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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債臺高築(채대고축)" 빚더미 위에 올라앉다

CIA Bear 허관(許灌) 2014. 6. 3. 22:50

세계경제위기로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건설사 부도와 은행들의 영업정지가 이어지면서 나라 경제는 채대고축(債臺高築)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債臺高築(채대고축)"

◎글자풀이:빛 채(債), 돈대 대(臺), 높을 고(高), 쌓을 축(築)

◎뜻풀이: 빚의 누대를 높이 쌓다라는 뜻으로 빚더미 위에 올라앉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출전: 〈한서〉의 〈제후왕표서(諸侯王表序)〉

기원전 314년 주(周)나라 희연(姬延)이 즉위하였는데 그가 바로 주나라의 마지막 천자 난왕(赧王)이다. 당시 주나라는 동주(東周:오늘날 하남 공현일대)와 서주(西周:오늘날 하남 왕성지역)로 구분하였고 각각 동주공(東周公)과 서주공(西周公)의 손에 장악되었다. 난왕은 서주에 몸을 의탁한 채 유명무실한 천자의 생활을 했다. 그는 반역을 일으켜 천자의 권력을 되찾고 싶었으나 자금과 병마가 없으니 그저 허울뿐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기원전 257년,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30만 군사로 조(趙)나라를 정벌하였다. 이에 위(魏)나라가 10만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 구원에 나섰고 격전 끝에 조,위 연합군은 진군을 격파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조,위 연합군의 승전 소식에 진나라와 철천지원수였던 초나라 고열왕(考烈王)은 몹시 기뻐했다. 고열왕은 이 기회에 여러 제후국을 연합하여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원수를 갚고 싶었으나 자신의 명망이 제후들을 호령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여겨 명목상으로 제후국의 종주국이었던 주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바로 천자 난왕의 명의로 제후국들을 동원하여 진나라를 정벌하는 것이었다.

천자의 자리를 위협받던 난왕도 자신의 권위를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해 고열왕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했다. 주나라 조정은 오래도록 제후국들의 조공이 끊겼던 탓에 재정이 궁핍했는데 이는 천자의 생활마저 위협하였으니 출병하기에는 군량이며 병사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난왕은 울며 겨자 먹기로 주나라의 부호들로부터 자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부호들은 진나라와의 교전이 끝나면 이자와 함께 갚는다는 조건으로 난왕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었다.

드디어 군사가 모이고 주나라 군이 서주공의 통솔하에 하남 산서를 향해 진군했다. 가는 길에 연(燕)나라도 뜻을 같이하니 주,초,연 연합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다른 제후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연합군은 진을 치고 군영을 세워 그곳에서 석달을 기다렸지만 헛수고였다.

기다리다 지친 초나라 고열왕이 철수를 명령하니 진나라 정벌은 그렇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전쟁을 일으켜보지도 못하고 자금만 모두 탕진한 주나라 난왕은 빌린 돈을 갚을 생각에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돌아왔다.

난왕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부호들은 궁궐로 몰려와 난왕에게 빚 갚으라고 독촉했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자 난왕은 채주들을 궐밖으로 내쫓은 뒤 안으로 들이지 말라는 엄령을 내리고 자신은 숨어서 지냈다. 궐 밖에서는 빚쟁이들의 원성이 계속되었다. 불안하고 초조함에 침식을 잊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난왕은 급기야 궐 안의 높은 누대를 찾아 올라가 그곳에서 숨어 지내며 채주들의 빚독촉을 피했다. 사람들은 이 누대를 가리켜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한 누대라는 뜻에 도채대(逃債臺)라고 불렀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사자성어 "채대고주(債臺高築)"는 빚이 갚을 길이 없을 정도로 많은 상태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