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종전 ‘5대 핵심조건’ 제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4일,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4년 차에 접어드는 전쟁을 끝내는 조건을 집약한 ‘평화를 위한 5대 핵심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개전 3주년을 맞아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 정상회의’ 개막 연설에서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평화를 선물로 주진 않을 것”이라며, 다섯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진정한 평화가 구축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우크라이나·유럽 참여 요구
5대 조건 첫번째는 ‘우크라이나의 종전 협상 참여’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러 간에 진행 중인 종전 협상을 강력 비판하면서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어서, 우크라이나는 협상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럽도 협상에 동참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두 번째 조건은 ‘즉각적인 포로 석방’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관해 “우크라이나인 수천 명이 러시아에 억류돼 있다”며 “러시아가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즉각적인 포로 석방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나토 가입 자격 있어”
세 번째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는 수십 년간 유럽의 안보를 유지해 온 검증된 시스템”이라면서 “우크라이나는 EU(유럽연합) 가입과 함께, 나토의 안보 보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나토 가입이 불가능하다면, 우크라이나 내에서 나토 수준의 안보 체계를구축해야 한다”며 유럽 주요국과 협력해 안보 보장 체계를 자체적으로 구축할 구상을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 네 번째 조건으로 ‘주요 국가들과의 양자 안보 협정 확대’를 내세웠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이미 28개국과 안보 협정을 체결했다”며 “이를 더욱 늘려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조건은 ‘자주적이고 강력한 유럽 안보’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통합된 유럽만이 도전에 맞서 싸울 수 있다”면서 “유럽은 자주적이고 강력한 안보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푸틴이 평화 주진 않을 것”
이와 함께,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푸틴)는 뭔가 교환 조건으로도 평화를 주진 않을 것”이라고 미-러 간에 진행 중인 종전 협상을 거듭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힘과 지혜, 연대, 그리고 여러분과의 공조를 통해 평화를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날 회의에 참석한 유럽 주요 국가와 유럽연합(EU), 캐나다 등을 말합니다.
◾️ “유럽 전체 운명 위태”
이날 회의에 참석한 캐나다와 유럽 10여개국 정상, 그리고 EU 지도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재확인했습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의 잔인한 침공 3주년을 맞아 유럽이 키이우에 있다”면서 “우크라이나는 유럽”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4년차에 접어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규정하고, “위태로운 것은 우크라이나의 운명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운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회의에는 비유럽 국가 가운데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참석했고, 회의 전후로 우크라이나 주요 당국자들과 회동했습니다.
◾️ 러시아 “나토 포기가 협상 전제”
한편, 세르게이 라프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종전 협상 참가를 원한다면,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게 전제 조건”이라고 24일 밝혔습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과 회담 직후 공동회견에서 이 같이 말하고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것은, 절대 타협 불가능한 (대화의) 전제 조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라브로프 장관은 특히 “우크라이나든 유럽이든 만날 준비가 돼 있다”면서 “협상으로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있는, 확고하고 지속가능한 결과가 나오면 군사작전을 중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미-우크라이나 자원 협정 타결 임박
이런 가운데, 미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진행 중인 천연 자연 활용에 관한 협상의 타결이 임박했다고 올하 스테파니쉬나 우크라이나 유럽·유로대서양 통합 담당 부총리 겸 법무장관이 24일 밝혔습니다.
스테파니쉬나 부총리는 현재 협상이 ‘최종 단계’에 있다며 “신속하게 협상을 마무리하고 서명 절차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미-우크라이나) 양국 지도자들이 가능한 한 빨리 워싱턴에서 협정에 서명하고 이를 공식 승인하기를 희망한다”면서, 이번 협정은 “수십 년간 지속될 양국 간 헌신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협상 내용과 조건 등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23일), 대미 자원 협정안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23일 키이우에서 기자회견에 나선 젤렌스키 대통령은 협정안에 “우크라이나 국민이 10세대에 걸쳐 갚아야 할” 물량이 명시돼 있다며 맹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으로 받은 원조의 2배를 상환해야 한다’는 조건도 협정 초안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 미 중동 특사 “이번 주 서명 예상”
젤렌스키 대통령이 부정적 입장을 밝힌 지 하루 만에 스테파니쉬나 부총리가 협정 서명을 희망한다고 밝힌 것인데, 급반전된 메시지가 나온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종전 협상에 관여하고 있는 스티브 위트코프 미 중동 특사는 23일 CNN 인터뷰에서 “이번 주에 (자원 협정) 합의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도 같은날(23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자원 협정은 “암묵적인 경제적 안전 보장”을 포함한다며 신속한 타결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마이크 월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역시 이날(23일)폭스뉴스에서 자원 협정의 중요성을 언급했습니다.
◾️ 5천억 달러 규모 자원 권리
자원 협정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수·재정 지원 등에 관해, 희토류 채굴·가공·수집 권리를 미국이 확보하는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일 밝히면서 공론화됐습니다.
이후 희토류 이외 광물과 석유, 천연가스 등 전반적인 자연 자원으로 대상이 넓어졌습니다.
백악관이 제시한 최종안에는 약 5천억 달러 규모 자원을 미국이 확보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키이우인디펜던트 등 우크라이나 매체들이 24일 전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지난 21일자 문건에는 광물, 가스, 석유 등 천연자원 수입 절반, 그리고 항구와 기타 기반시설에서 얻은 수입 또한 미국에 양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문건에 명시된 양도 규모도 5천억 달러입니다.
이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기여한 규모로 트럼프 대통령이 판단한 액수입니다.
◾️ 유엔 종전 결의안 처리
한편, 24일 유엔 총회에서는 우크라이나 종전 결의안 두 가지를 처리할 예정입니다.
하나는 미국이 초안을 마련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쓴 것입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결의안에는 ‘러시아의 침략’이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을 통한 비극적 인명 손실”을 강조하며 “분쟁의 신속한 종식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지속적 평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우크라이나 쪽 결의안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이 적혀 있고,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모든 (러시아) 군대를 조건 없이 즉각적으로 완전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아울러 “무력이나 위협에 의한 영토 취득은 합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조항과 “적대 행위 조기 중단”, 그리고 “올해 안에 전쟁을 끝낼 시급한 필요”도 명시돼 있습니다.
이 같은 우크라이나 측 결의안은 EU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총회 결의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달리 구속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 나라 중 하나로 거부권을 갖고 있어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총회 결의안은 국제사회에 메시지를 내는 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VOA 뉴스