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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왜 엄마를 공개하지 않을까…'제주에 뿌리 둔 재일교포 2세' 본문
북한 김정은, 왜 엄마를 공개하지 않을까…'제주에 뿌리 둔 재일교포 2세'
CIA Bear 허관(許灌) 2026. 6. 7. 23:25
북한 '백두혈통'은 이제 우리에게도 상당히 익숙하다.
북한 최고지도자 일가를 '백두혈통'이라 부르는 이유는 김일성 주석이 일제강점기 당시 백두산을 거점으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는 역사적 서사를 권력 세습의 정통성과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백두산에서 항일 유격 활동을 시작해 조국을 해방시켰고 그의 아들인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북측의 주장이다.
백두혈통은 김일성과 그의 아내이자 항일 빨치산 동지인 김정숙(1대), 그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일(2대), 김정일의 자녀 정철, 정은, 여정(3대). 그리고 김정은의 딸 주애(4대)까지 모두를 아우른다.
물론 김일성의 또다른 아들인 평일(생모 김성애: 김일성의 두 번째 아내)도 있고 김정일에게는 큰 아들인 정남(생모 성혜림: 사실상 첫 아내), 설송과 춘송(생모 김영숙: 두 번째 아내이자 유일한 법적 아내) 등 다른 자녀들도 있지만 이들은 모두 권력에서 밀려난 소위 '곁가지'로, '원가지'는 결국 정일과 그의 자녀인 정철, 정은, 여정 그리고 정은의 딸 주애라 할 수 있다.
선전선동이 일상인 북한에서 김정숙은 '혁명의 어머니', '백두산 3대 장군', '항일의 여성영웅' 등으로 추앙받는다. 사실상 북한 주민들에게 '조선의 어머니', 즉 국모인 셈이다.
이쯤에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어머니 김정숙을 대대적으로 신격화한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왜 친모를 제대로 밝히지도, 칭송하지도 않는 것일까. 그 무엇보다 체제 정통성을 강조하는 북한에서 이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보이는데 대체 어머니가 누구길래, 혹시 무언가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고용희는 누구?
정철과 정은, 여정 삼남매의 생모는 고용희다. 그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로, 10살 때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이주해 함경북도 청진에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흥미로운 것은 고용희의 부친 고경택, 모친 이맹인 모두 '제주' 출신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책 '고용희-김정은의 어머니가 된 재일 코리안'을 펴낸 고미 요지 전 도쿄신문 논설위원은 BBC에 "고용희가 신데렐라 스토리와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10년간 관련 내용을 취재한 그는 "북한으로 간 고용희가 처음에는 일본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어렵게 지냈지만 타고난 미모와 춤 솜씨로 결국 김정일의 눈에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고용희가 고향인 일본을 많이 그리워했다"며 "자녀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것은 물론 일본은 '적'이 아닌 '이웃'이라고 알려줬다"고도 설명했다.
실제 김정일의 요리사로 유명한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는 자신의 책 '김정일의 요리사'(2003)에서 "김정은이 일본어 노래를 잘했으며 특히 발전한 일본 경제가 부럽다고 말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

고미 전 논설위원은 "1990년대 김정은이 일본 디즈니랜드를 방문했을 당시 고용희는 따로 자신의 여비서만 동행해 북해도 등 일본 전역을 여행했다"면서 "당시 일본 정부 역시 이같은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일교포인 고용희 입장에서는 언어도 자유롭고 교통도 편리하고 또 관광지도 많은 일본이야말로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나라였다"고 강조했다.
고용희와 그의 어린 세 자녀가 강원도 원산에 잠시 거주한 데 대해서는 "당시 원산에는 일본을 오가던 '만경봉호'라는 배가 있었다"며 "원산에 있으면 그 배를 타고 오는 사람과 만나기도 쉽고 일본 물건도 빨리 받을 수 있었기에 고용희가 원산에 살지 않았나 추측한다"고 말했다.
고미 전 논설위원은 그러면서 "당시 평양에는 김정일의 공식 아내인 '김영숙'이 있었고, 아버지가 정해준 정실 부인과 애인(고용희)이 평양에 같이 있으면 김정일도 불편할 테니 고용희와 아이들을 원산으로 이주시킨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째포'
북한에서 재일교포는 '동요계층'에 속한다. 이는 핵심계층과 적대계층의 중간 단계로, 자본주의 국가인 일본에서 왔기 때문에 언제든 체제에 불만을 품거나 외부 사상을 퍼뜨릴 수 있는 '위험 요소' 혹은 '오염된 집단'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처음 북한에 도착했을 당시 이들은 일본에서 가져온 가전제품, 의복, 현금 등으로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할 수는 있어도 성분은 낮았기에 정치적으로 늘 감시를 받는 '이중적 처지'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들을 여전히 '귀국자' 또는 낮잡아 '째포'라 부른다.
실제 고용희보다 2년 먼저 북송선에 오른 가와사키 에이코 씨는 BBC에 "일본에서 왔다는 이유로 '째포'라 불리며 차별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좋은 대학이나 직장에 가기 어려웠으며 늘 감시를 받았다는 것. 그 역시 창원 출신 아버지와 목포 출신 어머니를 둔 재일교포 2세다.
홀로 북한에 간 에이코 씨는 "속았다는 데 대한 불평을 한다거나 일본 가족들과의 연락을 빌미로 수용소에 끌려간 사례도 꽤 있었다"며 "일본 가족들이 보내주는 돈이나 물건 때문에 늘 '인질'처럼 이용됐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김일성은 아들 정일에게 애인(고용희)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지만 끝까지 외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조차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희는 김정일에게 꽤나 중요한 존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미 전 논설위원은 "한때 잠시나마 공개됐다 사라진 '평양의 어머니'(선군조선의 어머님)라는 기록영화를 보면 고용희가 김정일의 지방 현지 지도에 동행하는 장면이 나온다"며 "고용희는 아내이자, 동지, 비서 등 김정일과 가장 가까운 '2인자'였다"고 평가했다.
다만 2011년에 편집되어 김정은 집권 초기에 공개된 이 기록영화는 '고용희 공개가 체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비공개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지모토 겐지 역시 자신의 책을 통해 "김정일이 고용희의 의견을 많이 듣고 여러 정책을 결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던 고용희는 자신의 아들이 후계자가 되기를 바랐을까?
2019년 출간된 '마지막 계승자-김정은, 그는 누구인가'(저자: 안나 파이필드)에 따르면 고용희의 자매인 고용숙은 늘 '성분'에 대한 위기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특히 고용희에게 '아들을 후계자로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고꾸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고미 전 논설위원은 "북한에서 차별받는 재일교포로 살아온 만큼,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는 과정에서 고용희가 필히 특정 역할이나 노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 '째포의 아들'이 현 북한의 3대 세습 정권을 이어받았다. 북한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백두혈통을 강조하며 체제 정당성과 내부 결속을 다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째포'인 고용희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만큼 북한 내 '성분'이라는 요소가 체제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토대이자 핵심 지배 구조라는 것.
김일성종합대학출신의 김형수 북방연구회 대표는 "김정은은 본처의 자식이 아닌, 한마디로 숨겨놓은 고용희의 '사생아"라고 지적했다. 북한에서 백두혈통은 '신격화'되어 있기 때문에 '째포의 아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어쨌거나 김일성은 처음부터 '백두산에서의 항일 무장 투쟁', 김정일은 '백두산에서 태어났다'는 서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며 등장했지만, 그와 달리 김정은은 왜 평양 중심이 아닌 외곽에서 태어났는지, 왜 평양이 아닌 원산에서 자랐는지, 엄마의 출신 성분은 어떠한지 등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할아버지(4월 15일 태양절), 아버지(2월 16일 광명성절)와 달리 김정은의 생일(1월 8일)이 여전히 명절이 아닌 것 역시 같은 이유"라며 "생일을 공식 명절로 만들려면 엄마가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를 밝혀야 하는데 북한 체제 특성상 최고지도자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관련 의혹들이 들불처럼 번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북한 내에서도 고용희가 '째포' 출신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만 알고 쉬쉬하는 분위기"라면서 "이러한 내용이 공개되는 순간 북한 체제가 흔들릴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미 전 논설위원 역시 "북한에서 '째포'는 '스파이'로 여겨지기 때문에 '최고지도자(김정일)가 왜 그런 여자와 결혼했느냐'라는 비판이 두려운 것"이라면서 "특히 북한 체제는 최고지도자의 정통성에 의심을 갖는 순간 급격한 사회 불안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2019년 12월 한국으로 망명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자신의 책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2025)를 통해 "게다가 김정은에게는 이모 고용숙과 이모부 리강, 외삼촌 고동훈 등 '탈북자 가족'이라는 딱지까지 붙었다"고 밝혔다. 고용숙과 리강 부부는 1998년 스위스에서 조카 김정철과 김정은의 뒷바라지를 하던 중 돌연 미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류 대사대리는 "북한 기준으로 엄밀히 따지면, 김정은 집안은 재일동포 출신이자 탈북자 집안과 연루돼 성분이 나쁘게 분류된다"며 "고용희가 김일성에게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했으니 냉정히 말해 김정은에게 북한에서 말하는 '백두혈통의 순수한 피'가 흐른다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엄마를 엄마라 밝히지 못하는' 출생의 비밀이 김정은의 통치 방식과 권력 과시 스타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고미 전 논설위원은 "김정은이 생모 고용희의 '성분' 때문에 겪어야 했던 정통성 콤플렉스와 억울함이 역설적으로 부인 리설주와 딸 주애를 일찍부터 공개해 '가족을 지키고 사랑하는 당당한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게 한 강력한 동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가족에 대한 공개가 생모 고용희와 관련된 '출신의 결핍', 즉 '보상 심리'에 기인했다는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역시 "김정일이 단 한번도 고용희를 공개석상에 데리고 나온 적이 없었다"며 "김정은이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 부인 리설주를 일찌감치 공개하고 김주애도 미리 후계수업을 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는 북한 내부에서 재일교포에 대한 편견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김정은 집권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공개를 못하는 것을 보면 김정은도 그럴 만한 용기가 없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류현우 전 대사대리도 "김정은이 이러한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듯, 집권 초기부터 김일성의 말투와 제스처를 자주 따라 했다"면서 "집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생모 고용희나 '탈북자 연루'가 있는 자신의 가계도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백투혈통의 정통성을 훼손할 수 있는 출생의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향후 어머니의 출신과 성분을 떳떳하게 공개할 수 있을까?
고미 전 논설위원은 "북한 체제가 '흔들림 없는 자신감'을 얻게 되는 날, 김정은이 생모를 공개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고용희의 과거를 알고 있는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시점에 맞춰 북한이 고용희를 백두혈통의 완벽한 상징으로 재포장해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는 한 고위 탈북민의 전망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최고지도자의 생모조차 당당히 밝히지 못하는 북한의 폐쇄성은 그 자체로 체제의 모순을 상징한다"며 "고용희는 북한 내에서 가장 화려한 지위에 올랐지만 가장 깊은 그늘에 가려진 '째포'로서, 북한이라는 성분 사회가 지닌 비극적 단면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정성장 부소장도 과거 김일성 주석이 사망 직전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통해 '해방 직전까지 만주 지역에서 항일 투쟁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1940년대 소련에 오랫동안 머물렀다'며 진실을 밝혔듯, 김정은도 "언젠가는 어머니를 밝힐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북한 김정은은 왜 엄마를 공개하지 않을까…'제주에 뿌리 둔 재일교포 2세' - BBC News 코리아
북한 김정은은 왜 엄마를 공개하지 않을까…'제주에 뿌리 둔 재일교포 2세' - BBC News 코리아
어머니 김정숙을 대대적으로 신격화한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왜 생모를 제대로 밝히지도, 칭송하지도 않을까. 무언가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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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 외할머니 똑 닮았네… 베일 속 재일교포 뿌리 밝혀졌다

왼쪽부터 북한 김정은 외할머니 이맹인, 어머니 고용희, 김정은/채널A

베일에 싸였던 북한 김정은 생모 고용희의 가족사가 공개됐다. 재일교포 출신 고용희는 북한 정권이 그간 세습의 명분으로 강조해온 백두혈통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김정은의 약점으로 여겨져 왔다.
지난 28일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를 10년간 집중 취재한 고미 요지 전 도쿄신문 논설위원이 출연해 고용희 가문의 비밀을 털어놨다.
고용희는 김정일의 네 번째 부인으로, 1952년 북한이 아닌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62년 북으로 건너간 고용희는 만수대 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하던 중 김정일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았다. 이후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을 출산했다.
그러나 정작 북한에서 고용희는 철저히 숨겨진 존재로 남겨졌다. 아무도 김정은의 어머니에 대해 입 밖에 내지 않는다고 고미 위원은 전했다.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를 지냈던 류현우씨는 “북한에서는 재일교포 출신에게는 주요 직책 기회가 박탈된다”며 “고용희의 출신 성분이 알려지면, 북한 사회에 핵폭탄급 파급력이 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정은이 아무 업적도 없는데 20대에 후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백두혈통이라는 이유 단 하나 때문이다. 그런데 생모가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정통성을 뒤흔드는 것은 물론 북한 세습 체계가 뿌리째 흔들릴 것”이라고 했다.
고용희의 아버지 고경택, 어머니 이맹인은 모두 한국 제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고용희를 낳았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는 약 200만명의 재일교포가 살고 있었다. 대부분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사정상 일본에 남은 60만명은 일본에서 차별 대우를 받으며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북한은 이들을 대상으로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를 보장하겠다는 홍보를 하며 귀환 사업을 진행했다. 북한의 선전에 속아 약 9만명의 재일교포가 북한으로 넘어갔다. 고용희 가족도 이들 중 하나였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는 김정은 외할머니 이맹인의 사진이 처음 공개됐다. 사진을 본 출연진은 김정은과 닮은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강도 출신 탈북민 정유나씨는 “북한에서는 붕어빵이라는 말 대신 ‘할머니 먹고 게웠다’고 말한다. 너무 똑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고미 위원은 “이맹인의 성격이 굉장히 호탕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보지도 못한 북한에 남편을 따라간 것 아니겠나. 북한에서 새롭게 시작할 마음으로 같이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출신 재일 교포 활동가 박향수씨는 “재일 교포 1세 할머니들은 힘들게 살아서 억척스러운데, 비슷한 느낌이다. 김정은의 외모와 기질 모두 외할머니를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아내 이설주와 딸 김주애 등 여성을 앞세운 파격적인 정치 활동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여성 편력이 심했던 아버지 김정일에 대한 원망과 숨어 지낸 어머니 고용희에 대한 미안함이 투영됐다는 게 고미 위원의 분석이다.
류현우씨는 “북한의 체제 변화를 이끌 혁명이 일어나려면 주민들이 우상숭배하는 김씨 일가의 근간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며 “고용희의 삶을 통해 백두혈통의 민낯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北 김정은, 외할머니 똑 닮았네… 베일 속 재일교포 뿌리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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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희 모친 이맹인(李孟仁)

北朝鮮の新指導者、金(キム)正恩(ジョンウン)氏の母、高(コ)英姫(ヨンヒ)氏(2004年死亡)が在日朝鮮人出身であるだけでなく、後に「喜び組」と呼ばれる接待役だった経歴などから、祖父の金(キム)日成(イルソン)主席が生前、正恩氏を正式な孫と認めていなかったことが14日、関係者などの証言により分かった。父は日本軍への協力者といえる軍需工場労働者で、密航船を運営し逮捕され、やむなく北朝鮮に渡ったことも判明。“負の出自”は、16日の金(キム)正日(ジョンイル)総書記生誕70周年を境に加速しそうな正恩母子の偶像化に打撃となりそうだ。(桜井紀雄)
김정은이 과거 김일성에게서 손자 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15일 보도했다.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2004년 사망)의 기쁨조 출신이며 고영희의 부친 고경택 일본군협력자(군수공장근로자, 밀항선 운영으로 체포등)경력 출신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북한 내부 정보를 인용해 김일성이 김정은의 모친인 고영희가 재일교포 출신의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비밀 파티의 접대부였다는 점 등을 들어 김정일의 측실(첩)로 취급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고영희가 정은과 정철 등 아들을 낳았으나 김일성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후계자로 봤으며, 김정은 등은 정식 손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이 신문이 밝혔다.
신문에 의하면 고영희의 부친인 고경택은 1929년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인 제주를 떠나 일본으로 갔다.
고경택은 당시 일본 육군이 관리하던 오사카시의 '히로타제봉소'에서 일했다. 히로타제봉소는 군복과 천막을 만드는 군수공장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고경택은 제주와 일본을 오가는 밀항선을 운영하다 일본 경찰에 적발돼 체포됐고, 출소 후인 1962년 가족을 데리고 북한으로 이주했다.
신문은 김정은 모친 가계의 이런 이력은 '혁명의 혈통'을 내세운 3대 세습의 근거에 흠이 되는 것으로 김정일 탄생 70주년(2월16일)을 계기로 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정은 모자의 우상화에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고영희 어머니는 이맹인(李孟仁)씨이다

새세대 공산주의 스탈린주의자 김일성(김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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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프롤레타리아 독제체제(노농동맹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새세대 공산주의 스탈린주의자이며 인민민주주의(민주공화국=인민공화국) 세대 레닌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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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프롤레타리아 독제체제(노농동맹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새세대 공산주의 스탈린주의자이며 인민민주주의(민주공화국) 세대 레닌주의자 박헌영, 김두봉과는 다른 인물이다
김일성 전 국가주석은 소비에트연방(소련)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출신이다 본래 북한은 소련 위성국으로 아직도 소비에트연방(소련) 극동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출신 후손들이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김일성을 만주 조선족자치정부[만국 조선족자치정부] 새세대 공산주의(사회주의, 스탈린주의자) 세대 동북항일연군 조선족 지휘관로 평가하고 있으며 일본 좌파는 김일성을 김경천(김광서, 일본육사 23기 기병과 출신)으로 평가해왔다 소련에서는 한족과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등 혼성 용병부대 제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조선인 지휘관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족주의자 백마 탄 김장군 김경천(김광서, 김일성)
민족주의자 백마 탄 김장군 김경천(김광서, 김일성)
김경천(金擎天, 1888년 6월 5일~1942년 1월 2일)은 일본육사 23기 기병과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서 해외로 망명하여 일제강점기에 무장 독립 운동을 벌인 독립 운동가이다. 초명은 김현충(金顯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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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본명 김광서)과 북한의 김일성(본명 김성주)은 서로 다른 인물이나, 김일성이 김경천 장군의 항일 업적과 이미지를 도용했다는 이른바 '김일성 가짜설'의 핵심 인물들로 얽혀 있습니다.
1. 실존 인물: 김경천 장군 (1888~1942)
경력: 일본 육군사관학교(23기)를 졸업한 엘리트 장교 출신으로, 1919년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을 양성했습니다.
별명: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백마 탄 장군', '조선의 나폴레옹'으로 불리며 전설적인 무장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최후: 소련 스탈린 정권의 대숙청 기간에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1942년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옥사했습니다.
2. 김일성과의 관계 및 '도용설'
이미지 도용 의혹: 학계 일각에서는 김일성이 평양 등장 당시 내세운 '백마 탄 장군' 이미지와 항일 명성이 실제로는 김경천 장군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가명 사용: 김경천 장군이 연해주에서 활동할 당시 '김일성'이라는 가명을 썼다는 기록이 있어, 훗날 북한의 김일성이 그 명성을 가로챘다는 설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학계의 시각: 현대 학계에서는 북한 김일성의 항일 활동 자체는 사실로 보지만, 그 과정에서 김경천 장군 등 앞선 세대 독립운동가들의 전설적인 일화들이 김일성 개인의 우상화에 활용되거나 덧씌워진 것으로 분석합니다.
3. 최근 소식
명예 회복: 김경천 장군은 공산당 가입 거부 등으로 오랫동안 잊혔으나, 199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후손 귀화: 2015년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던 김경천 장군의 후손들이 대한민국에 특별귀화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위패 봉안: 2024년 10월, '진짜 김일성'으로 불린 김경천 장군의 위패가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되었습니다

1943 년 10 월 5 일 야전 훈련 후 촬영한 제 88독립저격여단( 국제여단, 각 민족 빨치산 부대) 대원 사진 . 제 1 열 좌로부터 : 바탈린 ( N. S. Batalin, 巴达林 , 소련 ), 정치 부여단장 이조린 ( 李兆麟 , 일명 張壽籛 [ 张寿篯 ], 중국 ), 왕일지 ( 王一知 , 주보중 부인 ), 여단장 주보중 ( 周保中 , 중국 ), 김일성 ( 金日成 , 제 1 영장 , 조선 ), 부여단장 시린스키 (Timofei Nikitovich Shirinsky, 什林斯基 , 1904~?) 。 제 2 열 : 장광적 ( 张光迪 , 중국 ), 풍중운 ( 冯仲云 , 중국 ), 왕효명 ( 王效明 , 중국 ), 왕명귀 ( 王明贵 , 중국 ), 팽시로 ( 彭施鲁 , 중국 ) 。 제 3 열 : 양청해 ( 杨清海 , 중국 ), 서철 ( 徐哲 , 조선 ), 강신태 ( 姜信泰 , 강건 , 조선 ), 김광협 ( 金光侠 , 조선 ), 수장청 ( 隋长青 , 중국 ) 。 제 4 열 : 안길 ( 安吉 , 조선 ), 박덕산 ( 朴德山 , 조선 ), 최용진 ( 崔勇进 , 조선 ), 도우봉 ( 陶雨峰 , 중국 ), 김경석 ( 金京石 , 조선 )[사진: 소련 제88국제여단 소속원 - 중국 길림성 도서관]

제88 독립저격여단 시절 사진. 좌로부터 김일성(金日成), 계청(季青, 중국인), 최현(崔贤), 안길(安吉)

1946년 8월 28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과 조선신민당의 연합대회. 당시 북한에선 거의 모든 정치 집회에서 김일성과 스탈린의 초상화가 내걸렸다

모스크바 거주 레베데프씨가 제공한 사진 내용물 중 소련군정과 북로당 간부들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함께 식사하고 있는 김일성

1950년 12월 북중(朝中)연합군 창설과 중국 인민해방군 한국전쟁 개입[김일성과 팽덕회 모습]

6.25전쟁 와중인 1951년 4월 북한을 찾은 중국인민위문단을 맞이하여 연회를 주재한 김일성 당시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뒤로 자신의 초상화와 함께 소련 스탈린(왼쪽), 중국 마오쩌둥(오른쪽)의 초상화와 국기가 걸려 있다.

1954년 10월 1일 열병식을 함께 지켜보는 김일성(오른쪽 둘째) 전 북한 주석과 마오쩌둥(오른쪽) 전 중국 주석
베트남의 호찌민은 스탈린을 "세계혁명의 총사령관"이라 불렀다. 호찌민은 "세계 혁명의 총사령관 스탈린, 아시아 혁명의 총사령관 마오쩌둥"이라 했다
스탈린은 러시아 등 구 독립국가연합의 젊은이들이 열광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의 하나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들이 스탈린을 독일을 물리친 강력한 서기장으로 기억하고 있는 점도 스탈린이 영웅대접을 받는 이유다


1. 아르메니아 2. 아제르바이잔 3. 벨로루시 4. 에스토니아 5. 그루지야 6. 카자흐 7. 키르기스 8. 라트비아 9. 리투아니아 10. 몰도바 11. 러시아 12. 타지크 13. 투르크멘 14. 우크라이나 15. 우즈베크..
소비에트(сове́т)는 러시아 제국의 노동자·농민·인민들의 민주적 자치 기구이다.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평의회"를 뜻한다. 1905년 10월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가 창설되었으며 이후에 러시아 제국 각지에서 자주적인 소비에트가 설립되었다.
1917년 3월에 일어난 러시아 2월 혁명 당시에는 노동자 소비에트와 농민 소비에트 간의 연합 세력이 형성되었고 혁명 이후에 탄생한 러시아 임시 정부에서 소비에트가 실권을 잡았다. 1917년 11월에 일어난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가 러시아의 정권을 잡았다. 이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은 소비에트 러시아가 되었고 1922년 소련(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했다.
-소비에트(сове́т)는 러시아 제국의 노동자·농민·인민들의 민주적 자치 기구이다.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평의회"를 뜻한다. 1905년 10월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가 창설되었으며 이후에 러시아 제국 각지에서 자주적인 소비에트가 설립되었다. [노농평의회(지역평의회)]
1.회의제 정부(의회정부제) 특징
a.민선의회에 권력이 집중
b.집행부는 의회에 예속 종속됨
의회는 내각을 불신임하지만 내각은 의회를 불신임하지 못한다
2.인민 회의제(인민 회의정부론, 인민민주주의)
PDR(인민민주주의 혁명)은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이다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은 의회(인민의회)가 가장 우월한 정부형태이며 의회는 정부를 불신임할 수 있지만 내각(정부)는 의회를 불신임할 수 없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회의제 정부 형태이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의회가 권력을 장악하여 내각은 의회 정책수행 시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내각(정부)은 의회에 예속 ,종속돼 왔다
소련헌법은 인민회의제(인민민주주의) 헌법으로 명목상 국가원수 소비에트 최고 회의 간부회 의장이고 실권자는 소련공산당 지도자 당 서기장과 내각 수장 총리(수상)이다 소련헌법은 소련 공산당 일당 독재를 인정함으로 소련 연방 최고회의(최고 의회)는 공산당이 장악하게 되었고 내각도 소련 공산당에 예속 종속돼 왔다
인민 의회정부론(인민 회의정부론)이 의회보다 지도자론(영도론)으로 나아갈 때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1인 전체주의 정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주석이나 대통령(최고지도자)의 임기제한을 해야 인민회의정부(인민의회정부)가 될 수 있다. 중국 등소평헌법이나 쿠바 신헌법은 국가주석 임기를 제한하고 있다 베트남도 형식상 국가주석 4년 중임제이다
-소비에트국가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전인민의 국가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주의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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