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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군사조치가 불러일으킬 파장 본문

Guide Ear&Bird's Eye/러시아 언론

북한에 대한 군사조치가 불러일으킬 파장

CIA bear 허관(許灌) 2017. 4. 7. 09:39

 

"북한 평민층 식량난과 빈곤층 기아위기이다  미국정부도 군사조치를 하기 전에 북한 주민 스스로 의사(입장)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지 못할 만큼 경제붕괴가 필요하다 그리고 연합군이 북한을 진입할때 북한 주민 자유화, 민주화 세력이 평양시내와 일부지역을 장악해야 한다"

최근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이 “미국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군사적 대응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부산대학교 교수인 로버트 켈리는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 주목하면서 더 내셔널 인터레스트 잡지를 통해 “틸러슨 장관이 군사적 옵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공군을 동원한 폭격 작전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 공군 전력은 북한 공군 전력에 비해 상당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반면 해상 전투에서의 성공은 보장할 수 없음, 지상전의 경우에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추측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 대한 북한의 도발행위가 지속되어 오면서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적 조치 방안은 오래 전부터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매번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은 억제전략의 노선을 택해왔다. 아울러 억제 전략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이유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며,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큰 난관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북한의 보복공격 가능성에 대해 한국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북한의 보복공격 가능성은 한국이 억제 전략 노선을 고집해오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한국군은 현재 북한과의 장기적인 무력충돌에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수도인 서울의 경우 북한과의 국경과 매우 근접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과 경기도에만 대한민국 국민 55%가 거주하고 있다. 아울러 해당 지역은 대한민국의 경제와 정치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두 번째로 북한에 대한 폭격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보복 공격을 감당해야 하는 한국과 일본의 동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법적인 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의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미국의 독단적인 결정은 한-미, 미-일 동맹에 금이 가게 되는 상황을 야기할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우 미국의 군사작전에 동의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국의 경우 현재 대통령 탄핵 사건을 둘러싼 혼란 속에서 이와 같은 위험을 부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울러 현재 대다수 분석가들이 예상하고 있는 바와 같이 5월에 치러질 선거 이후 야당이 집권하게 될 경우 한국은 절대로 폭격 작전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로 폭격 공격은 절대로 ‘수술’적인 성향을 지니지 못 할 것이다. 아울러 기대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이럴 경우 상황은 제한적 군사작전에서 사실상 전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북한은 6.25 전쟁 이후 적군의 공군 폭격에 꾸준히 대비해 왔으며,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와 잠수함 전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시설과 핵 시설을 집중 폭격할 계획이라 하더라도, 군사 작전은 장기전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남아 있는 미사일 전력으로 한국과 일본을 공격할 것이다. 미국의 폭격이 장기화 될수록 북한의 보복 공격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네 번째로 북한에 있어서 ‘적색 라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북한군에는 전쟁에 대한 작전이 수립되어 있을 것이며, 미 동맹국들의 행동에 대한 대응책이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동시에 북한의 주요 전력이 핵과 미사일 전력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북한의 보복 공격이 어떠한 성격을 띄울지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다섯 번째로 북한은 주요 시설물들 주변으로 민간인들을 이동시켜 인간방패를 활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북한에 폭격을 감행할 경우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중국은 향후 수년간 미국의 가장 중요한 협력국가로 자리 잡을 것이다. 미국의 모든 군사 작전에 대해 중국 내에서는 반대 입장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아울러 미국은 군사작전에 대해 중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북한의 붕괴와 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점에 대해 보다 더 우려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난관들과 제한들은 미 공군의 폭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 여러 가지 난관들로 인해 군사작전이 실제로 옮겨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번에도 이와 같은 난관들이 군사작전을 저지하는 요소로 적용될 수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반면, 이와 같은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현재 공군 폭격 작전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일 것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대한민국 제6공화국 헌법 전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제국 국호 대한(大韓)과 3.1운동 주도세력 신민회(新民會)의 신민주주의(新民主主義) 이념 국체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을  포용하여 건국한 정부입니다

대한민국의 국호는 대한이며 국체는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한(대한)은 고종 국왕이 고대부터 내려오는 삼한정통설[三韓(三國)正統說] 입장으로 건국한 국호입니다

三韓(三國)正統說, 大韓的三韓之也. 三韓的馬韓(高句麗=高麗)弁韓(百濟)辰韓(新羅)之也.  大韓民國(대한민국)[삼한정통설, 대한은 삼한(삼국)이다. 삼한은 마한(고구려=고려),변한(백제), 진한(신라)이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선출한 국가 원수 및 대표에 의하여 국정이 운영되는 나라입니다 민주(民主, 백성의 주인) 3대 원칙은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이고 공화국(共和國)은 다수인이 국가권력을 보유하고 군주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를 뜻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6공화국 헌법 제1조]"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가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입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을 할 수 없다]
*민주주의 3대 원칙:국민의(民有), 국민에 의한(民治), 국민을 위한(民享) 정부

*국영 기업 []

국가 직접 세워 운영하는 기업

*공기업 []

국가 공공 단체 자본으로 설립하여 운영되는 기업

*사기업 []

개인 또는 사인() 같은 민간인 출자하여 경영하는 기업

공산주의 국가에는 원칙적으로 사기업 존재할 수가 없다

사기업 []은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적인 기업체제이자 현대 고도산업사회의 핵심적인 구성체로 산업사회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고도소비사회는 소비가 투자라는 경제원칙이 적용되는 고소득층이 국가 경제 주도층으로 되어 가는 사회이다

-고도 소비사회(고소득층)에서는 자본주의민주주의(자유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자유무역으로 국가간의 경제통합이 필요하다

*극단적 사회주의(국가사회주의-국영기업, 군국주의)
*극단적 자유주의(무정부주의.마약복용,동성애)
*북한은 국영자본체제 반미 자주노선 국가사회주의 세습제 독재정부이다 북한정부의 반체제인사는 자유화, 민주화세력이다

남한정부 내부 친북세력은 자주노선 반미세력(국가사회주의 세력)이다

                                         "For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

국영자본체제 북한(자료)

1인당 GDP $2,400(2014년도,채무불이행 국가) 국영자본체제 북한

1.국영자본체제는 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국영기업)를 의미한다

북한정부도 토지이외 모든 물건(주택이나 상가, 자동차등) 개인 소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평양시내 아파트 매매를 허용하고 있다 토지는 국가나 협동농장 소유이다 북한 평양시민 중 경제적으로 풍요한 사람은 개인 소유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중국인이나 외국인 투자가들도 상가나 고급 아파트등을 소유하고 있는 분도 많다 북한이 개혁 개방화 될 수록 임대 아파트보다는  개인 소유 아파트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

 

평양 시내  상류층과 평민층, 빈곤층등의 빈부격차도 심각하다

북한 주민 계층은 상류층, 평민층, 빈곤층(식량난이나 영양실조 계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북한 상류층 30%이내이며 평민층 70%, 평민층 중 빈곤층 33%이내: 북한의 배고픈 사람들(식량난과 기아위기 주민들)이 1990년대  초반 420만명, 중반 700만명이었고  긴 식량 위기의 10 년 후, 2007 년까지 북한  전체 주민의 33 %, 즉 780만명이 영양실조 상태이다]

북한은 교육, 의료, 주거의 무상화를 실시하고 있다고 칭하고 있지만 북한 경제 빈곤화로 실업자나 빈곤층에게는 교육,의료, 주거등의 무상화가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 주민은 상류층과 서민층(평민층)으로 구분 돼 있고 서민층(평민층) 중에는 식량위기 계층 빈곤층이 전체 주민 33%이다

 북한은 계획 경제를 실행하고 있지만 의식주(衣食住), 외출이나 쇼핑에는 (입장권·승차권 등의) 표, 상표권과 돈이 필요하다. 교육,의료,주거 무상화로 직원 급여가 아니라 생활비만 지급된다. 주택(주거)도 개인소유를 인정함으로 점차 사유화 돼 가고 있다

2.북한 남녀징병제 국가로 남자 10년간, 여자 7년간 군 복무

공식적은 북한 군은 120만명이다. 실질적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수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절반 이상인 70만명이 많다. 북한의 나머지 군인들은 민간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 민간 업무란 양돈, 어획, 광산, 공장 등에서 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임급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다

북한 무상교육 중학교 졸업생 중 30%이내 학생들이 개인의 능력과 유상교육기관 대학에 진학한다

중국은 직업군인 지원 모병제이지만 북한은 남녀 징병제국가로 중학교 졸업 후 남자는 10년간, 여자는 7년간 현역군인이나 다른 군복무형태  직장 등지에서 군복무를 해야 한다

통계에 따르면, 2012년 북한 인민군 병사의 수는 120만 명으로 이 중 여성 군인은 15% 약 17만명에 달했다. 북한의 인구는 약 2400만명으로 1000명에 7명이 여성 군인, 인민군 군인 100명에 15명이 여성 군인 ​​셈이다

북한정부는 북한 아동들의 영양부족으로 인민군 입대 신체 조건을 "키 138cm이상, 몸무게 43Kg 이상"으로 실행하고 있다

14세때 징병명부 등록, 15세때 신체검사, 16세부터 인민군 입대를 하고 있다

병역 근무 자리 비리가 북한 군부내 가장 큰 비리로 알려지고 있다 

매관행위는 인민군을  감시하는 총정치국 정치 지도원이라는 유리한 자리에는 5 천 ~ 2 만 달러 (약 50 만 ~ 200 만 원), 지방 관리는 약 5 천 중국 위엔화 (약 8 만원)에 직위를 사고 파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식통은 "공직에 붙으면 뇌물을 받을 처지에 놓이게 1주일에 의거을 회수 할 수 있다고 된다"고 말했다

현역군인이나 군(軍) 경력이 없으면 원칙적 북한 노동당 당원이 될 수 없다

북한 노동당 당원은 군인이다[先軍정치와 국방위원회]

북한은 14세가 되는 해 징병대상자로 등록된 후, 16세 때 징병검사를 받는다. 이듬해 17세에 정식으로 입대한다. 복무기간은 남성 보병부대 10년 특수부대 13년, 여성 보병부대 5년 특수부대 7년. 복무 중 의무적으로 경제활동에 투입되므로, 북한 인민군은 농업, 공업과 공공기업체 기능도 겸하고 있다. 이들은 제일 거대한 생산집단이며, 동시에 소비집단이다. 전역 후 계급에 상관없이 60세까지 예비역으로 복무한다. 2000년대 들어 병무행정이 원활히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단, 대학입시를 통해 대학에 들어가거나 예술가, 운동 선수, 징병검사를 통한 심신 상태나 자질 문제가 있는 사람은 징병되지 않는다. 징병되지 않는다고 다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와 운동선수는 장교에 준한 대우를 받는 반면 심신 또는 자질에 문제가 있어서 징병되지 않은 사람은 적대계층으로 분류되어 평생 차별을 당한다

3.제3공화국 헌법과 자영업

북한정부도 토지이외 모든 물건(주택이나 상가, 자동차등) 개인 소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평양시내 아파트 매매를 허용하고 있다 토지는 국가나 협동농장 소유이다

북한에 자영업이 늘고 있다. 1990년대 장마당 상인으로 출발한 자영업자들이 숙박업, 개인 버스, 사금융업, 아파트 매매 등으로 활동을 넓히면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북한에 ‘돈주’로 불리는 신흥자본가 그룹이 생겨나고 있다고 영국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지난 10월29일 평양발 기사에서, “돈의 주인이라는 의미의 돈주가 외화를 써가며 비공식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전했다.

‘돈주’는 1990년대 후반 발생한 ‘고난의 행군’의 산물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당시 배급이 중단되고 국영상점이 문을 닫자 주민들은 너도나도 장마당으로 나와 장사를 했는데 이를 통해 돈을 번 사람들이 바로 돈주라는 것이다.

"써비차는 개인이 하는 운송, 버스, 택시 이런 건데, 사람도 싣고 짐도 싣고, 경제난 이후 개인들이 먹고 살려고 만든 건데, 이것 없이는 이동을 못해요.”

이밖에 숙박업자, 노래방 업자, 비디오 촬영업자, 매대 분양업자도 생겨난다

4.북한 부채 140억달러

미 재무부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30여개국에 140억달러의 빚을 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별 부채 규모는 1위 중국( 69억8000만달러), 2위 러시아(10억1000만달러), 3위 일본(3억달러), 4위 스웨덴 (3억3000만달러), 5위 이란(3억달러)과 독일(3억달러), 6위 프랑스(2억8000만달러), 7위 태국 (2억6000만달러), 8위 오스트리아(2억1000만달러), 9위 시리아(1억4000만달러), 10위 스위스 (1억달러), 11위 대만(8600만달러) , 12위 이라크 (5000만달러) 등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인민회의정부 인민민주주의를 포기하고 1970년대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으로 인민경제 파탄 일인 장기집권과 가족주의 권력 세습제 좌익군사독재정부를 수립했다

또한 1980년대에는 국채를 대량 발행하고 외국에 엄청난 빚을 졌는데 이 때문에 북한의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이 부채를 갚을 티끌만큼의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통일이 되면 남한이 이 부채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군사 및 경제 원조 등으로 북한 전체 부채 절반 수준 69억8000만달러이다

5.북한 영화는 우리식 사회주의 김일성노선으로 군대 방식으로 관리 운영하고 있으며 남한 사람이나 서양사람은 적국으로 묘사하고 있다

영화는 정치 선전물로 입장료는 무료이다

북한 영화는 예술성이 없고 권력의 시녀이다

북한 사람들은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떤 영화도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며 정치 선전에 적합하여야 한다.

북한 영화의 촬영은 군의 관리 방법으로 운영하고 있다. 출연자가 하는 말과 시간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북한 헌법

1.제1공화국--인민 민주주의 헌법(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인민공화국, 인민 의회정부론=인민 회의정부론, 순수 내각책임제)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은 의회(인민의회)가 가장 우월한 정부형태이며 의회는 정부를 불신임할 수 있지만 내각(정부)는 의회를 불신임할 수 없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 회의제 정부 형태이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의회가 권력을 장악하여 내각은 의회 정책수행 시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내각(정부)은 의회에 예속 ,종속돼 왔다 인민의회정부론(인민회의정부론)에서는 명목상 국가원수는 대통령이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고 내각수반과 군 총사령관은 수상이다

(1)제1공화국 국가수반(국가원수)

ㄱ.북한정부 제 1대 국가수반 김두봉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1948년 9월 9일-1958년 3월(사임)

1948년 9월 2일부터 10일간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통과된 북한 헌법에 따르면, 국가원수는 상임위원장이었고, 김두봉이 선출 되었다. 당시 김일성은 국가 원수가 아닌 내각의 수상으로 선출 되었다 

ㄴ.북한정부 제 2대 국가수반 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1958년 3월 4일-1972년 12월 14일

(2)제1공화국 내각수반 및 군 총사령관-김일성 내각수상(노동당 총비서=노동당 당수)

2. 제2공화국-사회주의 헌법(사회주의 공화국, 주석제 또는 신대통령제)

(1) 제2공화국 국가수반(국가원수)

ㄱ.북한정부 제 3대 국가수반(국가원수) 김일성 주석 1972년 12월 15일-1994년 7월 8일

ㄴ.북한정부 임시 국가수반 김정일 국방위원장[유훈통치기간 국가주석대행]  1994년 7월 8일-1998년 9월 5일

(2)제1공화국 내각수반 및 군 통수권자(총사령관)

ㄱ.김일성 국가주석 겸 내각수반, 군 통수권자(인민군 총사령관 및 노동당 중앙군사위원장) 1972년 12월 15일-1991년 12월경

ㄴ.김정일 군 통수권자(인민군 총사령관, 노동당 중앙 군사부위원장) 1991년 12월--1998년 9월 5일

3.제3공화국-세습제 좌익군정 헌법(先軍정치와 국방위원회, 명목상 국가원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1)제3공화국 국가수반(국가원수)

북한정부 제 4대 국가수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1998년 9월 5일--현직

(2)인민군 총사령관과 군정(내각) 책임자(세습제 좌익군정): 국방위원회와 인민군 총참모부

ㄱ.김정일 국방위원장(노동당 중앙군사위원장과 당 총비서)1998년 9월 5일-2011년 12월 17일

ㄴ.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노동당 중앙군사위원장과 당 제1비서) 2012년 4월 12일--현직

*Separation of the military administration and command[軍政分離主義,兵政分離主義]

North Korea, Imperialism etc

군정분리주의는 군정과 군령을 분리된 국가제도이다 군정분리주의는 군정기관과 군령기관의 역할을 내각과 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군사평의회)로 분리함으로써 군정은 정부의 책임과 의회의 통제 아래에 두지만 군령은 정부나 의회보다 우월한 군령권을 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군사평의회)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군 통수권에 정치적 판단(의회통제)이 개입할 여지가 없고 오로지 최고 지도자에게만 모든 군 인사권이 주어지고 있다

군정분리주의는 군(軍)통수권 독립이 허용되는 모델로 국가수반(국가주석이나 총통)이 군 통수권자가 아닌 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군사평의회) 위원장이 군 통수권자이다

1,중국(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중앙군사위원회 조직이다(당군이론)

제4절 중앙군사위원회(中央軍事委員會)

제93조 ①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는 전국 무장역량을 영도한다. 중앙군사위원회는 아래 자로 구성한다.

주석·부주석약간인·위원약간인

②중앙군사위원회는 주석책임제를 실행한다.

③중앙군사위원회의 매회 임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매회 임기와 같다.

제94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 책임을 진다.[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4절]

2.북한:북한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국방위원회이다(당군이론)

제2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

제 100 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이다.

제 101 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임기는 최고인민회의임기와 같다.

제 102 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반적무력의 최고사령관으로 되며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한다.

제 103 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임무와 권한을 가진다.

1. 국가의 전반사업을 지도한다.

2. 국방위원회사업을 직접 지도한다.

3. 국방부문의 중요간부를 임명 또는 해임한다.

4. 다른 나라와 맺은 중요조약을 비준 또는 페기한다.

5. 특사권을 행사한다.

6. 나라의 비상사태와 전시상태, 동원령을 선포한다.

제 104 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명령을 낸다.

제 105 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자기 사업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앞에 책임진다.

제3절 국방위원회

제 106 조: 국방위원회는 국가주권의 최고국방지도기관이다.

제 107 조: 국방위원회는 위원장, 제1부위원장, 부위원장, 위원들로 구성한다.

제 108 조: 국방위원회임기는 최고인민회의임기와 같다.

제 109 조: 국방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임무와 권한을 가진다.

1. 선군혁명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국가의 중요정책을 세운다.

2. 국가의 전반적무력과 국방건설사업을 지도한다.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 명령, 국방위원회 결정, 지시집행정형을 감독하고 대책을 세운다.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 명령, 국방위원회 결정, 지시에 어긋나는 국가기관의 결정, 지시를 페지한다.

5. 국방부문의 중앙기관을 내오거나 없앤다.

6. 군사칭호를 제정하며 장령이상의 군사칭호를 수여한다.

제 110 조: 국방위원회는 결정, 지시를 낸다.

제 111 조: 국방위원회는 자기 사업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앞에 책임진다.[북한 헌법 제2.3절]

3.이란

이란정부도 병정분리주의(兵政分離主義) 군사정책으로 외교·국방·언론·사법·전쟁선포권등 최고지도자 권한이며 선출직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한다

이란정부는 자유선거 제도 도입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 형태로 대통령이 외교 국방등 실질적 권한을 행사해 나가고 있다

 북한 인민군 총사령관[북한 군부 실권자]

 

1.소비에트 연방(소련) 국가원수 스탈린(임시정부)[소련군정의 치스차코프 대장] 1945년 8월 15일-1947년 2월

소련공산당과 소련군이 1945년 8월 북한을 점령하고 공산정권 창출의 주역을 맡았다 소련군 25만명이 북한지역에 배치했다

2.최용건 민족보위상 겸 인민군 총사령관 1947년 2월 -1950년 7월 4일 

3..김일성 군사위원회(내각 수상) 위원장 겸 인민군 총사령관 1950년 7월 4일-1994년 7월 8일

-1991년 12월, 김정일 인민군 최고사령관 취임과 인민군 장악

4.김정일 인민군 총사령관 겸 국방위원장(임시) 1994년 7월 8일-1998년 9월 5일[유훈통치기간 국가주석대행]

5.김정일 인민군 총사령관 겸 국방위원장 1998년 9월 5일-2011년 12월 17일[주석제 폐지]

6.김정은 노동당중앙군사부위원장(임시) 2011년 12월 17일-2012년 4월 12일[유훈통치기간 군 통수권 대행]

7.김정은 인민군 총사령관 겸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2012년 4월 12일--현직

독일정부 통일정책: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반공반독재구국전선으로"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민주공화국(자유사회 선진국)이다"1단계-자유화, 개방화정책(자본주의=반공산주의)자본주의 3대원칙-사유재산, 영리추구, 시장경쟁원리등2단계-민주화 정책(민주주의=반국가사회주의)민주연합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공동정부 수립(통일정부)

"남한 김일성주의 반군무장단체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반미청년회=민혁당의 새세대)을 제거할 것도 Guide Ear(귀, 뇌 감청기 조언과 망각.명령.능력부족-뇌 조종)팀이 아닌 귀가 빙빙 돌아가는 뇌 감청기 머리소리함  요원 Bird's Eye(눈,해독-요원의 지적능력)이다

남한 김일성주의 반군무장단체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반미청년회=민혁당의 새세대)란

반제동맹(김영환팀의 강철서신)--->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1990년 1월 새세대, 민혁당 등)"귀가 빙빙 돌아가는 뇌 감청기 머리소리함은 국제기구 요원 신변을 보호하기 위하여 태어 날 때부터 생존 당시까지 기억을 검증하는 국제기구 시스템..귀가 빙빙 돌아가는 뇌 감청기 머리소리함[Bird's Eye&Guide Ear]은 Guide Ear(귀, 뇌 감청기 조언과 망각.명령.능력부족-뇌 조종)팀이 항시 요원의 Bird's Eye(눈,해독-요원의 지적능력)을 존중해야 한다사고나 신변상 위해가 있을 때 전적으로 Guide Ear(귀)팀 책임이다.   한국 대북외교는 미국축에서 추진해야 한다 許灌

*북한 국가수반(국가원수)

-북한정부 제 1대 국가수반 김두봉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1948년 9월 9일 ~ 1958년 3월(사임)

1948년 9월 2일부터 10일간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통과된 북한 헌법에 따르면, 국가원수는 상임위원장이었고, 김두봉이 선출되었다. 당시 김일성은 국가 원수가 아닌 내각의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북한정부 제 2대 국가수반 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1958년 3월 4일 ~ 1972년 12월 14일

-북한정부 제 3대 국가수반(국가원수) 김일성 주석  1972년 12월 15일 ~ 1994년 7월 8일

-북한정부 임시 국가수반 김정일 국방위원장[유훈통치기간 국가주석대행]  1994년 7월 8일-1998년 9월 5일

-북한정부 제 4대 국가수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1998년 9월 5일--현직

 

*북한정부 통치자(실권자-군 통수권자 북한 인민군 총사령관)

ㄱ.소비에트 연방(소련) 국가원수 스탈린(임시정부) 1945년 8월 15일-1948년 9월 9일

 

(ㄱ)소비에트연방의 극동군 제88국제여단은 북한 김일성 前 주석을 비롯한 "혁명 1세대"의 모태이다.

김일성이 주도한 보천보 전투 이후 만주에서 일본군의 항일세력 토벌작전이 심화됨에 따라 동북항일연군 소속의 조선인과 중국인들은 국경을 넘어 러시아 연해주로 도피하였다. 소련은 장래 있을지도 모르는 일본과의 충돌을 대비하고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이들을 자국군에 편입하고 88여단이라고 칭했다. 소련군 소속이었으나 실제로는 동북항일연군(중국 공산당군)의 편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곳에 참가한 조선인 가운데 약 60여명이 확인되며, 이들 대부분은 소학교 중퇴자이며 김일성을 비롯한 4인이 중학교 중퇴이다. 이들은 88여단에서 1940년경부터 해방까지 약 5년간 복무했으며, 소련군정하에서 김일성의 측근이 되어 훗날 북한 권력층의 핵심이 된다.

이들 중 중등교육 수준의 학력을 갖추었던 사람은 대위 김일성, 상조 임춘추, 대위 안길, 대위 김책, 중위 서철의 5인이다. 이 외의 55인의 평균학력은 소학교 3학년이다

(ㄴ)소련공산당과 소련군이 1945년 8월 북한을 점령하고 공산정권 창출의 주역을 맡았다 소련군 25만명이 북한지역에 배치했다

(ㄷ)후세인과 김일성등 국가사회주의 세력은 1991년 8월 19일 보수강경파 주도 소련 군부쿠데타를 지지했고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소련군부 쿠데타를 반대했다

중국과 소련등 반미세력이 퇴진하면서 일어난 사건 임표사건, 소련군부 쿠데타등이다 북한정부는 항시 반미세력편에 가담했다(김일성세력은 임표 반란나 소련군부 쿠데타를 지원했다 김일성은 극동소련군 사령부 정찰국 대대장 출신이다)

a.중국정부와 미국정부, 일본정부 국교정상화 과정에 일어난 1971년 임표등 중국 군부쿠데타 시도와 실패 그리고 주은래 등소평등 수교 교섭세력 승리

b.1992년 한국과 소련국교 정상화 과정에 일어난 소련군부쿠데타 시도와 실패 그리고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세력 옐친등장

ㄴ.김일성 총리 겸 인민군 총사령관(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1948년 9월 9일-1994년 7월 8일

 

-1991년 12월, 김정일 인민군 최고사령관 취임과 인민군 장악

 

ㄷ.김정일 인민군 총사령관 겸 국방위원장(임시) 1994년 7월 8일-1998년 9월 5일[유훈통치기간 국가주석대행]

 

ㄹ.김정일 인민군 총사령관 겸 국방위원장 1998년 9월 5일-2011년 12월 17일[주석제 폐지]

 

ㅁ.김정은 노동당중앙군사부위원장(임시) 2011년 12월 17일-2012년 4월 12일[유훈통치기간 군 통수권 대행]

 

ㅂ.김정은 인민군 총사령관 겸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2012년 4월 12일--현직

 

*북한 의회는 친미,친서방 성향이고 군부는 반미, 반서방 성향이다(구소련 권력기구 성향과 비슷하다)

 

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

-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스탈린부대[민주사회주의 노선, 국가사회주의 성향 사회주의 그룹]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모택동부대[신민주주의 노선, 인민민주주의 그룹]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레닌부대[공산주의 노선, 마스-레닌주의 공산당 그룹]
한국전쟁 이후 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이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그룹과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 그룹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 그룹은 한국전쟁 패전 책임과 박헌영등 미국간첩으로 제거 되었고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그룹은 종파주의자로 제거 되었다

아직도 북한 권력층은 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후손들이 장악하고 있다

 

김일성은 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주도 인물로 소련군 도움므로 권력을 장악했다

중국에서는 김일성을 만주 조선족자치정부[만국 조선족자치정부] 공산주의(사회주의) 세대로 평가하고 있으며 일본 좌파는 김일성을 김광서(일본육사 23기 기병과 출신)으로 평가해왔다

소련에서는 한족과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등  혼성 용병부대 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조선인 지휘관으로 알려지고 있다

 

*88독립 저격여단(러시아어 : 88-я отдельная стрелковая бригада; 약칭 88 осбр)

 

 1944년 소련령의 동북항일연군 부대원들과 자리를 함께 한 김일성.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흑룡강성당사자료> 10집에 수록. (출처 : 한겨레신문)

88독립 저격여단 (러시아어 : 88-я отдельная стрелковая бригада; 약칭 88 осбр) 소련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창설 극동지역 각 민족여단(한족,조선족, 몽골족, 만주족 등 외국인 연합군) 1개이다

88독립 저격여단은 극동전선 정보과 직속 만주와 한반도에서 정찰 , 파괴 공작임무을 수행했다[소련군 특수부대 빨치산]

88독립 저격여단 원래 동북 항일연군(聯軍) 장병 핵심이 주로 중국인과 조선인에서 편성 되었다. 후일 북한 국가 주석 김일성 여단 1 대대장 맡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당 공식 견해에서는 김일성은 조선인민혁명군 조직하여 동북 항일연군 본체 공투하면서도 다른  행동이었다고 하고 다음 88독립 저격여단  사실 무시되고 있다(부정하거나 서술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자주노선과 주체정부 노선으로 김일성의 중국 공산당이나 소련군 참여를 부정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부대 동북 항일 연군 교도여단이라고 칭하고 있다.

  여단 핵심 동북 항일연군(聯軍) 1939년경부터 관동군과 만주국(만국)군 대규모 소탕 작전으로 수 많은 전사자 밖에 일본 당국 귀순하는 사람도 나오기 시작했다. 주보중, 최용건, 김책, 김일성 남은 자들 물자 부족으로 인해 활동 계속이 곤란 해졌다. 따라서 그들은 소련으로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1940년 12월 말 연군(聯軍)은 아무르 강을 건너 소련 영내에 들어갔다. 소련 영내에서는 리안 군의 활동 지원을 위해 연해주의 보로시로후 · 우수 리스크 교외 북쪽 (A) 야영 (Северный лагерь 또는 лагерь А), 투르크 메니스탄의 케루키 교외 남쪽 (B) 야영 (Южный лагерь 또는 лагерь Б)를 설영했다. 당초 100여명이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이후 200 ~ 300명으로 증가했다
독소전 발발 후 1941년 7월 중순, 소련 정부는 일본의 북진에 대비하여이 야영지에 따라 제 88 독립 저 여단을 편성하기로 결정했다. 여단은 하바로프스크시의 부쯔코에 · 나 · 나아 무레 (Вятское-на-Амуре)에 배치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1942년 7월 21일 극동 전선사령관 이오 시프 아빠나센코 상급 대장의 명령 제 00132호에 따라 여단의 편성 기간은 같은 해 7월 28일부터 9월 15일까지로 정해졌다.

부대 충족 동북 항일 중국인 병력과 조선인 병력 외부 중국계 · 조선계,  소련인, 기타 소수 민족 (몽골족, 민주족등 )에서 열렸다. 여단 대원 대부분 중국에서 조선인은 10% 불과했다. 그 후, 후속하여 소련 영내 들어간 부대도 합류 해, 88 여단 병력 수는 1,500 명을 넘어 섰다.
리안 에서 온 많은 사람들 소련 군사 학교 촉성 지휘 과정 또는 관구 소위 과정받은 적군 계급 수여했다 (여단장 주보중 중령, 김일성은 대위). 일반적으로 여단 지휘 관직에는 중국인 지휘 관직 붉은 군대 장교 임명되었다. 병사 적군 군복 착용했다.

 

1944 4 현재 편제.
여단 본부 - 여단장 : 주보 중령, 참모장 : V. 사마루첸코 소령
정치 과학 - 정치 위원 : V. 세레긴 소령
방첩 - 스 메르시
1 독립 저격 대대 - 대대장 : 김일성 대위
2 독립 저격 대대 - 대대장 : 왕효명 대위
3 독립 저격 대대 - 대대장 : 왕명귀 대위
4 독립 저격 대대 - 대대장 : 강건 대위
자동 소총 대대
무선 대대
독립 박격포 중대
독립 공병 중대
독립 대전차 소총 (PTR) 중대
독립 경제 중대
독립 기관총 소대
군사 통역 과정 특수 분대
독립 저격 대대는 3 개 중대로 구성되어 중대는 3 개 소대에서 되었다.

 

장비 (1942 9 ~ 1943 7 현재) 소총 x4,312 테이, 자동 소총 x370 , 중기관총 x48 자루, 경기관총 x63 정,  화포 x21 문, 대전차 소총 x16 테이, 자동차 x23 .
88 여단 병사 만주 · 한반도 지역에서 정찰 · 파괴 공작 활동에 종사했다. 자세한 것은 불명이지만, 여단장 주보 1940 ~ 1943 사이 89 명의 감원 (손해)이 있었음보고하고 있다.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제 2 극동 전선의 첩보 업무에 파견 - 9명
제 1 극동 전선의 첩보 업무에 파견 - 26명
미 귀환 - 24명
스 메르시에 인도 - 6명
환자를 위한 후송 - 15 명
사망 - 2명
여단 복귀 - 7명
1945년 7월 소련 대일 참전에 대비하여 여단에서 무전기를 장착 한 100명을 투입하는 전투 행동 계획이 수립 되었다. 그러나 소련군의 급속한 진격과 일본의 항복으로 인해이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제 88 여단 그 대대장 김일성이 한반도의 해방에 참여할 수있는 기회가 방문했다.
1945년 8월 29일 제 2 극동 전선 사령관 막심 뿌루카에후 상급 대장의 명령 제 010 호 / n에 따라 "일본 침략자와 싸우는 전선에서 전투 지휘 임무의 모범적 인 수행과이 때 발휘 된 용기 및 용기 "에 김일성에 적기 훈장이 수여되었다. 이 명령에 따라 제 88 여단 장병 216명에게 각종 훈장과 메달이 수여되었다 (9 월 10 일에 더욱 58 명 추가).

  88여단(외국인군단, 대일연합군) 1945 10 12일자 극동군관구 사령관 042호에 의해 해산 되었다.

 

-포츠담 선언문에서 연합군(미국정부) 청탁으로 소련군이 일본과의 전쟁 참여가 서명되었다. 서명된 내용대로 5월 9일 유럽 전쟁에 승리한 지 정확히 3개월 후 소련군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 모든 사실들이 얄타, 포츠담에서 진행된 연합군 회의 국제 문서 내용에 있다.

8월 폭풍 작전은 미국을 상대로 한 본토 결전에만 대비하고 소련의 참전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던 일본제국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원자폭탄 투하만으로도 국가 멸망 및 민족 멸절의 위기를 맞이하는 상태에서 소련의 참전은 일본군 수뇌부의 항전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8월 19일 관동군 사령관 야마타 오토조 대장이 항복조칙에 따라 무조건 항복하였고, 8월 30일까지 만주 지역과 한반도 북부에 있던 일본 관동군에 대한 전면 무장 해제가 이루어졌다. 불과 1주일(1945년 8월 9일~15일)의 짧은 기간동안 8만 명이 넘는 일본군이 전사했으며, 60만 명이 넘게 포로로 잡혔다. 반면, 소련군의 전사자는 1만 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8월 13일에 청진시에서 소련과 일본이 싸우면서 소련은 300명이 죽었고, 일본은 500명이 죽으면서 2500명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한다

소련은 이 작전을 통해 일본 제국의 괴뢰 국가인 만주국과 몽강국을 붕괴시키고 만주 전역을 장악하였으며, 서방 연합국과의 사전 약속에 따라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를 자국 영토로 흡수하였다. 또,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명분으로 한반도 북부에 군대를 진주시켜 미국과 함께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단하였다.

-미군시찰단 연안(延安) 방문

1944년 7월 22일 미군 대령을 단장으로 한 미군 시찰단이 주중 미군총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홍군의 최고 지도부가 위치한 옌안(延安)을 방문했다. 8월 7일에는 2차 시찰단이 비행기 편으로 옌안에 왔다.
이들의 시찰 목적은 전선 후방 지역에서 8로군(八路軍)과 신4군(新四軍)의 작전 상황을 파악하고 군사적 협력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젠잉(葉劍英)과 양상쿤(楊尙昆)의 영접을 받은 이들은 마오쩌둥(毛澤東), 주더(朱德), 저우언라이(周恩來) 등을 만났으며 펑더화이(彭德懷)와 천이(陳毅) 등으로부터 8로군과 신4군의 전투 활약상황을 브리핑 받았다이들 시찰단은 옌안 외에 진찰기(晋察冀)지구(현재 산시<山西>성과 허베이성 일대), 진수(晋綏) 지구(현재 산시<山西>성과 네이멍구 일대) 등 홍군의 항일 근거지 등을 시찰했다.
이들 시찰단은 시찰을 마치고 미국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중국 공산당과 그 무장역량을 중시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당시 이들 미군 시찰단을 맞아 옌안에서 발행되던 해방일보(解放日報)는 ‘우방 미국 군사사절단 환영’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시찰단이 미국에게 중국공산당과 그들의 저항운동에 대한 호의적 평가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주중 미군 총사령부의 군사시찰단 파견은 미국의 대중국 정책 전환 움직임과 연계된 것이었다.
태평양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미국은 중국에서의 제2전선 역량 강화를 위해 모든 중국 군대의 통합을 희망했다.
헨리 월레스(Henry Wallace) 미국 부통령은 1944년 6월 충칭(重慶)에서 장제스(蔣介石)와 만나 중국 공산당과 관계를 개선하여 항일에 더욱 박차를 가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7월 초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민당과 공산당 군대를 포함한 전 중국군 지휘자로 스틸웰(Stilwell) 장군을 제안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전 초기 한국군의 작전권을 요구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대전협정을 통해 맥아더에게 한국군의 작전권을 이양했다. 하지만 장제스는 그렇게 절박한 상황은 아니어서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루스벨트의 이 제안은 필연적으로 공산당이 참여한 중국의 연합정부 창설 제안으로 이어졌다. 공산당은 이 일련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러한 배경 하에서 미군 시찰단의 옌안 방문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장제스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루스벨트는 결국 장제스와 심한 불화를 보였던 스틸웰을 소환하고 웨드마이어(Wedmeyer) 장군을 그 후임으로 임명하였다.
또 공산당을 포함한 연합정부를 제안한 가우스(Gauss) 대사도 이해 11월 30일 스틸웰의 소환을 주장했던 패트릭 헐리(Patrick Hurley)로 교체했다.
장제스의 강력한 반발로 미국의 대중국 정책 전환 시도가 좌절된 셈이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 전환은 유럽에서 처칠이 추구한 유고 정책 을 본 뜬 것이다. 유고에서는 나치 침공 후 왕정 세력의 게릴라와 티토가 이끄는 공산 세력 게릴라가 별도로 활동했는데 처칠은 티토의 게릴라가 적 후방에서 제2전선을 구축하는데 더욱 효과적인 역할을 하자 그들이 공산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적극 지원햇다.
이 결과 2차 대전 기간 티토의 게릴라는 세력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티토의 게릴라 세력은 종전 후 벌어진 유고 내전에서 미하일로비치가 이끄는 왕정 세력을 격파하고 자체적으로 유고를 공산화하였다.
1940년 8월 20일부터 그해 12월 5일 까지 8로군 부총사령관 펑더화이가 지휘한 한 백단대전(百團大戰)은 미국에게 영국이 티토가 지휘하는 유고의 공산 게릴라의 전략적 가치를 주목했던 것처럼 미국에게 마오쩌둥의 홍군의 전략적 가치를 괄목상대하게 만들엇다.
스틸웰 등 중국 주둔 미국 지휘부는 국민당 군대의 만연한 부패와 이에 따른 군사적 무능과 비효율에 불만을 품고 처칠이 유고에서 취했던 것처럼 공산 게릴라 세력을 적극 지원, 대일본 제2전선을 구축하자는 입장을 취했다.

장제스의 강력한 반발로 미국 민주당 행정부는 2차 대전 기간 중국의 유고화를 시도하지 못했으나 이러한 기조는 루스벨트 사후 트루먼 행정부에 이어져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배하는 것을 방치햇고 중국 공산화 이후에도 애치슨 라인 발표 등 중국 유고화를 부단히 추구했다. 이런 중국의 유고화 전략을 무산시킨 것은 한국전(6.25 사변) 발발이었으며이 전략은 1971년 공화당 닉슨행정부의 키신저가 부활시킬 때까지 동면해야했다.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한반도 문제 해결 위한 4자 회담과 남북교차 승인, 유엔동시가입 등을 제의했다(1976).

 

[第88独立狙撃旅団(ロシア語: 88-я отдельная стрелковая бригада;略称88 осбр )は、ソビエト連邦が第二次世界大戦中に創設した民族旅団の1つ。極東戦線情報科に直属し、満州・朝鮮半島における偵察・破壊工作を使命とした。

旅団は、元東北抗日聯軍将兵が中核となり、主として中国人と朝鮮人から編成された。後の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国家主席、金日成は、同旅団の第1大隊長を務めていた。ただし、朝鮮労働党の公式見解では、金日成は朝鮮人民革命軍を組織して東北抗日連軍本体とは共闘しつつも別行動であったとしており、その後の入ソの事実は無視されている。中国共産党は、この部隊を東北抗日連軍教導旅団(抗連教導旅)と称している。

後に旅団の中核となる東北抗日聯軍は、1939年頃から関東軍と満州国軍の大規模な掃討作戦により、多数の戦死者を出した外、日本当局に帰順する者も出始めた。周保中、崔庸健、金策、金日成等、残った者達も物資の不足により、活動の続行が困難となった。そのため、彼らはソ連に脱出することを決定した。

1940年12月末、聯軍はアムール川を渡って、ソ連領内に入った。ソ連領内では、聯軍の活動支援のため、沿海地方のヴォロシーロフ・ウスリースク郊外に北(A)野営(Северный лагерь又はлагерь А)、トルクメニスタンのケルキ郊外に南(B)野営(Южный лагерь又はлагерь Б)を設営した。当初、約100人がここで訓練を受けたが、後に200~300人にまで増加した

独ソ戦勃発後の1941年7月中旬、ソビエト政府は、日本の北進に備えて、これらの野営地に基づき、第88独立狙撃旅団を編成することを決定した。旅団は、ハバロフスク市のヴャツコエ・ナ・アムーレ(Вятское-на-Амуре)に配置することが決定された。1942年7月21日付極東戦線司令官ヨシフ・アパナセンコ上級大将の命令第00132号に基づき、旅団の編成の期間は、 同年7月28日から9月15日までの間と定められた。

部隊の充足は、東北抗日聯軍の中国兵と朝鮮兵の外、中国系・朝鮮系ソ連人、その他の少数民族(ナナイ人、エヴェンキ人等)から行われた。旅団隊員の大部分は中国人で、朝鮮人は10%に過ぎなかった。その後、後続してソ連領内に入った部隊も合流し、第88旅団の兵員数は、1,500人を超えた。

聯軍から来た多くの者は、ソ連の軍事学校の促成指揮課程か、管区少尉課程を受け、赤軍の階級を授与された(旅団長周保中は中佐、金日成は大尉)。通常、旅団の指揮官職には中国人が、副指揮官職には赤軍の将校が任命された。兵員は、赤軍の軍服を身に着けた。

1944年4月現在の編制。

旅団本部 - 旅団長:周保中中佐、参謀長:V.サマルチェンコ少佐

政治科 - 政治委員:V.セレギン少佐

防諜科 - スメルシ

第1独立狙撃大隊 - 大隊長:金日成大尉

第2独立狙撃大隊 - 大隊長:王效明大尉

第3独立狙撃大隊 - 大隊長:王明貴大尉

第4独立狙撃大隊 - 大隊長:姜健大尉

自動小銃大隊

無線大隊

独立迫撃砲中隊

独立工兵中隊

独立対戦車銃(PTR)中隊

独立経済中隊

独立機関銃小隊

軍事通訳課程特殊分隊

各独立狙撃大隊は3個中隊から成り、各中隊は3個小隊から成った。

装備(1942年9月~1943年7月現在)は、小銃x4,312挺、自動小銃x370挺、重機関銃x48挺、軽機関銃x63挺、火砲x21門、対戦車銃x16挺、自動車x23両。

第88旅団の兵士は、満州・朝鮮半島地域において偵察・破壊工作活動に従事した。その詳細は不明だが、旅団長の周保中は、1940年~1943年の間に計89人の減員(損害)があったことを報告している。その内訳は以下の通り。

第2極東戦線の諜報業務に派遣 - 9人

第1極東戦線の諜報業務に派遣 - 26人

未帰還 - 24人

スメルシに引渡し - 6人

傷病のため後送 - 15人

死亡 - 2人

旅団復帰 - 7人

1945年7月、ソ連対日参戦に備えて、旅団から無線機を装備した100人を投入する戦闘行動計画が立案された。しかしながら、ソ連軍の急速な進撃と日本の降伏のため、この計画は実行されなかった。かくして、第88旅団、その大隊長である金日成が朝鮮半島の解放に参加する機会は訪れなかった。

1945年8月29日、第2極東戦線司令官マクシム・プルカエフ上級大将の命令第010号/nに従い、「日本の侵略者との戦いの前線における戦闘指揮任務の模範的遂行と、この際に発揮された勇敢さと勇気」に対して、金日成に赤旗勲章が授与された。同命令により、第88旅団の将兵216人に、各種勲章とメダルが授与された(9月10日に更に58人追加)。

第88旅団は、1945年10月12日付極東軍管区司令官令第042号により解散された.]

 

동북아시아(극동지역)은 한반도와 중국 동북3성, 러시아 극동연방관구, 일본등이다 북한 핵과 미사일의 직접적 위협은 동북아시아(극동지역)이다

 

                                                                                  동아시아 국가 중국

중국은 동아시아 국가로 동남아시아(광동성, 운남성 등), 남부아시아(티베트 등), 중앙아시아(신장 등), 동북아시아(동북3성과 내몽골등), 소중국(한족 거주지)으로 구성된 동아시아 국가이다

 

 

                                                                           러시아 극동연방관구과 북극해, 미국 알래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