, 만주족과 우호국가]

*Goguryea[Goryeo]-고려( 高고 麗려 )는 고구려( 高고 句구 麗려 )의 줄임

*Gojoseon[Joseon]-조선( 朝조 鮮선 )은 고조선( 固고 朝조 鮮선 )

* 三韓的大韓之也[고구려, 백제, 신라 삼한이 대한이다]: 三韓正統說(삼한정통설)

馬韓(마한)이 고구려이며 卞韓(변한)이 백제, 辰韓(진한)이 신라이다

*고구려( 高句麗의 줄임 高麗), 조선( 朝鮮)은 일출지야(日出之也) 즉 일본(日本, 日出之本)

*漢字姓氏,兄弟國

한족(중국인)이나 조선족(한국인),  야마토족(일본인), 만주족 등은 한자성씨를 사용하는 형제국입니다

한자 성씨를 사용하는 형제국이지만 각 민족끼리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각 민족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언어이다

중국어를 사용하면 중국인, 한국어조선어)를 사용하면 한국인, 일본어를 사용하면 일본인, 만주어를 사용하면 만주인이다

각 민족은 언어를 기반으로 독자적 문화를 인정하면서 경제통합에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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