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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대통령 노벨평화상 추진위원회’ 결성 본문

-미국 언론-/한국 언론

‘문재인대통령 노벨평화상 추진위원회’ 결성

CIA Bear 허관(許灌) 2018. 3. 19. 15:20


문재인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는 위원회가 결성된다.

 

대한민국직능포럼은 20일 직능포럼의 회장단 등 30여명이 모여 문재인대통령 노벨평화상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첫 발기인 모임을 갖는다고 19일 밝혔다.

 

이들은 문 대통령을 노벨평화상에 추천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3자 공동수상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일봉 직능포럼 상임회장은 북한의 핵실험과 탄두미사일 발사로 고조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를 통해 대화국면으로 이끌어 냈다면서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성사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의 소중함을 전 세계에 알렸다며 추진위 발족 취지를 설명했다.

 

이들은 공식법인 출범을 준비하는 한편, 오는 5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식과 함께 추진위 창립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가난한 피란민 아들, 방황 청소년기, 유치장 사시 합격


                                                                              문재인 대통령의 학창 시절 모습 ⓒ뉴시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삶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의 연탄 배달 리어카를 함께 밀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경제적 불평등이 주는 세상의 불공평을 깨달으며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짚어봤다

지독한 가난. 문재인 대통령의 유년 시절을 관통하는 다섯 글자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궁핍했다. 예닐곱 살 당시 문 대통령은 커다란 양동이를 들고 부산의 한 성당에서 긴 줄을 서는 게 일이었다. 성당에서 나눠주던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서였다. 문 대통령은 지금도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데 가난한 형편에 자전거 살 돈도 배울 틈도 없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1953년 1월 24일,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상남도 거제군 허름한 시골 농가에서였다. 그곳은 한국전쟁 중에 자유를 찾아 남으로 온 부모님이 처음 정착한 곳이었다.

이후 가족은 북한 출신 피란민이 많이 살던 부산 영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영도는 고갈산 아래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비탈진 언덕에 판잣집이 들어선 대표적인 서민 동네였다. 아버지가 호남 이곳저곳으로 장사를 나서면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연탄을 배달했다. 어머니가 끄는 연탄 리어카를 뒤에서 미는 일은 장남인 문 대통령의 몫이었다.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언젠가 삐끗 놓친 리어카가 비탈길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도 있었다. 당신의 안전보다 깨진 연탄이 안타까워 발을 구르던 어머니의 모습은 문 대통령에게 아직도 서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가난한 유년 시절, 자립심과 독립심 키워

그러나 가난에 낙담하거나 실망하지는 않았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어린 시절 가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가난이 내게 준 선물이다. ‘돈이라는 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지금의 내 가치관은 오히려 가난 때문에 내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아마도 가난을 버티게 한 나의 자존심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가치관은 살아오는 동안 큰 도움이 되었다.” 

1965년, 남항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졸업한 문 대통령은 경남중학교에 입학했고, 1968년 당시 명문고라 불리던 경남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경남중에 입학하면서 문 대통령은 처음으로 빈부의 격차를 겪었다. 가난한 집안 아이들이 모여 살던 초등학교와는 달리 부유층 자제들이 많이 다니던 경남중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이때 태어나 처음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주는 세상의 불공평함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다소 방황도 했다. 방황하는 사춘기 시절. 그가 집어든 건 책이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학교 도서관 사서를 도와 도서실 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일과일 정도였다. 소설에서 시작된 책 읽기는 차차 영역을 넓혀 <사상계> 같은 사회비평 잡지에 이르렀다.

경남고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지만 공부만 하는 모범생은 아니었다. 운동을 하는 친구들과 어울렸고 문학청년들과도 우정을 쌓아갔다.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웠다. 싸움에 말려 친구들과 의리를 지키려다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고교 시절 처음 이름 때문에 붙은 ‘문제아’라는 별명이 나중에는 실제가 되고 말았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 성적은 늘 좋은 편이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을 때 문 대통령은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과 학교의 뜻대로 서울대 상대에 응시해야 했다. 결과는 낙방. 재수 끝에 1972년 경희대학교 법학과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72년 당시는 유신 선포와 함께 민주주의의 억압이 노골화되던 해다. 유신에 반대하는 대학마다 탱크가 진주할 정도여서 결국 휴교령이 내려졌다. 학생들은 강의실 대신 술집이나 하숙집에 모여 시국을 개탄했다.

1973년 유신 반대 투쟁이 본격화되면서 대학생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개헌 청원 100만 서명운동이 벌어지자 당시 정부는 긴급조치 1, 4호를 발동했고, 이후 1974년에는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건이 발생했다. 그해 문 대통령은 유신 반대 학내 시위를 주동하다 체포됐지만, 구류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이듬해인 1975년 4월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이 사형을 당했고, 문 대통령은 다음 날 사법 살인에 항의하는 대규모 학내 시위를 주도하다 끝내 구속되고 말았다. 그리고 1975년 석방되자마자 징집 신체검사와 입영통지서를 받고 결국 강제징집을 당했다.
 
창원 39사단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문 대통령은 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에 배치된다. 복무 당시 문 대통령은 폭파 과정 최우수, 화생방 최우수 표장을 받았고, 공중낙하, 수중침투, 천리행군, 고급 인명구조 훈련 등을 거뜬히 치러낸 특A급 사병이었다. 상병 때는 북한이 일으킨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대한 대응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제대 후 복학, 이어진 학생운동과 사시 합격

1978년 2월, 문 대통령은 31개월 만기 제대했다. 제대 후 현실은 암담 그 자체였다. 복학의 길은 막혔고 대학 졸업장 없이는 취직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자신은 고졸로 살아도 좋다는 심정이었지만 평생 고생하신 부모님을 볼 면목은 없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은 문 대통령을 사법시험의 길로 이끌었다. 장남으로 집안을 건사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뒤늦게나마 아버지께 한 번이라도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아버지 49재를 마친 다음 날 문재인은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로 들어가 고시 공부에 매달렸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치열하게 공부한 끝에 유신정부 1979년 초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 다음 해 2차 합격을 목표로 공부에 정진하던 중 10·16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곧이어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이 터져 시대는 격랑에 휩싸였다. 긴급조치가 해제되고 복학 논의가 시작되는 한편, 신군부가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급변했다.

1980년 학교로 돌아온 문 대통령은 복학생 대표로 ‘서울의 봄’ 한가운데에 섰다. 대규모 시위가 연일 이어졌고 거침없이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면서도 고시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1980년 4월 학내 시위가 한창이던 속에서 2차 시험을 치렀다.

1980년 5·17 확대 계엄 조치가 발동되면서 경희대 운동권의 핵심이었던 그는 또다시 구속됐다. 이후 5·18 광주항쟁을 앞두고 수많은 학생, 민주인사들이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군사재판에 즉결 회부됐다. 이때 문 대통령은 5월 15일 서울역 앞 시위에서 발생한 경찰 사망 사건의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느라 군사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채 미결수로 남아 있었다. 결국 ‘혐의 없음’이 입증됐지만 석방이 차일피일 미뤄져 20여 일 이상을 경찰서 유치장에서 보냈다. 그때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2차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유신정부와 1980년대 민주화 봄 그리고 전두환정부 초기시기에 사법고시 출신 정치인들이 박정희세대보다는 전두환세대를 선택해야 자유화, 개방화 그리고 민주화 세대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박정희 유신시대 의식화 교육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개혁개방과 민주화를 지지해야 합니다

등소평은 모택동의 전체주의 세대를 극복하기 위하여 국가주석 3선 금지(중임제 도입)를 했습니다

1970년대 모택동 시대 의식화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또 다른 마오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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