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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반서방 친소 좌익정부 국가사회주의자 카다피 독재자 시신 정육점 '전시' 본문

북아프리카 지역/리비아

반미 반서방 친소 좌익정부 국가사회주의자 카다피 독재자 시신 정육점 '전시'

CIA bear 허관(許灌) 2011. 10. 22. 17:56

 

                                                      반미 반서방 친소 좌익정부 국가사회주의자 카다피 독재자 시신 일반인에게 공개 돼 모습

상의가 벗겨진 무아마르 카다피의 처참한 시신 위로 구경꾼들의 휴대전화 카메라가 몰려들었다.독재자의 말로는 참혹한 죽음으로도 모자라 시신까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지난 20일 리비아 시르테에서 과도정부 부대와 교전 중 붙잡힌 후 사망한 카다피의 시신은 하루 만에 미스라타의 오래된 정육점 냉동고에서 대중에 전시됐다. 시신이 일반에 공개된 건물은 미스라타 남부 소재 시장의 '정육점(meat store)' 냉동창고다.

   카다피 시신은 냉동고 콘크리트 바닥에 펼친 싸구려 매트리스 위에 상의가 벗겨진 채 놓여 있고, 주변에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전리품'을 촬영하는 구경꾼들이 둘러서 있었다. 카키색 바지에 맨발 차림의 시신은 왼쪽 관자놀이 부근과 흉곽에 총알 자국이 선명했고, 온 몸에는 죽기 전에 맞아서 생긴 듯안 멍과 상처,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Libya's ousted leader Muammar Gaddafi was killed in gun battles on Oct.20, in his hometown, Sirte. Acting Prime Minister of the National Transitional Council (NTC), Mahmoud Jibril, confirmed his death at a press conference held in Tripoli.

냉동고 밖에는 카다피의 시신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건물벽을 따라 긴 줄을 이뤘다.  구경꾼들은 "알라는 위대하다" 등을 외치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순서를 기다리던 한 청년은 "리비아 순교자들, 그 중에서도 미스라타 출신의 순교자를 대신해 카다피의 헝클어진 꼴을 보기 위해 이 곳에 왔다"고 말했다.

 

                                                    냉동고 밖에는 카다피의 시신을 보려는 리비아 국민들이 몰려들어 건물벽을 따라 긴 줄 모습(사진)

 

 

                         Muammar Gaddafi's fourth son Mutassim was also captured and died in Sirte on Oct.20

 

 

 

 

 

 

Libya's ousted leader Muammar Gaddafi was killed in gun battles on Oct.20, in his hometown, Sirte. Acting Prime Minister of the National Transitional Council (NTC), Mahmoud Jibril, confirmed his death at a press conference held in Tripoli.

 

                                             A fighter pointing at the drain where Moammar Gadhafi was hiding before he was killed in Sirte on Thursday.

 

반미 반서방 친소 좌익정부 국가사회주의자 카다피 독재자는 인간이 아닌 신으로 귀소리 뇌개조팀에 의하여 운영 돼 카다피 스스로 자유사회정부를 부정하고 리비아 왕 자청하며  카다피왕조 가족권력으로 국가를 운영해왔습니다

[왕후립 리비아 중국주재 전임 대사는 카다피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카다피는 42년동안 정권을 장악했고 리비아인민들이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했으며 "중동신화"를 창조했습니다. 그는 반미의 기치를 견지해 "반미영웅","사막의 사자"로 불리웠습니다. 다른 한편 그는 독재정치를 했고 자고자대했으며 정책에 변화가 많았습니다. 특히 록크비공중조난사건후 서방 나라들이 리비아에 다년간에 걸친 경제제재를 가했고 이로 하여 리비아국민들의 생활이 곤경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독재자 카다피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왕후립 전임 대사는 카다피는 인민들이 직접 관리하는 국가체계를 구축하려 했고 총인민대회와 총인민위원회라는 입법과 행정기관을 만들었으나 이런 국가기구들은 인민이 국가의 주인공이 되거나 직접 국가를 관리하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외 카다피 가족의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독재통치도 대중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해 왕후립 전임대사는 "지도자들의 공적과 과오는 리비아 국민들이 평가해야 하고 력사가 최종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