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알바니아의 스탈린주의 노동당 정권 붕괴[알바니아의 공산주의 붕괴] 본문

Guide Ear&Bird's Eye/알바니아

알바니아의 스탈린주의 노동당 정권 붕괴[알바니아의 공산주의 붕괴]

CIA bear 허관(許灌) 2018. 5. 4. 22:27





1991220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에서 스탈린주의자인 노동당 총서기이며 알바니아인민공화국 건국자 엔베르 호자의 동상을 무너뜨리는 시위대 모습


알바니아의 자유화 물결은 동유럽 다른 국가들보다 1년 늦게 찾아왔다. 엔베르 호자 집권 이후 벌인 폭압 정책은 알바니아를 동유럽 공산권 중에서도 매우 낙후된 경제 상황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1989년 당시 알바니아의 1인당 GDP는 겨우 723달러에 불과해 동유럽에서 가장 낮았다. 특히 호자의 무신론 국가 선포 등의 극단적인 종교 탄압 정책과 외국인과의 대화 및 외국 문물 수입 금지 등의 고립 정책은 알바니아를 매우 억압적이면서 동시에 유럽에서도 가장 크게 뒤떨어진 국가로 만들었다. 이같은 기조는 1985년 호자 사망 이후 집권한 라미즈 알리아(Ramiz Alia)에 의해 조금은 완화되었으나 기본적인 방향은 그대로였다. 이 같은 억압 및 고립 정책은 1989년 다른 동구권 공산 정권, 심지어 루마니아의 공산 정권까지 무너지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같은 해 슈코더르(Shkodra)에서 이 같은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긴 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며 1990년에 들어서도 알리아를 위시한 집권 노동당은 다른 국가들의 개혁 상황에서도 기존 스탈린주의 체제를 유지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른 국가들의 소식이 음성적으로 알바니아 국내에 유통되기 시작했고 이 같은 동구권의 개방 소식을 알고 있는 국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높아져갔다.

결국 해를 넘기지 못하고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는 해를 넘긴지 얼마 안된 1991220일 수도 티라나에서 시민들이 엔베르 호자의 동상을 무너뜨리면서 절정에 달했다.

결국 알바니아 노동당(노동당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도 굴복하여 같은 해 31923년 이후 68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 선거를 실시했다. 선거 결과 공산당이 승리하긴 하였으나 일당 독재를 유지할 수는 없었으며 이듬해 5월 다시 실시된 총선에서 공산당이 패배 하면서 동구 공산권 중에서도 최악의 폐쇄 정책을 펼친 알바니아 노동당은 정권을 잃고 만다. 이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 달리 알바니아는 극도의 사회 불안 및 궁핍에 시달려야 했으며 이는 1997년 피라미드 사기 사건으로 국민의 대부분이 재산을 잃은 것에 대해 분노하여 일으킨 반정부 폭동으로 절정에 달했고 공산당에서 이름이 바뀐 사회당이 집권하게 되었다. 다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알바니아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으며 현재는 견실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알바니아의 공산주의 붕괴는 19901211일 시작된 소련 외 유럽 지역에서 일어난 마지막 공산주의 붕괴 사건이다. 알바니아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는 1990년 초 알바니아 각지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199012월 초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에서 학생 시위가 열리면서 확산되기 시작되었다. 19901211일 알바니아 노동당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다당제를 허용하였으며, 다음 날 최대 야당인 알바니아 민주당이 창당되었다. 19913월 열린 제헌의회 선거에서 노동당은 여전히 제1당으로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총파업과 도심의 저항 운동으로 비공산당을 포함한 '안정된 정부'가 수립되었다. 1992년 알바니아 총선에서는 경제 붕괴와 사회 불안으로 노동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잃었으며 살리 베리샤가 이끄는 알바니아 민주당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로써 알바니아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 스탈린주의자인 노동당 총서기이며 알바니아인민공화국 건국자 엔베르 호자


엔베르 호자(알바니아어: Enver Hoxha, 19081016~ 1985411)는 알바니아의 정치인이다.

2차 세계 대전 중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에 맞서 알바니아 민족해방전선을 이끌었으며, 종전 뒤 사망(1985)때까지 공산주의 정당인 알바니아 노동당의 총서기로 알바니아를 다스렸다. 그는 엄격한 스탈린주의에 의거하여 공산주의 국가 가운데도 유례없는 폐쇄 정치를 실시하여, 서방은 물론 구 소련·유고슬라비아·중국 등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도 차례차례 관계가 끊겨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소련에 대해서는 체코슬로바키아 · 헝가리 등지에 군을 투입하는 것을 보면서 국토 곳곳과 해안가에 전투벙커와 방공호를 설치하고 전 국민에게 무기를 지급하는 등, 적대시 하였다. 1967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무신론 국가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엔베르 호자는 중국 모택동이나 북한 김일성처럼 구소련에서는 그를 완고한 자국 사회주의(알바니아식 사회주의) 노선 교조주의자(), 개인숭배의 찬미자라 하여 압력을 가하였으나, 약소국인 알바니아의 자력갱생(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위한 영웅으로서 온 국민의 경애를 받았다. 

[반대자들에게 즉결처분을 자행한 극단적인 스탈린주의자이다. 이슬람교도인 옷감 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호자는 코르처의 프랑스인 학교에서 공부했고 티라나의 미국인 기술학교에서도 공부했다고 한다. 1930년 그는 국비장학생으로 프랑스 몽펠리에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1934~36년 브뤼셀 주재 알바니아 총영사관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하면서 그곳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1936년 알바니아로 돌아온 그는 코르처에 있는 모교 교사가 되었다. 이탈리아가 알바니아를 침공한 1939년 그는 새로 결성된 알바니아 파시스트당에 가입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뒤, 티라나에 담배 소매점을 열었는데 이 가게는 공산당 세포조직의 본부가 되었다.

 

1941년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고슬라비아를 분할한 뒤 그는 알바니아 공산당(나중에 노동당 또는 노동자당이라고 부름) 창립에 이바지했고, 1943년 공산당 레지스탕스 부대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944~54년 알바니아 총리를 지냈고, 1946~53년 외무장관을 겸했다. 1954년부터 노동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으로 일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알바니아는 유고슬라비아의 보호를 받는 공산공화국이 되었다. 이런 보호에 분개한 호자는 스탈린과 티토 사이의 적개심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1948년 유고슬라비아와 결별했다. 1959년 소련의 지도자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알바니아를 방문할 때만 해도 알바니아는 소련에 충성을 보였지만 1960년부터 알바니아와 소련의 관계가 나빠지기 시작해 196112월에는 모든 접촉이 중단되었다. 반면에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과 알바니아의 유대는 더욱 강화되었다.

 

호자가 생각하기에 중국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모스크바를 자극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동맹관계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197777일 호자는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들 등소평 전 주석 등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3개의 세계' 이론을 비난했다. 이듬해 중국은 알바니아와 맺고 있던 모든 경제관계 및 군사적 유대를 단절했다]

 


                                                               알바니아식 사회주의 독재자 엔베르 호자 전대통령 기념관 모습

*호자주의는 1970년대 말 마오쩌둥주의 운동에서 독립한 반수정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일종으로, 1978년 중국공산당과 알바니아 노동당 사이의 이념 대립의 산물이였다.

 

호자주의는 이오시프 스탈린, 그리고 스탈린 지배 아래 있는 소련이라는 국가에 엄격하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며, 다른 공산주의 단체를 모두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로 강렬히 비판한다.

 

미국, 소련, 중화인민공화국,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를 비판하며, 엔베르 호자는 마지막 세개의 국가를 사회제국주의로 규정하여 1968년 바르샤바 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규탄하며 그에 대한 대응으로 바르샤바 조약 기구에서 탈퇴하였다. 호자주의는 국가에 사회주의를 안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쓰는 것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며, 국가 조건에 따라 독재도 합리화될 수 있다 하였다. 한편 호자는 티토주의를 "반마르크주의"라 평가하기도 하였다.

 

호자는 알바니아가 1956년 이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수하는 유일한 국가라 선언하였다. 알바니아인들은 마오쩌둥주의 신봉자 사이에서 그 이론을 널리 설파하였는데, 주로 라틴 아메리카 (인민해방군과 에콰도르의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 브라질 공산당 등)에서 활동하였고, 국제적인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1991년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이 몰락하며, 호자주의 정당들은 결합하여 1994년 국제 회의에 참여하여 통합과 갈등을 출판하였다.

 

알바니아는 1998년 개정된 헌법에 의거, 의원 내각제의 단일 공화국이다. 140석의 단원제의 의회를 두고 있으며, 4년마다 선거를 치룬다.

 

알바니아의 대통령 (Presidenti)은 국가원수이자 알바니아 국민 통합을 대표한다. 알바니아의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알바니아 의회에서 의원석의 3/5 다수 이상의 표를 받아야 선출된다. 알바니아의 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알바니아의 헌법과 모든 법률을 준수하게 할 권력을 가지며, 알바니아 국군의 총사령관직을 겸임하며, 의회가 폐회될 때에는 의회의 의무를 대신하며, 총리 임명권을 가진다. 현재 알바니아의 대통령은 일리르 메타로, 20174월 선출되었다. 알바니아의 총리 (Kryeministri)는 알바니아의 행정을 담당한다. 알바니아의 총리는 알바니아의 정부수반으로,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진다. 대통령은 또한 총리의 추천을 기반으로 장관들에 대한 임명권도 가지고 있다. 알바니아 의회는 의회 구성에 대해 최종 승인을 반드시 내려야 한다. 의회는 알바니아의 외교, 국내 정책에 대한 안을 논의하며, 정부 부처와 국가기관에 대해 지시와 통제를 내린다.

알바니아 의회 (Kuvendi i Republikës së Shqipërisë) 혹은 입법부는 4년 임기로 국민들이 보통 선거로 선출하며, 알바니아의 입법권을 행사한다. 의회 내에는 140명의 대표로 구성되어,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의회 내에는 두 명의 대표가 의회의 의장을 맡는다. 알바니아의 의회에는 15개의 영구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총선거는 최소 매 4년마다 열린다. 알바니아의 의회는 알바니아의 국내, 국제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며; 헌법을 승인 혹은 개정하며; 다른 국가에 전쟁을 선포하거나; 국제 협약를 비준 혹은 취소; 대통령을 선출할 권력을 가지고 있다. 알바니아의 대법원, 그리고 검찰총장과 차관들은 국영 라디오와 텔레비전, 국영 신문사와 다른 공식 정보 전달 목적의 매체의 활동을 통제한다.

 

알바니아는 다당제를 운용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알바니아 총선거는 2013623일에 치러졌다. 당시 총선거는 1991년 첫 총선거 이후 8번째로 실시된 것이다. 선거 결과는 알바니아 사회당과 에디 라마가 이끄는 유럽 알바니아 연맹의 승리였다. 알바니아 의회 (Kuvendi i Shqipërisë)140석은 12개의 주에 할당된 12개의 선거구에서 선출되었다. 이외에 2017618일에 예정된 2017년 총선거가 있다.

 

-알바니아는 20082월부터 지중해 지역에서 펼쳐진 NATO의 오퍼레이션 액티브 엔데버 (Operation Active Endeavour)에 참여해왔다. 알바니아는 이후 200843NATO로부터 회원국 지위를 제안받았고, 200942NATO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2011년 기준 알바니아 통계국이 실시한 인구조사에 따르면, 알바니아 전체 인구의 58.79%가 이슬람교 신자로, 알바니아에서 제일 큰 규모의 종교집단이다; 17.06%는 기독교 신자이며, 24.29%는 무교, 기타 종교, '미신고자' 등으로 나뉜다.



"자유화 개방화정책도 국가발전(경제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면 민주화도 국가발전(경제성장)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입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다]

*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인민의(民有,Of the people), 인민에 의한(民治,By the people), 인민을 위한(民享,For the people) 민주정부(民主政府,Democratic Government)

국가사회주의(군국주의)와 투쟁한 2차대전 이후 대통령이나 국가주석의 임기제한이 돼야 권력분리과 국민주권,기본권보장,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을 보장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