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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52% 득표…서울시장 野통합후보 확정 본문

-미국 언론-/아시아뉴스

박원순 52% 득표…서울시장 野통합후보 확정

CIA Bear 허관(許灌) 2011. 10. 3. 20:34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화 후보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최종 확정됐다.
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치러진 국민참여경선에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TV토론 후 배심원단 평가에서 54.4%, 여론조사에서 57.65%, 국민참여경선에서 46.32% 등 총 합산 52.15% 지지율을 얻어 야권 통합후보로 선출됐다.
2위를 차지한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TV토론 후 배심원단 평가에서 44.09%, 여론조사에서 39.70%, 국민참여경선에서 51.08% 등 총 45.57% 지지율을 획득했다.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는 TV토론 후 배심원단 평가에서 1.48%, 여론조사에서 2.65%, 국민참여경선에서 2.61% 등 총 2.28% 지지율을 얻어 3위를 차지했다.

 

박원순(朴元淳, 1956년 3월 26일 ~ )은 경남 창녕출신으로 1974년, 대한민국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하였으나 1년만에 학생운동과 관련하여 제적을 당하고 같은해에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입학하여 1979년, 졸업하였다. 다음해인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 제 12기 수료하고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하면서 1991년, 영국 런던대학교 정경대학원(LSE)에서 런던LSE디플로머(INTERNATION LAW)를 취득하고 하버드대학교 법대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박원순은 그동안 역사문제 연구소 이사장,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참여연대 사무처장, 법무법인 산하 고문변호사로 하였으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민활동가로 활동하면서 2006년, 만해상(일명 만해대상)과 아시아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저작권법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으며 시민운동가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변호사이자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1.경력

(1)사회참여

경남 창녕군 출신으로 1974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하였으나 그 해 학생운동 사건인 오둘둘 사건으로 인해 제적당한다. 그 뒤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였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대구지검에서 1년 동안 검사로 재직하다 80년대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 사무처 처장으로 재위하면서 부패정치인 낙천낙선운동, 소액주주운동, 국가 보안법 폐지 운동을 했다.

 

(2)공익활동

2001년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1% 나눔,기부운동을 했다. 2002년 아름다운가게를 설립 헌물건을 기증받아 수선하여 되파는 형태의 활동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 2006년 그는 만해상,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3) 서울시장 재보선출마

안철수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9월 4일에 주요 언론사들은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모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압도적이었지만 안철수와 오래전부터 각별한 관계였던 박원순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발표하자 안철수는 9월 6일 오후 4시에 박원순과 만나 불과 17분 동안의 대화 끝에 박원순으로 단일화했음을 발표하였다. '누가 출마하느냐', '단일화가 되느냐' 등이 모두 선거지형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안철수는 “오늘 존중하는 동료이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서 그 분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다.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서 서울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에 대한 기대도 우리 사회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소중한 우리 미래 세대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겠다”라고 말했고 “지금까지 심정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이해해준 박경철 원장님께도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단일화 조건이 있었느냐에 대해 안철수는 “아무런 조건도 없습니다. 제가 출마 안 하겠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꼭 시장 되셔서 그 뜻 잘 펼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박원순은 단일화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시장직 자리를 원한 게 아니다. 진정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결론이 나온 것”라고 말했다. 박원순은 또 안철수에 대해 “아무리 신뢰관계가 있다해도 저보다 10배나 더 되는 지지도를 갖고 있던 분이 정말 아무 조건 없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내 말) 한마디로 양보한다는 게 사실 또 믿기 어려운 그런 일”이라며 “안 교수가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의 어떤 공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해왔던 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태도였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후 박원순, 한명숙, 문재인 등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범시민 야권 단일후보를 통해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박원순-한명숙 두 사람은 범시민 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이후엔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인다”라며 결의를 다졌다.

한나라당이 “안철수와 박원순 단일화는 정치쇼”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박원순은 “그런 쇼는 더 많이 하는 게 좋은 것 아니냐”라며 반박했다 안철수와 박원순은 단일화했으나, 이전까지 박원순의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은 5%에 불과해 ‘안철수의 지지층을 박원순이 흡수하는지’, ‘민주당에 입당하는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단일화 이후 실시된 차기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박원순은 안철수와의 단일화에 힘입어 지지율이 대폭 상승하여 나경원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집전화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에서는 보수적인 사람들의 답변이 많았으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을 수 있는 휴대전화 여론조사에서는 박원순이 51.6%를 얻어 32.5%의 나경원을 압도했다.

문재인은 박원순에 대해 "훌륭하기 짝이 없는 분이다. 그동안 우리 공동체를 위해 자기 몸을 다 던져 활동해오신 분이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신다는 것은 아주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9월 13일 차기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로 꼽히는 한명숙이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로 인해 야권표의 대부분은 박원순으로 몰릴것으로 예상되어 민주당은 꾸준히 박원순 영입을 추진했으나 박원순은 "아직은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겠다"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2.논란

(1)해어진 구두 사진

대한민국의 사진작가인 조세현2011년 9월 7일 자신의 트위터에 촬영한 뒷굽이 해진 박원순의 구두 사진을 올렸다. 사진속의 구두는 뒷굽이 해질대로 해져 일부분이 아예 떨어져나갈 정도로 낡은 상태였다. 이에 대해 트위터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사진의 각도로 봐서, 정상적인 행사에서 사진사가 그렇게 구두밑창을 찍기 힘들 것이라며 연출 의혹이 제기되었다. 뉴데일리는 월세 250만원짜리 아파트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2)월세 250만원 강남 아파트 거주

2011년 9월 대한민국언론은 박원순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61평 아파트를 보증금 1억원, 월세 250만원에 거주하는 것을 보도하였다. 박원순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거주 이유에 대하여 “하버드 대학 등에서 유학을 할 때 가져온 자료가 1트럭 분량인데 자료를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2008년 (넓은 평형으로) 이사를 했다”고 밝혔고 , 이로 인하여 논란이 일자 박원순은 자신의 홈페이지인 원순닷컴에 글을 올려 "보증금 1억원에 매달 250만원의 월세가 서민의 시각에서는 결코 '싼'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며 "1년 동안의 검사 생활 뒤 1983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는 서대문구에 140평의 집도 있고 여유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태원에 아파트도 사고 동교동 단독주택에 살기도 했지만 1993년 유학생활에서 돌아와 시민운동을 시작한 뒤 집을 보유한 적이 없다"며 "전세로 시작해 점차 '다운그레이드'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누리꾼은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대체로 곱지 않은 시각을 보이며, 시민단체 활동을 해왔던 박원순이 적지 않은 금액의 월세를 어떻게 감당해 왔는지에 대한 의문 등을 제기였다

 

(3)공산주의 발언 논란

2011년 9월 23일 중앙일보는 보수단체인 자유주의진보연합의 논평을 인용해서 박원순이 자신의 저서인 『국가보안법연구3』에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이고 보장해야 민주주의다”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자신의 저술에 대해 논란이 일자 박원순은 해당 기사 보도 언론에 대해 『국가보안법연구3』의 실제 문장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이고 보장해야 민주주의다”가 아닌“민주주의는 결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이들 이념을 받아들여 그 사회 속에 하나의 가치체계로서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구의 여러 선진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해명하였다

 

(4)이념 논란

서경석은 박원순 변호사는 2002년말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을 통한 반미시위를 주도했고, 2005년 9월에는 맥아더동상 철거시도사건에 대해 침묵했다며, 박원순은 원래 친북좌파가 아니지만 한총련과 민노총을 비판하고 이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친북좌파와 손을 잡고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반미운동을 전면에서 이끌었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한국의 시민운동 주류는 거대한 종북좌파의 앞잡이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때 박원순이 김지하처럼 이들을 질타했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인데, 박원순은 반대하는 대신 연대했고 그들을 세력으로 서울시장이 되려 한다고 비판했다

 

(5)후원금 논란

박원순이 재직했던 아름다운 재단에서 론스타로부터 7억 6천을 기부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풀무원에서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받은 기부금도 애초 알려진 2억9천880만원이 아닌 12억4천67만원으로 추가 확인됐다”“상법상 회사와 거래 관계 등 중요한 이해관계에 있는 법인의 이사. 감사는 사외이사로 둘 수 없게 돼 있다. 상법에서는 기업과 이사 간에 거래가 있을 경우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했을 경우 배임죄로 처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론스타는 2003년 12월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뒤 고액 배당 등을 통해 4조5000억 원을 번 뒤 2년여 만인 2006년 외환은행 재매각에 나서 ‘먹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박원순 측은“론스타코리아의 법정 분쟁 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2009년 5월 남은 기금 9000여만 원을 해당 기업 통장으로 반환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풀무원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받은 기부금의 액수에 대해선 해명하지 않았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 측은 “아름다운재단이 론스타에서 기부금을 받은 것은 론스타를 비판해 왔던 시민사회의 일반적 시각과는 다른 것”이라며 “공인 중의 공인인 서울시장에 대한 국민의 도덕적 잣대는 엄격하다”고 비판했다.

 

(6)부인 회사 일감 몰아주기

박원순의 부인이 세운 인테리어 회사 'P&P디자인'에 박원순이 이끈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을 제기되었다. 현대모비스가 아름다운재단에 교통사고 유자녀의 학자금 지원 용도로 2003년부터 총 5억7000만원을 후원했다는 것인데 현대모비스 같은 대기업이 당시 설립 1년도 안 된 강씨 회사에 2000년부터 3년여간 일감 10여건을 준 데 대해 박 변호사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이라는 의혹이다. 박원순 측은 이에 대해 "아름다운가게가 전국에 130여개 있는데 2000년대 초반 시작 단계에서만 10여개 정도 부인이 도와줬을 뿐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인테리어를 했다"고 해명했다

 

(7)기타

딸이 스위스로 사치성 유학을 떠났다는 주장 및 아들이 공군훈련소에 입소했다가 사흘 만에 귀가조치된 데 대해서는 고교시절 부상후유증으로 재검 예정. 딸 스위스 유학은 장학금 받았다”라고 밝혔다. 강남에 또 다른 전셋집이 있다는 주장엔 “배우자가 회사 법인(P&P 디자인) 설립등기를 하면서 등록된 예전 주소가 등기 이후 변경되지 않아 불거진 해프닝”이라고 해명했다. 대기업 사외이사 경력도 논란이 되었다. 2004년 3월~2009년 2월 까지 포스코 사외이사를 맡으며 대략 7,0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았다 . 이에 대해 박 변호사 측은 '사외이사직을 통해 받은 보수는 희망제작소를 위해 사용했다'는 해명을 했다.

 

3.어록

-해방과 동시에 당연히 처단되었어야 할 친일부역자들이 새로운 해방조국의 권력을 장악하고 그 아래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일제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과 고난을 당해야 했다. 친일파가 득세한 세상에서 독립운동가와 그 유족들은 마치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이 땅은 정의는 실종되고 힘에 의한 통치가 지속됐다. 민족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리배들이 득세했다

 

-대부분 간첩단사건은 실재했다기보다는 당시 정치적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조작되었음이 밝혀졌다...중앙정보부는 간첩단사건과 조작사건을 자유자재로, 무소불위로 만들어냈으며 그 모든 사건에서 고문의 호소와 주장이 이어졌다. 이미 검찰과 사법부는 중앙정보부가 고문으로 조작·송치하는 사건에 대해 무혐의 또는 무죄로서 대응할 힘과 의지를 잃은 지 오래였다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사건이 ... 참혹한 고문이 따른다. 일반적으로 조작된다는 사실과 통하는 이야기...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국민생활 전반에 걸친 족쇄였으며 국가의 진취적 발전을 가로막는 쇠사슬이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정보가 제한되어 있어서 워낙 폐쇄적인 국가이지만 통제된 국가에서는 고문이 있을 가능성이 많죠. 어떤 고문이나 권위주의적인 폭압적 통치는 분명히 저는 있을 것이라고 보고요, 그것은 국제사회가 개입을 해야죠

 

4.학력

  • 1974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 1975년 서울대학교사회계열 1년 제적(학생운동관련)
  • 1979년 LS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Sciences) 디플로머 취득 (International Law)
  • 1993년 미국 하버드대 법대 객원연구원(Visiting Fellow)

5.약력

  • 2009년 희망과 대안 공동대표
  • 2002년~ 2009년 아름다운가게 총괄상임이사
  • 2008년 람사총회 홍보대사
  • 2007년 현대기아차 그룹 사회공헌위원회 위원
  • 2007년 한국갱생보호공단 이사
  • 2006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2005년 STANFORD UNIVERSITY VISITING PROFESSOR
  • 2004년 포스코 사외이사
  • 2004년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 2003년 한국방송공사 이사
  • 2003년 플무원 사외이사
  • 2002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 사회과학부 NGO연계전공 강사
  • 2002년 법무법인산하 고문변호사
  • 2002년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 2001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 2000년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 공동대표
  • 2000년 방송위원회 법률자문특별위원회 위원
  • 1999년 한국인권재단 이사
  • 1999년 - 2002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 1998년 청명문화재단 이사
  • 1996년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사무처장
  • 1995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공동대표
  • 1992년 하버드대학교 법과대 객원연구원
  • 1988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학술간사
  • 1986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 1983년 - 2000년 법무법인나라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
  • 1982년 대구지검 검사
  • 1980년 사법시험 합격(22회)
  • 1979년 춘천지방법원 정선등기소장 및 즉결심판소장
  • 1978년 법원고등고시2회 합격

6.수상경력

  • 2006년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 수상
  • 2005년 환경재단 선정 세상을 밝게 한 100인
  • 2003년 희망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식 국민포장
  • 2002년 제15회 심산상
  • 1998년 올해의 여성운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