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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 반군, 이스라엘에 미사일 쏘며 참전 공식화…홍해 항로도 막히나 본문

" 예멘은 지구상구 최악의 극빈국으로 기아와 식량위기국가입니다 후티 반군은 이슬람교 시아아파 사회주의 성향 이란 신정체제 정부 영향으로 친소, 친북성향 국영자본체제 사회주의 경제와 사회주의 이슬람교 근본주의 정치세력으로 반서방 반이스라엘 반미성향 아랍계(아랍어) 시아파 정치조직입니다 연합군 주축으로 후티 반군을 정복하여 하나의 예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회주의 성향 후티 반군을 정복하여 자본주의민주주의 성향 이슬람교 국가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예멘 주축으로 통일이 돼야 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한 달째를 맞은 28일(현지 시각)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가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며 참전을 공식화했다.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길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물류 동맥’ 홍해에서마저 항행의 자유가 위협받으면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오전 예멘에서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미사일이 발사된 것을 확인했으며, 방공 시스템을 가동해 요격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예멘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군사행동이 이뤄진 것은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 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야히야 사리 후티 대변인은 성명에서 “이스라엘 적의 주요 군사 목표물을 겨냥해 미사일 공격 등 첫 번째 군사 작전을 수행했다”고 확인했다고 후티 매체 알마시라가 보도했다
사리 대변인은 “이는 이란과 레바논, 이라크, 팔레스타인의 저항 전선을 지원하겠다는 이전 발표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며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저항 전선에 대한 공격이 중단될 때까지 우리의 작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리 대변인은 “이 작전은 이란의 무자헤딘(이슬람 성전사) 형제들과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수행한 영웅적인 작전과 시기적으로 일치했다”며 미사일 발사가 이란 군부,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등과 조율 속에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지난 26일 후티 반군 지도자 압둘 말리크 알후티는 “예멘 인민으로서 우리는 의리에는 의리로 보답한다”며 “군사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 전개되면 지난 교전 때와 마찬가지로 즉각 대응할 것”이라고 개입을 예고한 바 있다.
후티 반군은 이란이 주도하는 이른바 ‘저항의 축’의 핵심 세력이다. 이번 이란 전쟁 발발 후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등 저항의 축이 이란의 편에서 참전했지만 후티 반군은 그간 군사 개입을 하지 않아 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촉발된 전쟁이 한 달째로 접어든 가운데, 28일(현지시각)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가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며 참전을 공식화했다.
로이터·에이피(AP) 통신 보도 등을 종합하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예멘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이는 미사일을 탐지해 방공 시스템으로 요격에 나섰다. 후티 반군 역시 야히야 사리 후티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어 “이스라엘의 주요 군사 목표물을 겨냥해 탄도미사일 일제 사격으로 첫 군사 작전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시작된 이후 예멘에서 이스라엘을 겨냥한 공격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리 대변인은 “이번 공격은 이란과 레바논, 이라크, 팔레스타인의 ‘저항 전선’을 지원하겠다는 기존 발표를 이행한 것”이라며 “저항 전선에 대한 공격이 중단될 때까지 우리의 군사 작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혀 장기 개입 의지를 밝혔다.
앞서 후티 반군 지도자 압둘 말리크 알후티는 지난 26일 “예멘 인민으로서 우리는 의리에는 의리로 보답한다”며 “군사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 전개되면 지난 교전 때와 마찬가지로 즉각 대응할 것”이라고 전쟁 개입을 예고한 바 있다. 후티 반군은 이란이 주도하는 ‘저항의 축'의 핵심 세력으로, 2014년부터 예멘 수도 사나를 장악해왔다.
모하마드 엘마스리 도하 대학원 연구소 교수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후티 반군의 참전을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후티 반군은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응해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공격하며 국제 물류망에 큰 혼란을 초래한 바 있다. 파와즈 게르게스 런던정경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미국 엔비시(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더 이상 제한된 전쟁이 아니라, 공급망과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 해상 수로까지 포함하는 경제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예멘 후티 반군 가담에 중동 전선 확대…홍해 운송 차질 우려

예멘의 후티 반군이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면서 중동 정세가 확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선박을 공격할 경우, 해상 운송에 더 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이날 테헤란에 대한 또 다른 공습을 단행했고, 이번 공습은 지휘 센터와 무기 시설을 목표로 했다고 밝혔다.
걸프 지역 전역에서 추가 공격이 보고되기도 했다. 세계 주요 알루미늄 생산업체 중 하나인 알루미늄 바레인은 이날 이란의 공격으로 작업자 두 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아랍에미리트와 쿠웨이트 국방부에 따르면, 두 나라는 밤새 방공망을 가동했다.
후티 반군이 미국, 이스라엘, 이란 간의 전쟁에 군사적으로 더욱 깊이 개입할 경우, 중동 내 갈등이 다시 격화될 수 있다.
특히 후티 반군이 공격을 계속하고 강화한다면, 이는 전쟁의 새로운 확전과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 반군은 이날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예멘 정부는 "이란이 예멘을 중동 분쟁에 끌어들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동 전문가들은 후티 반군이 홍해 남쪽 끝에 위치한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는 세계 경제에 또 다른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에서 군인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란 혁명수비대는 테헤란의 한 대학을 공격한 후 중동에 있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대학들을 표적으로 삼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수천 명의 미군 병력, 중동 배치
워싱턴 포스트는 미 국방부가 이란에서 수 주간에 걸친 지상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승인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미 중부사령부는 이날 강습상륙함 USS 트리폴리가 해당 지역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 군함에는 약 3500명의 해군 및 해병대원으로 구성된 부대와 수송기, 공격 전투기가 탑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예멘 후티 반군 가담에 중동 전선 확대…홍해 운송 차질 우려 - BBC News 코리아
후티 반군이 이번 전쟁에 군사적으로 더 깊이 개입할 경우, 중동 내 갈등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www.bbc.com


예멘 공화국(Republic of Yemen)-연합 공화국
1918년 10월 30일 예멘 왕국 성립
1962년 9월 26일 예멘 아랍 공화국 성립
1967년 11월 30일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 성립
1990년 5월 22일 예멘 통일
1991년 5월 16일 현행 헌법 제정
1994년 7월 7일 1차 예멘 내전 종식 및 예멘 재통일
2014년 9월 16일 예멘 내전 발발
주민들의 대부분은 아랍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는 2014년에 약 2500만 명으로 아랍인이 98%를 차지하고,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무슬림으로, 이 중 수니파가 56%, 시아파가 43%를 차지한다. 시아파의 대부분은 수니파와 비슷한 교리를 가진 자이드파(다섯 이맘파)이고, 열두 이맘파와 이스마일파(일곱 이맘파)도 예멘 내 소수파로서 일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소수의 예멘계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예멘의 1인당 국민소득 617달러(2023년도) 수준이다
북예멘(사회주의 이슬람교 시아파 이란정부축)과 남예멘(자본주의 이슬람교 순니파 사우디정부축)
예멘은 지구상구 최악의 극빈국으로 기아와 식량위기국가입니다 북예멘 후티 반군은 이슬람교 시아아파 사회주의 성향 이란 신정체제 정부 영향으로 친소, 친북성향 국영자본체제 사회주의 경제와 사회주의 이슬람교 근본주의 정치세력으로 반서방 반이스라엘 반미성향 아랍계(아랍어) 시아파 정치조직입니다 연합군 주축으로 후티 반군을 정복하여 하나의 예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회주의 성향 후티 반군을 정복하여 자본주의민주주의 성향 이슬람교 국가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예멘 주축으로 통일이 돼야 합니다
남예멘은 소련 등 동구권 국가의 지원으로 겨우겨우 먹고 살았고, 북예멘은 남예멘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그래봐야 인근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가난한 국가였다. UN에 의하면 1990년 북예멘의 1인당 GDP는 392$, 남예멘은 273$로 인접국인 사우디아라비아(7,236$)나 오만(6,377$)은 물론 해협 건너의 지부티(774$)보다도 훨씬 낮았다
실제로 아랍권은 언어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단일문화권내지 단일국가로 볼 여지가 있어보이지만 사실은 단일국가로의 통일, 통합이 상상 이상으로 잘 안 되는 지역이다. 일례로 1990년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무력 침공하여 쿠웨이트를 이라크에 합병시키려다 실패한 전례도 있었고, 1950년대 말 시리아와 이집트가 아랍 연합 공화국으로 통합을 시도했다 실패한 전례도 있는 등 단일 민족 국가들로 통합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나라마다 배타적인 씨족주의, 지역주의, 종파주의 의식이 강하다. 사막 지대다보니 다른 곳보다도 그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고(사막지대가 그러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정착하여 생활하는 여건이 아닌데다가 이민족들이 침략하기에도 결코 쉽지않고 좋지못한 환경이기에 그런이유로 씨족 혹은 부족끼리 유목생활을하면서 가족(부족)간의 연대성이 어느 지역보다도 강해진 것이다.), 근대 이전 일대를 통일했던 왕국들조차도 이들에게 사실상의 봉건제를 실시했을 뿐이었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집권 후반기(모즈타바 하메네이 막후 실력자 등징)부터 이란정부의 군과 안보분야 그리고 정부 고위직은 이란 소수민족 아제리인(아제르바이잔계 이란인)이 장악하고 있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나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 차기 이란 최고지도자는 이란의 주류 민족인 페르시아인이 아니라 소수민족인 아제리인이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현직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계( 아제리인)이다 1954년 9월 29일 서아제르바이잔의 마하바드에서 아제르바이잔계 이란인 아버지와 쿠르드계 이란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이란의 안보 최고 책임자인 알리 라리자니 최고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도 아제리인(아제르바이잔계 이란인)이다
아미르 하타미 이란 이슬람 공화국군 총사령관도 이란 잔잔주 잔잔 출신으로 아제리인(아제르바이잔계 이란인)이다
아제르바이잔계( 아제리인)은 아제르바이잔어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소련의 영향으로 아제르바이잔에는 러시아어를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련 붕괴 후에는 러시아어 화자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란 쪽에는 페르시아어를 쓰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란 내부 아제르바이잔인 16% 이상 거주로 이란이 소련 위성국으로 취급 되어왔다
이란 내 아제르바이잔인은 이란 북서부 지역에 천만 명 이상의 아제르바이잔계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은 이란 북서부(동/서아제르바이잔, 아르다빌, 잔잔주)를 가리키며, 아제르바이잔인들이 대다수 거주하는 역사적, 문화적 지역이다. 19세기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으로 국경이 분단된 후 이란 영토로 남았으며, 핵심 도시로는 타브리즈와 우르미아가 있다.


1. 아르메니아 2. 아제르바이잔 3. 벨로루시 4. 에스토니아 5. 그루지야 (조지아) 6. 카자흐 7. 키르기스 8. 라트비아 9. 리투아니아 10. 몰도바 11. 러시아 12. 타지크 13. 투르크멘 14. 우크라이나 15. 우즈베크..
소비에트(сове́т)는 러시아 제국의 노동자·농민·인민들의 민주적 자치 기구이다.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평의회"를 뜻한다. 1905년 10월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가 창설되었으며 이후에 러시아 제국 각지에서 자주적인 소비에트가 설립되었다.
1917년 3월에 일어난 러시아 2월 혁명 당시에는 노동자 소비에트와 농민 소비에트 간의 연합 세력이 형성되었고 혁명 이후에 탄생한 러시아 임시 정부에서 소비에트가 실권을 잡았다. 1917년 11월에 일어난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가 러시아의 정권을 잡았다. 이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은 소비에트 러시아가 되었고 1922년 소련(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소련)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발적 협회의 기초 위에서 형성된 연방국가이다: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The Russian Soviet Federated Socialist Republic)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Ukrai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벨라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Byeloruss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Azerbaidjan Soviet Socialist Republic)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Georg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Arme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Turkmen Soviet Socialist Republic)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Uzbek Soviet Socialist Republic)
타지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Tadjik Soviet Socialist Republic)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Kazakh Soviet Socialist Republic)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Kirghiz Soviet Socialist Republic)
카렐로-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Karelo-Finnish Soviet Socialist Republic)
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Moldav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Lithua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Latv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Esto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소비에트(сове́т)는 러시아 제국의 노동자·농민·인민들의 민주적 자치 기구이다.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평의회"를 뜻한다. 1905년 10월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가 창설되었으며 이후에 러시아 제국 각지에서 자주적인 소비에트가 설립되었다. [노농평의회(지역평의회)]
1.회의제 정부(의회정부제) 특징
a.민선의회에 권력이 집중
b.집행부는 의회에 예속 종속됨
의회는 내각을 불신임하지만 내각은 의회를 불신임하지 못한다
2.인민 회의제(인민 회의정부론, 인민민주주의)
PDR(인민민주주의 혁명)은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이다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은 의회(인민의회)가 가장 우월한 정부형태이며 의회는 정부를 불신임할 수 있지만 내각(정부)는 의회를 불신임할 수 없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회의제 정부 형태이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의회가 권력을 장악하여 내각은 의회 정책수행 시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내각(정부)은 의회에 예속 ,종속돼 왔다
소련헌법은 인민회의제(인민민주주의) 헌법으로 명목상 국가원수 소비에트 최고 회의 간부회 의장이고 실권자는 소련공산당 지도자 당 서기장과 내각 수장 총리(수상)이다 소련헌법은 소련 공산당 일당 독재를 인정함으로 소련 연방 최고회의(최고 의회)는 공산당이 장악하게 되었고 내각도 소련 공산당에 예속 종속돼 왔다
인민 의회정부론(인민 회의정부론)이 의회보다 지도자론(영도론)으로 나아갈 때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1인 전체주의 정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주석이나 대통령(최고지도자)의 임기제한을 해야 인민회의정부(인민의회정부)가 될 수 있다. 중국 등소평헌법이나 쿠바 신헌법은 국가주석 임기를 제한하고 있다 베트남도 형식상 국가주석 4년 중임제이다
-소비에트국가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전인민의 국가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주의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스탈린 헌법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헌법[1990년 3월 14일에 개정된 소연방의 신헌법]
스탈린 헌법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헌법[1990년 3월 14일에 개정된 소연방의 신헌법]
스탈린 헌법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헌법[1990년 3월 14일에 개정된 소연방의 신헌법] -노동계급의 노농동맹(공산당) 령도(領導, 지도) 인민의회정부론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프롤레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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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지도

아제르바이잔공화국과 아제르바이잔 이란주 지역 ( 동아제르바이잔주 , 서아제르바이잔주 , 아르다빌주 , 잔잔주가 이 지역에 속합니다) .

중동 내 4번째로 많은 민족- 쿠르드인

이란 인구 중 160만 명 아랍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이 대부분이 페르시아 만(아라비아 만)과 호르무즈 해협(Hormuz Strait) 주변에 거주하고 있다
이란은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로 2022년 민족 구성은 다음과 같다.
페르시아인 51% (길라크인, 마잔데란인 포함시 59%), 아제리인(아제르바이잔인) 24%, 길라크인, 마잔데란인 8% (종종 페르시아인에 포함됨), 쿠르드인 7%, 아랍인 3%, 루르인 2%, 발루치인 2%, 투르크멘인 2%, 기타 1% 등이다
페르시아인은 현대 페르시아어를 모어로 하는 민족으로, 이란인의 61%를 차지하는 이란의 주류 민족이다.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타지크인들도 페르시아인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페르시아인은 이란의 주요 민족으로 페르시아어를 사용한다 페르시아인은 이란계 아리아인이다
페르시아인의 총인구 약 8,600만명이다 페르시아인의 근연민족은 타지크인, 루르인, 쿠르드인,마잔다라니이다
튀르크족(Turkic peoples)은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하여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며 셀주크·오스만 제국 등을 건설한 유목 계통 민족이다. 튀르크어족을 공유하며,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등 넓은 지역에 분포한다. 현대 튀르크족은 알타이인, 아제리인(아제르바이잔인), 추바시인, 가가우즈인,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투르크멘인, 튀르키예인, 투바인, 위구르족, 우즈베크인, 야쿠트인이 포함된다
튀르크는 튀르크어족의 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민족 집단이며 총인구는 약 1억 4,000만 ~ 1억 6,000만 명이다
아랍인은 주로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아랍 국가에 거주하는 셈족 계통의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아랍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며,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이고, 5~6%는 기독교 신자이다.
본래 아라비아 반도 일대에 거주하였으나 이슬람 세력 확장으로 현재 시리아 사막과 남이라크, 북아프리카 일대까지 분포하고 있다
아랍인의 필요조건은 아랍어를 모국어로 함을 의미한다
전 세계 아랍인의 인구는 약 3억 8,000만 명 ~ 4억 명으로,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아메리카 대륙 및 유럽 등에도 많은 아랍인이 거주한다. 이는 베르베르인을 제외한 수치로, 베르베르인(모로코 1,200만 명, 알제리 900만 명 등)을 포함할 경우 아랍인의 인구는 약 4억 명 ~ 4억 2,000만 명이다.
튀르키예인들과 이란인들은 인구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지만 아랍어를 쓰지 않고 튀르키예어와 페르시아어를 구사하므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는 시리아 · 레바논 · 요르단 · 팔레스타인 · 사우디아라비아 · 예멘 · 오만 · 아랍에미리트 · 바레인 · 카타르 · 이집트 · 리비아 · 튀니지 · 모리타니 · 알제리 등이고 아랍어를 주요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는 이라크 · 수단 · 차드 · 에리트레아 · 지부티 · 소말리아 · 코모로 · 알제리 · 모로코 등이다
아랍인의 민족계통은 셈족이고 근연민족은 아시리아인, 유대인이다
중동지역 각 민족

중동 지역은 아랍, 페르시아(이란), 튀르크(터키)의 3대 민족을 중심으로 쿠르드, 유대인 등 다양한 민족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지역입니다. 대부분의 지역은 아랍인이 다수이며, 종교적·언어적 특성에 따라 정착민과 베두인 유목민, 소수 민족 집단이 섞여 있는 역동적인 인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1.주요 민족 및 구성
아랍인 (Arabs): 중동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레반트 지역(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광범위한 지역에 거주합니다. 아랍어를 사용하며 대다수가 무슬림입니다.
페르시아인 (Persians): 이란의 주류 민족으로, 아랍어 대신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며 이슬람 시아파가 주류입니다.
튀르크인 (Turks): 튀르키예의 주류 민족으로, 튀르크어를 사용합니다.
쿠르드인 (Kurds): 세계에서 국가가 없는 가장 큰 민족 집단으로 불리며, 튀르키예, 이라크, 이란, 시리아 접경 산악 지대에 주로 거주합니다.
유대인 (Jews): 이스라엘의 주류 민족으로, 히브리어와 유대교를 기반으로 합니다.
소수 민족 및 종교 집단: 베두인(유목 아랍인),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드루즈인, 콥트인(이집트 기독교도), 카울리야인 등이 있습니다.
2.민족적 특성
중동의 민족 구성은 고대부터 이어진 정복과 이동으로 인해 아랍(셈족 계통), 이란(인도-이란 계통), 튀르크(알타이 계통)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이지만 기독교 등 다른 종교를 믿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예멘 공화국(Republic of Yemen)-연합 공화국


1918년 10월 30일 예멘 왕국 성립
1962년 9월 26일 예멘 아랍 공화국 성립
1967년 11월 30일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 성립
1990년 5월 22일 예멘 통일
1991년 5월 16일 현행 헌법 제정
1994년 7월 7일 1차 예멘 내전 종식 및 예멘 재통일
2014년 9월 16일 예멘 내전 발발
주민들의 대부분은 아랍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는 2014년에 약 2500만 명으로 아랍인이 98%를 차지하고,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무슬림으로, 이 중 수니파가 56%, 시아파가 43%를 차지한다. 시아파의 대부분은 수니파와 비슷한 교리를 가진 자이드파(다섯 이맘파)이고, 열두 이맘파와 이스마일파(일곱 이맘파)도 예멘 내 소수파로서 일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소수의 예멘계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예멘의 1인당 국민소득 617달러(2023년도) 수준이다
예멘은 아라비아반도 남쪽 끝에 있는 공화국이다
북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인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오만과 인접해 있다. 수도는 사나이다. 수도 겸 최대도시는 사나(صنعاء, Sana'a)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도시는 아덴이다.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현지 전설에 따르면 에덴 동산이 아덴 일대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축복받은 아라비아(Eudaimon Arabia)라 불렀을 정도로 과거에는 부유한 지역이었다. 예멘이란 지명은 아랍어로 오른쪽인 야민 (يمين)에서 유래했는데, 이슬람이 태동한 히자즈 지역 기준으로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볼 때에 오른편에 있기 때문이다. 중세와 근대 시기까지 예멘 지역은 여러 전쟁은 겪긴 했어도 부유한 편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석유 자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심각한 부패로 기득권이 아닌 서민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데다 내전으로 기반 시설이 초토화되었기 때문에 산업적으로 발전되지 못하여 축복받은 아라비아의 칭호는 한낱 동쪽 어촌들이었던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에게 빼앗기고 아랍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로 전락하게 되었다.
남부의 중심인 아덴은 예로부터 동방 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다. 근대에는 배후에 석탄 지대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대영제국의 본토와 인도의 중간에 위치하여 제국 내 가장 큰 항구 중 하나로 번영하였다. 그 후 아라비아 반도에 석유가 발견되면서 지역 제일의 석유화학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미국 뉴욕에 이어 물동량 기준 대영제국 내 제일, 세계 2위의 항구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철수 이후 공산국가 남예멘의 수도가 되어 완벽히 몰락하였다
1.예멘의 역사
예멘 역사는 아라비아 반도 역사에서 독특한 존재인데, 불모지가 대부분인 아라비아 반도 다른 지역과 다르게 농업이 번창했던 지역인데다가 아프리카의 뿔 지역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라비아 반도의 나머지 지역과는 사막지대로 인해 고립되어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이 지역은 다른 아라비아 지역과는 달리 동아프리카에 가까운 문화가 자리잡았다. 이웃 오만이 수니파 대신에 소수종파 이바디파가 번창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멘에서는 시아파 계열 소수종파 자이드파가 자리잡았다
(1)고대
기원전 1300년 경 여러 군장 국가들이 존재했으며 기원전 8세기 무렵 시바 왕국이 예멘 내 여러 세력을 통일하고 아프리카의 뿔 일대로 진출하였다. 예멘에서 기원한 사바 왕국은 고대 악숨 왕국의 기원이 되며 헬레니즘 시대 이후에는 해상 무역으로 번창하였다. 이후에 유대교를 국교로 하는 힘야르 왕국이 세워지고 한동안 에티오피아의 악숨 왕국에 정복되는 등의 역사를 겪었다

삿드 마립 (سـدّ مَـأرِب), 즉 마리브 댐은 기원전 8세기, 마리브를 수도로 삼았던 사바 왕국에 의해 건설되었다. 예멘 지역은 옛부터 몬순 기간에 내리는 물을 저장하여 농경에 활용하기 위한 댐 건설이 활발하였는데, 그중 와디 아다나를 막고 있는 마리브 댐이 가장 큰 규모였다. 너비 580m, 높이 4m를 자랑하는 마리브 댐의 위용은 고대 7대 불가사의에 견줄만 하였고,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다. 건설 이후로도 댐은 수차례 보수되었다. 기원전 500년 경에는 높이가 7m로 증축되었고, 북쪽면 뿐만 아니라 남쪽면에도 관개 수로가 놓였다. 하지만 기원전 275년 사바 왕국의 멸망 후 댐에 대한 관리는 소홀해졌고, 결국 기원전 145년에 댐은 붕괴하였다. 이로써 발생한 홍수는 일대를 초토화시켰고, 현지 아랍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아라비아 반도 북부와 동부로 이주하였다. 그 결과, 본래 예멘을 중심으로 거주하던 아랍인들은 시리아 남부나 이라크 서부까지 드넓게 분포하게 되었다.
기원전 115년, 마리브를 지배하게 된 힘야르 왕국은 댐을 재건하였다. 다시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에는 14m 높이로 세워졌고, 수로를 여러 개 만들어 물의 압력을 분산시켰다. 이러한 대역사는 조금씩 진행되어 4세기가 지난 서기 325년에야 완성된다. 450년에도 보수가 있었고, 543년에는 악숨 왕국의 총독 아브라하가 보수를 맡았다. 하지만 이슬람 시대 이전 예멘의 마지막 토착 국가인 힘야르 왕국이 525년 멸망한 후 다시 댐의 유지 보수가 소홀해졌다. 557년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댐은 방치되었고, 전설에 의하면 575년에 마리브 댐은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붕괴하였다. 이는 반세기 이후 쓰여진 쿠란에도 아림의 홍수 (سَـيْـل الـعَـرِم)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일련의 홍수로 인해 아랍인들의 외부 이주는 더욱 활발해졌고, 그로 인해 반세기 후에 벌어진 이슬람 정복의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가산 왕국, 라흠 왕국 역시 홍수로 인한 이주민들이 세운 국가이다.
(2)중세
예언자 무함마드 시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예멘은 이후 4명의 칼리프와 그 뒤를 이은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9세기 무렵 시아파가 예멘에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897년 시아 자이드파를 신봉하는 왕조가 건설된 것을 계기로 자이드파가 예멘에서 주요 종파로 자리매김했다.
예멘 남부의 농경민 사회는 13세기 등장한 라술 왕조의 순니파 선교 정책 이후 주로 이집트와 교류하며 순니파 이슬람에서도 샤피이파를 따르게 되었다면, 북부의 유목민들은 자이드파가 우세했다. 라술 왕조의 등장을 계기로 북예멘은 시아파 자이드파, 남예멘은 순니파를 주요 종파로 하는 사회로 각각 분리되었다. 라술 왕조의 지배자들은 몽골제국 군대가 바그다드의 압바스 칼리파를 시해한 것을 계기로 자신들을 직접 칼리파로 칭하기 시작하였다. 라술 왕조가 관리하는 아덴 항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사육된 말을 인도나 아프리카로 수출하고 인도에서는 향신료를 동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하였다. 인도에서 수입된 향신료는 다시 홍해를 거쳐 이집트 맘루크 왕조로 판매되었다.
중세 모카 항을 중심으로 에티오피아로부터 커피를 수입해서 재배, 보급한 지역이기도 하다.
1517년 이후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1548년에는 포르투갈인들이 점령하고 있던 주요 항구도시인 아덴을 오스만 제국이 정복하였다. 18세기 유럽에서 커피를 카리브해 식민지에서 직접 재배,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모카 항구를 통해 수출되던 커피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1839년에는 아덴을 노린 영국이 해적 소탕을 명분으로 남예멘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분단 시대가 시작됐다
(3)현대
1918년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자, 북예멘이 먼저 예멘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독립 이후 1930년대에 이웃한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 분쟁을 겪었다. 사우디는 1932년 왕국 수립 후 남쪽 국경 지역(아시르, 나즈란, 지잔)을 둘러싸고 예멘과 갈등을 빚었으며, 1934년에 사우디-예멘 전쟁. 전쟁은 사우디의 승리로 끝났고, 같은 해 타이프 조약을 통해 양국은 20년간 평화를 약속했다. 사우디는 알 후다이다를 예멘에 반환하고, 아시르, 나즈란, 지잔을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북예멘은 시아파의 일파인 자이드파가 많은데, 자이드파의 세습 이맘이 사실상의 왕으로 통치하는 왕국이었다. 또한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이집트와 시리아가 참여하는 아랍 연합 공화국에 준가맹했다가 1961년에 연방을 탈퇴했고, 1962년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공화국이 되었으나 8년간이나 왕당파와 공화파의 내전이 벌어졌다. 이집트의 지원을 받은 공화파가 왕당파를 완전히 축출함으로 1970년에 공화국이 확정되었다.
한편 남예멘 지역은 영국 통치하에 있었지만, 수십여개의 토후국이 난립해있는 상황이었고 일부 토후국은 그 안에서도 수개, 심지어 수십개의 세력이 병립하였다. 남예멘 서부 지역은 1963년에 '남아라비아 연방'이라는 토후국 연맹으로 자치권을 획득하였으며(아덴은 제외), 자료에 따라 다르나 14~31개의 토후국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남예멘 동부 '하드라마우트' 지역은 여전히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었으며, 3개의 술탄국(쿠아이티, 카시리, 마흐라)로 구성되었다. 쿠아이티 술탄국은 상당히 늦은 1881년에 건국하였으나, 14세기부터 내려오던 카시리 술탄국을 내륙으로 몰아낸 신흥 세력이었으며 가장 크고 앞선 나라였다. 쿠아이티와 카시리는 1961년에 이 지방에 대한 미국의 석유 탐사가 행해지자 연합하여 사법부를 제외한 행정을 통합. 한편 16세기에 건국된 마흐라 술탄국은 마흐라인의 나라로 소코트라 섬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영국은 마흐라 술탄을 9발의 예포로 맞이했다. 이들은 석유가 나오면 남예멘과 별도로 독립할 계획이었으나, 후술한 남예멘 독립전쟁 때문에 술탄들은 사우디로 도피했다.
수에즈 전쟁으로 아덴항이 큰 타격을 입고, 같은 토후국 연방인 아랍에미리트와는 달리 석유도 없었던터라, 1967년에 소련의 지원하에서 남예멘은 독립하여 각 토후국들을 폐지하고 공산화되었다. 1970년대 국경 문제로 남북간에 무력 분쟁이 잦았으며, 1972년 전면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다행히 1달도 안 되어 휴전협정을 체결하였으나 1979년에도 전쟁이 일어났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6.25 전쟁이 2번이나 터진 셈. 1978년 6월에는 가즈미 북예멘 대통령이 남예멘 특사와 회담 중 암살됨으로써 남북 관계가 악화되고 대치 시기가 이어졌다.
“그렇소. 이번 전쟁을 시작한 건 우리요. 우리가 이기면 통일 예멘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고, 지게 되면 당신이 개입해서 우릴 구해줘야지.
- 1979년 2월, 북예멘과 전쟁을 시작한 데 대해 소련 대사가 불만을 표시하자”
하지만 둘 다 경제적인 상황은 영 안 좋은 개도국이었던 탓에 통일해서 시너지 효과를 보자는 얘기는 많이 나왔다. 결국 냉전 시기가 끝나면서 상호 합의하에 1990년 5월 남북 협상에 의해 무혈 통일되었고, 초대 대통령으로 북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얼마 못 가 1994년 5월 정부 요직 분배와 관련하여 전면적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종교 및 각 부족끼리의 정체성이 강한 동네라 정부간의 합의안으로는 통일이되는 동네가 아니었기 때문.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무력 통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무혈 통일을 먼저 하고 내전을 치르게 된 역사적 과정 때문에 해외에는 가끔 무력 통일로 잘못 알려진 경우도 종종 보인다. 내전은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북예멘 군대가 1994년 7월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점령하며 북예멘의 일방적 승리로 다시 통일국가가 수립되었다. 통일 이후 직선 투표에서 다시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어 장기집권했지만 아랍의 봄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곧바로 예멘 내전이 발발하면서 북부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장악하고, 남부는 수니파 정부군이 장악한다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활개치는 한편,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은 남부 과도위원회를 결성하고 무장봉기를 일으켜 나라가 셋으로 쪼개진 상황. 여기에 외세의 개입(사우디는 정부군, 이란은 후티, UAE는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을 지원.)
이런 배경 탓인지 냉전 시절 분단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북한학이나 통일 관련 정치외교학 쪽에서는 베트남 분단이나 독일 분단에 비해 남북 분단의 참고자료로서의 가치가 적다. 다만 통일 후 내전이나 갈등 폭발 가능성 연구에 있어서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
-남예멘은 소련 등 동구권 국가의 지원으로 겨우겨우 먹고 살았고, 북예멘은 남예멘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그래봐야 인근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가난한 국가였다. UN에 의하면 1990년 북예멘의 1인당 GDP는 392$, 남예멘은 273$로 인접국인 사우디아라비아(7,236$)나 오만(6,377$)은 물론 해협 건너의 지부티(774$)보다도 훨씬 낮았다
실제로 아랍권은 언어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단일문화권내지 단일국가로 볼 여지가 있어보이지만 사실은 단일국가로의 통일, 통합이 상상 이상으로 잘 안 되는 지역이다. 일례로 1990년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무력 침공하여 쿠웨이트를 이라크에 합병시키려다 실패한 전례도 있었고, 1950년대 말 시리아와 이집트가 아랍 연합 공화국으로 통합을 시도했다 실패한 전례도 있는 등 단일 민족 국가들로 통합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나라마다 배타적인 씨족주의, 지역주의, 종파주의 의식이 강하다. 사막 지대다보니 다른 곳보다도 그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고(사막지대가 그러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정착하여 생활하는 여건이 아닌데다가 이민족들이 침략하기에도 결코 쉽지않고 좋지못한 환경이기에 그런이유로 씨족 혹은 부족끼리 유목생활을하면서 가족(부족)간의 연대성이 어느 지역보다도 강해진 것이다.), 근대 이전 일대를 통일했던 왕국들조차도 이들에게 사실상의 봉건제를 실시했을 뿐이었다
2.예멘의 민족
아랍어 예멘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 및 여타 예멘 내 고유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예멘은 아라비아반도 서남부에 있는 나라로 해안지대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면 해발 1500~2500m에 이르는 고원 산악지대가 나오는데 이 지역에서는 아라비아반도답지 않게 비가 많이 내려서 인구 부양력이 높았고 비옥한 농경지가 많아 아라비아반도의 여타 지역과는 다른 문명이 번창하였다. 예멘은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기 때문에 역사상 동서교류에서 중요한 중계자 역할을 했다. 따라서 예멘인 사회에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아랍-이슬람화 이전에는 사바 왕국과 그 이후에 힘야르 왕국이라는 유대교 왕국을 건설했으며 에티오피아의 셈족과 형제 관계였다. 그들은 원래 성경, 쿠란에서 사바인으로 불리었다. 8세기에 이슬람이 전파되기 전에 유대교가 성행했으며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까지 예멘에 유대인들이 종종 살았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아랍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는 2014년에 약 2500만 명으로 아랍인이 98%를 차지하고,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무슬림으로, 이 중 수니파가 56%, 시아파가 43%를 차지한다. 시아파의 대부분은 수니파와 비슷한 교리를 가진 자이드파(다섯 이맘파)이고, 열두 이맘파와 이스마일파(일곱 이맘파)도 예멘 내 소수파로서 일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소수의 예멘계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3.경제
예멘의 1인당 국민소득 617달러(2023년도) 수준이다
농업과 목축업이 주요 산업이며 특히 모카커피의 산지로 유명하다. 또한 커피 바리스타거나 관련 입문자들이라면 알겠지만 예멘은 아라비카 커피 원두의 발상지인 에티오피아에 이어서 세계 최초로 커피 원두 농업을 시작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잦은 내전과 정치혼란, 테러 등도 있는데다가 사막화가 된 특성상 현재는 브라질이나 콜롬비아 같은 후발 커피 생산국들에 비해서 커피 생산량은 많지 않아서 귀한 편이라 가격도 비싸게 받는다. 또한 커피 분류나 등급을 시행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후티 반군의 외국 선박 홍해상 납치까지 더해져서 수출로도 어려운 편이다.
예멘은 국민의 38%가 절대빈곤에 처해 있으며 실업률이 30%인 중동 국가 중 최빈국이다. 뿐만 아니라 1인당 GDP가 2024년 IMF 통계 기준 고작 486달러로 말라위,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부룬디 단 4개국을 제외하면 지구 최악의 극빈국 신세다. 물론 아시아에서도 시리아, 북한보다도 더 가난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2번째로 가난한 나라 신세다.
이는 내전과 테러리스트들로 인한 치안 불안도 있고, 석유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그중 대다수가 족장들이 가져가는 기형적인 구조로 인해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마약으로 쓰이는 까트로 인해 생산성이 낮다고는 하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보다 압도적으로 잘 산다는 점과 많은 예멘인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경제력이 좋은 주변국들로 허드렛일을 하러 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까트만이 예멘이 가난한 원인은 아니다.
또한 남예멘과 북예멘의 통일은 국민경제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동독과 서독 및 통일 독일의 경우와 달리 예멘은 그 당시에도 남예멘이든, 북예멘이든, 통일 예멘이든 경제 부흥이 매우 힘겨운 최빈국이었다. 자본주의 국가였던 북예멘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고, 공산주의 국가였던 남예멘의 경제력은 북예멘의 절반에 불과한 나라였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국민들의 의식주는 통일 후 하향평준화가 되고 말았다. 보통 통일을 하면 부유한 쪽에서 가난한 쪽에 돈을 부어주느라 꽤나 고생하는데 예멘은 남예멘이든 북예멘이든간에 둘 다 거의 밑바닥 수준으로 가난해, 통일 이후 경제에 대해서 고생이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경제성장률을 보면 그 처참함이 느껴지는데, 그나마 정부가 구실을 하던 2010년까지는 고성장은 아닐지언정 3~4%의 꾸준한 성장을 보여줬으나 예멘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던 2011년에 정세 혼란의 여파로 가볍게 -15% 찍어주시고 다음해 약간 반등했으나(+2.1%) 예멘 내전이 터지면서 2014년에 -10.6%, 2015년에는 무려 -30.4%의 무시무시한 경제파탄을 보여주셨다. 그 뒤로도 쭉 마이너스 성장을 하다가 2018년에 간신히 +0.8%가 되었다. 문제는 경제가 저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찍는 것과 다르게 인구증가 속도는 엄청나다는 것이다. 심지어 2014년부터 일어난 예멘 내전으로 나라가 완전히 박살이 났는데, 어느 정도냐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3년간 그 소말리아를 제치고 취약국가지수 1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예멘은 인민의(民有) 인민에 의한(民治), 인민을 위한(民享) 민주정부(民主政府) 민주공화국( 입헌군주국 )입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연합정부입니다."
후티(Houthis)

후티는 1994년 예멘에 설립된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이다. 1994년 내전 당시 수니파가 남예멘의 분리운동을 지원하자 예멘에서 수니파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여 무장활동을 시작하였다. 2004년 지도자 후세인 알후티가 정부군에 사살된 이후 예멘 정부와 내전이 진행 중이며, 2015년 1월 대통령궁을 장악하여 후티 반란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이 남부지역으로 도피하고 옛 남예멘 지역의 지방정부들이 후티를 따르기를 거부하자 예멘 전체를 놓고 내전이 진행 중이다. 이란은 후티를 예멘의 정통 정부로 승인한 상태이다. 반면 미국, 영국, 프랑스, 대한민국, 이스라엘 등과는 적대적이다.
후티(아랍어: الحوثيون) 또는 공식 명칭 안사르 알라(아랍어: أنصار الله, "알라의 조력자")는 예멘의 자이디야 시아파 이슬람주의 운동이자 무장 단체이다.
1990년대부터 자이디 종교 지도자 후세인 알후티를 중심으로 예멘 공화국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부패와 친서방 정책에 반대하며 등장하였다. 2004년 후세인 알후티가 정부군에 사살되자 후티 반란이 촉발되었고 이후 그 동생 압둘말리크 알후티가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물결로 일어난 예멘 혁명에 관여하였고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과도정부 협상에 참여하였으나 결렬되어 떠났다.
2014년에는 후티 쿠데타를 일으켜 수도를 점령하고 2015년 1월에는 대통령궁까지 장악하며 반란을 성공시켰으나 하디 대통령이 남부 지역으로 도피하고 옛 남예멘 지역의 지방정부들이 후티를 따르기를 거부하자 예멘 전체의 주도권을 놓고 예멘 내전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이들과 대립하며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이를 이란-사우디아라비아 대리 분쟁의 일환으로 바라본다.
1.번영의 수호자 작전
번영의 수호자 작전(Operation Prosperity Guardian)은 홍해 해상에서 후티가 주도하는 선박 공격에 반격하기 위해 2023년 12월 결성된 미국, 영국 주도 다국적 연합군의 군사작전이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한 후 예멘의 후티 반군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봉쇄하고 이스라엘로 향하거나 이스라엘과 연관된 상선에 대해 공격을 시작했다. 2023년 12월 18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봉쇄를 종식시키고 이 지역의 국제 해운에 대한 후티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해양 보안군 창설을 발표했다.
연합군에는 현재 20명 이상의 회원국이 있으며 그 중 10명은 익명으로 참여하고 있다. 해당 지역의 자유로운 상업 운송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연합군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도 참가를 거부했다. 수에즈 운하청의 우사마 라비아 의장은 "수에즈 운하의 해운은 홍해에서 일어나는 일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월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상선에 대한 후티의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UNSC 결의안이 가결된 날, 후티 반군은 홍해의 국제 선박과 군함에 사상 최대 규모의 18-24 공격 드론과 미사일 포격을 가했다. 이에 대응하여 1월 12일 연합군은 예멘의 후티 주요 거점에 대해 공습을 개시했다
(1)배경
이 작전의 목표는 홍해, 바브 알만데브, 아덴 만에서 항해의 자유와 해운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후 여러 민간 컨테이너 및 화물선이 아덴만에서 후티군에 의해 공격을 받고 납치되었다. 후티군은 이스라엘과 연결되어 있는 선박만 표적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많은 선박이 아마 이동 중 자동 식별 시스템 신호를 꺼 이스라엘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선박도 표적이 되었다.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이 인도주의적 보급품이 가자지구에 들어오도록 허용하면 공격이 끝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봉쇄 시도는 이스라엘의 서방 동맹국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작전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공격으로 인해 많은 주요 해운 회사는 수에즈 운하를 우회하도록 경로를 바꾸게 되었으며, 2024년 1월 1일 기준 , 최소 17척의 민간 선박이 공격을 받았다.
홍해를 오가는 수로는 지중해와 인도양, 수에즈 운하와 아프리카의 뿔을 연결하는 세계 경제의 해운 관문 으로,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2023년 상황을 "새로운 수에즈 위기 "라고 불렀다.
1월 첫째 주 일일 평균 통과 선박에는 벌크선 105척과 유조선 58척으로, 전주의 벌크선 115척과 유조선 70척보다 감소했다.
(2)군힘
미 연합 해군이 통제하는 연합 태스크 포스 151은 미국 해군의 제2항공모함타격단을 포함한 작전 선박을 통제할 계획이다. 이 공격단은 항공모함 USS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와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으로 구성된 호위전단, USS 그레이블리, USS 라분, USS 메이슨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다른 참여국의 선박으로는 영국 구축함 HMS 다이아몬드가 있으며, 덴마크와 그리스는 각각 호위함 한 척을 보낼 계획을 발표했다.
네덜란드는 참모 2명을 파견할 계획이다. 노르웨이는 최대 10명의 참모를 파견할 계획이지만 12월 21일 현재 선박은 파견되지 않고 있다 호주는 군 장교 11명을 파견하겠다고 밝혔으나 미국의 군함 파견 요청을 거부했다. 덴마크는 장교를 파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캐나다는 아르테미스 작전을 통해 참모 3명을 파견할 예정이며, 캐나다군은 불특정 수의 육상, 공중, 해상 지원 차량을 배치할 예정이다. 세이셸은 어떠한 선박이나 인력도 파견하지 않았으며, 바레인에 본거지를 둔 연합해군의 일원으로서 정보 수집에만 제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싱가포르 해군의 정보 융합 센터 팀을 배치하여 상업 해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 공유 및 참여 지원 활동과 연합해군에 대표를 파견할 예정이다
2024년 1월 12일, 미국과 영국은 호주, 캐나다, 한국, 독일, 네덜란드, 바레인의 지원을 받아 예멘의 후티반군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
(3)반응
후티 반군은 "우리는 당신의 함대, 잠수함, 전함을 침몰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며 "홍해가 당신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이슬람혁명수비대 (IRGC) 호세인 살라미 총사령관은 공개 성명을 통해 이란 국민에게 연합군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안심시켰다.(이란 정부는 오랫동안 후티 운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주장 해 왔다.) IRGC 고위 장교인 모하마드 레자 나크디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고 "지중해, 지브롤터 해협 및 기타 수로"를 폐쇄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인용되었다.
미국은 프랑스 국방부를 연합군의 일부로 발표했지만, 프랑스 국방부는 랑그독 호위함을 포함한 전함이 프랑스 지휘 하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밝혔다.[5] 프리깃함 Virginio Fasan를 홍해에 배치한 이탈리아 국방부도 이 군함이 번영의 수호자 작전의 일부가 아니라고 밝혔다. 스페인 국방부는 NATO 나 EU의 조정 하에서만 작전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페인은 또한 EU가 수행하는 애틀랜타 작전의 자원을 통해 번영의 수호자 작전에 대한 잠재적인 EU 참여를 거부했다. 당시 스페인은 아틀랜타 작전의 지휘국이었고 호위함 빅토리아호가 이 지역에 배치되었다.
2024년 1월 3일, 라닐 위크레메싱게 스리랑카 대통령은 스리랑카가 홍해에 군함을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고, 스리랑카 해군은 번영의 수호자 작전의 일환으로 첨단 해양 순찰선 5척 중 하나를 배치할 준비가 되었다고 밝혔다
2.2025년 3월 미국의 예멘 공격
2025년 3월 15일 예멘 전역에서 최소 40회의 미군 공습이 있었으며, 대부분의 공습은 후티 점령지이자 수도인 사나와 사다 주를 목표로 했다. 사나에서는 8차례 공습이 있었고, 그 중 1차례는 주거 지역을 타격하여 15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당했다. 그 외에도 사나 국제공항과 군사 시설이 있는 지역이 타격을 받았으며,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사나 북부의 Geraf 지역에서는 4차례 공습이 있었다. 알마시라(Al-Masirah)와 다른 현지 미디어는 동부 표준시 오후 1시 30분에 사나에서 공습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사다에서는 12차례의 공습이 있었고, 그 중 하나는 Dahyan에 있는 전력소를 타격해 정전이 발생하였다. 타이즈의 군사 시설도 타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브 주 카자 지역에서는 후티 미디어가 두 개의 주택 건물이 미국의 공격을 받아 15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다 주에서는 8차례의 공습이 있었으며, 다마르 주, 하자 주, 마리브 주도 추가적인 공격을 받았다.
미국 중부사령부에 따르면, 이번 공격은 광범위한 작전의 시작으로, 후티 반군의 상업 및 군함 공격으로 수개월간 혼란이 지속된 홍해의 안정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후티의 슬로건.
"신은 위대하시다. 미국에게 죽음을. 이스라엘에게 죽음을. 유대인에게 저주를. 이슬람에게 승리를."
활동기간:1994년~현재(2004년 이후 무장)
이념:자이디야 시아파 이슬람주의,아랍 민족주의,반제국주의,반시온주의,반유대주의,반서방주의,반미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등
본부:예멘
활동지역:아라비아 반도, 예멘 북부, 사우디아라비아의 남부지역, 홍해 등
병력:100,000~ 200,000
동맹단체:예멘 최고 혁명위원회, 헤즈볼라, 하마스 (2021-) 등
동맹국가:이란, 시리아 아사드정부 (-2023), 리비아 카다피정부 (-201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러시아, 오만 등
적대국가:예멘 대통령 지도 위원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이집트, 요르단,수단, 바레인, 모로코, 소말리아, 세네갈,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이스라엘, 세이셸, 뉴질랜드, 대한민국, 인도, 스리랑카,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등

압둘말리크 알후티(아랍어: عبد الملك الحوثي, 영어: Abdul-Malik al-Houthi, 1979년 1월 1일 ~ )는 예멘 북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무장단체인 후티의 지도자이다. 2014년 9월 예멘 수도 사나를 점령했으며, 2015년 1월 후티 반란을 통해 예멘 정부를 전복시켰다. 2017년 11월 6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압둘말리크 알후티에게 3천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출생일: 1979년 1월 1일(47세)
출생지: 예멘
거주지: 예멘
종교:시아파 이슬람교
예멘의 후티 지도자(임기 2004년 9월 ~ 현재)
예멘 후티 반군은 누구인가?

미군이 예멘에 있는 후티 반군의 군사 기지 다섯 곳에 공습을 감행했다.
미 국방부는 이 기지들이 해당 지역의 선박을 공격하는 데 사용된 무기 부품들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후티 반군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단체로, 하마스(가자 지구)와 헤즈볼라(레바논)와 함께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저항의 축'의 일원이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연관이 있다고 여겨지는 수십 척의 선박을 공격해 왔다.
후티 반군은 어떤 공격을 감행했나?
2023년 11월부터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을 향해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군사 작전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2024년 9월에는 이스라엘의 주요 공항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은 대부분의 공격을 방공 시스템으로 방어했지만, 2024년 7월에는 드론이 텔아비브를 공격해 1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입었다.

후티 반군은 11월부터는 예멘 해안에서 선박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1월 19일에는 홍해에서 상업 선박을 납치했고 미사일이나 폭탄을 실은 드론 보트로 홍해와 아덴만에서 약 100척의 선박을 공격했다.
그 중 두 척은 나중에 침몰했으며 여러 선박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2024년 3월에는 후티 미사일 공격으로 바베이도스 국적의 화물선 트루 컨피던스호에서 3명의 선원이 사망했다.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 소유, 국적 또는 운영으로 의심되는 선박이나 이스라엘 항구로 향하는 선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이 공격한 선박 중 다수는 이스라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2024년 9월에는 후티 반군이 미 해군 함정에 '복합 공격'을 감행했지만 그들의 모든 미사일은 격추되었다.
후티 공격의 위험 때문에 많은 해운사들이 홍해 항로를 피하고 있다. 전 세계 해상 운송의 약 15%가 홍해를 통과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국제 무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후티 반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미국, 영국을 포함한 12개국의 해군은 예멘 주변 해상 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해 프로스페리티 가디언 작전을 개시했다.
미국과 영국은 2024년 1월 이후 후티 반군 기지에 여러 차례 공습을 가했다.
이스라엘 또한 후티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두 차례 기지를 타격했다.
가장 최근의 미국 공습에서는 장거리 스텔스 폭격기가 동원되어 무기 부품을 보관 중인 지하 시설을 타격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이번 공습이 "적들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기려 한 목표물도 미국이 타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후티 반군은 누구인가?
후티 반군은 예멘의 시아파 소수 민족인 자이디파를 옹호하는 무장 정치 및 종교 단체다.
이들은 하마스나 헤즈볼라 등 중동의 다른 무장 단체들과 함께 이스라엘, 미국, 서방에 저항하는 이란 주도 '저항의 축'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정식 명칭은 안사르 알라(하나님의 지지자)로, 1990년대에 결성되었으며 단체 명칭은 설립자인 후세인 알후티에서 따왔다.
현재 지도자는 그의 동생인 압둘 말릭 알후티다.

2000년대 초반 후티 반군은 예멘의 오랜 대통령인 알리 압둘라 살레에 맞서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으며, 북부 자치권을 요구했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일어난 민중 봉기로, 살레 대통령은 권력을 아브드라부 만수르 하디 부통령에게 넘겼다.
하디 대통령 집권 당시 후티 반군은 축출된 살레와 그의 충성파 군대와 연합해 북부 사다 지역을 장악하고 수도 사나를 점령했다.
2015년에는 예멘 서부 대부분을 점령하며 대통령을 해외로 몰아냈다.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는 후티 반군이 예멘을 완전히 장악해 이란의 위성국가로 만드는 것을 우려하며 아랍 국가 연합을 결성해 전쟁에 개입했다.
그러나 수년간의 공습과 지상전에도 불구하고 후티 반군은 점령한 대부분의 영토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후티 반군과 평화 협정을 시도하고 있으며, 2022년 4월부터 유엔 중재 휴전이 시행 중이다.
이 전쟁으로 16만 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400만 명 이상이 피난을 떠났다.
후티 반군은 누가 지원하고 또 어떻게 무기를 얻고 있나?
미국은 이란이 후티 반군이 선박을 공격하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에 이를 중단하라는 '비공식 메시지'를 보냈다.
물론 이란은 관여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이란이 드론과 크루즈 및 탄도 미사일 등 무기를 유엔 무기 금수 조치를 위반하며 후티에게 밀수했다고 주장한다.
이 무기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그 동맹국인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공격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란은 무기 지원을 부인하며 정치적으로만 후티를 지원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중동 전문가 엘리자베스 켄달 박사는 "후티 반군이 이 정도 수준으로 작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란의 무기, 훈련 및 정보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도 "이란이 후티 반군을 직접 지휘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국제정치연구소에 따르면, 이란은 후티가 예멘에서 드론을 제조할 수 있도록 공장을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테러리즘 대응 센터에 따르면 후티는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로부터 군사 자문 및 지원을 받고 있다.
후티 반군은 예멘의 어느 지역을 장악하고 있나?
후티 반군은 사나와 예멘 북서부, 홍해 해안을 포함한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예멘 인구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후티 반군은 이곳에서 사실상의 정부를 운영하며 세금을 징수하고 화폐를 발행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예멘 정부는 남부 항구 도시 아덴에 기반을 두고 있고 지난 2022년 하디 대통령이 권한을 이양한 8명의 대통령 위원회가 이를 감독하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은 누구이며, 미국은 왜 그들의 기지를 공격했나? - BBC News 코리아
미군은 후티 반군이 무기 부품을 보관하는 데 사용하는 예멘의 여러 지역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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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은 인민의(民有) 인민에 의한(民治), 인민을 위한(民享) 민주정부(民主政府) 민주공화국( 입헌군주국 )입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연합정부입니다."
예멘의 친이란 성향 후티 반군 제거작전
사회주의 성향 이란 시아파 이슬람교 신정체제 원조세력과 자본주의민주주의 친서방 세력 대결구도 형성--->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군 함대로 후티군 대량살상무기 파괴 그리고 오만 등 후티군 원조세력 파괴--->자본주의민주주의 예멘정부군과 사우디 연합군 주축으로 후티군 지역 점령---예멘 자본주의민주주의 국가 수립
예멘은 인민의(民有) 인민에 의한(民治), 인민을 위한(民享) 민주정부(民主政府) 민주공화국( 입헌군주국 )입니다
경제는 자본주의이며 정치는 민주주의입니다.
예멘민주공화국의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합니다(民享)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합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국영자본체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경제는 '성장'과 '분배'의 양면이 필요합니다. '성장'을 위한 '대담한 위기 관리 투자 · 성장 투자 '와 함께 '분배'에 의해 소득을 늘리고, '소비 심리'를 개선합니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성장과 분배의 호순환(好循環)'입니다]
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정부입니다 [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
민주국가는 대부분 국가사회주의(군국주의)와 투쟁한 2차대전 이후 공화국 대통령, 국가주석이나 입헌군주국 수상의 임기제한이 돼야 권력분리과 국민주권,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을 보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합중국 헌법 수정 제22조(대통령 임기를 2회로 제한)
*이 수정조항은 1947년 3월 24일에 발의되어 1951년 2월 27일에 비준됨.
제1절 누구라고 2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으며 누구라도 타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임기 중 2년이상 대통령직에 있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 자는 1회 이상 대통령직에 당선될 수 없다 다만, 본 조가 효력을 발생하개 될 때에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자가 잔여임기 중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민주국가의 경제토대는 민영자본체제(민간 자본주의)이며 정치토대는 병정통합주의 노선 의회민주주의입니다.
독재국가의 경제토대는 국영자본체제(국가자본주의) 이며 정치토대는 병정분리주의 노선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연합정부입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경제는 자본주의이며 정치는 민주주의입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정부입니다 [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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