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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과 캄보디아 군사충돌, 사태 타개되지 않아 본문

Guide Ear&Bird's Eye/태국(타이)

태국과 캄보디아 군사충돌, 사태 타개되지 않아

CIA Bear 허관(許灌) 2025. 12. 15. 00:26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지대에서 이어지는 군사 충돌과 관련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이 공격을 중지하기로 합의했다"고 SNS에 투고했으나 그 후에도 양측이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양보하지 않아 사태 타개에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군사 충돌과 관련해 지난 10월, 트럼프 대통령이 참가한 가운데 평화합의가 체결됐지만, 이달 들어 재차 충돌 상태가 발생해 민간인에도 사망자가 나온 외에 수십만 명이 피란하는 사태로 확대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양국 총리와 전화 회담하고 “양국이 공격을 멈추고 내가 참가해 체결됐던 당초 평화합의로 돌아가기로 합의했다”고 SNS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태국의 아누틴 총리는 13일 아침, “국토와 국민에 위해와 위협이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군사 행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표명했습니다.

태국군에 따르면 13일 캄보디아 측에서 날아온 로켓탄으로 민간인이 다쳐 태국 측이 반격했습니다.

한편 캄보디아 국방부는 13일 태국군 전투기의 여러 차례에 걸친 공격이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회담 후에도 양국은 상대방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양보하지 않아 사태 타개에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태국과 캄보디아 군사충돌, 사태 타개되지 않아 | NHK WORLD-JAPAN News

 

태국과 캄보디아 군사충돌, 사태 타개되지 않아 | NHK WORLD-JAPAN News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지대에서 이어지는 군사 충돌과 관련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이 공격을 중지하기로 합의했다"고 SNS에 투고했으나 그 후에도 양측이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양보

www3.nhk.or.jp

태국·캄보디아 다시 교전… 트럼프의 양국 휴전합의 발언 이후에도 충돌 이어져

트럼프 대통령이 이웃 국가 간 교전을 중단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발표한 바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 군 간 교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양국이 휴전에 합의했다고 밝힌 지 몇 시간 뒤인 13일(현지시간) 새벽에도 이어졌다.

아누틴 찬비라쿨 태국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캄보디아가 모든 병력을 철수하고 지뢰를 제거한 이후에야 휴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아누틴 총리는 SNS를 통해 "태국은 우리 영토와 국민에 더 이상 피해와 위협이 없다고 느낄 때까지 군사 행동을 계속할 것"이라며 "분명히 말하겠다. 오늘 아침 우리의 행동이 이미 이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국경 지역에서는 밤새 포격이 계속됐으며, 태국군은 국경선을 따라 여러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재충돌로 지금까지 최소 21명이 숨졌고, 양국에서 약 70만 명이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간) 태국과 캄보디아 군 간 교전을 전화 한 통으로 중단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12일(현지시간) 밤 양국 총리와 통화한 뒤 SNS에 두 나라가 "오늘 저녁부터 즉각 사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하고,10월에 미국 대통령 앞에서 체결한 합의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모두 평화를 원하고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아누틴 태국 총리는 태국이 공격을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며, 캄보디아가 병력을 철수하고 국경에 설치된 지뢰를 제거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휴전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들이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지난 7월과 달리, 관세를 지렛대로 삼아 양측의 교전 중단을 압박했다는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태국은 미국에 이번 분쟁을 통상 문제와 연계하지 말라고 경고해 왔다.

한편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는 태국의 추가 공습을 받았다고 밝혔다. 캄보디아 국방부는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2025년 12월 13일 태국 군이 F-16 전투기 2대를 동원해 여러 목표물에 폭탄 7발을 투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태국 군용기의 폭격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태국 군 역시 교전이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오랜 국경 분쟁은 지난 7월 24일 캄보디아가 태국을 향해 로켓탄을 집중 발사하면서 격화됐고, 태국은 공습으로 대응했다. 양국은 서로가 공격을 먼저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십 명의 사망자를 낳은 며칠간의 격렬한 교전 끝에, 양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의 중재로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휴전"에 합의했다. 이 합의는 10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행사에서 미국 대통령 주재로 공식화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양측은 휴전 위반을 놓고 서로를 비난해 왔다. 태국은 캄보디아 군이 지뢰를 매설했다는 증거를 공개했으며, 이로 인해 태국 군인 7명이 사지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캄보디아는 해당 지뢰들이 1980년대 내전 당시 남겨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 이후로도 긴장은 계속 고조돼 왔다.

이번 주 태국은 지난 7일(현지시간) 소규모 충돌로 자국 군인 2명이 다친 뒤 캄보디아 내 공습을 단행했고, 캄보디아는 로켓 공격으로 대응했다. 이번 교전은 태국 북동부 6개 주와 캄보디아 북부·북서부 6개 주에 영향을 미쳤다.

양국은 길이 약 800km에 달하는 국경을 놓고 100년 넘게 분쟁을 벌여 왔다. 국경선은 캄보디아를 식민 지배하던 프랑스가 작성한 지도에 따라 1907년에 설정됐다.

태국·캄보디아 재충돌: 트럼프 '양국 휴전 합의' 발표 이후에도 충돌 이어져 - BBC News 코리아

 

태국·캄보디아 재충돌: 트럼프 '양국 휴전 합의' 발표 이후에도 충돌 이어져 - BBC News 코리아

태국 총리가 캄보디아 군이 전면 철수한 후에 휴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www.bbc.com

 

식민지 시대 지도와 고대 사원… 태국-캄보디아 분쟁의 역사적 배경

태국과 캄보디아 간 끓어오르던 긴장이 국경 지역에서 또 한 번 폭발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 이후 유지되던 위태로운 휴전이 끝이 났다.

양측 당국에 따르면 지난 8일(현지시간) 이후 이어진 이번 교전으로 태국 군인 최소 5명, 캄보디아 민간인 9명이 숨졌으며,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이번 사태는 수십 명이 사망한 이후인 지난 7월 양측이 휴전에 합의한 이후 발생한 가장 심각한 사건이다.

양국 간 분쟁의 역사는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점령한 뒤 국경이 설정되던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몇백 년간 이어진 문화적 경쟁도 자리한다.

이번 국경 분쟁의 중심에는 프레야 비헤아르 사원이 있다. 이 11세기 힌두 사원은 양국의 국경을 이루는 당렉 산맥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문화적 경쟁

수 세기 동안 동남아시아의 권력 구도는 제국의 흥망성쇠에 따라 달라졌다.

9~15세기, 오늘날 캄보디아에 해당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 크메르 제국은 현대 태국, 라오스, 베트남의 상당 부분을 포함해 넓은 일대를 지배했다.

그러나 크메르 제국이 쇠퇴하면서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했다.

1431년 아유타야 왕국(현대 태국과 시암 왕국의 전신)은 크메르 제국의 수도 앙코르를 침공해 점령했고, 이후 캄보디아 서부 지역을 점령해나갔다.

이후 몇백 년간 캄보디아는 야심 넘치는 아웃 국가들 사이에 끼어 때때로 주권을 위협받았다.

그러던 19세기, 프랑스라는 새로운 외부 세력이 이 지역에 등장했다.

이미 남부 베트남을 장악한 상태였던 프랑스는 1863년 캄보디아에 보호국 지위를 강요했다.

20세기 초, 프랑스는 1904년과 1907년 시암 왕국과 2차례 조약을 체결하며 역내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광대한 영토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넘긴다는 내용의 조약이었다.

이 조약들을 통해 당렉 산맥 동부 구간에서는 분수령을 따라 국경을 획정한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그러나 프랑스 측 측량사들이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모호한 부분이 있었고, 특히 분수령 경계와 매우 인접한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일대가 쟁점으로 남았다.

이번 국경 분쟁의 중심에는 프레야 비헤아르 사원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태국은 1907년 조약으로 잃었던 일부 영토를 되찾았는데, 여기에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도 포함됐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태국은 이 영토들을 다시 프랑스에 돌려주어야 했으나, 1947년 태국군은 프레아 비헤아르 인근 지역에 재진입했다.

6년 뒤인 1953년,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1959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에 대한 자국의 영토주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ICJ 사건의 핵심은 국경에 대한 2가지 엇갈린 해석이다.

캄보디아는 1904년과 1907년 조약을 근거로 한 프랑스 식민지 지도를 제시하며, 이에 따르면 해당 사원이 자국 영토에 속한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태국은 자신들은 이 같은 지도를 단 한 번도 받아들인 적 없으며, 설령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표시된 경계가 실제 분수령이라고 잘못 믿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962년 ICJ는 양국이 수십 년 동안 사실상 기존 경계를 인정하고 사용해 왔다는 점을 근거로 캄보디아의 주장을 인용했다.

태국-캄보디아의 국경 지도

캄보디아 내전과 크메르루주 정권 기간 이 사원은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으며, 1990년대 들어서야 다시 개방됐다.

그러던 2008년, 캄보디아가 이 사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하면서 긴장이 다시 고조되기 시작한다.

태국은 자국의 주권에 영향을 미친다고 항의했고, 2008~2011년 국경 지역에서 몇 차례 무력 충돌이 발생하며 최소 20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캄보디아는 1962년 내린 판결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해달라며 ICJ에 또 한 번 제소했다.

이에 ICJ는 2012년 병력 철수를 명령했으며, 2013년에는 사원과 그 인근 지역이 캄보디아 영토임을 재확인했다.

대피에 나선 주민들

태국과 캄보디아가 최근 폭력사태가 발생한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는 가운데 양측 국경 지역 주민 수십만 명은 대피에 나섰다.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는 자신들은 "절대 폭력을 원치 않았으나" 자국의 "주권을 지키고자 필요한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는 태국 측 "침략자들"이 보복을 유발했다고 비난했다.

지난 9일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두 나라 간 전쟁을 막고자" 자신이 "전화하겠다"고 밝혔다.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과거에도 양국은 심한 교전을 벌였으나, 비교적 빠르게 진정됐다.

지난 7월 분쟁 당시만 해도 조나단 헤드 BBC 특파원은 이번 사태도 과거와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현재로선 양국 모두 이 대립에서 물러설 만큼의 힘과 자신감을 지닌 지도력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태국-캄보디아 분쟁의 역사적 배경 - BBC News 코리아

 

태국-캄보디아 분쟁의 역사적 배경 - BBC News 코리아

태국과 캄보디아가 국경 지역에서 또 한번 충돌했다. 이 지역은 양국이 100년 넘게 영유권 갈등을 이어온 지역이다.

www.b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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