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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와 그리스 시대처럼 술을 빚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본문

Guide Ear&Bird's Eye6/친환경농업(녹색혁명)

고대 로마와 그리스 시대처럼 술을 빚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CIA bear 허관(許灌) 2023. 12. 10. 17:24

‘아르콰 페트라르카’는 르네상스 시대 마을 공동체가 보존된 안식처이자, “행복하게 살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전설적인 대추 술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베니스의 반짝이는 운하조차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고독한 심경을 달래주지 못하던 1370년의 일이다. 유명한 학자이자 시인이었던 그는 지난 20년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그는 당대의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와 점점 더 거리를 두게 됐다.

그는 “나는 유배자처럼 도시를 떠나, 고독한 작은 마을의 소박한 집에서 살기로 했다”며 “그곳에서 나는 소란과 소음, 사소한 집안 일 등에서 벗어나, 평온하게 하루를 보내며 독서와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썼다.

숨겨진 낙원을 찾기 위해 베네치아 해안에서 서쪽으로 향했던 페트라르카에겐 포 강 계곡의 넓고 평평한 평원 위로 솟아오른 ‘유가네안 언덕’이 등대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마을 ‘아르콰’에서 자신만의 에덴동산을 찾아냈다.

이후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아르콰 페트라르카는 여전히 작은 마을이다. 주민이 20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랜드 투어’ 이곳을 방문했던 바이런 경은 “이곳은 푸른 언덕이 그늘을 드리운 깊은 골짜기에 숨겨진 온화하고 조용한 마을”이라고 표현했다. 이곳에선 중세의 석조 주택들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오르막길을 따라 이어진다. 그 길의 시작은 11세기에 세워져 페트라르카의 무덤이 있는 ‘산타 마리아 아순타 교회’이고, 그 끝은 봄이면 꽃이 만개하는 과일나무로 둘러싸고 프레스코화로 장식한 그의 별장이다.

대학 도시 파도바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이 마을로 사람들이 찾아드는 주 요인은 페트라르카의 집과 무덤이다. 사람들은 페트라르카가 마침내 평화를 찾았던 풍경을 즐기러 이곳을 찾아온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이 풍경 속에 페트라르카가 좋아했을 만한 또 다른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바로 이탈리아 대추 열매인 ‘지우지올레’다.

작은 올리브 모양 또는 둥근 형태에 단단하면서 녹색과 갈색 빛깔을 띠는 대추는 다양한 풍미를 가지고 있다. 신선할 때는 딱딱하고 나무 향에 사과 맛이 난다. 하지만 나무에서 다 익었을 때면 달콤하면서 복합적인 맛을 낸다. 현지 주민들은 이런 풍미의 대추를 넣어 술 ‘브로도 디 지우지오레’ 또는 대추 술을 빚는다.

페트라르카가 살았던 시대에는 엘리트들이 이 술을 사랑했다. 대추 술은 1612년 기록으로 남아 있는 관용구, “andare in brodo di giuggiole(대추 끓인 물에 들어가다'라는 뜻)”를 탄생시킬 정도로 꽤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며 대추 재배가 축소됐고, 이제 이 술은 이 작은 언덕 위 마을 주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에겐 거의 잊혀졌다. 다만 1980년대부터 몇몇 사업가들이 브로도 디 지우지오레를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술로 부활시키고, 대추를 페트라르카가 가장 좋아했던 마을의 잊을 수 없는 매력으로 복원하고자 노력해 왔다.

지금은 이름이 바뀐 아르콰 페트라르카는 여전히 주민이 2000명이 채 안 될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구름이 많이 낀 11월 초 어느 날, 나는 아르콰가 있는 계곡 외곽에 있는 또 다른 마을 ‘몬셀리체’로 갔다. 가족 농장 사업을 이어받아 아르콰의 음식 전통과 대추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중인 알레산드로 칼레가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칼레가로의 사업체 ‘스카폰’은 오랫동안 잊혀진 특이한 맛을 실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야생 양귀비로 만든 짭짤한 소스와 베네치아 농부들이 하던 방식대로 만든 포도 푸딩, 샤를마뉴 대제 시절 사용했던 레시피를 따라 추출한 약쑥 소스 등이 이곳에서 만든 요리다.

칼레가로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과거의 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추 역시 “잊혀진 과일”이 됐고, 대추 술은 전문가의 복원이 필요한 또 다른 고대 술이라고 했다.

대추나무는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시리아에 갔던 군인들이 이탈리아로 처음 들여왔다. 대추나무 가시로 예수 그리스도의 면류관을 만들었다는 전설도 있다. 로마인들에게 이 나무는 침묵과 행운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혜의 여신인 프루덴티아의 신전을 이 나무로 장식했다.

대추는 다양한 풍미를 가진 과일이다

 

칼레가로는 “요즘도 이곳에서 대추나무는 좋은 징조로 통한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농부들의 집에는 대문 근처에 대추나무가 있었어요. 행운을 기원한다는 의미죠.”

이탈리아의 학자 크리스티나 비냐미는 이 마을의 대추나무 사랑에 대한 간략한 역사를 기술한 글에서 아르콰 페트라르카에선 여전히 “거의 모든 가정” 마당에서 대추나무 한두 그루를 볼 수 있다고 썼다. “많은 대추나무 표본이 수백 년이 넘은 것들이고 나무의 크기도 크기 때문에 이곳에서 대추나무는 경관과 역사, 문화적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르콰 중심부 아래 계곡에 석조와 치장 벽토로 지은 칼레가로의 집에는 대문 옆에 100년이 넘은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대추나무는 사람들이 수익성 높은 올리브 농장을 만들기 위해 대추나무를 베어내던 시절에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지켜낸 수많은 유서깊은 나무들 중 하나다.

대추는 농부들에게 상업적으로는 항상 고민스러운 작물이었다. 가지에 가시가 많아 수확이 쉽지 않고 수확할 때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반면 대추는 수확기가 9월부터 10월까지 4~6주 정도 뿐이고, 유통기한도 짧다. 대추의 맛을 추출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대추는 대규모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업계에선 대량 생산의 가능성이 있는 다른 품종을 시험하기도 한다. 농업학자 페르디난도 코시오는 베로나에 있는 자신의 정원에서 영상 통화를 통해 육질이 단단하고 수확하기 쉬운 품종을 두 가지 보여주었다. 대추로 요리와 약용 가루를 만들어온 중국에서 수입한 대추였다. 그는 “이 두 가지가 가장 품질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달콤하고, 즙이 많고, 아삭아삭하고... 제가 이 과일을 맛보라고 권했던 모든 사람들이 다른 어떤 품종보다 좋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코시오는 이 품종들도 친숙한 전통 품종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원초적인 맛을 좋아한다”며 “하나 먹었을 때 다시 아기가 되고 소년 시절로 되돌아가는 그런 맛이 원초적인 맛”이라고 했다.

칼레가로는 이 어려운 맛을 르네상스 애주가들의 마음을 훔쳤다고 알려진 브로도 디 지우지올레를 재현한 ‘브로도 디 아르콰’에 담아내려고 노력해왔다.

1980년대부터 일부 기업가들이 브로도 디 지우지오레를 재현하려 노력해 왔다

 

기록으로 남은 이 술 주조법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세기에 가르다 호숫가 저택에서 호화로운 잔치를 열고 이 술을 내놓은 당대 유력가 곤자 가문의 주조법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오래 전에도 이 술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호머의 서사시에서 오디세우스를 ‘망우수 먹는 자들의 섬’으로 데려간 것이 대추 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음식 역사가 샐리 그레인저에 따르면, 대추 술과 비슷하게 마르멜로와 무화과 같은 과일을 삶아 포도액과 섞은 술이 고대 로마에서 ‘데프루툼’ 또는 ‘카로늄’이라는 이름으로 초기 로마 요리책에 등장한다.

칼레가로의 가족은 농민들이 술을 만들던 전통 주조법의 여러 변형들을 시험하는 데만 “4~5년”을 썼다. 그는 “대추 술은 보통 판매를 목적으로 만들지 않다 보니, 농가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뭔가를 첨가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런 주조법들을 가져와서, 우리가 좋아하는 걸 얻을 때까지 조금씩 다듬어가며 테스트했습니다."

스카폰의 주조법도 다른 대추 술과 마찬가지로 마르멜로와 석류, 포도 등 제철 과일을 각자의 특징이 잘 살도록 섞는다. 하지만 칼레가로는 가장 주된 풍미가 대추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최종 혼합물 중 30~35% 비중을 대추 몫으로 두려고 한다.

 

스카폰의 주조법은 다른 대추 술과 마찬가지로 제철 과일을 섞는다

 

그 결과 캐러멜 같은 가을의 풍미와 여름 시트러스의 가벼운 산미가 어우러진 술이 탄생했다. 얼음을 타거나 화이트 와인을 살짝 첨가해 마시면 놀랍도록 상쾌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 주류 판매점에서 스카폰의 대추 술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칼레가로는 1년에 8000병만 생산하기 때문이다. 아르콰에서 요식 업계에 종사하는 다른 이들처럼, 그는 자신의 사업에서 최대한 장인 정신을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칼레가로는 아르카의 중세시대 중심지가 내려다보이는 나뭇잎이 우거진 언덕 중 하나를 차로 달려, 나를 대추를 좋아하는 친구이자 동료인 보린 가족에게 데려갔다. 이 가족은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레스토랑 ‘리스토란테 라 몬타넬라’를 운영중이다. 이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인 1952년에 소박한 ‘오스테리아(전통적으로 와인과 간단한 음식을 제공하는 곳을 말함)’로 시작한 이 식당은 1960년대에 새롭고 규모가 큰 장소로 이전한 후,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존경받는 레스토랑 중 하나가 됐다.

이 레스토랑의 2대 주인인 조르지오 보린은 “어떤 시인은 신이 노아의 방주를 이 곳에서 비웠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산과 언덕, 평원, 호수, 강에서 나는 고기, 생선, 채소... 이곳에는 모든 게 있죠.”

보린의 레스토랑 메뉴판에는 이러한 풍요로움과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이어진 수렵에 대한 애정이 반영되어 있다. 메추라기 리조또와 노루 라구를 곁들인 홈메이드 ‘파파델레’, 16세기 레시피에서 영감을 받은 사과 캐러멜과 포도 캐러멜을 곁들인 오리 요리 등이다. 보린의 딸이 고안한 새로운 메뉴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케이크인 ‘파네토네’를 칼레가로에서 수확한 대추 과육으로 맛을 낸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파네토네의 변형으로 ‘지우지올로네’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의 상징적인 크리스마스 케이크 파네토네를 재해석한 지우지올로네

 

보린은 대추에 대한 아르콰의 집착이 의도적인 개발 노력이었으며, 지역 특산품 하나를 지역사회의 상징이자 마을의 매력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의식적인 시도였다고 말했다. 1970년대에 마을을 둘러본 사람들은 한 가지 분명한 선택지를 발견했다. 거의 모든 정원에 대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1981년부터 이 마을은 매년 대추 수확기에 축제를 열어 이 유산을 기념했다. 많은 생산자들이 이 축제를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고 외지에서 온 방문객들과 한정된 물량을 공유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보린은 이러한 일은 대추 재배자들이 장인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추가 희소하다는 것은 농가에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지속 가능한 방식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추의 형언할 수 없는 풍미를 맛보고 싶은 사람들은 페트라르카 마을을 순례하듯 찾아와 직접 그 행복을 맛봐야 한다.

보린은 “대추를 산업으로 키울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추를 산업으로 만들면 대추의 고유함을 잃게 됩니다... 장인이 된다는 것은 제한을 둔다는 것이죠.”

이때 그의 딸 프란체스카가 끼어들었다. “이건 (누가 우리를) 제한한 게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것이죠."

고대 로마와 그리스 시대처럼 술을 빚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 BBC News 코리아

 

고대 로마와 그리스 시대처럼 술을 빚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 BBC News 코리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아르콰 페트라르카의 주민들은 이탈리아 대추 열매인 '지우지올레'를 넣어 술 ‘브로도 디 지우지오레’ 또는 대추 술을 빚는다.

www.b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